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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4-10 09:31
도올김용옥]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알려면 동경대전을 읽어야 한다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1,925  

도올김용옥]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알려면 동경대전을 읽어야 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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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jfqhkrotorldi 21-04-10 09:38
   
이 양반 처세술이 대단하네.
     
스리랑 21-04-10 12:07
   
네, 위키백과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학력
천안제3국민학교 졸업
보성중학교 졸업
보성고등학교 졸업 (55회)
1968년 3월~1972년 2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문학사, 〈버트란드 럿셀의 논리원자주의〉)
1972년 3월~1972년 8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대학원
1972년 9월~1974년 6월 중화민국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 (철학석사, 〈노자 "자연" 철학중 "무위" 지공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
1974년 9월~1975년 3월 일본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 연구생
1975년 4월~1977년 2월 일본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 (철학석사,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
1977년 2월~1977년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
1977년 9월~1982년 6월 미국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철학박사, 〈왕부지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chich(1616~1692)〉)
1990년 3월~1996년 2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 (한의학사)
경력
1982년 9월~1985년 8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
1985년 9월~1986년 4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정교수
1996년 3월~1997년 2월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연구소 연구교수
1996년 9월~1998년 8월 용인대학교 무도대학 유도학과 교수
1997년 3월~1997년 8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초빙교수
1997년 9월~1998년 8월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대우교수
1998년 8월~1999년 8월 보스턴 뉴잉글랜드 복잡계연구소 철학분과 디렉터
2002년 12월~2004년 3월 문화일보 기자
2003년 3월~2004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객원교수
2003년 9월~2004년 8월 중앙대학교 교육학부 석좌교수
2005년 3월~2006년 2월 국립순천대학교 인문학부 석좌교수
2007년 3월~2008년 6월 세명대학교 석좌교수
2007년 4월~2009년 3월 중앙일보 기자
2013년 3월~ 한신대학교 석좌교수
방송 출연
1994년 MBC 《MBC 이야기쇼 만남, 공부란 무엇인가》
1997년 SBS 《명의 특강, 건강하십니까》
2004년 9월 8일 MBC 《아주특별한 아침 - 도올 김용옥, 랩 가수 데뷔?》
2007년 7월 11일 KBS1 《단박인터뷰》도올 김용옥
2007년 10월 9일 KBS 스페셜 《남북정상회담 특별기획 도올의 평양이야기》
2007년 12월 18일 MBC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
2013년 1월 KBS 《이야기쇼 두드림》
2016년 JTBC 《차이나는 도올》
2018년 MBC 《도올스톱》
TV 강의
1999년 11월~2000년 2월 《노자와 21세기》(56회), EBS
2000년 10월~2001년 5월 《도올의 논어이야기》(64회), KBS
2002년 8월~2002년 11월 《도올, 인도를 만나다》(28회), EBS
2004년 1월~2004년 6월 《도올특강, 우리는 누구인가》(26회), MBC
2006년 1월~2006년 5월 《도올특강 역사를 말한다》(6회), 광주MBC
2006년 2월~2006년 8월 《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50회), EBS
2009년 11월, 《도올특강 논어이야기》, 광주MBC
2011년 9월~ 《중용, 인간의 맛》(36회), EBS
2020년 3월~2020년 6월 《도올학당 수다승철》(13회), KBS
다큐멘터리 제작(연출)
2004년 12월~2005년 8월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10회), EBS
인터넷 강의
2007년 2월~ 《영어로 읽는 도올의 요한복음》(60강), EBSlang
2010년 5월~ 《도마복음강해, 도올이 만난 살아있는 예수》, 나즐공
2010년 5월~ 《대학(大學), 대학이란 무엇인가?》, 나즐공
2011년 6월~ 《중용》, 나즐공
저술
동양 고전 해제 / 저서
《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 통나무, 1985
《절차탁마 대기만성》, 통나무, 1987
도덕경 《老子哲學 이것이다》(上), 통나무, 1989
도덕경 《老子-길과 얻음》, 통나무, 1989
《나는 佛敎를 이렇게 본다》, 통나무, 1989
《도올논문집》, 통나무, 1991
《話頭, 혜능과 셰익스피어》, 통나무, 1998
금강경《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통나무, 1999
논어 《도올 논어》(1·2·3), 통나무, 2000(1권), 2001(2·3권)
도덕경 《노자와 21세기》(1·2·3), 통나무, 1999(1권), 2000(2·3권)
중용 《檮杌先生 中庸講義》(上), 통나무, 1995
논어 《논어한글역주》(1·2·3), 통나무, 2008
효경 《효경한글역주》, 통나무, 2009
대학 《대학·학기 한글역주》, 통나무, 2009
중용 《중용 한글역주》, 통나무, 2010
중용 《중용, 인간의 맛》, 통나무, 2011
맹자 《맹자, 사람의 길》, 통나무, 2012
반야심경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통나무, 2019 ISBN 9788982641398
한국철학 / 기철학
《白頭山神曲-氣哲學의 構造》, 통나무, 1990
《讀氣學說》, 통나무, 1990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 통나무, 1990
《三國遺事引得》, 통나무, 1992
《氣哲學散調》, 통나무, 1992
《삼국통일과 한국통일》(上·下), 통나무, 1994
《혜강 최한기와 유교》, 통나무, 2004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 통나무, 2004
《도올심득 東經大全》(1), 통나무, 2004
기독교 / 서양철학
《이성의 기능》, 통나무, 1998 (원저: The function of Reason,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요한복음강해》, 통나무, 2007
《기독교성서의 이해》, 통나무, 2007
《큐복음서》, 통나무, 2008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1), 통나무, 2008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1·2·3), 통나무, 2010
《도올의 로마서 강해》, 통나무, 2017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통나무, 2019
《나는 예수입니다 : 도올의 예수전》, 통나무, 2020
예술비평 / 작품집
《어찌 묻힌단 말 있으리오》, 통나무, 1986
《아름다움과 추함》, 통나무, 1987
《이땅에서 살자꾸나》, 통나무, 1987
《새춘향뎐》, 통나무, 1987
《장군의 아들》, 통나무, 1990
《石濤畵論》, 통나무, 1992
《天命·開闢》, 통나무, 1994
의학
《너와 나의 한의학》, 통나무, 1993
《醫山問答-기옹은 이렇게 말했다》, 통나무, 1994
《건강하세요》(Ⅰ), 통나무, 1998
《21세기 한의학을 위하여》의 제2강,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9
평론 / 에세이 / 철학대중서
《여자란 무엇인가》, 통나무, 1986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 통나무, 1986
《도올 金容沃의 新韓國紀 》, 통나무, 1990
《도올세설》, 통나무, 1990
《대화》, 통나무, 1991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1·2·3), 통나무, 2002
《도올의 淸溪川 이야기》, 통나무, 2003
《도올의 국가비젼》, 통나무, 2004
《앙코르와트·월남가다》(上·下), 통나무, 2005
《韓國心·台灣情》允晨文化, 2006(譯者: 朱立熙)
《논술과 철학 강의》(1·2), 통나무, 2006
《계림수필》, 통나무, 2009
《사랑하지 말자》, 통나무, 2012
《도올의 아침놀》, 통나무, 2012
《도올의 교육입국론》, 통나무, 2014
《도올의 중국일기》(1~5), 통나무, 2015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 통나무, 2016
《박원순과 도올, 국가를 말하다》, 통나무, 2017
《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 통나무, 2019
《슬픈 쥐의 윤회》, 통나무, 2019
《유시민과 도올 통일, 청춘을 말하다》, 통나무, 2019
          
스리랑 21-04-10 12:08
   
생애
김용옥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chih(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2]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김병종,김호득,장상의,심현희,장혜용,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를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3]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스리랑 21-04-10 12:10
   
한때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었지만 지금은 180도 바뀌어 우리 대한민국의 정신문화를  알리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스리랑 21-04-10 12:17
   
우리 대한민국 선조님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준 정신문화를 한번 소개드립니다.

인류의 이상은 무엇일까?

역사속에 잠들어있는 꿈과 희망은 무엇일까?

역사를 이끄는 동력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에 자천광명왈(自天光明曰) 환(桓)이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광명은 환(桓)이요, 자지광명왈(自地光明曰) 단(檀)이다. 어머니 지구로부터 내려오는 광명은 단(檀)이다.
환단(桓檀)은 바로 천지 부모의 조화광명이다. 이 광명의 실체가 무엇인가? 바로 그게 신(神)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神)이 자기를 현상 우주에 드러낼 때는 반드시 3수(三數) 원리로 사물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온 우주도 하늘(天)과 땅(地)과 인간(人)으로 자기를 드러낸다. 극미의 원자 소립자 세계로부터 극대우주 자체까지 모든 사물은 3수(三數)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몸도, 의식의 마음의 구조도, 3의 구조를 가지고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삼신(三神)은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의 신의 3대 본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삼신(三神)의 덕성과 조화의 신성과 광명이 하늘에도 그대로 깃들어 있어서 천일(天一)이라고 한다. 이때의 일(一)이란 우주를 낳아준 신성을 말한다. 또한 땅에도 그대로 깃들어 있기 때문에 지일(地一)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지의 열매, 천지의 꿈인 인간 속에도 이 우주 삼신의 신성과 조화와 광명의 생명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


그러면 삼신三神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인간 몸속에 깃든 삼신(三神)의 3가지 손길은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삼신은 만물을 낳는 조화신(造化神), 만물을 깨우치고 기르는 교화신(敎化神), 그리고 만물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치화신(治化神)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하늘의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삼신(三神)이 인간의 몸에 내려와 性,命,精 삼진(三眞)이 된다. 하늘에는 삼신(三神) 이 있고, 땅에는 삼한(三韓) 이 있으며, 인간 몸속에는 삼진(三眞)이 있다고 말한다. 삼신(三神)이 우리 몸에 들어와 생긴 3가지 참된 것‘이 곧 성명정(性命精) 삼진(三眞)이다.


만물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조화신(造化神)은 내 생명의 근원, 내 마음의 뿌리 자리, 성(性)이 되어 자리를 잡는다. 만물을 양육하는 교화신(敎化神)은 나의 명 命 , 순수한 우리말로 목숨이 된다. 목숨을 영어로 옮길 때, 수명(lifespan)으로 흔히 이야기하지만, 여기서의 명 命 은 수명, 생명, 그리고 천명( 天命) 사상까지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만물의 생명 질서를 바로잡는 치화신(治化神)은 내 몸의 정(精)이 된다. 내 몸속에서 삼신의 마음(性)과 생명(命)이 발동되는 것은 실제로는 내 몸의 정(精) 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내속의 참 마음(性)을 닦고 내 속의 참 생명(命)을 키우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정기(精氣)을 잘 확보하는 것에 달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조화신이 내 몸에 들어와 성 性이 되고, 교화신이 들어와 명命이 되고, 치화신이 들어와 정精이 된다. 이는 내 몸 속에 삼신 하나님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내 몸속에 우주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 이것이 삼신문화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 전해주는 깨달음의 한소식이다. 性,命,精 삼진(三眞)은 인간이 진리를 깨달음에 있어서 어떻게 그 길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말해준다.

性,命,精 삼진(三眞)은 육신을 뒤집어쓰면서 심기신(心氣身)의 삼망(三妄)으로 운용된다.

인간의 마음 心 과 기 氣와 몸 身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3가지 허망한 것이라 불린다. 하지만 삼망(三妄)은 다름 아닌 삼진 性,命,精이 인간의 하루 생활을 통해서 발현된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이고 나쁜 것이 아니다.

心氣身 삼망(三妄)은 학문을 닦고, 가정을 이루고, 출세를 하는 등의 모든 인간 삶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현실적 요소다. 실체가 없이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라 해서 삼망(三妄)을 망령된 것, 거짓된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창생들의 하루하루 고달픈 생활 속의 기쁨과 슬픔, 밝음과 어둠,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등이 다 뭉쳐져서 인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이 삼망(三妄)을 달리 삼방(三房), 3가지 방 房이라 부른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 性)이 작동을 한 것이 마음(心)이고, 인간의 목숨(命)이라는 것은 기(氣)로 발현되고, 정精은 몸(身)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심기신(心氣身)이 사물과 접해서 좀 더 감각의 차원에서 용사(用事)하는 것이 감식촉(感息觸)의 삼도(三途)이다.

감感은 느끼는 것, 식息은 호흡하는 것, 촉觸은 촉감을 말한다.

인간의 마음心은 감정感으로써 표현되고, 기(氣)는 호흡息을 통해서 작동되고, 몸身은 촉감 觸을 통해서 느낀다. 이 삼도(三途)는 신神의 조화 세계에 들어 갈수 있는 3가지 문호(門戶), 즉 삼문(三門)이 된다. 대부분의 창생들은 감식촉(感息觸)에 끌려 타고난 기질대로 살다가 인생을 마친다.

그에 반해 삼신(三神)의 도를 아는 철인들은 감정(感)을 다스리는 지감(止感), 호흡(息)을 고르게 하는 조식調息, 촉감觸을 금하는 금촉(禁觸)으로써 삼도(三途)를 잘 다스려, 궁극에는 자기 안에 내재된 삼신三神을 발현시켜 삼신의 조화 세계에 들어간다.


그래서 지감止感 , 조식調息, 금촉禁觸은 수행의 3대 요체이다.

신라 시대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던 원효대사나 화엄종을 확립한 의상대사도 이를 수행의 대의로 삼았다고 한다. 그들은 바로 삼신문화의 수행 원리로 도를 닦았던 것이다.

성명정(性命精) 삼진(三眞) , 심기신(心氣身) 삼망(三妄), 감식촉(感息觸) 삼도(三途)이 모두의 상호관계를 이해할 때, 환단고기가 밝히는 인성론(人性論)을 종합적으로 깨쳤다 할 것이다.

삼신사상은 조물주 신의 정체에 대한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동서문화의 본질적 차이를 보여준다.



삼신사상에 의해 동양과 서양의 신관, 우주관, 인간관이 확연히 구별된다. 유목문화에서 태동한 기독교 중심의 서양의 시각에서 볼 때, 신은 창조자로 하늘과 땅과 인간 위에 군림하는 초월신이다. 반면에 농경문화의 동양 사회는 천지인 삼재(三才)를 삼신의 자기현현自己顯現(self-manifestation), 즉 삼신이 현실계에 자기를 드러낸 것이라 본다.

따라서 천지인은 피조물이 아니다. 하늘도 신이요, 땅도 신이요, 인간도 신으로서, 천지인은 모두 살아 있는 삼신이다. 때문에 하늘 땅 인간 속에 삼신의 생명과 신성과 지혜와 광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 이러한 천지인의 관계를 수리(數理)로 표현한 것이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모두 하나의 근원자리에서 나왔음을 한 일一 자로 표현하였다. 즉 천지인은 삼위일체적 존재이다.


天一, 地一, 太一 이것은 태고시대 인류가 천지인을 어떻게 인식 했는지 보여주는 소중하고 경이로운 진리 주제어이다. 불가에서 수행의 핵심으로 말하는 ‘명심견성(明心見性)’도 궁극으로 내 마음을 밝혀서 성性을 본다는 것이다.

명(命)은 내 몸에 들어와 있는 삼신의 생명을 말한다. 명命은 목숨이요, 생명이요, 천명天命이며, 궁극으로는 조물주의 생명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인간의 육체는 얼마 살다 땅속으로 들어가 썩어 버리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삼신의 성령의 생명은 영원하다. 그 불멸의 생명력이 내 몸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불멸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게 수행이다.


하늘에서 인간을 내보낼 때 내려 준 명이 천명(天命)이다. 천명에는 삼신의 마음과 생명과 지혜와 신성 등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인간의 몸은 삼신의 모든 신성과 지혜와 생명이 한순간에 전달되는 일종의 광케이블로서 거대한 우주 생명의 도로다. 이를 통해서 모든 기운이 내려오고, 지혜가 열리고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성性과 명命!


사실 모든 종교의 결론도 성명학(性命學)이다. 유교도 성과 명을 닦는 것이 목적이다. 중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니라.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이른다.(『중용(中庸)』)

조화신(三神)이 나에게 내려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 바로 삼신의 본래 마음. 性이다. 내 마음이 곧 하느님의 마음이요, 천지의 마음이다. 하늘로부터 천명으로 받은 위대한 신성神聖!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道)이요, 인간이 가야 할 궁극의 길이다.

내 몸속에 있는 조물주의 마음과 생명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종교의 1차 사명이다.

하늘의 조화신이 내려와서 바로 나의 본래 마음, 인간의 본성이 됐다. 이 성性이라는 것은 심心방 변 옆에 날 생生자를 썼는데. 우리 마음이 생하는, 태동하는 그 바탕, 우리 마음의 본체, 심체, 우리 마음의 본원은 수행을 통해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나라고 하는 이 색신色身, 몸은 사라지고 이 우주 자체 법신法身이 된다. 그게 바로 성性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자성自性, 법성法性, 불성佛性과 같은 경계이다. 따라서 인간은 천지와 그 생명성, 신성이 동일한 존재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체계적인 해석을 한 인물이 고려 공민왕 때 행촌 이암선생이다.

그는 ‘신神의 3가지 본성이 바로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 조교치(造敎治) 삼신이다.’라고 했다. 즉 신神은 창조적 손길로 만물을 끊임없이 지어내는 조화신(造化神), 만물을 낳아놓고 가르치는 교화신(敎化神),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치화신(治化神)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하다가 늙어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이 작은 몸뚱아리, 색신色身이 아니고, 이 우주 자체인 우리들의 본래 몸뚱아리 법신法身은 조화신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우리 본성(性)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 마음의 본성자리는 바로 조물주 신성 그 자체다. 이건 엄청난 사실이다.


조화지신(造化之神)은 강위아성(降爲我性)하고, 교화지신(敎化之神)은 어머니의 이 지구의 신성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명命이 됐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 불멸의 생명이다. 그래서 이 선사상(仙思想)이라는 것은 바로 성명정(性命精)에서 이 지구의 어머니의 신성을 근본으로 해서 선도仙道가 나왔다.

그다음에 만물을 다스리는 치화신(治化神)은 바로 우리 몸에 들어와서 정(精)이 됐다. 이것을 성명정. 하늘의 조화신, 땅의 교화신, 사람의 치화신. 사람은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 있는 3가지의 참된 것. 이것을 하나님의 마음(性),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命),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는 생명의 동력원 정기(精)를 서양 사람들은 essence로 번역하는데

우리가 의학으로 보면 신장腎腸의 정수精水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신장腎腸의 정수를 축적해서 그걸 굳히는 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수도공부의 핵심인데, 지금은 남녀가 정(精)을 성을 즐기는데 쓰고 그러니까. 대부분 소멸당하는 것이다.


마음은 동하기 전의 본래의 근원 모습인 본성과, 구체적으로 사물에 동화되어 작용할 때의 감정(情, emotion)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심통성정心統性情”, 즉 “마음은 성性과 정情을 통섭한다.”고 말한다.

수행을 통해 우리 몸의 천지 기운이 밝아지면, 사람을 바르게 보고, 사물의 내면과 본성을 보기 시작한다. 수행을 하면 모든 생명의 본성인 신성(divinity)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본성이란 마음이 주변의 사물에 동화되기 전 단계, 근원 마음이다. 그것을 성性, 본성이라고 한다. 본성이란 ‘본래 성품’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은 같은 경계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돌멩이나, 흙덩어리나, 흐르는 물이나, 타오르는 불이나, 저 태양과 달, 은하계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돼 있는 환한 광명, 환(밝을 환桓)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의 경계다. 수행을 통해 우리 몸의 천지 기운이 밝아지면, 사람을 바르게 보고, 사물의 내면과 본성을 보기 시작한다. 수행을 하면 모든 생명의 본성인 신성(divinity)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본성이란 마음이 주변의 사물에 동화되기 전 단계, 근원 마음이다. 그것을 성性, 본성이라고 한다. 본성이란 ‘본래 성품’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은 같은 경계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돌멩이나, 흙덩어리나, 흐르는 물이나, 타오르는 불이나, 저 태양과 달, 은하계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돼 있는 환한 광명, 환(밝을 환桓)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의 경계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일심 경계, 그런 절대 평등의 경계, 절대 순수 의식에 돌아가 머물러야 한다. 그 경계를 불가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하나가 현실적으로 드러날 때는 음과 양, 둘로 나타난다. 그것이 하늘과 땅이다(天一과 地一). 그런데 하늘과 땅은 손발이 없다. 소리도 못 지른다. 순수 객관 세계다. 진리의 바탕, 진리의 원형이요, 만물의 생명의 뿌리다.

천지 부모의 손발이 되어 그 깊은 뜻, 높은 대 이상을 완성하는 자가 천지의 아들딸인 인간이다.

인간은 천지 부모의 뜻을 완성하는 자요, 천지의 궁극의 대 이상을 인간 역사 속에 실현하는 주인공이다. 때문에 너무도 지극하여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클 태太 자를 써서 ‘태일(太一)’이라고 했다. 그런데 인간은 온 우주의 거룩한 생명을 다 받아 나와서 우주의 뜻을 실현하는 진리의 중심적 존재다. 즉 천지의 모든 뜻을 이루는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인간이 천지의 원대한 꿈을 이루는 주체이기 때문에, 하늘땅보다 더 큰 자리라는 진리의 소식을 담아서 태일太一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생명 자리, 그 신성이 바로 태일太一이다. 인간의 몸속에는 이 우주를 낳아준 삼신三神의 신성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늘도 땅도 인간도 똑같이 바로 조물주 하느님의 덕성과 신성과 광명과 무궁한 지혜를 다가지고 있다. 이게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가장 위대한 선언, 이걸 제대로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천지(하늘땅)와 일월(태양과 달)이 나를 만들어주고, 나에게 생명을 내주는 그 모든 열매가 정(精)이다. 정기를 잘 간직해야 여기서 힘도 나오고, 생명력도, 지혜도 나온다. 모든 것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 정(精)이다. 수행을 통해서 본래의 성(性)과 명(命)이 하나였던 그 경계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내 생명력이 우주와 더불어 하나인 영원의 경계, 그 자리는 무한의 광명 그 자체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인 상태다.


그럼 성(性)과 명(命)은 무엇이 다른가?

밝은 모습 자체는 성(性)이고, 그 모습이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것, 그것을 하나의 생명력으로 표현할 때 명(命)이라고 한다. 수행이 아니면 내 생명의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수행은 내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이다.


유형의 정(精)과 무형의 마음(心)을 닦아 생명의 본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 닦는 공부로 떨어진다. 마음을 바르게 가짐으로써 정(精)이 변화된다. 정(精)이 굳어지고 맑아지고 승화된다. 그러면 그만큼 높은 성(性)과 명(命)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수행의 궁극은 생명의 본성인 성(性)과 명(命)을 회복하는 것이다.

생명(生命)의 원래 말이 성(性)과 명(命)이다.




인간은 왜 사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은 본래 내 생명의 밝은 모습(性),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생명력(命)을 회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나의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 이것이 우리들 삶의 목적이다. 인간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본래 모습, 성(性)과 명(命)은 하늘땅과 같다.

어머니 뱃속에서 천지와 더불어 호흡할 때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탯줄을 끊는 순간 인간적인 호흡을 시작하게 되고, 본래 우주와 하나인 성(性)과 명(命)이 분리된다. 눈을 뜨고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인 어둠에 휩싸여 그 이면의 세계를 전혀 못 보게 된다.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만큼 밝은 내 생명의 본래 모습, 내 마음의 근원인 성(性)이 후천적인 성(性)으로 바뀌면서 어둠의 세계로 떨어진다. 또한 하늘같은 무한의 생명력인 내 명(命)이 불과 몇 십 년 살다가 병들어 죽는 유한의 명(命) 자리로 떨어진다. 온갖 인생의 시련과 역경, 고난의 파도를 만나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다가 죽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을 함으로써 어머니 뱃속에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성(性)과 명(命)을 회복한다.

천지와 같은 내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주의 본성이 대광명이다.
수행공부가 어느 경계로 들어가면 눈을 감고 있는데도 해가 뜬 것처럼 밝다. 생명의 본성, 인간 마음의 본성은 광명이다. 삼신(三神)이 바로 대우주 광명의 실체다. 동양에서는 이 삼신(三神)이 스스로 현현(顯顯)해서 하늘과 땅과 인간이 나왔다고 한다.



『천부경』에서는 이 하늘과 땅과 인간을,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라고 한다.

천지인(天地人) 모두가 하나(一)의 자리에서 나왔으며, 도의 본원이 같다는 말이다. 이렇듯 삼신三神이 자기 현현하여 하늘과 땅과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천지인 모두가 조물주 삼신의 생명과 신성과 지혜와 광명을 가지고 있다.

삼신의 생명, 지혜, 숨결은 우리 몸속에도 다 들어있는 것이다. 이 우주만유 속에 삼신의 숨결이 살아 있고, 온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이 삼신의 생명은 우리 몸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이걸 생각해 볼 때, 인간의 창조적 신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또 진리를 제대로 깨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기만 하고 살아도 인간의 품격이 전혀 달라진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삼성기를 쓴 안함로는 태고시절, 인류역사의 시작이었던 桓國의 이상을 말했다.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우리 환桓의 나라세움이 가장 오래되었다.' 광명의 세상에서 광명의 인간으로 살았던 인류의 선조들은 '桓(밝을 환)'이라는 나라를 세움으로부터 문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정신이며 뿌리문명이다.


11세‘도해 단군(BCE1891~BCE1835)’의 염표문念標文은 당시의 국민교육 헌장이었다.



<하늘,땅,사람의 창조 정신과 목적>


其念標之文에 曰,

天은 以玄默爲大하니 其道也普圓이오 其事也眞一이니라
地는 以蓄藏爲大하니 其道也效圓이오 其事也勤一이니라
人은 以知能爲大하니 其道也擇圓이오 其事也協一이니라
故로 一神降衷하사 性通光明하니 在世理化하야 弘益人間하라“ 하고 仍刻之于石하니라.

그러므로 삼신(三神)께서 참마음을 내려주셔서(一神降衷) 사람의 성품은 삼신의 대광명에 통해 있으니(性通光明) 수행을 통해 삼신의 천지광명을 회복하여 삼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弘益人間) 하라.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인간 삶의 3대 가치인,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놀라운 가르침이 들어 있다. 진선미의 발원처가 다름 아닌 삼신(三神)의 3가지 덕성이라는 것이다. 삼신三神이 낳은 천지인의 덕성이 각각 진선미眞善美이기 때문에, 진선미는 삼신三神에서 발원한 영원불변의 가치이다.

上界主神은 其號曰天一이시니 主造化하사 有絶對至高之權能하시며 無形而形하사 使萬物로 各通其性하시니 是爲淸眞大之體也오.

下界主神은 其號曰地一이시니 主敎化하사 有至善惟一之法力하시며 無爲而作하사 使萬物로 各知其命하시니 是爲善聖大之體也오.

中界主神은 其號曰太一이시니 主治化하사 有最高無上之德量하시며 無言而化하사 使萬物로 各保其精하시니 是爲美能大之體也시니라.

인간은 ‘아름다움과 지혜로 지극히 큰 본체(美能大之體)이다. 인간은 아름다움(美)를 추구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먼저 천지의 덕성인 참眞과 선善을 체득하고 생활화 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천지의 꿈을 이루는 태일太一이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천지의 광명과 신성, 지혜를 체득하여 천지의 원대한 꿈을 이루는 역사의 주인공’인 태일太一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 아름다워지려면 천지를 알아야 하고 천지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인간을 아름다움의 창조자요, 지혜의 주인으로 일컫는 미능대지체(美能大之體) 이 한마디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극치의 표현이자 진리에 대한 최종 정의라 할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항구불변의 가치인 진선미도 다름 아닌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천지와 하나가 될 때, 우리 몸에서 진선미가 발현될 수 있다.


인간 삶의 제1의 가치인 진선미眞善美의 소자출所自出까지 밝혀주는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진정으로 한민족과 인류의 태고 역사를 기록한 역사경전일 뿐만 아니라 동서 종교와 철학에서 탐구해 온 여러 진리 주제에 대한 명쾌한 깨달음을 열어주는 철학 경전이요, 문화경전인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인간이 하늘과 땅의 참됨과 선함을 체득하여 마침내 아름다움을 실현한다’는 것이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진선미眞善美 사상이다.
                         
스리랑 21-04-10 12:26
   
지구촌 인류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과거 수많은 분들이 도통을 하기 위해 수도를 했던 도통의 과정입니다. 이런 위대한 정보가 우리 대한민국에만 남아있었습니다.



인류 도통문화사의 하나의 기념비적인 것이 『영보국정정지법(靈寶局定靜之法)』 이다.


소우주小宇宙인 신령스런 인간을 일컫는 별칭이 영보국(靈寶局)이다. 인체에서 심장은 임금에 해당하며, 몸 속의 핏줄은 임금의 명령과 조칙을 수행하는 것과 같고, 팔과 다리는 방백方伯 수령守令이 되며, 골절은 백관百官이 되며, 오장육부는 육경六卿에 비유되고 피부세포는 백성에 비유된다.


또한 <주역周易>에 '수건복곤首乾腹坤에 천지정위天地定位하고, 이감목리耳坎目離에 일월명광日月明光하며, 구태수간口兌手艮에 산택통기山澤通氣하고 고손족진股巽足震에 뇌풍동작雷風動作이라'하여 인간은 실로 건곤천지의 조화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며, 이 세상 우주 그 자체의 모든 신령스런 보배가 가득 차 있다고 하여 영보도궁靈寶道宮, 영보국靈寶局이라 한다.



정정定靜이란,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마음이 공적空寂한 본체에 들어가는 것을 말함으로, 여기서의 정정定靜이란 일반적인 동정動靜의 정靜이 아니고 자신의 본체인 본성本性이 움직이기 전의 정靜이다. 즉 자신의 태극이 동動하기 이전의 본원처로서 <중용中庸>의 이른바 하늘이 명령한 자신의 성(性: 天命之謂性), 자신의 진아(眞我: 아트만), 진기眞氣를 회복하는 자리이며, 또한 불성佛性을 보는 불지佛地요, 적멸寂滅로서 삼매에 드는 곳이다.



<주역> 계사전의 '역易은 무사야無思也하며, 무위야無爲也하야, 적연부동寂然不動이라가 감이수통感而遂通 천하지고天下之故'하는 자리이다. 이는 곧 태극이 동하기 이전이므로 언설言說이 끊어진 곳이요(不立文子), 불교의 이른바 미세망상과 온갖 번뇌가 끊어진 자리이다.


음과 양의 상대 세계 이전이므로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니며 생生도 멸滅도 아닌 온갖 상대 세계가 끈어진 중도中道의 자리요, 불佛의 소위 공空자리이며, 또한 삼라만상과 내 마음 속에 함께 존재하는 생명의 근원처로서, 자신의 본원체이자 고향이니 곧 천지자연과 합일되는 자리이다. 누구든 이곳을 회복하여야 할 숙명이 있나니 이 경계에 들어서서 생명의 원시반본原始返本을 성취하는 것을 이름하여 정정定靜이라 하는 것이다.



정정定靜의 원리는 한마디로 수화水火의 교류에 있다. 수화는 몸의 기틀을 이루는 두 가지 근본요소로서 인체 기관으로는 신장腎과 심장心에 해당한다. 정정定靜은 곧 심장心의 안정을 뜻한다. 심장은 열을 가장 싫어하고 안정함을 좋아한다, 심장은 인체 모든 기관의 군왕君王으로서 심장이 안정되어야 오장육부 각 기관이 자기 책무를 수행하여 몸을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심장을 안정시키고 나아가 심을 아래의 수水(腎)와 교류시키는 데에는 심호흡心呼吸 곧, 단전丹田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폐는 모든 氣를 주관하는 기의 종주宗主이다. 그리고 오직 호흡만이 유일하게 사람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율신경계이다.


호흡을 통하여 인체에서는 심장과 폐사이의 소순환小循環이 일어나고[金火交易], 또한 심호흡을 함으로써 심파心波를 쉽게 안정시킬 수 있다. 또한 폐[金]는 신腎[水]의 모체로서 폐액肺液[金液]을 하강下降시켜 신수腎水를 만든다. 이것을 금액환단金液還丹이라 한다.



즉 수(水: 腎) -> 목(木: 肝) -> 화(火: 心) -> 토(土: 脾) -> 금(金 : 肺) -> 수(水: 腎)로의 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심호흡을 잘하면 나중에는 심(心: 火, 離)과 신(腎: 水, 坎)이 서로 만나 전체로서 하나인 태극을 형성한다. 그러면 호흡이 더욱 깊어지고 체력 소모가 줄어들어 분산되는 기운을 모을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이 오래 지속되면 하단전下丹田에 정精이 충만하게 되고 이정精이 쌓이고 쌓이면 마침내 뇌腦와 골수骨髓와 척수脊髓까지 보補하게 된다(뇌와 척수 및 精은 모두 같은 조직으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두뇌(神明之府 <내경>)인 신神 또한 윤택하게 되니 이를 일컬어 환정보뇌還精補腦하 한다.



그리고 수화가 교류하게 되면 입에서 단침 곧, 타액唾液이 고이게 되는 데 이 침을 경장瓊漿, 옥액玉厄, 혹은 신수神水라고 부른다. 사람의 침은 신장의 진액眞液이 상승하여 생生한 것이므로 절대 뱉어서는 안 된다. 침은 곧 생명수 자체이다. 침을 많이 삼킬수록 몸이 강건해지고 윤택해진다. 이 타액이 생겨나는 설하舌下를 화지華池 또는 옥천玉泉 이라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화火가 아래에 있고 수水는 위(머리)에 있게 되는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상태가 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정精이 충전充塡되지도 않았는데 의식을 가하여 억지로 정精을 끌어올려 기를 돌리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오직 마음이 안정된 상태가 지속되면 수화水火가 본래 모습대로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고, 이에 따하 저절로 기가 순환하게 된다.(이를 小周天, 大周天이라 한다)


대개 사람이 열두 살 내지 열다섯 살이 되면, 남성에게는 남성 호르몬이, 여성에게는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어 남성과 여성의 특징이 뚜렷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점차 몸의 각 기관이 성숙하고 자식을 낳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인체의 다른 호르몬 분비 기관(송과선 등)과 뇌腦의 발육이 일시 정지된다.


그러나 수도修道를 함으로써 위 아래로 분열되는 심신心腎을 다시금 하나로 조화시켜 뇌인 신神을 보補하면 뇌를 비롯한 각 기관의 활력이 대폭 증강되고 나아가 여러가지 신이神異한 현상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출처: 상생방송, 월간개벽)



천부경(天符經)의 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우주 생명의 핵인 ‘하나’를 찾고 체험하는 공부와 그 마음의 경계는 유불선의 성자들이 전해왔다. 유가에서는 바로 정일집중精一執中, 불가는 만법귀일萬法歸一, 도가는 혼원일기混元一氣. 혼원일기는, 이 대우주의 조화의 핵을 일자一者로 본다. 우주정신의 핵, 우주 생명의 핵, 그 하나가 있다는 것이다.



그 혼원일기混元一氣를 우리가 가지고 온 것인데 이게 인간의 생명이다. 수도를 통해 이것을 찾고 이것을 체험하는 것, 이것을 우리 몸에서 드러내는 것이 공부다. 우리 몸 속에 들어 있는 이 ‘하나’,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고, 그 하나의 경계에서 눈감고 우주 만유를 물 밑 들여다보듯 볼 수 있는 그런 우주의 진리의 눈, 영원한 생명의 눈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잡념을 싹 끊어버리고, 주문 읽을 때 저 아득한 우주의 조화 속으로 내 마음이 탁 들어서느냐, 그 요령, 성공하는 수행법이 정정지법定靜之法이다. 바로 영보국은 도가, 또는 불가 선 세계의 수행법 정수, 수행의 체험을 종합한 선천 유·불·선 도통 수행문화의 완성본이다.



구도자로서 주문을 제대로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夫定靜之法은 懷至廣至大之願하며 發至誠至信之心하야 念念不忘則 定靜을 可得이라 :


무릇 마음을 정定하여 고요함靜에 이르는 법은, (수행자가) 지극히 넓고 지극히 큰 서원을 품고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믿음의 마음을 일으켜서, 이것을 생각 생각마다 잊지 않으면 정정定靜을 얻을 수 있으리니 :



우리가 수도공부를 할 때는 잡념이 꺼져야 우주의 말할 수 없는 행복한 그 생명의 경계로 들어간다. 그게 고요할 정靜 자다. 여기서는 세속의 고요하다는, 동정動靜의 정靜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을 중국의 장종원章宗源이라 하는 사람이 쓴 수행서를 보면 콰이에슨스quiescence라는 말을 썼다. 고요함이 끊어져 있는 경계, 그게 여기서 말하는 정靜이다.


대저, 정정定靜의 법이라는 것은 회지광지대지원懷至廣至大之願, 지극히 광대하고 지극히 큰 서원, 맹세를 품어야 된다. 그리고 발지성지신지심發至誠至信之心하야.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믿음의 그 마음을 일으켜서. 발發이라는 건 제너레이팅generating, 잠자고 있는 내 마음 속의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믿음의 그 심법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염념불망즉念念不忘則 : 이치 앤 에브리 소트(each and every thought), 이런 뜻이다. 광대하고 지극한 서원을 세우고 그런 정성과 믿는 마음을 발동시킨다는 이런 생각을 가질 때, 정정定靜을 가득可得이라 : 그냥 한순간에 정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定者는 一定於此而諸他道理가 無加於吾之所做하며 許多法術이 不出於渠之惑世而已오 :

정定이란 것은 이것에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일체의 다른 도리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더 보탬이 될 수 없고, 수많은 법술도 세상을 미혹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오 :


정자定者는, 내가 본래 우주의 일심, 그 태일(太一) 심법 경계에 탁 들어가는 게 무엇인가? 내 마음을 정定한다는 게 무엇인가? 이 정定은 정하다, 일심의 경계에 머물다, 이런 뜻이다. 정定이라는 것은 일정어차一定於此, 이것에 한번 마음을 정하면 제타도리諸他道理, 이 세상 모든 경전에 나오는 숱한 말씀들, 선천 동서고금의 가르침, 그런 방법론들이 무가어오지소주無加於吾之所做하며, 이런 말이 있다. 이것은 엄청난 말이다.



무가어오지소주無加於吾之所做. 내가 지금 이루려고 하는 것, 내가 우주와 하나가 되려고 하는, 한마음 경계에 들어가려고 하는 그런 마음과 그런 서원과 그런 의지를 가지고 일심 경계에 내 의지를 세우면, 동서고금의 모든 성자들의 가르침, 깨달음, 현인들의 말씀 그런건 과거 육조六祖 선사의 말대로 번뇌 망상이라는 것이다.


허다법술許多法術이, 허다한, 그 숱한 법술, 이 세상의 공부법에 대한 가르침, 그런 책들, 성자들 경전의 말씀이 불출어거지혹세이이不出於渠之惑世而已오. 세상을 미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에 무가無加, 불출不出. 과거 성자들의 말씀, 그건 번뇌 망상이라는 것이다. 수도 공부의 경계에서는.


靜者는 歸於一定而不復動於他하야 富貴繁華도 不能誘心오 金玉寶貝도 無可奪志하야


정靜이란 마음이 하나로 정한 곳으로 돌아가 다른 것에 다시는 움직이지 않아, 부귀영화도 그마음을 유혹하지 못하고, 금은보배도 그 뜻을 빼앗지 못하는 것이니


정靜이라는 것은 이 대우주 만유와 하나 된 깊은 황홀경이다. 노자가 말한 ‘홀혜惚兮여 황혜恍兮여, 황혜恍兮여 홀혜惚兮여’ 하는 그런 아주 깊은 심연의 우주조화 생명의 경이롭고, 평화롭고, 안정돼 있고, 이렇게 천지와 하나 되어 있는 그런 완전한 일체감, 진정한 영원한 행복의 경계다. 미국 철학자 캔 윌버Ken Wilber가 기막힌 언어로, 아름다운 언어로 이 경계를 묘사한 일이 있다.(출처:월간개벽과 상생방송 방영자료)



一志立定하야 五心이 不動則孟子之不動心과 老子之歸根靜이 皆是也개시야라。


일지입정一志立定하야 오심吾心이, 내 마음이, 우리 마음이 부동즉不動則 한번 그것이 동함이 없은즉, 요지부동이다. 맹자의 부동심不動心과 그 다음에 노자의 귀근정歸根靜이 바로 이걸 말하는 것이다. 귀근歸根, 뿌리로 돌아가서, 우주 생명의 근원 뿌리로 돌아가서 그런 정靜의 경계에 머무는 것이 다 이것을 말한 것이다.


上無色界하고 下無慾海하야 一念萬年이면 耳目俱淸하고 心身俱忘하며 神氣俱爽하고 內外俱空하리니 泯於深定寂靜하야 湛然至一하야 先全我太一之天而後에 神氣冷冷然而淸하고 神光炯炯然而明하야 無地不燭하며 無理不通이니라.


위로 색色의 경계가 없고 아래로 욕망의 바다가 없이 한 생각이 한결같이 지속하면, 귀와 눈이 모두 맑아지고 마음과 몸을 다 잊어버리게 되어, 신神과 기氣가 모두 시원해지고 안과 밖이 모두 텅 비게 되니라. 깊은 정定과 적막한 정靜의 상태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고요히 하나에 이르러서, 먼저 나의 태일지천(太一之天)을 온전하게 한 후에야 신기神氣가 차갑고 차가워져서 맑아지고, 신광神光이 빛나고 빛나서 밝아지니, 비추지 않는 땅이 없고 통하지 않는 이치가 없게 되느니라.


우리가 수도공부를 하다 보면 하늘도 땅도 일체로 다 뚫려버린다, 내외구공內外俱空해지고, 우리 몸의 신기神氣가 아주 맑고 시원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어떻게 되느냐? 잠연지일湛然至一하야 선전아태일지천先全我太一之天, 내 몸 속에 있는 태일의 하늘을 온전하게 한 연후然後에 내 몸의 신기가 아주 시원해지는 것이다. 냉랭연이청冷冷然而淸하다, 시원해지면서 맑아지는 것이다.


故로 定觀經에 云 以速心太急으로 先爲上戒者하나니 若或未定에 惡境이 出現則回心泯泯하고 求意閑閑하야 多多密念 太乙救苦天尊 六字聖號하면 自然定而靜矣리라。


그러므로 <정관경定觀經>에서 말한 ‘마음을 너무 성급히 먹는 것’을 가장 경계하노니, 만약 마음이 정定에 이르지 못하여 마경魔境이 나타나면, 마음을 돌려 없애버리고 다시 뜻을 구함에 여유롭고 한가롭게 하여, ‘태을구고천존太乙救苦天尊’ 여섯 자 성호를 아주 많이 치밀하게 읽으면 자연히 정定하고 정靜하게 되리라.


수도공부가 안 될 때, 잡념이 생길 때 다다밀념多多密念 태을구고천존육자성호太乙救苦天尊六字聖號하면 자연정이정의自然定而靜矣리라,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태을구고천존 성호를 치밀하게 많이 읽으면 자연히 정정이 이루어진다. 그 太一의 일심, 천지조화 태을주 일심, 일심법계 의식이 자연히 열리게 된다.


태을구고천존은 도가에서 태을천상원군님을 가리키는데 이 지구촌 창생들의, 세상의 모든 고난, 고통을 구해 주는 천존이시다. 태을구고천존의 주문이 '태을주(太乙呪)'다.
(출처:월간개벽과 상생방송 방영자료)



영보국靈寶局의 조화세계, 소우주인 내 몸 속의 영보靈寶를 잘닦아 완성할 수 있다면 대우주 생명의 근원처에 들어갈 수 있다


初行之工은 危心安之하면 定靜을 可得이요, 微心暢之하면 火鈴이 發揮하고, 惟精惟一하면 允執厥中이니, 中必庸하면 中庸이요, 學大하면 大學이요, 論道語理면 論語니 元亨利貞과 仁義禮智가 隨性感現하야 或聖或賢은 卽風土稟受之自異하야 氣質이 不齊者也라.


처음 행하는 공부는 위태한 마음을 편안히 하면 정정定靜을 가히 얻을 것이요, 마음을 미세하게 하여 펼쳐나가면 정수리 위로 불방울(火鈴)이 떨쳐 드러날 것이요, 오직 정밀하게 하고 오직 한결같이 하면 진실로 그 가운데(中)를 잡을 것이니, 반드시 중을 잡아 쓰는 것을 중용이라 하고, 배움이 커지면 대학이라 하며, 도를 논하고 이치를 말하는 것을 논어라 한다.


원형이정과 인의예지가 성품을 쫓아서 응감되어 나타나 혹 성인도 되고, 혹 현인도 되는 것은 곧 부여받은 풍토와 천품(성품)이 달라 기질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然이나 此我靈寶眞訣은 善化人者也니라. 多誦定靜之篇하고 存念陰符之義하야 嚥津煉氣하고 揮我水火하면 風土를 可移요, 氣質도 卽齊 라. 朝眞禮聖하면 參三才出萬化하나니 舜與我相似하며 我與天無異라.


그러나 이 영보진결은 사람을 잘 변화시키는지라. 정정편을 많이 읽고 음부경의 올바른 도리를 명심하여 잘 보존하며, 입 속에 고인 진수를 삼키고 기를 연마하여 몸 속의 수화를 잘 돌리면 풍토도 가히 바뀌게 되며 기질도 한결같아 지니라. 하늘의 眞人과 聖人을 알현하고 예를 올리면 天地人 삼재에 참여하게 되어 만 가지 변화로 드러나나니, 순임금(聖君)과 내가 같아지며 나와 하늘이 서로 다르지 않느니라.



學學皆然하고 修修相同하야, 別無遲速하고 且無先後故로 定靜大限은 大限은 九旬이요 小限은 五旬也라. 大道之工을 限何近期요? 曰 "十年定限하고 無不貫通하면 限期速耶아." 千年盲龜도 脫身萬里之樹城하고, 三日曲針도 投穿半片之讖芥커든,況此克日之限期가 大限은 三日이요, 中限은 五日이요, 下限은 七日也라. 至道之下에 剋日何晩고


배우고 또 배운다는 것이 다 그러하며 닦고 또 닦음이 서로 다르지 않고 한 가지라, 느리고 빠름이 따로 없으며 또 선후가 없는 까닭에, 정정을 이루는 큰 기한은 90일이요, 작은 기한은 50일이라. 대도를 이루는 공부에 어찌 기한을 가깝게 잡겠는가?


이르기를 "10년의 기한을 정하고 관통하지 못하는 자가 없다면 이 10년이란 기한은 빠르다고 할 것인가? 답하기를 " 천 년 묵은 눈 먼 거북이도 물을 찾아 만리나 되는 나무성을 벗어나고, 사흘만에 구부러진 바늘도 반 조각의 작은 부분도 꿰뚫을 수 있거늘, 하물며 날을 기약하고 공부함에 있어 잘하는 자의 기한은 3일이요, 보통은 5일이며, 길어도 그 기한이 7일이니, 지극한 도를 배움에 있어 기약한 날을 어찌 늦출 것인가?"



曰 "半時之內에 正覺圓性하면 限期遠耶아." 戒乎我願學天人하노니 莫妄意於異道하고 一就我靈寶局中하여 自修自明이면 可仙可佛이요 爲聖爲眞乎인저 道門小子玉圃는 敢發天師之秘하야 記述定靜一部하노니, 初學者가 多誦此篇하야 氣和神化하면 定靜을 可得이니, 修之明之하야 乃得其性이 可乎인저.


또 말하기를, "그러면 반 시간 안에 원만한 성품(圓性)을 정각해 버린다면 그 기한은 멀다고 할 것인가?" 답하기를 "나의 하늘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에게 경계하노니, 다른 도를 배울 뜻을 모두 버리고 한결같이 나 자신의 영보국 속으로 나아가 스스로 닦고 스스로 밝히면 가히 선仙도 되면 부처佛도 되며, 성인도 되고 진인도 될 것이라."



영보를 닦는 삼요체

禪要에 云 大要有三하니 一曰 大信根이요 二曰 大忿志요 三曰 大疑情이라. 疑者는 以信爲體하고 悟者는 以疑爲用하나니, 信有十分이면 疑有十分하고 疑得十分하면 悟得十分이라하니 此說은 卽定靜之法也라. 何者오 無大願이면 至誠이 不生하고 無大疑면 死憤이 不生하고 無大信이면 眞疑不生이니라.



<선요>(서산대사의 선가귀감, '도전강좌방')에 이르기를 "참선함에 있어 큰 요긴처가 3가지 있으니, 첫째는 큰 믿음의 뿌리를 갖는 것이며, 둘째는 크게 분발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요, 세째로는 크게 의심하는 뜻을 갖는 것이다."



의심이라는 것은 믿음을 바탕으로 삼고, 깨달음이란 의심을 쓰임으로 삼나니, 믿음이 십분 이루어지면 의심도 십분이요, 의심이 십분 이루어지면 깨달음도 십분이니, 이것이 정정을 얻는 가장 빠른 법이니라.



어째서인가? 큰 소원을 품지 않으면 지극한 정성이 생겨나지 않고, 큰 의심이 없으면 죽음을 각오할 정도의 분발심이 생겨나지 않나니, 큰 믿음이 없으면 참된 의심(참된 뜻)이 생겨나지 아니하니라.





問 "何以로 願此憤疑信之誠이 所出고?", 曰 "一天之下의 至妙至寶至聖至尊之

法이 唯一靈寶眞局也라. 靈寶之局은 人人이 各有稟賦於身內而天素命之니 卽我之本性이라.



묻기를, "어찌하여 큰 소원에서 분심과 의심과 믿음의 정성이 나오게 되는 것인가?"하니,


한 하늘 아래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보배롭고 지극히 성스럽고 지극히 존귀한 법이란 오로지 하나의 영보진국이라. 이 영보국은 사람 사람마다 제각기 자신의 몸안에 지니고 있는 천품이요, 하늘이 본래 명해서 준 것이니, 나의 본래의 성품 곧 본성이니라.(출처:월간개벽과 상생방송 방영자료)




率性修道에 明德發揮하면 可以治國而平天下요, 可以爲億兆之君師요, 可以得無量之壽仙이라. 何者오? 天命之德을 稟賦爲人之初에 頭化天上三淸眞宮之氣하고 腹受地下山林川澤之形하고 胸懷日月星辰風雲雨雷陰陽造化之府하나니 所以 吾身에 有天尊帝君과 九靈三精과 五神眞君과 內外將軍과 左右宮屬과 諸部工曺及八萬四千元君이 各依部分하니 是乃靈寶道局也라.


성품을 쫓아 수도하여 밝은 덕을 발휘하게 되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케 할 수 있을 것이요, 억조 창생의 군주가 되고 스승도 될 수 있을 것이요, 무량한 수명을 누리는 신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니라.



어찌서인가?


하늘이 명한 덕이 처음 사람에게 내려져 천성이 이루어진 때에 사람의 머리는 천상에 삼청진궁이 화한 것이요, 사람의 배는 땅의 산과 숲과 하천과 연못의 형상을 받은 것이요, 사람의 가슴은 일월성진과 풍운우뢰와 음양조화의 집을 품고 있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내 몸에 천존제군과 구령삼정과 오신진군과 내외장군과 좌우궁속과 제부공조 및 팔만사천의 원군이 나의 몸 각 부분에 의지하고 있나니 이를 곳 영보도국이라 하니라.



修而明之者는 爲仙爲聖이요 失而放之者는 爲愚爲蠢이라. 欲修而明之者는 非大願이면 何오. 且人人이 各有此局하니 何人이 得之며 何人이 不得고 하야 [大忿이 出焉에 此萬理具於我하고 萬法이 備於此하니] 惟一而已라. 道何衆門이며, [惟一理而已어늘 法何多岐며, 惟一理而已어늘] 人何多求오. 惟一理而已라. 我何復疑리오.


영보국을 닦아서 밝힌 자는 신선도 되고 성인도 되는 것이요, 잃어버리고 방치한 자는 어리석은 사람도 우둔한 사람도 되는 것이니라.

영보국을 닦아서 밝히고자 하는 자가 큰 소원을 갖지 않으면 어찌 할 것인가. 또한 사람마다 각각 영보국이 있어 어떤 사람은 얻으며 어떤 사람은 얻지 못하는가 하니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이니라. 도에 어찌 여러 문이 있으며 사람이 어찌 다른 것을 구하리요, 오직 하나의 이치에 그치나니 내가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오.



思則疑無하고 望則疑有하야 疑去疑來에 疑無所疑라 空然何疑오. 忽然煉心이 是乃眞疑라. 眞疑之下에 萬疑寂靜하야 不分晝夜요 如夢若眞이라, 空寂天地에 唯一疑而已라 此非大疑而何오. 盖疑字之工이 最難得知니 若非大信心이면 眞疑不生故로 禪要에 曰 "信有十分하면 疑有十分하고, 疑有十分하면 悟亦十分이라"하니, 指此謂也라.


생각해보면 곧 의심이 없고 바라다 보면 곧 의심이 있으니, 의심이 오고감을 따라 의심할 바가 없는 것을 의심함이라 공연히 무엇을 의심하리오. 홀연히 마음을 단련시키는 것이 바로 참된 의심이라. 참된 의심 아래에서 만가지 의심이 고요하고 적막해져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꿈인 것 같고 참인 것 같으니라. 텅비고 적멸한 천지에 오로지 한 가지 의심이 있을 뿐이니 이것이 바로 큰 의심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대개 "의심"에 대한 공부가 가장 알기 어려우니, 만약 크게 믿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참된 의심이 생겨나지 않는 까닭에, <선요>에 이르기를 "믿음이 십분 있으면 의심이 십분 있을 것이요, 의심이 십분 있으면 깨달음도 역시 십분이라."고 한 것은 이 일을 가르킴이라.



信可信矣오 誠可誠矣라. 以信定靜하고 以信憤疑하니 非大信이면 誠何長久리오. 一定不變하여 始終如一이 是謂誠也라. 故로 玉經에 云 "以誠而入하고, 以默而守則物我俱忘하고 慧光이 乃生하여 聖知自全이라" 하고, 且陰符寶經은 全指此靈寶始終而發也라.


믿음이란 참으로 믿는 것이요, 정성이란 참된 정성을 말함이라. 이 믿음으로 정정을 이루고 이 믿음으로 분심과 의심을 일으키나니, 큰 믿음이 아니라면 정성이 어찌 장구해질 수 있으리오.



한번 정定함에 들면 변하지 않고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야 이를 정성이라고 하느니라. 고로 <옥경>(황정경黃庭經)에 "정성으로 들어가고 침묵으로써 지키게 되면, 즉 사물과 내가 같이 없는 듯이 되고 이에 지혜의 광명이 발생하게 되어 성인의 지혜(聖知)가 스스로 온전하게 된다."고 전하였고, 또 음부경 역시 전 내용이 영보의 처음과 끝을 지적해 놓은 것이다.
(출처:월간개벽과 상생방송 방영자료)






故로 煉此靈寶者는 以陰符로 爲定靜之元經하나니, 外以誦念하고 內以定靜하면 靈寶始終이 盡載於陰符三篇故로 古法이 傳於靈寶也라. 本無文字口訣하고 但授與陰符而已라. 是故로 靈寶眞道를 知者鮮矣라. 今旣有文字하고 且記假令하나 豈不彰明耶아. 更加先賢修煉指導之文字하야 以開來學之道心하니 亦可爲修工之一助라. 洗心관讀焉하라.



그러므로 이 영보를 수련하는 자는 <음부경陰符經>을 정정을 이루는 으뜸되는 경전으로 삼나니, 밖으로 음부경을 외우고 안으로 정정에 이르면 영보의 처음과 끝이 모두 음부경 3편에 있는 고로, 옛법이 영보를 전하여 왔음이라. 그러나 본래 문자나 구결로 된 것이 없고 단지 음부가 전해져 내려왔을 뿐이니 이런 까닭에 영보의 참 길을 아는 자가 드물었느니라.



지금은 이미 문자가 있고 또한 대체로 이러할 것이라 하여 기록을 하였으니 어찌 명백하게 밝히지 않겠는가? 다시 선현이 수련하고 지도한 것을 문자로 덧붙여 놓아 후학의 도심을 열어 놓았으니, 역시 수련하고 공부하는 데 일조가 되리라. 몸과 마음을 모두 깨끗이 하고 읽어야 하니라.



然이나 若信忿疑之誠이 未極하면, 八萬四千魔兵이 첨在六根門頭라가 隨機誘心하고 百方作化하야 四面華頭에 勞碌心神하나니 卽念聖號하고 要取無心하야 更加精力하고, 剋日就工而使吾一身으로 如墮千尺井底相似하야 從朝至暮와 從暮至朝히 千思想萬思量이 單單只是救出之心이요 決無二心하나니 誠能如是施工이면 剋日을 可期矣리라.


그러나 만일 믿음과 분심과 의심의 정성이 지극하지 못하면, 팔만사천의 마병이 육근(六識을 낳는 여섯 가지 뿌리로 眼耳鼻舌身意를 말함)의 문 위에서 엿보다가 기회를 잡아 마음을 유혹하여 백방으로 변화를 지어내고, 사면으로 온갖 생각을 다하게 하여 마음과 정신을 괴롭히고 분주하게 하나니,


곧 바로 성스러운 주문을 생각하고(앞에서 말한 육자六字 성호聖號인 '태을구고천존太乙救苦天尊'을 말한다) 무심을 얻는 요긴처로 삼아 다시 정력을 가하여 수련할 날을 정하고 공부를 행해나가나니, 내 한 몸으로 하여금 마치 천길 우물 속 밑바닥에 빠진 것같이 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저녁부터 아침까지 천가지 만가지 생각이 오로지 나갈 마음만 갖고 결단코 두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나니, 정성을 능히 이와 같이 하여 공부를 행할 것 같으면 약속한 날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출처:월간개벽과 상생방송 방영자료)



此段은 卽有相火虛火康健之人所取者也요, 又曰柔溫氣弱之人은 以自身으로 得當死之罪하여, 深囚獄中하여 剋日斬殺次로 四面守直이러니 忽遇獄卒이 醉倒하고 時夜寂廖라. 乃구枷打鎖하고 越獄脫身하야 不分東西하고 卽逃出境之際에 毒龍猛獸도 一無懼心이요 卽向當前하면 矢石劍戟도 亦無怖畏라. 蒙被奔迅하여 崎嶇險路를 如踏平地하고 荊棘疾藜를 視若草芥하니 此何故耶아? 寧死他死언정 不死此死라. 是乃極切之心이니 用工之際에 有此切心이면 剋日之工을 管取百中이라. 然이나 此極切之功은 切非初行之法이요 宜取末境之術也라.


이 과정은 상화와 허화가 있는 강건한 사람이 취할 방법이오, 또 부드럽고 온화하며 기운이 약한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할지니, 자신이 죽을 죄를 지어 깊은 감옥 속에 갇혀 날을 정하여 참살하려고 사방에서 엄중이 지키고 있던 중 갑자기 감옥을 지키던 옥졸이 술에 취해 쓰러져 한밤중의 고요하고 공허한 때를 잡아, 이에 항쇄와 족쇄를 부셔버리고 감옥을 탈출하니 동서를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라, 도망가야할 길 앞에 독룡과 맹수가 버티고 있어도 일말의 두려운 마음이 없으며, 또 앞을 향해 나아감에 화살과 돌이 날고 검과 창이 번뜩여도 역시 두려워함이 없고,


얼굴을 감추고 신속하게 달아남에 험악하고 험준한 길을 평지 달리는 듯하고, 가시나무와 납가새가 뒤엉킨 가시숲을 초개같이 보니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차라리 다른 곳에서 죽음을 맞을지언정 감옥 속에서 참살당하지는 못하리라 하고 극히 절박한 심정을 가져야 할지니, 공부를 하고자 함에 이렇듯 절박한 마음을 가진다면 날을 기약하고 공부함이 백발백중 성공하게 되느니라. 그러나 이렇게 날을 기약하고 하는 공부방법은 절대로 초행자가 행할 방법은 아니요, 마땅히 맨 마지막에 이르러 취해야 할 수단이라.




정정定靜의 대의大義

夫定靜之法이 懷至廣至大之願하며 發至誠至信之心하야 念念不忘則 定靜을 可得이니,


무릇 몸을 안정케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법(定靜之法)은 지극히 넓고, 지극히 큰 소원을 품고, 지극한 정성과 믿음의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생각하고 생각하여 끊임없이 잊지 않으면 지극한 고요함을 얻게 되느니,



定者는 一定於此而諸他道理가 無加於吾之所做며, 許多法術이 不出於渠之惑世而已요. 靜者는 歸於一定而不復動於他하여 富貴繁華가 不能誘心하며 金玉寶貝도 無可奪志니, 一志立定하야 吾心이 不動이면 則孟子之不動心과 老子之歸根靜이 皆是也니라.



정할 정(定)이라는 것은 한 번 마음을 定에 들게 하면 모든 다른 도와 이치理가 내가 하는 일에 더해지지 않고, 허다한 法과 術도 그 사람이 미혹에 빠진 가운데서는 나오지 않는 것이요, 고요할 정(靜)이라는 것은 한번 定해진 곳으로 돌아가 마음이 다시는 다른 것에 의해 움직이지 아니하니, 부귀와 영화도 마음을 능히 유혹하지 못하고 금은보배도 뜻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니,

한뜻을 세워 정(定)에 들어 나의 마음이 동하지 아니한다면 곧, 맹자의 '움직이지 않는 마음'인 부동심(不動心)과 노자의 '뿌리로 돌아가 고요함'인 귀근정(歸根靜)이 모두 이것이라.



上無色界하고 下無慾海하야 一念萬年에 耳目이 俱淸하고 心身이 俱忘하며, 神氣俱爽하고 內外俱空하여 泯於深定寂靜하야 湛然至一하야 先全我太一之天而後에 神氣冷冷然而淸하고 神光炯炯然而明하야 無地不燭하고 無理不通이라.


위로는 색(色)의 세계가 없고 아래로는 욕망의 바다가 없어져 한생각 장구한 세월에, 귀와 눈이 밝아지고(淸), 몸과 마음을 모두 잊어버리고 神과 氣가 모두 상쾌하여 안과 밖이 모두 텅비되며, 깊고 적막한 정정定靜에 빠져들어, 정정으로 가득히 충만한 하나가 되어, 먼저 나의 태일지천(太一之天)이 완전케 된 이후에 神氣가 차갑고 또 차가워져 깨끗이 맑아지고(淸), 神光이 빛나고 또 빛나 환하게 밝아 지나니(明), 비추지 않는 땅이 없고, 통하지 않는 이치가 없느니라.



然이나 若有喧動이면 則神氣蒙蒙然而昏하고 神光暗暗然而晦하리니 何益於思想之所存哉아.唯綿綿密密하여 念而不忘則一心이 不動하고 百脈이 歸源하여 自然火降水昇하고 氣定神淸하여 泰宇發光에 虛室生白하야 上通天界하고 下徹地府하여 空空洞洞에 光明이 無邊하나니 勤而無間하면 鬼神境界도 洞視撤開라.


그러나 만일 떠들고 동요되면 神과 氣가 어리석어져 어두워지고 신광神光 이 컴컴하게 어두워져 그믐날 밤같이 깜깜해지나니

사상思想 을 보존하는데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오직 끊임없이 치밀하게 생각하여 잊지 않는다면 일심(一心)이 흔들리지 않고 모든 맥(脈)이 서늘하게 되어, 자연히 불은 아래로 가라앉고 물은 위로 솟아올라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이루어짐에 기가 안정되고 신이 맑아지니,



태우발광(泰宇發光)에 마음이 환하게 드러나 위로는 천계(天界)를 통하고 아래로는 지부(地府)를 꿰뚫어 텅비고 텅비어 光明이 끝이 없게 되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끊임이 없으면 귀신경계(鬼神境界)도 환히 보이고 열리게 됨이라.


허실생백(虛室生白) 문을 열고 집을 개방하면 저절로 광선이 들어와 집안이 환히 밝아지게 되듯, 사람의 마음(人心)도 무위무상(無爲無想)한 경계에 들어가면 저절로 신명이 밝음을 얻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蔣子의 人間世'에 나오는 말이다.




然이나 行有五忌 第一曰 "불신不信"이요 次曰 "설독泄瀆"이요' 次曰 "집착執着"이요, 次曰 "환희歡喜"이요, 次曰 "욕속欲速"이니 皆爲大病이라. 必落邪道하리니 敬之愼之하라.


그러나 이렇게 행하는데 있어서 다섯가지 피할 것이 있으니, 첫째는 불신不信이니 곧 믿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설독泄讀이니 정신은 다른데 있고 혀만 움직임이요, 셋째는 집착執着으로 몰두하여 매여 있음이요, 넷째는 환희歡喜로 속으로 기뻐하여 동요됨이요, 다섯째는 욕속慾速이니 빨리 이루고자하는 성급한 욕심이라, 이는 모두 큰 병이 되어 반드시 사邪된 길로 빠질 것이니,

공경하고 삼가하여 신중을 기할 지니라.(출처:월간개벽과 상생방송 방영자료)




수승화강(水昇火降)과 감리교구(坎離交구)


大抵定靜煉度之法은 乃煉自己造化道니, 苟力行之면 心火下降하고 腎水上昇하야 眞一之水가 滿口甘潤香味者는 腎中眞水上昇之外候也라. 坎離交구하야 水火旣濟之後에 造化皆上朝於泥丸也라.



대저 정정의 정도를 깊이 수련하는 법은 자기 조화의 도를 안으로 닦는 것이니, 진실로 힘써 행하면 심장의 불이 아래로 내려오고 신장의 물이 위로 올라가게 되나니, 입안의 달고 향기로운 침이 가득 고이게 됨은 신장 속의 眞水가 상승하여 외부로 드러난 모습이라.



물인 감(坎)과 불인 리(離)가 서로 어울리고(감리교구), 물과 불이 조화를 이룬[수화기제 - 수승화강이 되어 조화를 이룬 괘상을 말한다. 반대는 화수미제.] 후에 머리 위쪽 니환궁[아기의 머리에 나타나는 숨구멍인 정수리로 이해하라.]에 조화가 일어나니라.



運我一點靈光卽化爲火鈴於南昌上宮하야 上透於泥丸玄宮하나니, 頂門이 微動에 因誠行之卽頂門이 豁然하야 初如萬蟻會集之像이라. 甚痒痒之호되 愼勿刮摩하고, 聚精會神于頂上卽 忽然淸雷一聲에 頂門이 如巨石裂開하야 一身萬靈이 出入此門에 形貌光明하야 如望夕之月이라. 三界天眞이 雲集泥丸하여 歡喜和悅이 如同氣之親也니, 此乃默朝上帝法으로 實同一理也라.



나의 한점 신령스러운 빛을 운행하면[물론 한번의 운행이 아니다. 금단소주천(감리교구)과 환단대주천(건곤교구)을 다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곧 이 빛이 남창상궁[午方- 백회를 말한다.]에서 화하여 불방울[화령火鈴: 순수한 양기운(純陽)으로 이루어져서
'화火'라 하고, 그 모양이 둥글기에 '령鈴'이라 비유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수주천을 마치고 난 후의 대주천의 환단環丹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화령 속에 나의 법신法神이 일체로 들어가 있다.]이 되고, 불방울이 위로 꿰뚫어 니환현궁에 이르니, 막혔던 정수리의 문이 미미하게 움직이게 되니라. 이에 정성을 다하여 定靜을 행해 나가면 정수리가 활짝 열려져 버리나니, 처음에는 일만 마리의 개미가 운집한 것과 같으니 매우 가려우니라.



그러나 심하게 가렵다고 해서 문지르거나 긁지 말아야 하며, 정신을 가다듬어 정수리 위로 모아 차리면[취정회신聚精會神: 쉽게 한마디로 말하면 '정신집중精神集中하라'는 것이다.] 바로 홀연히 맑은 우뢰 소리가 크게 울리며 막혔던 정문이 마치 큰 암석이 쫙 갈라지듯이 열리게 되나니, 몸에 깃든 만령[도가에서 말하기를 '사람의 오장육부에는 온갖 천지신령들이 깃들어 있다'한다.]이 이 문을 통해 출입하고, 형상과 용모는 빛이 환하게 비추는 것과 같아 마치 보름달을 보는 듯 하니라.


삼계의 天眞[도가에서 하늘의 스승인 天師를 일컫는 호칭 중 한가지. 上聖에서 至仙에 이르기까지 從九(上. 高....至), 橫三(聖. 眞. 仙)의 다양한 호칭이 있다. 보통 유불선 중에서 자기가 수련하는 도의 신령들이 나타난다]이 니환으로 운집하여 기뻐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치 한 형제와 같으리니, 이는 곧 말없이 상제上帝님을 뵙고 모시는 법과 같아서 실로 모두 한가지 이치니라.




行此者는 當先注意於下丹田하야 淡然良久에 水火交구하고 玉池水生커든, 滿口嚥下하면 精靈이 乃昇上朝於泥丸頂門이요,
若不運玉池嚥下卽 但炎上하야 燼之焦之而已라. 是故로 行鑄之士每日夜半淸晨에 常行內煉而 [必以雙眼으로 當我胸前하야 抵垂乎臍下하고, 使頂後로 萬於頂頭하야]
心思火降水昇하고 意存坎離交구卽自然水火循環에 轉久純熟하야, 精神이 會朝於泥丸하고 火鈴이 發出於頂門하나니, 此乃傳道之秘요 修道之要요 覺道之眞訣也라.



이를 행함에 있어 당연히 먼저 하단전에 뜻을 두고 담담하게 오랫동안 잘 주시하여 [이를 '내관內觀'이라 한다. 또한 '수중포일守中抱一'이라는 중용과 일심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필자주-] 물과 불이 서로 어울리게 하고 , 옥지인 입 안에 침(水)이 생겨 가득 고이면 삼켜 내려보내나니, 이때 정령이 위로 올라와 정문이 있는 니환에 조회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입안에 침(腎水)이 생겨 밑으로 내려보내지 아니하면, 이는 곧 불(心火)이 위로 솟아올라 태워버리고 타다남은 불씨만 남아 있는 꼴이니, 이런 연고로 수련을 하고자하는 선비는 매일 한밤중인 새벽에 항상 안으로 수련을 행하여야 하나니, 정신精神이 니환에 모여 조회하게 되고 불방울이 정문에서 발하여 나오게 되나니 [出神의 단계로써 이를 두고 法神 또는 陽神이 나온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도를 전하는 비밀이요, 도를 닦는 요체며, 도를 깨닫는 참 비결이니라.


先行定靜之法은 蓋有此事而已니, 非定靜이면 水火不昇降故로 得此者可克曰成功也라.

정정定靜의 법을 먼저 행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수승화강에 연유하기 때문이니, 定靜을 이루지 못하면 물과 불이 오르고 내려가지 못하는 고로 이를 얻고자 하는 자는 잘 극복하여 성공하여야 하느니라
bluered 21-04-10 11:22
   
짱ㄲ를 위해 영혼을 판 인간. 카~~~악, 퉤!
베지트키 21-04-10 11:30
   
달달한 짱국 머니
후후후훗 21-04-10 16:05
   
TV에서 중국정치 선발 추천제도가 대단하다고 칭찬 강연하자 바로 시진핑이 장기독재 시작된것만 생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