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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2-22 14:33
한국에서 가라테 배운 주한미군이 개입한 드라마와 영화 시리즈
 글쓴이 : 못배트
조회 : 6,637  


소니 산하 콜롬비아 픽쳐스에서 제작한 가라테 키드랑 코브라 카이가 알고보니 오키나와와 한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해 태권도역사를 반영한 작품이었고 아메리칸 무덕관 당수도부 지원 아래 만들어져서 한국과 태권도 떡밥을 집어넣어서 한국 악역 바이럴로 자기네 홍보하는 시리즈 였음
코브라 카이 도복엔 태권도 패치도 붙어있고 도장내 태권도 품새 하는 장면까지도 묘사됨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ㅎ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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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23-12-22 16:51
   
가라데 공수도는. 그냥 맨손 무술이란 뜻임.

그러니 태권도도 일본 입장에선 가라데라 부르는거고.
이게 태권도는 가라데 기반이라는 이상한 말로 변질 된것.

극진 가라데의 경우. 일본 가라데와 아무런 상관도 없음.
오히려 극진을 따라해서 쇼토칸가라데가 생겨난것.
그런데 극진 가라데라고 부르는 이유가 맨손 무술이기 때문.
     
못배트 23-12-22 17:18
   
뭔 헛소리심?
극진 가라테 창시자 최영의는 애초에 초기엔 쇼토칸 가라테 배웠다가 슨도메 룰 반대하고 고주류 가라테로 전향하고 나중에 그 두개 섞어서 극진 가라테 창시한거임.
발차기 활용도 높은거(쇼토칸) 근접전 위주(고주류) 그 두개 스타일 섞은게 극진임
국기원도 자기네 가라테 변형이라고 하는판에

https://www.aladin.co.kr/shop/ebook/wpreviewviewernew.aspx?itemid=17143132
          
토막 23-12-22 18:08
   
처음 가라데는 지금과 완전히 모양이 다름.
지금처럼 타격 위주가 아니라. 타격과 유술이 섞인 형태이며 유술이 더 많이 쓰임.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 주먹나가면서 바로 상대를 잡아서 밭다리 후리기 들어가는거.

그러다 가라데 하는 사람이 최영의 한테 대련을 요청함.
그 대련에서 평소 하던데로 밭다리 후리기 시전하다 주먹맞고 날라감.

최영의 말이 잡아서 넘기고 어쩌고 하는거 보다 한방에 보내는게 더 빠르다.
거기다 다대일의 경우엔 잡기는 쓰지를 못한다.. 라고 함.

이러면서 가라데에 유술을 빼고 타격만 하는 가라데가 나옴.

아직도 그라운드 싸움을 하는 가라데가 남아있고. 이게 가라데의 원조임.

그리고. 태권도는 원래 한가지 무술이 아님.
우리나라에 있던 치고 받고 싸우는 무술들의 통칭이 태권도.

이게 태권도 연맹이 생길때. 만든 사람들이 도복이나 규칙같은걸 정할때.
가라데꺼를 많이 배낌.
이것 때문에 태권도가 가라데 배낀거라는 말이 나오는거.
무술을 배낀게 아니라 도복을 배낀거.
               
못배트 23-12-22 18:25
   
아닌데요? 그냥 유파 따라서 형태가 다른거임 가라테 카타 보면 분카이라고 있는데 거기보면 무기술 이라던지 유술 같은걸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를 가르침 원래 가라테라는 무도 자체가 오키나와 사람들이 왜구들 상대하려고 전투용으로 쓰던 은닉 무기술겸 유술 섞인 무도였는데 일본 합병후 오키나와인들이 일본 넘아가서 정착하던 와중 대표적인 후나코시 기친의 쇼토칸이 일본 유도 스포츠화를 진행하던 강도관 유도관에 입성 하면서 철저히 유술위주로 가는 유도랑 반대로 타격기 위주로 가면서 발차기가 나름 화려해진 근접 맨손 격투 타격 위주 가라테가 스포츠화 되면서 나오는데 그게 쇼토칸 가라테임
거기서 최영의가 배운거고 그러다 슨도메때문에 고주류로 전향해 두개 섞은 극진이 탄생한거고
     
못배트 23-12-22 17:23
   
일본에 애초에 가라테가 유입됐을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 당수(唐手)라는 이름이었는데 나중에 훈독 같은 공수로 이름 바뀐거고 한국엔 쇼토칸에서 수련한 이원국이 당수라는 이름으로 가라테를 들여옴
          
토막 23-12-22 18:14
   
일단 가라데의 원조는 류쿠에서 중국남권을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중국 남권도 실체가 없는 무술임.
어차피 중국에서 다 태워먹고 기록도 없지만.
애초에 중국 무술은 대부분이 무기술이고 맨손 무술을 별루 없음.

그 별로 없는 맨손무술의 통칭이 남권임.

간단하게 말하면.
중국 맨손무술 통칭 남권.
일본 맨손무술 통칭 가라데
한국 맨손무술 통칭 태권도.

그런데. 가라데가 세계에 먼저 알려지고 나니. 태권도는 가라데 배낀거라고 우기는데.
왜뽕들이 이걸 따라가고 있는 것일뿐.

과거 70년대 태권도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많이 다름.
시합에서 얼굴 못때리게 하니 발차기만 하는거지.
70년대 태권도는 가장 먼저 하는게 주먹단련임.
               
못배트 23-12-22 18:36
   
뭔 이야기신지 모르겠는데 가라테는 애초에 일본 무도가 아닌 류쿠 무도에요 1900년대 초엔 일본에선 제대로 없던 무도인데다가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류큐인들이 자리잡으면서 일본 무덕회 빌어서 일본 유도도복 띠 체계 받아들이면서 일본화 된거지 일본이랑 상관없던 무도임
가라테란 용어 자체가 1900년대 초에 생긴 신조어고
거기서 유학생들이 배워서 한국에 당수도 권법 공수도 같은 이름으로 들여와 1940년대 부터 한국에 자리잡았는데 1950년대 이승만이 가라데 시범 보고 저게 택견이구만 하면서 착각한거 때문에 군장성 최총희(쇼토칸출신)랑 그 부하 남태희(쇼토칸 계열 한국도장 청도관 출신)이 옥편 찾아가면서 억지로 만든 단어가 태권도임
그들이 쇼토칸 계열 청도관 출신이다보니 청도관 개조 이원국과 거길 중심으로 ITF 태권도를 창시한거고
1970년대 초까진 태권도는 가라테 카타들을 그대로 품새로 썼을 정도로 그 차이가 가라테랑 미미했음
그러다 최홍희 쫓겨나면서 지도관 가라테 출신 이종우한테 태권도가 먹히면서 가라테랑 차별 둬야지 안그러면 태권도 죽는다고 발차기 위주에 포인트 들어가는 룰로 바꿔서 엽기적으로 발만 쓰는 무도로 바뀐게 지금의 태권도임
정권단련 품새동작 가라테랑 다른게 없음
                    
토막 23-12-24 19:49
   
뭔 이야긴지 모르면서도 헛소리 많이 적어 놨네.

애초에. 무술이라고 하면 죄다 무기술임. 맨손 무술 자체가 그닥 없음.
무술이 필요한곳은 군대임. 그러니 군대 무술이 존재하고 그 무술들은 죄다 무기술임.

가라데라는게 1900년대에 생긴게. 그전엔 맨손무술 자체가 없었다는 말임.
심지어 유도 조차 군대 무술임.

그나마 존재 했던게 힘자랑임.
우리나라 씨름이나 서양 레슬링이나. 이런거. 태견도 힘자랑의 일종이고.

아~ 그리고. 복싱이 옜날 복싱은 레슬링 발차기 까지 하던거 알고 있나 몰라.

그리고 이승만이 봤던건 최영의의 극진이고.

일제시대에 결혼하고 사셨던 우리 할아버지도 태권도 하셨던 분이다.
일제시대에도 이름이 태권도 였다는 말이지.

게다가. 원래 태권도는 주먹을 더 많이 썼다.
그놈의 태권도 단체가 생기고 시합이 생기면서. 규칙으로 주먹으로 얼굴 때리는게 금지 되면서 발차기 위주가 된거지.

시합이 있고 규칙이 있으면 그 규칙에 따라 변형되는건 기본 아닌가?
주먹으로 얼굴 가격이 되는 ITF는 여전히 주먹질 한다.
똑같이 주먹으로 얼굴 가격이 안되는 가라데도 지금은 주먹질 못하지.
                         
못배트 23-12-24 23:07
   
이승만이 본건 쇼토칸 가라테다 극진은 훨신 나중에 생긴 유판데
가라테가 얼굴에 손질 못하고 발로만 얼굴차는건 극진에서 풀컨택트 시도하다가 ㅂㅅ되고 다치는 사람들 나오니 손으로는 몸통만 치라고 룰 정한거고 전통가라테 계열쇼토칸을 비롯한 JKA WKF 계열은 슨도메 룰 쓰면서 직접 타격을 안하거나 손으로 만약에 얼굴을 쳤더라도 다치지 말라고 글러브같이 생긴 보호구 끼고 하고 걍 유파별 룰이 다른거임
상식적으로 류큐에서 1900년대 초에 흘러들어간 류큐 가라테가 먼저겠냐 아님 그 유파들을 경험하고 슨도메 룰 싫다고 풀컨택으로 룰 수정해서 한국인이 새로만든 가라테가 먼저겠냐

가라테는 애초에 동작들에 무기술 섞인거 알고있나?

https://youtu.be/Xz5biQ55Xj
정권지르기 막기 응용법

https://youtu.be/Xz5biQ55Xj4
톤파 사용 카타

https://youtu.be/okPeQz2sxIc
쇼토칸 가라테 유급자 카타

쇼토칸 기본 발차기들

https://youtu.be/U3KxTSadA7A
앞차기

https://youtu.be/Q2kInnB-yVQ
옆차기

https://youtu.be/CDGhLVIqXEo
돌려차기

https://youtu.be/8BymXM_qpbk
앞후리기

https://youtu.be/6jEoWCiMTI8
뒤차기

https://youtu.be/YNXyj4c7ceY
두발당성

https://youtu.be/tUFvvza3HWY
날아차기

기본 정권지르기 품새 발차기 까지 태권도랑 쇼토칸 가라테는 닮아있음
                         
못배트 23-12-24 23:10
   
그리고 한국 청도관에서  쇼토칸 가라테 배워서 미국에 태권도를 전파한걸로 알려진 이준구 씨의경우 태권도의 기본은 모두 가라테라고 발언한적이 있음
https://www.taekwonmaru.com/2510750
미국에 코리안 가라테라고 가르치던 와중에 한국 정부측에서 태권도라고 이름 바꿔서 가르치라고 요구받은적도 있다고 하고
그가 태권도를 처음 배운 건 1946년 서울 동성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가 입문한 청도관은 이른바 ‘태권도 9개 관(館)’ 중 하나다. 9개 관은 1961년 대한태수도협회(대한태권도협회의 전신)를 결성한 초창기 태권도의 대표적인 9개 파를 일컫는다.

뜻밖에도 그는 검은띠 따는 데 5년이나 걸렸다고 했다. 그것도 도장에서 못 따고 군에서 땄다고 한다.

“내가 좀 둔해서 (유단자가 되는 데)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꼭 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나중엔 점프를 가장 잘했어요.”

청도관에서 배울 때 가장 힘든 기술이 이단옆차기였다고 한다.

“현 국기원장인 엄운규씨가 그걸 제일 잘했어요. 그분한테 많이 배웠죠. 나보다 2년 선배인데, 나중에 청도관 관장까지 지냈어요.”

▶초창기 태권도는 사실 일본의 가라테를 그대로 본뜬 것 아닙니까.

“청도관 초대 관장인 이원국 선생이 일본에서 대학 다닐 때 배운 가라테를 귀국해서 보급했으니, 맞는 말이에요. 역사는 거짓말하면 안 되죠.”

“다 가라테를 기본으로 한 것”

▶주먹을 허리춤에 댔다가 지르는 것도 가라테 동작이죠?

“맞아요. 그래서 내가 독특한 동작을 만든 거예요. 준리 태권도에서는 주먹이 가슴에서 나가죠.”

이 총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준리 태권도의 정권 지르기를 보여줬다. 국내 태권도 도장에서는 볼 수 없는 자세다.

“우리가 하는 게 좀더 과학적이라 할 수 있죠. 심리학적 요소도 있고. 역학적으로 주먹이 허리에서 나가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 못써요. 가슴에서 나가야 힘도 안 들고 속도도 빠르죠.”

언뜻 권투 주먹과 비슷하다. 그도 인정했다. 그렇다고 권투를 베낀 건 아니고,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동작이기에 개발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신호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깨를 구부리고 주먹을 뻗는 권투보다 더 위력적이라고 주장했다.

광복 직후 서울에는 태권도장이라는 게 없었다. 청도관을 비롯한 무술도장의 대부분은 가라테를 가르치는 곳이었다. 이들은 가라테의 한자어 표기인 당수(唐手), 혹은 공수(空手)도장으로 불렸다.

태권도라는 명칭은 1955년 육군 소장이던 최홍희씨가 제정한 것이다. 태권도는 일견 한국의 전통무술인 택견이나 수박도를 계승한 것 같지만, 모태는 어디까지나 가라테였다고 한다. 1959년 최홍희 장군은 대한태권도협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에 취임했다. 중간에 파벌 싸움으로 대한태수도협회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던 대한태권도협회는 1965년 원래의 이름을 되찾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권도 창립에는 최홍희 장군의 공이 크지요?

“그 양반이 만든 거요. 이승만 대통령한테 태권도 명칭에 대해 사인까지 받았어요. 그래서 태권도가 탄생했지.”

▶그 공은 인정해야겠지요.

“그럼. 그건 맞지. 태권도에 아주 미친 사람이었어요. 나하고도 가까운 사이였는데, 그 양반이 이북에 간 날부터 인연을 끊었지요. 나는 반공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최홍희씨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초기 태권도에 대해 궁금한 것을 더 물어봤다. 태권도가 현재 남과 북으로 양분돼 있는 만큼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이 총재의 증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9개 관에서 가르치는 기술은 다 비슷했습니까.

“그럼요. 다 가라테를 기본으로 한 것인데.”

▶관마다 특징이 있지 않았나요.

“굳이 말하자면, 청도관이 옆차기로 유명했고, 무덕관은 앞차기를 잘했다는 정도죠.”

▶가라테 기술과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합니까.

“가라테를 가르친 거니까. 당수니 공수니 다 같은 거예요.”

▶발차기에서 차이가 없었나요.

“태권도의 발차기 기술이 가라테보다 더 발전했지. 일본은 전통을 따지기 때문에 지금도 옛날 것 거의 그대로 가르쳐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의식이 없어 뒤돌려차기니 뭐니 해서 제멋대로 만들어냈어요. 그게 뒷날 다 복이 된 거요.”

▶당시엔 뒤돌려차기가 없었습니까.

“그랬지. 나도 그때 뒤돌려차기는 못 배웠어요. 기본 동작만 배웠지. 지금은 뛰어앞차기 등 기술이 얼마나 화려해요. 가라테보다 훨씬 앞서 있지. 상대가 안 되죠. 쿵푸도 그렇고. 그러니 올림픽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야. 대중이 좋아하니까.”

▶태권도에 대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시초는 가라테이지만, 이후 기술적으로 더 발전한 것’이라고.

“다른 도장은 몰라도 청도관만큼은 분명해요. 품새도 가라테의 평안이니 철기니 하는 것을 그대로 배웠으니. 태극형도 마찬가지고요. 거짓말하면 안 되지.”
                         
못배트 23-12-24 23:13
   
그리고 WTF 창시자나 다름없는 국기원 창시자 이종우 까지도 이런 이야기를 함

―부원장께서 무예를 처음 접한 건 언제입니까.

“해방 직후죠. 사춘기의 꿈이라고 할까. 17세 무렵 막연하게 무림의 고수를 꿈꾸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소공동에 가면 18계를 가르치는 곳이 있다고 하잖아. 그래서 거기를 찾아갔죠. 그곳이 바로 일제강점기의 유도 도장이었는데, 그때는 조선연무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유도부와 권법부를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권법부에서 가라테를 배운 거죠. 권법이 바로 일본 가라테거든요. 일본말로 부르면 국민감정도 있고 하니까 권법이라고 부른 겁니다.”
...
―당시 가라테는 당수(唐手)로 불렸죠.

“당수(唐手)로 쓰는 사람도 있고 공수(空手)라고 쓰는 사람도 있었죠. 당수나 공수를 일본말로 옮기면 가라테가 되거든. 모두 같은 내용인데 도장별로 특색 있게 보이기 위해 권법이다 당수도다 공수도다 그렇게 불렀어요.”

―태권도 이전에는 태수도(跆手道)로 불렸습니다. 태수도라는 말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겁니까.
...
“내가 한남동 외무부장관 공관 위에 살 때 최홍희 집은 그 건너 이슬람교회 너머에 있었어요. 그래서 둘이 자주 만났죠. 5·16이 나고 얼마 안됐는데, 최홍희가 태권으로 쓰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태권이 뭐냐? 가라테의 변형인데’라고 대꾸했어요. 그러다가 가라테(당수·공수)하고 태권도를 합해서 태수도라는 말이 나왔죠. 우리끼리 펴면 수(手)고 쥐면 권(拳)이니까, 쥔 거나 편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했어요. 그때 최홍희가 6군단장이었는데 권총을 차고 막 출근하려다 말고 나하고 얘기한 기억이 나요.”
...
―많은 태권도 교본들이 태권도의 뿌리를 삼국시대 이전으로 잡고 있습니다.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하더라도 좀 무리가 따른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도 그런 식으로 책을 쓴 사람이에요. 솔직히 우리가 내세울 게 없었잖아요. 초창기에는 태권도를 해외에 보급하는 과정에서 옛날부터 있었던 한국의 전통무술이라고 하면 명분도 서고 잘 먹혀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유사성이 있더라도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겁니다. 역사적 원류로 본다면 중국 것이 일본으로 들어갔고 일본 것이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죠. 일본 사람들이 중국 무술을 많이 개량해서 과학적으로 만들었어요. 한가지 문제가 뭐냐 하면 일본 사람들은 유연성보다 근육성에 바탕을 두고 운동을 만들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몸의 움직임이 굳을 수밖에 없죠.

우리는 이걸 가지고 스포츠로 경기화하기 위해서 겨루기를 시킨 겁니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겨루기를 안하고 혼자 하는 운동으로 놔두었고, 중국에서는 손 맞춰서 하는 유연한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렇게 볼 때 태권도는 중간 입장에서 어느 쪽도 아니에요. 쉽게 얘기하면 우지좌지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거죠. 그런데 우리는 겨루기를 했기 때문에 급속도로 발전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중국과 일본이 역으로 우리 걸 배우게 된 겁니다. 자기들 무술은 보급이 잘 안되는 데다 젊은 아이들이 자기와의 싸움보다 치고 받는 걸 좋아하잖아요.”

―광복이 되고 도장을 연 사람들은 모두 가라테를 했나요.

“기본기를 놓고 볼 때 이렇게 막는다 저렇게 때린다 하는 건 모두 가라테와 똑같아요.”

―그렇다면 우리 전통무예와의 유사성은 없다는 얘기입니까.

“언뜻 보기에는 있는 것 같지만, 기본기가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사실상 유사성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택견도 현대에 와서 많이 변질됐어요. 태권도 하던 사람들이 택견을 배우니까 발차기가 태권도 스타일로 나오는 거죠.”

―광복 이후 태권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영향을 끼친 무술은 가라테 뿐입니까. 다른 것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나요.

“그게 솔직한 대답입니다. 나도 별의별 것을 다 끌어들여서 책을 쓴 사람이지만, 이제는 밝힐 때가 됐어요. 가라테를 가르치는 관장들이 모여서 태권도의 형틀을 만들었고, 그 실무작업을 제가 했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세계 정상에 있으니까 밝혀도 큰 문제가 없어요.”

해방후 wtf 태권도 창시한 사람도 태권이라는 이름을 몰라서 그 명칭 만든 최홍희 한테 태권이 뭐냐고 되물음
                         
못배트 23-12-24 23:21
   
그리고 국기원에서 발간한 국기원 부원장 이종우 전기인데 서문에 이종우가 발언한게 딱 적혀있음
참고로 이종우는 한국형 품새 제정이나 겨루기 룰 제정한분인데

1990년대 중반쯤이었던 것 같다. 정확한 연도와 계절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이 말은 그와의 만남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 나눈 대화의 의미가 강렬한 나머지 그 외의 것을 기억하는 것은 무의미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강렬한 빛이 내게로 비칠 때 주위의 모든 것을 삼 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까. 아무튼 당시 세계태 권도연맹 부총재였던 그를 필자는 국기원에서 다른 일을 취재하던 중 만나게 됐다. 어릴 적 태권도를 수련한 필자는 국기원은 늘 성소 같은 장소였고 다소 말수가 적었던 그는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로 인식
하고 있었다.
현재에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개혁'이란 화두는 모두의 관심사였다. 평소 태권도 개혁을 주제로 많은 기사를 썼던 필자는 태권도 경기 규칙 제정을 주도했던 그에게 불쑥 퉁명스런 질문 하나를 던져봤다.
“태권도는 밟을 태와 주먹 권자를 쓰는데 왜 주먹 점수에 야박합니 까?" 그는 망설이지도 않았다.
"주먹 점수를 다 주면 태권도가 망합니다."
이 무슨 소린가. 그는 말을 이어갔다.
"복싱이 손기술을 쓴다면 태권도는 발기술 위주로 발전된 스포츠입 니다. 주먹 점수를 제대로 다 주면 태권도는 손발을 다 사용하는 어정 쩡한 스포츠가 돼 태권도만의 매력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의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래도 주먹이 발보다 빠른데 주먹 점수를 안 주면 수련을 등한시
태권도 수련생의 무력(武力)이 약해질 것입니다."

필자의 반대 논리에 그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주먹 점수를 다 주면 한국 태권도가 설 땅이 없어져요.”
그의 대답은 서양인들의 팔다리가 모두 길어 그렇지 않아도 한국 선 수들이 불리한데, 주먹 점수까지 다 주면 한국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이 약해진다는 얘기였다. 스포츠 태권도를 설계한 그의 말에서 '애국심'이 숨겨져 있어 놀라웠다.
그날 그와 나눈 대화 내용에는 몸통 보호대가 더욱 개량돼야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선수들이 돌려차기를 할 때 허리부분이 무 방비로 노출돼 허리 부상이 염려된다는 것이었다.
'현대 태권도의 설계자'답게 그는 국기원을 찾아오는 이들과 담소하 기를 즐겨했고, 대부분이 태권도 기술과 경기 규칙 개혁이 화두였다. 그 러면서도 자신이 확신을 갖고 추진한 일에서는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단호함을 보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일생을 태권도와 더불어 살았다. 그는 태권도를 개인의 수련 도 구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태권도에서 스포츠의 속성을 발견했다. 그 때 가 1950년대 중반쯤이었으니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따름이다. 태권 도가 겨루기로 특화된 스포츠로서 전국체육대회 종목이 되면서 태권도 에 대한 주위의 불편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전국적인 보급과 확산에 기여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초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이가 바로 그였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681475
솔직히 23-12-22 20:45
   
에초에 당수(唐手)는 이름에서 유래를 알 수 있음.
왜구들이 국적세탁하려고 발음은 같으나 한자가 다른 빌 공자 공수(空手)로 바꾼 거 뿐임.

왜가 기원이었다면 당나라 당자를 써서 당수라고 할 이유가 없지. ㅋㅋㅋ
     
못배트 23-12-22 20:50
   
중일전쟁때 일본정부가 바꾸라고 압박 넣었다죠
     
xkflf 23-12-25 21:11
   
일본어에서 가라 라는 말이 붙으면 유래가 중국임.
가라 = 당나라 당
가라데만 있는게아님.
          
Collector 24-01-01 07:34
   
꼭 그렇지는 않음...
당은 제국이었으니까, 국적 따지기 귀찮으면 아시아는 싸잡아 당이라 불렀음...
서구를 접하기 전까지, 자신들을 제외한 외국은 싸잡아 당...

그러니 조선인도 당인... 오키나와인도 당인... 필리핀인도 당인...
즉, 당인은 아시아계 외국인이라는 뜻이었고...
당수도는 아시아계 외국 무술이라는 뜻이었음...

암튼 자기네 무술이 아니고 외국 무술이라는 뜻으로 당수도라 한 것임...

외국 무술이라 천시해서 본토 일본인은 배우지 않으려 했었고, 그래서 조선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배워, 재일교포들이 근현대 가라데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며, 그 덕분에 태권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 것임...
노바노바 23-12-23 15:49
   
국기인 태권도가 한국의 고유무술이면 좋겠지만
역사를 따져보면 일본의 가라데에 뿌리를 두고 있는게 사실이죠.

그런데 정작 일본은 검도와 유도를 자신들의 국기로 생각하고
식민지 출신 오키나와에서 유래한 가라데는 저급한 운동으로 멸시하고 차별해 왔던것도 사실이구요.

애초에 오키나와 인들이 공수도, 즉 빈손 권법을 연마한 이유는
일본에 침략당해 나라를 빼앗긴 류쿠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무기소지를 금지당하자
중국(당나라) 권법이라는 의미의 당수를 발전시켜 공수도를 만들어낸거.

이 모든건 이미 1990년에 도올 김용옥이 태권도의 역사와 철학을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 라는 책으로 정리해 낸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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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인정하기 싫어해도
한반도에서 문화와 주류가 넘어간게 사실이듯이
한국인 입장에서는 불편하더라도
태권도가 오키나와의 가라데에서 유래한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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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빵 23-12-23 16:03
   
인도무술  - 중국 소림사  - 일본 가라데 - 태권도
이렇게 영향을 받았음.

태권도는 정확하게 말하면 가라데를 기본으로 현대 무술의 집대성임.
그리하여 발차기 위주의 경기 무술로 발전. - 여기서 부터 가라데랑 결을 달리함.
          
천추옹 23-12-23 18:35
   
애초 태권도 설립할때 모인 관장들 대부분이 가라테 관장들이었슴.
          
토막 23-12-24 19:55
   
근거 없음.
중국 소림사 라는것도 무협지에 나오는 내용일 뿐임.

애초에 가라데는 유술위주의 무술임.
무슨 발차기 위주로 가라데랑 결을 달리함?

태권도가 발차기 위주가 된건.
태권도 경기가 주먹으로 얼굴 가격을 금지 했기 때문임.

지금 태권도와 80-90년대 태권도도 많이 다름.
지금은 서로 껴안고 다리올리기 연습하고 있는 반면.
80-90시절엔 서로 살인킥 날리고 있음.
이게 모두 시합 규칙이 바뀌는것 때문일 뿐임.
굿잡스 23-12-24 15:02
   
■가라데 자체가 Jap고유 무술도 아니였고

유우국의 오키나와 무술이 20세기 초에 Jap본토에 점차 소개되면서 알려진 무술이였다.
     
굿잡스 23-12-24 15:02
   
■태권도는

이런 본토에 알려진 가라데의 도장 운영방식등을 벤치마킹한 부분은 인정되지만

오늘날 태권도는 초기 이런 가라데 사범 뿐 아니라 북방 권법 및 발차기를 중시하는 우리 고유 전통이 결합 발전되어 현대화된 무예의 산물이다
굿잡스 23-12-24 15:09
   
■도장을 중심으로 한 태권도 창안설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현대 태권도의 기원이 일본과 중국 등에서 무예를 배우고 온 지식인이 세계 2차 대전에서의 일본패망과 우리민족의 해방을 전후로(1944~ 1946) 창립한 5개의 기간 도장들이라는 주장이다.

■1944년 이원국의 청도관, 1945년 황기에 의한 무덕관, 1946년 전상섭에 의한 조선 연무관(한국전쟁 때 지도관으로개명), 1946년 윤병인에 의한 YMCA 권법부(한국전쟁 직후 창무관으로 개명), 1946년 노병직에 의해 창설된 송무관이 이른바 태권도 여명기의 5개 도장이고 태권도 1세대 원로들이다.


이들 기간 도장은 한국 무도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우리 민족의 역사상 최초로 군사 조직도 교육기관도 아닌 일개의 민간인에 의해 설립된 사설 도장에서 체계적이고 공식적인 무도 수련이 이루어졌다는 점이고,

둘째는 '태권도'라는 명칭이 생겨나고 기술체계가 완비되기 휠씬 이전부터 이들 기간도장에서는 자체 심사과정을 거쳐 '급증'과 '단증'을 발급하는 조직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셋째, 이들 기간도장의 창설자들은 초기에 자신의 무도를 '당수도' '공수도' '권법' '
화수도' 등의 이름으로 지도해 왔으나 .

이후에 태권도라는 통합명칭 제정과 협회 설립 및 기술체계의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특이한 점은 이들 사범 중 황기는 상고시대 때부터 우리민족 무예로써 수박도(手搏道)가 있었는데 중국이나 일본에서 이를 역수입하였다고 주장하며(수박도대감4, 1970,p. 47)[20] 자신의 무도를 정통성과 정당성이 있는 수박도로 개칭하여 태권도와 다른 무도 형태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 해 보면, 최초 기간도장들은 근대 한국 태권도사의 시작이고 핵심인 것은 분명하나, 유일하고 결정적인 태권도의 기원설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ㅡ한국 전통무예로서 태권도의 문화적 정체성 탐색(안정덕, 송강) 중
굿잡스 23-12-24 15:10
   
근대 태권도 형성에 있어 가라테 유입은 분명 지울 수 없는  뚜렷한 과정으로 질곡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 때 유입된 당수가 근대 태권도의 기원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단편적 사실주의의 오류가 너무 커 보인다.

한민족의 문화는 흥망 성쇄를 거듭하면서 변화되고 융합되어 새로운 형태를 뛰게 된다.

한반도에 존재한 무예도 36년간 식민통치의 문화적 단절 속에서 일본의 근대식 무도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시대와 격변의 혼란기를 거쳐 일본 가라테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현대 태권도로 재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의 가라데는 1940년 이전에 통합된 이념에 따라 일체화된 전통과 자기 정체성이 없었으며,

현재에도 지도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이념이 존재하며 통합의 단계를 한번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현존하고 있다.

■한국의 태권도가 뚜렷한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오늘날에도 가라테는 그렇지 못한 측면이 더 크다는 사실(이창후, 2003, p95)[13]들을 종합해 볼 때, 태권도가 가라데의 아류이고 가라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규정하기에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ㅡ한국 전통무예로서 태권도의 문화적 정체성 탐색(안정덕, 송강) 중
굿잡스 23-12-24 15:11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태권도는 최홍희와 일제시대의 문화적 단절기에 유입된 가라테, 그리고 최초의 기간도장 지도자와 우리민족의 전통무예가 융합되어 격동의 혼란기와 문화적 재생산 과정을 거쳐 탄생하였다.

둘째, 태권도는 발기술을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맨손 무예 몸짓을 본질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손기술 중심의 일본 가라테나 중국의 우슈와 확연히 구별된 독창성을 확보하고 있다.

게다가 호구나, 삿보대, 헤드기어 등에는 태극문양과 전통적 오방색상을 잘 조화시켰으며, 모든 용어를 순 우리말로 바꾼 것은 한국적 토착화의 결정체이다.

따라서 태권도는 한국 전통무예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내포한 가장 세계화된 한국의 문화유산이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해 가는 노력과 함께 글로벌 무도 스포츠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ㅡ한국 전통무예로서 태권도의 문화적 정체성 탐색(안정덕, 송강) 중
Korisent 23-12-24 20:51
   
가라데 그냥 읽으면 공수도, 다 당수도에서 부터 나왔죠. 그리고 오키나와,류큐는 일본 아닙니다.
     
못배트 23-12-24 23:26
   
위에 다 언급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