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와 새우는 별 관계가 없는 식품이다. 그러나 일본인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이 둘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1950년대 태어난 일본인에게 바나나도 새우도 고급 식품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중략) 왜 (일본인들은) 새우를 이렇게 많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일까. 새우는 대체 어디서 수입된 것일까. 새우를 잡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일본에 새우를 파는 것으로 인해, 수출하는 쪽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을까.”
무라이의 동남아 연구가 시작된 1970년대 중반은 일본이 경제력을 앞세워 동남아를 석권해 가던 시기와 겹친다. 태평양전쟁 시절 일본의 침략은 총칼을 앞세운 것이었지만, 전후의 침략은 자본을 앞세워 다방면에 걸쳐 이뤄졌다. 그중 하나가 새우였다. 1960년 625t에 불과했던 일본의 새우 수입량은 26년 만인 1986년 무려 21만t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한다. 일본의 새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많은 해안과 산림은 황폐화됐고, 주민들은 새우 가공 농장의 저임금 노동자로 고용됐다. 침략의 수단이 총칼에서 자본으로 바뀌었을 뿐, 일본과 동남아 사이의 지배-종속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
-무라이 요시노리-
일본의 "유상"대외원조가 동남아에 끼친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