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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14 22:52
해외 40억 퇴짜후 홀로 국산콩 지켰다..그 교수에 벌어진 일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1,977  

40도까지 온도 치솟아 속썩이던 보관시설부터 연구실 등 제안

“이제 후세대 연구자들도 걱정없이 우리 콩 연구에 뛰어들 길이 생긴 거죠.”

https://news.v.daum.net/v/20210214050120950

존경합니다(진정한 보수(미풍양속을 지키고 보존))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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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21-02-14 22:55
   
학계에 의하면 콩의 재배는 5000여년 전에 시작되었는데, 한반도 곳곳에서 탄화콩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고대 서적인 <관자 管子>에는 제나라 환공이 만주 지방에서 콩을 가져와 중국에 보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함경북도 회령 오동 유적지에서 기원전 1300년 경의 청동기 유물과 함께 콩, 팥, 기장 등이 출토되기도 했다.

또한 1920년대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 세계 야생 콩 종자의 절반이 넘는 3379여종의 야생 콩을 채취하기도 했다.

http://www.hansikmagazine.org/home/info/2815


중국의 삼국지 에는 "고구려가 *장양(贓釀)을 잘한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세운 직후인 7세기 말에는 이미 메주가 발해의 명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고구려인들은 메주로 된장을 만드는 법을 이웃인 중국과 일본에도 전파했다. 8, 9세기경에 장이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기록은 에 "고려의 장(醬)인 말장이 일본에 와서 그 나라 방언대로 미소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다.

https://www.google.co.kr/am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4/2017072401018.html%3foutputType=amp


청(淸 1636년 4월~ 1912년 2월 12일)

청국장 어원의 역사는 어떻게 된 것일까? 한글이 창제된 이후 ‘훈몽자회’에 청국장을 나타내는 ‘시(?)’를 ‘젼국 시(원간본, 1527)’, ‘쳔국 시’(규장각본, 1613), ‘쳥국 시’(한계본, 1660년 이후)라고 했다. 즉 청국장의 청국이 청나라에서 오지 않고 순 우리말로 불렸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https://www.foodbank.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575
neutr 21-02-14 23:07
   
모범 사례로 남았으면 좋겠네요.
기성용닷컴 21-02-14 23:22
   
감사합니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시네요
활인검심 21-02-15 1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