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나 공학이 아닌 정치적 동인에서 시작된 급격한 탄소중립과 탈원전 등의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고 차세대 에너지 산업인 핵융합에 집중하는 것이 국가 에너지 전략에 부합하다고 생각됩니다.
탄소중립 구현할 ‘인공 태양’, 치열해지는 핵융합 선점 경쟁
전 세계 35개 스타트업 뛰어들고 2兆 투자금 몰려
구글·아마존·NASA도 투자
전세계 곳곳에서 ‘인공(人工) 태양’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원리를 지구에 구현한 ‘핵융합(核融合) 발전’으로 인류를 에너지 문제에서 영원히 해방시키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수십년간 국가와 국제기구 차원에서 추진해온 핵융합 발전에 민간 스타트업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2045년 이후로 예상되던 상용화 시점이 크게 앞당겨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구글, 쿠웨이트 투자청 등이 핵융합 스타트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영국 원자력에너지청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핵융합 스타트업은 35곳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이 5년 이내에 생겼다. 이들이 끌어모은 투자금만 18억달러(약 2조1200억원)에 이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핵융합 열풍을 소개하며 “핵융합이 드디어 주류 에너지 시장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국가 차원의 핵융합 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정부가 설립하거나 지원하는 핵융합 실험 시설만 100곳이 넘는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중순 세계 최초의 핵융합 상용 발전소인 ‘스텝’을 지을 부지 후보지 다섯 곳을 선정했다. 2억파운드(약 3225억원)를 투자해 내년 말 착공한다. 중국은 달에 풍부한 헬륨-3를 이용한 핵융합 연구까지 진행하고 있다. 핵융합 기술을 활용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의 우주 경쟁에서도 앞서가겠다는 것이다.
미국 로런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는 최근 192개의 레이저를 이용해 핵융합 에너지의 발전 효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발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핵융합 열풍을 일으킨 것은 결국 탄소중립 시나리오”라고 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달성하기 힘든 비현실성인 목표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현재의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신재생 에너지 확대와 수소에너지 같은 신기술의 등장이 필수적인데, 핵융합은 실현되면 신재생 에너지를 보조 수단으로 만들고 핵심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원자력 학계 교수는 “핵융합 옹호론자들에게 핵융합 상용화 시기를 물어보면 언제나 ‘20년 뒤’라는 답이 돌아온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핵융합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2007년 완공한 핵융합로 KSTAR… 2025년 상용 운전기술 확보 목표
글로벌 핵융합 경쟁에서 한국은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까.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은 지난 1일 “플라스마 유지 기술과 소재·부품 제작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7년 한국형 핵융합로(KSTAR)를 독자 개발해 대전 대덕단지에서 운용하고 있다. 미국·러시아 등보다 늦게 뛰어들었지만 KSTAR는 핵융합의 오랜 난제를 여러 건 해결해냈다. KSTAR는 지난해 1억도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20초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세계 기록을 세웠다. 유 원장은 “올해는 30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했고 현재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물리학자들은 핵융합 발전이 24시간, 365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최소 기준으로 ‘300초간 플라스마 유지’를 꼽는다. 유 원장은 “플라스마에서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모든 현상이 300초 내에 다 일어난다”면서 “2025년 300초 달성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