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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4-07 11:57
계속 한국 문화를 탐내는 중국에 방탄소년단이 보인 사이다 반응
 글쓴이 : wavesomet..
조회 : 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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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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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 21-04-07 13:38
   
외부의 적들도 무섭지만 내부의 적들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과거에 했던 일들입니다.

KBS 대전]
[앵커] 교육부 유아교육 홍보물에 일본 아이 사진을 사용해 논란을 빚고 있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교육 분야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전국 시.도 교육청에 홍보물 사용 중단을 요청했는데, 허술한 일 처리에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황정환 기자입니다.


[리포트] 만 5세 이하의 유아 대상 교육과정인 개정 누리과정 홍보물사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일본인입니다.
사진 판매 사이트에서 구입해 사용하는 과정에서 출처를 확인하지 않아 벌어진 일입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3년에는 초등학교 1, 2학년 국정교과서 표지에 일본인들이 주인공인 사진이 실려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당시 KBS 보도로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교육부는 다음 해 해당 표지를 전면 교체했습니다.
     
스리랑 21-04-07 13:40
   
2016년부터 초등학교 6학년들이 배우게 될 국정 사회 교과서 실험본에서 무려 350개가 넘는 오류들이 발견됐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에 성공했다', '의병을 토벌했다'는 등 도대체 어느 나라의 역사 교과서인지, 황당한 표현들이 곳곳에 나옵니다.
출처: http://www.ytn.co.kr/_ln/0103_201412102203573684



개정판 국정 교과서를 전국 일부 학교에서 사용한 사회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 나라의 역사 교과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황당한 오류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부당하게 우리 외교권을 박탈한 사건에 대해 '성공적' 이란 표현은 왜곡된 일본 교과서에나 나올 법하다는 지적입니다. 또 일본의 우리 의병 탄압은 '의병 대토벌', '의병 소탕' 등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친일 논란을 빚었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서술과 유사한 부분들입니다.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이 황당한 오류 투성이 실험용 교과서로 우리 역사를 배웠습니다. YTN 박영진입니다. 출처: http://www.ytn.co.kr/_ln/0103_201412102203573684
          
스리랑 21-04-07 13:41
   
https://news.v.daum.net/v/20200429223050215




이밖에도 국사편찬위원회는 일본 역사를 설명하면서 ‘국왕 중심의 새로운 정부’라고 기술한
교과서 출판사에게 관련 대목을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부’로 수정하라고 권고했다.


김태년 의원은 이를 두고 "국사편찬위가 근현대사 영역에서 일본 편향적 교과서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김태년 의원은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서울대 교수시절 누구보다 앞장서서 한일병합의 불법성을 이야기하고, 을사조약보다는 을사늑약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소신있는 학자였다"며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런 학자의 소신도 무너뜨리고 반역사적 용어로 교과서 수정을 지시한 것은 통탄할 수준”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출처: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100914095253368&nvr=Y




교육부 주최 행사에서 '일본해' 지구본 배부

기자] 9월 22일부터 부산에서 교육부가 주최한 행사에서 일본해로 표기된 지구본을 나눠준 겁니다.


YTN동영상 보기


지구본을 자히 보면 동해를 일본해, Sea of Japan으로 표시하고 괄호로 East Sea라고 적어놨습니다. 교육부가 주최한 행사에서 일본해로 표기된 지구본을 나눠준 겁니다.


학부모) 아이가 '이거 일본 바다야?' 묻는데 '아니야 잘못된 거야' 이렇게 넘어간 거에요.

이거 봐 왜 일본해라고 적힌 것을 줬지??….]

문제의 지구본을 배부한 곳은 방과후 학교 체험장에서였습니다.

YTN 최아영[cay24@ytn.co.kr]입니다.

https://blog.naver.com/bleach0417/220828017236
봉고르기니 21-04-07 14:56
   
내부에 적을 만드는 국개들
구르미그린 21-04-07 17:09
   
중국인들이
"한국은 수천년동안 중국의 속국이었다 => 한국문화는 모두 중국이 가르쳐준 것. 한국문화 원류는 중국"
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한국국민이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일부 한국인들이
"고대 일본은 삼국의 식민지였다. 일본 문화는 다 한국이 전수해준 것"
이라고 말하는 것을 일본인이 막을 방법이 없는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한국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100퍼센트 주권영역인 국내에서 외국인에게 털리지 않게 정책을 신경 쓰는 것,
갈수록 한국이 중국인 세상이 되게 만드는 외국인 이주 정책을 중단하는 것
... 입니다.

이것만 해도
간접 민주주의 국가의 구조적 문제점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신경쓰는 한국인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가생이 게시판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가 정치 얘기인데
기왕 정치 얘기할 거면 정책을 신경 쓰는 편이 낫습니다...
     
스리랑 21-04-07 18:00
   
네, 반갑습니다.

중국인들이
"한국은 수천년동안 중국의 속국이었다 => 한국문화는 모두 중국이 가르쳐준 것. 한국문화 원류는 중국"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한국국민이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중국의 역사를 알고 보면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한족(漢族)이라 부릅니다. 한족은 유방이 중국대륙을 통일하면서 국호를 한(漢)이라 하면서 한족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한족이 없었습니다. 중국어는 알타이어계(북방계)가 아닌 유럽언어 구조와 동일한 남방계 언어를 사용합니다.

사실 중국의 역사는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이족의 역사입니다. 중국인들이 오랑캐라 불렀던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 모두 동이족입니다.

중국 일부에선 요임금을 북적사람, 순임금을 동이사람, 하나라의 우임금을 남만사람, 은나라의 탕왕을 동이사람, 주나라의 무왕을 서융사람이라 합니다. 중국(中國)이라는 나라는 신해혁명(辛亥革命) 당시 손문(孫文)이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으로 나라 이름을 제정하면서 줄여서 중국이라는 이름이 탄생하였습니다.
          
스리랑 21-04-07 18:03
   
요堯와 순舜이 9년간 계속된 대홍수로 말미암아 전전긍긍할 무렵, 동방 조선의 천자 단군왕검은 104세 되시던 갑술(BCE 2267)년에 태자 부루를 중국 양자강 남방에 있는 도산塗山에 파견하여 회의를 주재토록 하고

단군조선의 제후 순임금이 보낸 우禹에게 ‘오행치수五行治水의 비법’을 전수합니다. 그기록이 (『단군세기』;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오월춘추』; 『역대신선통감』; 『묵자』; 『응제시주』; 『동사강목』; 『대한역사』) 있습니다.


우임금이 이 오행치수법으로 홍수를 다스려 민심을 얻고 하나라를 열었으니, 고조선(단군조선)이 하나라 개국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리랑 21-04-07 18:12
   
고조선(단군조선) 시대는 삼신 사상의 신교문화로 동아시아 대륙을 위세 당당하게 통치하던 동이족의 전성기였습니다. 고대 사서에는 하나라와 상(은)나라·주周나라 등에서 사절을 보내 정기적으로 조공을 바친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단군세기』; 『규원사화』)


인류 문화사상 백성을 가장 도덕적으로 다스렸다는 요堯·순舜 정권도 사실은 동방 단군조선 문화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습니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를 보면 요임금(BCE 2357~2258) 말기에 덕이 쇠하여 부족 간에 영토 분쟁이 그치지 않자 단군왕검께서 순舜에게 명하여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서경』에도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사 지내고 ‘동방의 임금님’을 뵈었다는 뜻인 “동순대종東巡岱宗, 사근동후肆覲東后”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은 순임금이 섭정을 처음 맡은 그 해(BCE 2285년, 순은 28년간 섭정 재위 BCE 2255~2208) 2월에 동방을 순행하며 신교문화의 풍속에 따라 차례로 천신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동방의 군장이신 고조선의 단군 왕검을 찾아뵈었다[肆覲東后]는 기록입니다.


『강희자전』에서는 ‘근觀’을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분을 뵙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또 ‘후后’는 ‘군주君主’를 지칭하는 말’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중국의 정사 ‘이십오사二十五史’의 첫머리인 사마천의 『사기』「오제본기五帝本紀」에도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임금이 단군조선 중앙 정부의 승인을 받아 요임금으로  부터 통치권을 계승한 첫해 2월에 동방의 군장君長께 인사를 드리러 왔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기』「오제본기」에는 “동방의 군주를 만나 역법을 고쳤고,  음률과 도량형을 통일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역법이나 음률, 도량형 통일은 천자의 고유권한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순임금은 단군조선의 제후였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스리랑 21-04-07 18:17
   
동방의 단군조선이 고대 중국정치사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대표적인 사건 한 가지를 더 예를 들면, 전한前漢때 유향劉向은 『설원說苑』 「권모權謀」편에서 3,800년 전 상商 나라 건국의 비사秘史에 얽힌 고대 동방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명재상 이윤伊尹의 보필을 받은 성탕成湯이 하 나라의 폭군 걸桀왕을 정벌할 때, 두 나라 간 패권 싸움의 성패成敗를 쥐고 있던 구이九夷(동이 구족) 군대 곧 동방 고조선의 결정적인 지원을 받은 탕이 걸을 내쫓고(湯, 放桀) 상商 왕조를 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13세 흘달 단군 때 사건으로서 『단군세기』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민족사의 국통國統을 더듬어 보면 중국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례는 더욱 많습니다. 만주 대륙의 요遠, 금金, 청淸 그리고 원元(몽골) 등의 개국조는 모두 동방족[東夷] 출신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