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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07 17:12
점령군은 소련이었다… 北 국호, 헌법, 의회 구성, 출신성분, 의석수까지 정해 '괴뢰 북한' 세웠다
 글쓴이 : 성길사한
조회 : 1,112  

점령군은 소련이었다… 北 국호, 헌법, 의회 구성, 출신성분, 의석수까지 정해 '괴뢰 북한' 세웠다

그저 세상만사 중에서 스스로 믿고싶어 하는 내용만을 짜깁기하여 뱉어낸 망언 수준의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그렇다면 따져보겠다.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 논리는 초등학교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38선을 기점으로 남한을 점령한 미군은 적지를 점령한 점령군처럼 코스프레한 반면,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은 해방군처럼 코스프레했을 뿐이다.

소련군은 전투 임무뿐만 아니라 정치 임무도 대단히 중시했다. 때문에 군대 내에 정치 장교가 있지만, 미군은 그런 제도가 없다. 스티코프 정치사령관, 로마넨코 민정장관을 비롯한 많은 소련군 요원들은 군복을 입었지만, 훈련받은 정치공작원들이었다. 소련군에서 정치 장교의 권한은 전투 장교보다 훨씬 막강했다. 이들은 전투장교들을 감시하고, 점령지역에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하는 프로 정치꾼들이었다.

프로 정치장교들은 입으로는 "해방군"을 자처하면서 실제로는 극악무도한 점령정책을 악질적으로 수행했다. 소련군정 사령부는 자신들이 하바로프스크 88특별정찰여단에서 훈련시킨 김성주를 앞세워 헌법을 만들어주었고, 대한민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 명단, 내각의 장·차관, 심지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도 소련이 정해주었다.

그 증거를 제시하겠다. 북조선 인민회의는 남한의 국회에 해당한다. 민의의 수렴을 위한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북한 정치세력의 자의적 결정에 의해 추진되었다면 북한은 남한보다 먼저 국회를 구성하여 민주적 선거를 통해 국가를 수립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스티코프가 기록한 비망록(『쉬띄꼬프 일기 1946~1948』)에 의하면 모든 결정은 모스크바의 소련공산당 당중앙이 수립하고 소련군정 지도부에 의해 진행되었음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1946년 12월 19일자 스티코프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회소집과 북조선 인민위원회 수립 문제를 제기하다. 그들은 나의 제안과 계획을 검토한 후 동의하다. 로마넨코와 함께 나의 제안의 실행계획과 대회진행 및 의사일정에 대한 훈령 초안을 작성하다.

1)대회에 파견할 대의원들을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회의에서 선출한다. 인민위원 3명 당 1명의 대의원을 선출한다. 대의원 총수는 3,459명의 인민위원을 대표하여 1,135명이 될 것이다. 대의원은 비밀투표로 선정한다.

◇대회 의사일정은 다음과 같다.
-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채택한 법령 승인. 보고자 강양욱 서기장
- 1947년도 북조선 인민경제 발전계획. 보고자 김일성
- 1947년도 국가예산
- 북조선 인민위원회와 북조선 인민회의 선거, 북조선 인민위원회와 북조선 인민회의에 대한 규정 승인

◇북조선 인민위원회와 북조선 인민회의의 구성
- 대의원 5명당 1명의 인민위원을 선출하여 총 231명으로 구성한다.
- 북조선인민회의의 정당별 구성 : 북조선로동당 35%, 조선민주당 15%, 천도교청우당 15%, 무소속 35%, 여성 15%.
- 사회성분별 구성 : 노동자 40명, 농민 50명, 지식인(의사·작가·교사·기사) 45명, 상인 10명, 기업가 7명, 종교인 10명, 수공업자 10명.
- 정당·사회단체의 대표자들, 각 행정국의 일군들, 각 도 인민위원회에서도 인민회의 의원들을 파견한다. 각 도 인민위원회에서 24명, 각 행정국에서 18명, 정당·사회단체에서 23명을 파견한다.(전현수, 『쉬띄꼬프일기 1946~1948』, 국사편찬위원회, 2004, 13~14쪽).

진짜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는 북한

이 기록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소련군 지도부는 북한의 제헌의회 격인 북조선 인민회의의 수립에서부터 실행계획과 대회진행 및 의사일정, 심지어 정당별 의석 배분 문제, 그리고 의원들의 출신성분별 구성 인원 숫자까지 세세하게 결정하여 이를 지령한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의 제헌의원 선거 실시 과정에서 미군정이 선거도 하기 전에 정당별로 의석을 배분하고, 출신성분별로 인원을 정해놓은 다음, 그에 맞춰 당선자를 결정했다면 그 선거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미군정의 지시와 지령에 의해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국호를 정하고, 헌법을 제정했으며, 대통령을 선출했다면 그것은 미국의 지시에 의해, 미국의 의도대로 국호와 헌법과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지 대한민국 국민의 민의에 따른 결정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은 소련공산당 당 중앙의 지령을 받은 소련군정 지도부의 결정에 의해 후보자에서부터 정당 및 성분별 비율까지를 세세하게 따진 다음 모스크바의 소련공산당 당 중앙의 재가를 받아 북한 정권을 창출하게 될 의회(북조선 인민회의)를 구성했다. 스티코프의 일기가 바로 김일성과 북한이 스탈린과 소련공산당의 괴뢰정권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다.

소련군정은 1947년 말부터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정하고 모스크바에서 파견된 법률 전문가들에게 동유럽 위성국들을 창설할 때 작성한 헌법을 참고하여 북조선 헌법 초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이 초안을 소련 외무성과 소련공산당에 보고하고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세부적으로 검토한 후 평양의 소련군정에 지령하여 소련공산당이 파견한 헌법전문가들에 의해 1948년 2월 초에 북한 쪽 인사들과는 전혀 상의 없이 헌법안 작성을 끝냈다.

북한의 정치체제에 있어 1948년 4월 24일은 결정적인 날이다. 이날 소려공산당 정치국이 '북한의 헌법문제에 대하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북한 소련대사였던 스티코프의 일기에 의하면 바로 이날,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스탈린의 별장에서 스탈린, 몰로토프 외상, 즈다노프 서기, 그리고 자신이 참석한 가운데(북한 인사 중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음) 북한의 국가건설, 즉 헌법 제정으로부터 독립에 이르는 내용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스티코프 일기 중 북한 헌법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헌법에 대해서 : 제2장을 새로 고칠 것, 권력의 소재.
종교에 대해서 : 양심의 자유만을 보장하는 것. 스탈린은 토지에 대해서 변경을 시사. 자류지(自留地)는 5~10헥타아르.
결정에 대해서 : 헌법은 임시여서는 안 된다. 남쪽에서 선거 이후 효력을 갖는 것. 남쪽 인사가 참가한 정부를 창설하는 것.(시모토마이 노부오(下斗米伸夫) 지음·이종국 옮김, 『모스크바와 김일성-냉전기의 북한 1945~1961』, 논형, 2012, 79쪽).

이렇게 하여 북한 헌법과 그 이후 국가건설계획의 골격이 모스크바에서 결정되었다. 모스크바는 북한에서 스탈린 헌법에 따라 작성된 초안에 대해 특히 제2장, 제14장을 다시 작성했다. 1948년 9월 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통과된 북한 헌법은 전적으로 스탈린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작품이다.



조만식"소련군은 해방군아닌 은행터는 점령군"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26일, 독립운동의 거두인 고당 조만식은 북한에 주둔한 소련 제25군 치스차코프 사령관을 만나 “소련군은 점령군이냐, 해방군이냐”고 따져물었다. 당시 소련군의 약탈 행위가 지나쳤기에 나왔던 말이다.

소련 기록물에도 당시 상황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그해 12월 29일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작성한 보고서에선 “밤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고, 특히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범죄도 만연해 있다”고 적었다.

당시 소련군이 북한산업의 30∼40%를 철거해 소련으로 가져갔다는 분석도 있다. 소련군은 45년 9월 14일 ‘인민정부수립요강’을 발표하면서 “북한 주민의 재산은 소련군 보호 아래 있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이와 달랐다.

소련군은 북한에 들어온 뒤 각 지역에 치안을 담당하는 경무사령부를 설치해 일본군 항복을 받고 무기를 접수했다. 이어 행정기관ㆍ경찰서ㆍ법원은 물론 일본인 소유 기업ㆍ철도ㆍ통신수단ㆍ은행 등을 접수했다.

북한 주재 소련 민정청 문서는 45년 8월과 9월에 발전설비를 비롯해 금속가공 공작기계, 기계제작 설비 등을 철거해 소련으로 반출했다고 기록했다. 평안북도 삭주군의 수풍발전소 발전기 3대를 비롯해 원산 석유회사, 청진 제철공장과 제련소의 기계, 함흥 화학회사의 6만kW 변압기를 뜯어 소련으로 가져갔다.

소련군은 북한에서 쌀 250만섬을 비롯한 각종 곡물과 소 15만 마리, 돼지 5만 마리도 약탈했고, 은행 금고를 열어 현찰도 꺼내 갔다. 소련 공업기사 수백명이 북한 지역 중공업 공장을 다니면서 소련에 가져갈 공업제품을 직접 생산하기도 했다.

소련 민정청 교통부 보고서는 “1946년 2월 말까지 북한의 철도운수는 공업설비와 전리품의 반출 및 군부대 수송에 전적으로 동원됐고, 북한 인민경제를 위한 화물 수송과 여객 수송은 전면 중단됐다”고 기록했다. 45년 말까지 북한 지역에서 빼앗아간 물품은 7억~8억 달러를 넘어선다는 학계의 평가도 있다.

이처럼 소련군은 점령군이 전리품 취급하듯 약탈했다. 45년 12월 소련 외무부 극동 제2국 참사관 수즈달레프가 작성한 보고서에선 “북조선의 군수중공업 공장들은 붉은 군대에 대항해 싸운 일본군을 위해 봉사했고, 또 붉은 군대의 엄청난 희생으로 쟁취한 것이므로 전리품으로 봐야 한다”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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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들만큼 말과 행동이 다른자들이 없는거 아는사람들은 다아는 사실인데 그 철지난 레파토리를 그대로 가져와서 던지는 사람들은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네요.자기들입으로 해방군이라고 주장하면 다 해방군입니까? 그러면 조선에 들어온 일본군도 서양제국주의에 맞써 아시아를 해방시키려고한다고 주장했으니 아시아해방군이겠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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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바람 21-07-07 17:15
   
미군이 점령군이면 소련도 점령군,미군이 해방군이면 소련도 해방군.  같은 개념이라니깐.. 답답하긴~~왜 다른 시각으로 보지?빨갱이와 민주주의라서? 한심하네~~
     
성길사한 21-07-07 17:21
   
저는 님의견에 동의하는데 최근 편향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소련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하고 있으니 반발이 일어나는거죠.그 근거는 소련군이 지들입으로 해방군이라고 말해서...

 '소련군이나 미군이나 똑같이 나쁜놈들이다'였으면 '그렇게생각할수도 있지'하면서 그냥 보고 넘겼을겁니다. 그런데 저들이 말하는거 보면 분명히 '소련은 착한 해방군이었고 조선 사람들을 인정했다.반면에 미군은 나쁜 점령군이었고 조선 사람들을 개무시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양비론이 아니에요. 그냥 자기가 보고싶은 부분만 콕 집어내서 확대왜곡하고 있는겁니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확인하는데 명분만 따지는게 굉장히 위험한게 우리 현실에서 입으로만 그럴듯하게 떠들며 실제로는 개수작부리는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ex:2MB) 때문에 이후 그들이 보인 행보,당시 시대상,국제정세, 후대에 미친 영향등을 다 따져서 평가하는게 합당하지않겠습니까? 막말로 명분론자들이 바라는 방향대로만 갔으면 당시 국제정세상 한반도는 백프로 공산화되었습니다.
mymiky 21-07-07 17:18
   
북한  김일성 정권은  소련을 후원삼아  정권을 수립했고
한국  이승만  정권은 미국을 후원으로 정권을 수립한건

학창시절에 다 배우지 않나요?
     
성길사한 21-07-07 17:23
   
맞습니다.그냥 그대로만 인식하고 말하면 되는데 최근들어 광복회장 김원웅처럼 선을 넘는 사람들이 나오고있죠. 미군이 점령군 소련이 해방군이면 소련이 한반도전체를 점령해서 공산화시키는게 옳았다는소리죠.
보르지오 21-07-07 17:26
   
멍청아 소련은 김일성을 무장시켜서 해방군 기치를 걸고 쳐 들어온 점령군이고

맥아더는 점령군이라고 포고문을 발표하고 들어온 점령군이고

둘다 점령군이지만 미국은 대한제국을 국가로는 인정안한거고

소련은 미국이 독식할까봐 대한제국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해방군을 자칭한거고

역사 공부 안하냐?

둘다 점령군이지만 대한제국을 나라로 인정해야 이득인가에 따라 방식만 다르게 한 점령군이라

고 둘다 미군정..군이 정치하는게 점령군이기에 가능한거야
     
성길사한 21-07-07 17:31
   
전후복구와 유렵에서 영역확대에 매달리고있던 소련이 한반도에 직접 개입하기에는 지정학적 가치가 떨어지고 80프로이상이 사회주의를 희망했던 당시 한반도인의 정서상 한발 물러선 자세를 보이며 미국에게도 한반도에서 손뗄것을 요구하는게 손안대고도 코풀면서 자국의 이익확보에 훨씬 유리했다는 현실은 애써 외면한체 저들이 주장하는 명분만 가지고 유리하게 해석해주시네요.

그래서 소련 미국 나란히 손떼서 당시 조선사람들이 원하는대로 통일된 공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살고 계시면 행복하시겠습니다? 거대중국에 밀려 산업경제수준은 베트남에서 잘쳐줘야 태국수준일거고 얼굴반반한 한국여자들 죄다 일본에 몸팔러가서 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 소리듣고도 변변히 항변도 못하고 중국의 위성국가로 지금과 비교도 안될만큼 압력에 시달리는 상황이라도 행복하시겠습니다? 그나마 지금 우리가 중국 일본눈치 덜보면서 이만큼이라도 큰소리칠수있게 된게 무엇때문입니까? 혹자들이 주장하는것처럼 우리민족이 우수하고 대단한 민족이어서요?그렇게 위대한 민족이면 일본에게 왜 점령당한겁니까? 예전에는 덜떨어진 민족이었다가 갑자기 해방을 계기로 위대한 민족으로 확 변신한거에요?
          
mymiky 21-07-07 17:35
   
너무 멀리 가시네요ㅡㅡ;;

뇌피셜 쓰는건 본인 자유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구구절절 주장하실 필요는 없어보이고ㅡ

1945년 광복 지점에만 따지면 될 일입니다

둘다 점령군인건 맞는데,

소련군은  원주민들의  눈치를 봐서  듣기좋게 해방군을 자칭했고,

미군은  눈치 볼게 없어서 점령군이라 직접적으로 표현한 차이점이 있는거죠
          
보르지오 21-07-07 17:38
   
덜 떨어진 놈아 일본 식민지배에서 누가 이념을 공부하고 가르치냐?

그당시 일본이 식민지배를 하면서 이념교육을 시켰을꺼라 생각하고 개소리 하는거냐?

그냥 먹고살았어 이념따위가 아니라 착취당하면서

그리고 맥아더가 점령군으로 들어온건 해방후 조선민족에게 일본 점령군으로 미군정이

들어왔으니 너희또한 미군정에 의해 지배하겠다는 의미일 뿐이지

아무런 이념따위가 없다고 그냥 일본 점령한 미군정이 한반도도 당연히 점령군 지위로

들어오겠다는 소릴일뿐이라고 이 어마무시하게 헛 다리 짚고 있는 무식한 놈아
               
성길사한 21-07-07 17:44
   
당시 설문조사를 보면 민중들 80프로이상이 사회주의를 지지했고 독립운동가들 태반이 사회주의자였던것도 팩트임.당시 지식인치고 사회주의에 한번쯤 심취하지않은 이가 없을정도임. 이런 상황상 조선민중 자체적으로 알아서 국가만들어 통치하라하면 백퍼 공산국가됨.그랬으면 전쟁도, 지금같은 분단도 없었겠지만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동상보고 눈물지으며 우린 언제 이밥에 고깃국말아 배터지게먹어볼까 하고 있었겠죠.
                    
애기강뭉 21-07-07 17:51
   
사회주의가 뭔진 알어?
                    
보르지오 21-07-07 17:52
   
그당시 여론조사 기관이 어디있는데

미군정이 여론조사라도 했다는거냐?

이거 망상속에 사네? 정신좀 차려

6.25때로 이념전쟁이라고 부를수도 있어

웃기지만 김일성이 사회주의자냐? 그냥 독재자를 꿈꾸던 새기일 뿐잖아

근데 이 새기 전쟁 명분을 사회주의 기치를 내걸었으니까..양보해서 이념전쟁이라고

하겠지만

실상은 그냥 김일성이 가진 전쟁가능한 능력이 남한의 능력을 수십배 넘었다고 생각해서

다 먹겠다고 일으킨 전쟁일 뿐이라고

이념으로 인종학살을 자행했지만

아직 단순하게 설명을 해줄께

미군정은 해방기 1945년 8.15일부터 1948년 8.15일까지

이때 미군이 한반도를 점령해서 정치를 펼치 기간이야

다른 헛소리 가져와서 장난질 칠 필요없이 이 당시 미군이 한반도에서 점령군지위로

이 나라를 다스렸다고 6.25까지 가고 현대사 까지 가는 의미가 아니라고
                         
mymiky 21-07-07 17:56
   
1940년대에도 여론조사는 있었습니다

동아일보에서 했었나?  그랬던걸로 아는데

초대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은지는 이승만이 1등이였고

국가정책은 사회주의로 가야한다는게 1등 먹었던걸로 압니다

전후 정치사 배우면 접하는 자료임
                         
성길사한 21-07-07 17:58
   
광복 직후 美군정이 실시한 여론조사...국민 80%가 사회주의·공산주의 원했다!

http://m.ssjnews.com/client/news/view.asp?cate=C07&mcate=M1002&nNewsNumb=20190869984

1946년 9월 10일 미 군정이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래 한국 통치구조에 관한 여론조사'를 보면 사회주의 70%, 자본주의 13%, 공산주의 10%, 모름 7%였다. 또 우익 성향의 단체 ‘선구회’가 해방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이 뽑은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는 여운형(33%), 이승만(20%), 김구(17%), 박헌영(15%) 이관술(13%), 김일성(2%) 순이었다.
                         
mymiky 21-07-07 18:01
   
우리나라가  1945년 이후

좌우합작에 성공해서

여운형의 조선인민 공화국이 오래갔다면ㅡ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김일성의 공산국가랑 좀 다름

독일같이 법적으로 사민주의 국가처럼 되는게 목표였을듯

사실 한국인들은  사회주의적인 부분들이 많음

동아시아 3대 미스테리 중 하나가

누구들보다 사회주의적인 한국이 자본주의 체제인거라나? ㅋㅋ

중국처럼 상술 쩌는 나라가 자본주의가 아니라  공산국가인 것도 미스테리고
                    
mymiky 21-07-07 17:54
   
근데 이승만 정권부터 ~박정희 정권까지

사회주의적인 정책들을 많이  가져다 썼습니다

우리나라가요

미국줄 잡은 것과 별개로ㅡ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정책들은

사회주의 계열이였으니까,,,

역사저널 그날에서도 ㅡ 이승만 정권시절
국회 발언자료들  보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지금 들어도 파격적인 내용들 많았음

패널들 다 놀라고 그랬던 내용 있었음

지금보다 그때가 훨씬 진보적 색체가 많았던게 사실임
                    
Assa 21-07-07 17:55
   
그당시 사람들이 이념을 심도있게 공부했겠음? 요즘도 안하는데? 그냥 감언이설로 사람들에게 설명해서 그리퍼진거지
바람아들 21-07-07 17:36
   
쏘련은 북한에 깊게 개입한것 같지는 않은데
     
광개토경 21-07-07 19:10
   
뭘 깊게 개입하지 않냐?

사실상 소련군이 북한을 장악하고, 김일성 같은 소련똥구멍 빠는 공산주의자들 위주로 북한 진입시켜서 정권 잡게 해 줬는데.

당장 나름 네임드급인 김무정 같은 중공군 산하 연안파 애들은 무장해제시키고 개인자격으로 북한에 들여왔음. 즉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북한 정권이 수립된게 팩트인데 뭘 개입하지 않았다고.
     
gaist 21-07-08 02:05
   
전쟁초기까진 소련이 깊이관여 했지만 이후 빤스런했고 그뒤로 김일성이 짱꿔한테 sos쳐서 오늘날에 이름
방랑기사 21-07-07 19:19
   
미군은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었고 소련은 공산주의를 가장한 왕조국가를 만들었지
     
성길사한 21-07-07 20:00
   
본사인 소련은 공산국가만드려고 했는데 하청받은 김일성이가 지멋대로 슈킹해서 왕조국가 만들어버렸죠. 본사나 하청이나 독재한건 도긴개긴이지만 대이어 독재왕정만든건 개네 상식으로는 상상할수없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50년대 소련이랑 북한 사이가 안좋아졌고 그뒤로 북한은 소련 중국사이에서 박쥐짓하면서 80년대까지는 나름 꿀빨있죠.
방랑기사 21-07-07 19:20
   
까좋고 이야기 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죽인건 김일성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