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이슈 게시판
 
작성일 : 19-10-26 23:30
고문ㆍ가혹 허위자백. 죽고 나서야 무죄 확정된 '부마항쟁' 시위참가자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2,238  

DYaV5W6g5U7.jpg

EqWjyCb4Ib9.jpg

B9J4bVobO7i.jpg

3nshZsTCysI.jpg

군사독재정권 시절 일상적으로 자행되었던 고문이나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진술자백이
비일비재했던 상황에서 고인이 되고 23년 만에 그나마 명예를 회복해서 다행이군요.

우리나라는 멀리는 중세 고려 시절 망이·망소이같은 신분해방운동의 농민 봉기부터 조선시대의 말기 동학농민운동을 지나 1919년 3.1운동 그리고 이승만 독재 시절의 학생을 중심으로 한 4.19 의거에서 다시 1979년 10월에 유신 체재 타도를 외치며 일어난 부마항쟁은 이후 김재규의 총격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유신 독재체재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도화선이 된 짧지만 강렬한 역사적 사건이군요. 이후 전두환에 의한 피의 학살인 '광주 민주화 운동'
으로 다시 군부독재로 점철 이후 87 민주항쟁으로 대한민국 국민 스스로가 대통령을 스스로 뽑는 직선제를 탄생시키면서 끊없는 자유민주주의를 염원하던 대한국민의 열망과 항쟁은

독재 타파와 실패를 피의 나선형처럼 반복하면서도 물러남이 없는 역사의 준엄한 수레의 진화속에서 한걸음 한걸음 그렇게 나아갔고 마침내 군부 독재 세력을 일소하며 점진적 자유 시민사회로의 진정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헤쳐나온 역사를 보여온게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드라마틱한 민주주의 역사의 탄생과 성숙 과정이자 이런 시대정신은 앞으로도 도도하고 굳건하게 이어질 것이라 확신하군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굿잡스 19-10-26 23:34
   
부마항쟁 이틀 뒤 계엄령이 선포되는데 이때의 국군 보안사령관이 다름 아닌 전두환.

위에서도 보듯 만약 김재규의 총격으로 유신 체재가 급격히 무너지지 않았다면 이런 군부 독재의 시민을

향한 무자비하고 끔찍한 피의 폭력은 광주에서가 아니라 앞서 마산이나 부산등 경상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군부독재 상황이였군요.

https://biglife.tistory.com/542
운동포기 19-10-27 00:27
   
잘죽어서 지옥가서 무지 비명지르고 있음...매일 가죽이 벗겨지고 뼈다귀가 뽑히겠지..
딸년도 금방 옆으로 갈테니....더 시끄러워지겠지..
프리미어주 19-10-27 00:59
   
저런데도 지금도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죠 ㅠㅠ
무영각 19-10-27 01:00
   
전두환도 하루라도 빨리 불지옥을 기어가야 할텐데
draw 19-10-27 01:05
   
역사 의식은 개나주고 일베클로 입어서 응원하고, 박정희,전두환  물고빠는 베충이 놈들은 다 디져야 함
푸른마나 19-10-27 03:33
   
일제시대 잔재죠.. 일제시대 앞잡이들이 경찰이 되면서 앞잡이일때 본게 독립운동가 고문해서 원하는 정보 얻는거였으니......
이니에메시 19-10-27 12:38
   
1978 한국 탄도미사일 발사성공-> 미일 박정권 압박 -> 미국 김영삼 서포트 -> 부마시위-> 박정희 암살
-> 전두환 미사일팀 핵개발팀 모두 해체

12.12 5.18 미국 카터정부 묵인

12.12 일어나기전인데도 11월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전두
환을 차기 권력자로 특필

정승화게엄사령관 한마디에 전두환은 군복벗을수
있는 위치였는데 일본은 어캐 전두환이가 권력자가 된다는
걸 알았을까

미국은 김재규문서 비공개처리함
1969년 닉슨독트린 -> 주한미군 5년안에 철수 통보 -> 유신선포

대만 베트남도 미군철수됨
     
굿잡스 19-10-27 13:40
   
??

부마항쟁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는 정치·사회적 갈등을 빚어오다가 1979년에 한계에 이르렀다. ‘백두진(白斗鎭) 파동’과 박정희 대통령 취임 반대운동으로 시작된 1979년은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연행·체포·고문·연금 등 강압책이 잇따른 가운데서도 야당과 재야세력의 저항이 고조되어 유신 정국은 긴장을 더해 갔다. 대표적으로 ‘크리스찬아카데미사건’·‘오원춘사건(吳元春事件)’에 이어 ‘YH무역노조 신민당사 농성’이 일어났고, 잇따라 김영삼(金泳三) 신민당 총재에 대한 총재직 정지 가처분과 의원직 박탈로 정국은 갈등으로 치달았다.

더불어 1970년대 말 한국경제는 제2차 오일쇼크라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위기와 결합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중화학공업의 과잉중복투자는 한국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고 갔고, 결국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과 함께 1979년 4월 긴축 등을 골자로 한 ‘경제안정화정책’을 정부는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중소자본가, 봉급생활자, 도시 노동자와 농민 등에게 안정화 비용을 부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와 같은 안정화정책은 경제위기로 어려운 처지에 있던 중소기업들의 도산을 더욱 부채질하여 기업의 부도율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고 가뜩이나 어려운 도시하층민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집중됐던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것은 이런 사회경제적인 모순과 연관되어 있었다. 1979년 당시 부산의 산업별 생산구조는 광공업 비중이 42.1%인데 비해 전국의 경우 23.7%로 광공업취업구성비가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부산은 신발, 의류, 합판 등 영세한 자본과 낮은 수준의 기술이 결합한 저부가가치 제조업이 주를 이뤘으며, 1966년 부산 내 제조업 종사자의 비율은 73.3%, 1975년에는 77.3%, 1980년에는 73.5%로 커다란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1979년에 들어서 부산지역 경제상황은 극도로 악화됐다. 부산지역 부도율은 전국의 2.4배, 서울에 3배에 달했고, 수출증가율 역시 전국증가율인 18.4%에 훨씬 못 미치는 10.2%로 하락했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은 이런 정치, 사회경제적 모순이 모여 일어난 학생·시민들의 반정부 민중항쟁이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4157
이니에메시 19-10-27 12:39
   
팩트

부마시위 공식 사망자 0명 ( 시위대 돌팔매에 맞은 1명 최근에 희생자로 억지로 인정함)

2005년 노무현 쌀개방반대시위 경찰방패에 맞고 농민 2명 사망함

진압은 노무현이 한수위였다

부마를 추모해야 한다면 더 희생자가 많았던 노무현시위도 추모해야
     
굿잡스 19-10-27 13:37
   
??

32년만에 드러난 진실... 부마항쟁 사망자 첫 확인고 유치준씨 1979년 10월 18일 사망... 경남연대 "호적등본과 기록, 증언 일치"

호적등본에는 "1979년 10월 19일 오전 5시, 마산시 산호동 소재 새한자동차 마산지사 앞 노상. 동년 11월 14일 동거인 유찬국 신고"라고 적혀 있었고, 자료집에는 "1979년 10월 18일 '경찰의 마산 경남대 소요사건 1차 발생 보고서'. 변사자 발생, 목림여관 앞 도로변(새안자동차 영업소 앞)에서 50여세로 보이는 노동자풍에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왼쪽 눈에 멍이 들고 퉁퉁 부은 채(코와 입에서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음. 민방위 모자, 얼굴 둥근 편, 키 160cm 가량"이라고 돼 있었다. 두 곳에 기록된 내용이 일치한 것이다. 

경남연대는 자료집에 기술해 놓았던 사람이 바로 유치준씨라고 보고, 부인 천술옥(77)씨와 큰 아들 유찬국(57), 셋째 아들 유성국(52)과 면담한 뒤 이를 재차 확인했다.

https://www.google.co.kr/amp/m.ohmynews.com/NWS_Web/Mobile/amp.aspx%3fCNTN_CD=A0001620595
이니에메시 19-10-27 12:42
   
팩트는 박정희 18년간 단한번도 발포유혈사태는 없었다는 사실

박정희 자체가 4.19로 등장한 인물인데

이승만정권 심판은 박정희가 함

3.15부정선거 군바리들 처내라고 궐기한게 5.16임

부마는 컷던 시위가 아니다 미국이 개입했기땜에 초기 진압한거지

박정권 가장 컷던 시위는 한일협정반대시위 경기도 대단지 시위다

진압할수 없을정도로 시위가 커지면 진압중단시키고 주동자들 청와대로 초청

대화로 풀었던게 박정희다

부마는 광주하고는 달리 지침이라는게 있었고 상체위로는 강하게 치지말것이라던가
     
굿잡스 19-10-27 13:32
   
??

인혁당재건위사건 피해자인 전 공동대표는 고소장에서 박정희의 범죄사실과 관련해 “유신독재정권 유지를 위하여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권력기관을 총동원하여 인혁당재건위사건 반국가단체 고문조작 국가범죄를 자행하고 사형수에 대하여 형 확정판결 하루도 지나지 않아 1975년 4월9일 사형을 집행한 ‘사법살인’ 학살의 원흉”이라고 밝혔다.

 

전 대표는 “인혁당재건위사건의 피해자 중 사형이 집행된 8인은 사후 32년 만에 2007년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고, 무기·유기징역형을 받은 다른 피해자들 역시 2008년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고문조작 학살 주범 박정희에 대한 반국가단체 고문조작 학살 국가범죄가 확증되었다”며 “국가가 고문조작 학살 주범 박정희를 엄정하게 단죄하여 역사정의와 사회정의를 바로세우고 반인권적 고문조작 국가범죄를 영원히 추방할 것”을 요구했다.

http://www.gongiknews.com/268

세계 최악의 사법살인, 조작부터 사형까지 ‘박정희 작품’


http://m.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05417.html#cb#csidxfcfb418d12ea396b483fbcefa04a4f7
          
이니에메시 19-10-27 13:39
   
박정희가 욕먹어야 한다면

노무현은 매장시켜야

탈북자보트에 어린애까지 있었는데 그냥 북으로 돌려보낸게 노무현임

언론에는 어캐 나왔냐면 걍 어부가 길을 잘못뚫어서 내려왔다는식으로 보도함

22명이나 타고있었는데 가족단위임 가족단위로 물고기잡냐 북한은?

노무현처럼 나븐놈이 미화되는 현실보면 탈북자들 분노한다

인혁당은 1차사건은 여전히 유죄야 일부는

월북자도 있고

국가보안법이 바뀌니 무죄인거지 당시는 유죄

인혁당은 법적용을 잘못한사건이지 조작사건이 아니다

박정희도 나중에 법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했다

인혁당은 대구출신좌파들인데 사실 대구좌파는 박상희와 연결되어있고

인혁당사건은 자세한건 미국이 문서를 공개해야 알수있다는

당시 미국과 대립상태였고 미사일개발 핵개발등

이원식같은사람은 박정희가 구제노력했다
          
이니에메시 19-10-27 13:41
   
공산주의 망할떄까지 한국전정권이 고문허용했다

시대적인거지

2공화국 장면정권도 고문금지는 안했다
     
굿잡스 19-10-27 13:49
   
인혁당은 1차사건은 여전히 유죄야> 

?? ㅋ 

1차 인혁당 사건, 대법원 무죄 확정…국가의 불법행위 인정 

https://www.google.co.kr/amp/www.donga.com/news/amp/all/20150530/71551067/2

팩트 팩트 거리면서 대법원 조차 시인한 중범죄 사건이고 부마항쟁의 시대적 상황등 제대로 하나 인지 못하곤 혼자서 어쩌고 쉰소리 주절주절 쯧.
          
이니에메시 19-10-27 13:51
   
전체 무죄는 아닌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찾아봐라 전원무죄가 아니야 ㅎㅎㅎㅎㅎㅎㅎㅎ
          
이니에메시 19-10-27 13:52
   
부마시위 니가 말한 사망자 1명 인정해도

노무현정부 진압떄 죽은사람이 더 많아 ㅎㅎㅎㅎㅎㅎㅎㅎ
          
굿잡스 19-10-27 14:00
   
딱보니 제대로 아는것도 없으면서 혼자 억지 춘향전하군.

유신 17주에 만난 당시 고문피해자 고환규 목사|" 

청년 3∼4명이 14일 아침 종로5가 기독교회관 편집국에서 까만 지프에 태워 눈을 가리고 어디론가 데려가더군요. 도착한 곳은 산 속이었는데 눈이 쌓여있었고 막사가 하나 있었습니다.』『4일동 안 옷을 벗기고 개 패듯 패더군요. 시멘트벽에 머리를 부딪치게 하고 쇠막대기로 머리를 무수히 때리고….졸도했다 깨어나면 또 때리고…. 

https://mnews.joins.com/article/2369989#home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감금 고문 가혹행위들이 자행되든 유신시대이고 군부 독재시절을 미화 헛소리나 남발하군. 한심한 쯧
               
이니에메시 19-10-27 14:01
   
노무현 국정원은 남용사건 없었냐?

정경학사건

일반인목숨을 담보로 간첩잡은 사건
                    
굿잡스 19-10-27 14:06
   
??

수많은 젊은 이들과 의인들이 피땀으로 군부독재에 맞서 오늘날  이룩한 자유민주주의는 얌체처럼 혜택을 다누리면서 군부독재 미화나 쳐하기 바쁜 어리석고 한심한 작태하군 쯧.(유신시절이고 군부독재 시절 온갖 고문  폭력등 자행된 처참한 인권 유린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

쉰소리는 본인 나라 본인 일기장에나 할 것.

이만.
                         
이니에메시 19-10-27 14:14
   
군부독재 그러는데

왜 문제인 유시민이는 그럼 북한군사정권엔 찍소리도 못하냐

노무현국정원은 탈북자들 괴롭혓다

김현희는 정신병걸릴뻔 했다고
이니에메시 19-10-27 12:42
   
박정희가문
형 박상희 신간회 건국동맹 독립운동

문재인가문
아버지 친일파 공무원 흥남시청 농업과장 해방후 부산으로 도망

김구 아들 김신-- 5.16맴버 박정권 장관함

여운형 동생 여운홍=== 박정희 공화당

김원봉 비서 황용주=== 박정희 절친 박정권 언론담당

안중근 조카 안춘생==== 유신정우회

박정희는 집안이 독립가문이라
불이익받고 교사직관두고 일본교장과 마찰
일본군간거

김규식 아들도 일본군
안중근 아들도 친일

독립가문은 그런집안이 많았다
     
굿잡스 19-10-27 14:04
   
설령 그 형이 독립운동가라도

그런데 그 아우는 왜 그럼? ㅋ
     
너르기 19-10-27 19:53
   
제 정신임??
박상희 좌익으로 대구 반란사건으로 사살되고 박정희는 동료들 불고 사면된 것으로 아는데
개나 소나 독립운동가냐?
상식이통 19-10-28 01:48
   
경상도 사람으로서
부마항쟁으로 탱크 포탄 발사하고 기관총 쏘면서 한 1천명정도 죽었어야
지금처럼 박정희 전두환 물고 빨고 하는 경상도가 없어졌을듯
사람이 많이 안 죽어서 문제였던 부마항쟁 이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