한글의 우수성은 탁월한 표음문자로서 다른 표어문자,표의문자등을 원활하게 자신의 안으로 포섭한다는데에 있죠. 그래서 people을 피플로 쓰자.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일리는 있는 말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영어 또한 한글과 마찬가지로 표의문자라는 겁니다.
한글이 표어문자이자 표의문자로 진화한 한문을 흡수하여 더욱 편리하게 그 의미를 활용할 수 있게 된 표음문자인 것처럼 애당초 영어자체도 과거 페니키아인들이 이집트의 상형문자의 형태를 축약하여 사용한 아브자드에서 로마시대에 그리스 알파벳과 혼합해 표어문자로 바꾼 라틴어가 다시 시간이 지나 변하면서 만들어진 표음문자에요.
그래서 보통 영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도 일반인들은 People-Citizen-Nation의 의미소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드뭅니다. 보통 그냥 구분없이 people로 통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에요.
하지만 서구권에서도 법적인 개념으로 들어가면 이 세 용어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People은 영문학적으로 자연인으로서 본원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합니다. 법적-사회적 존재에 앞선 천부인권을 지닌 본원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뜻하죠. 그래서 사람人을 우선하여 인민이라 번역하는 겁니다.
Citizen은 사회적 합의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의미하기에 명확히 따지자면 인민이 다음 걸음으로 나아간 공동체속에서의 법적, 개체로서의 인간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자市자를 붙여 시민이라고 합니다.
Nation은 집단적 개념으로서의 인간에 가깝습니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닌 여러 단위 공동체로서 조직된 집합으로서의 인간을 의미하죠. 그래서 나라國자를 붙여 국민이라고 합니다.
셋 다 모두 '인간'을 표상하는 단어들이지만 이렇듯 가지고 있는 의미소가 다른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판례나 선언문등을 보면 이 세 가지 단어를 엄밀히 용례를 달리해 사용합니다.
문제는 한글과 영어는 서로 다른 뿌리를 둔 표음문자이기에 이런 의미소를 개념적으로 공유하기 힘들다는거에요. 그만큼 언어에 담긴 역사의 지속으로 사고의 형태자체가 다르다는 겁니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사고가 언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사고를 만든다.'라고 했는데 그 의미를 쉽게 예시하자면, 우리는 나뭇잎을 보고 녹색이라고 말하지만 그 과정을 세세히 분석하면 이미지-인지-인식의 세 과정을 거칩니다.
나뭇잎을 보게 되면 그 '색깔'을 알게 되죠. 그것이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보고 풀등 나뭇잎의 색깔과 같은 색깔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게 '인지'이죠.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그 같은 색깔들을 '녹색'이라 언어화시키며 비로소 '녹색'이란 존재를 개념짓게 됩니다.
그 개념짓는 과정이 바로 '인식'이고 마침내 인식된 '녹색'을 '녹색'이란 단어로 표현함으로서 누구나 '녹색'을 들으면 머리속에서 '그 색'을 바로 떠올릴 수 있게 되어 그 개념을 공유하고 사고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 이르는 길이 '녹색'과 'Green'은 달라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언어에 담긴 역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계 언어학자들이 이것을 극복하고자 만든 것이 바로 에스페란토어입니다만 뭐,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죠.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그냥 people을 피플로 쓰자? 언어의 역사성이 지닌 사고의 뿌리부터 뜯어버리자는 소리인데-물론 말한 본인이 거기까지 '인식'하고 있으리라고 보이진 않습니다만- 이런 걸 추진했던 사례를 한국과 일본 양자 모두 가지고 있죠.
한국에 저지른 민족말살론과 지들끼리 저지른 인종개조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