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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3-12 00:58
동아시아 역사에 관한 우리의 전통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글쓴이 : 어허
조회 : 1,614  

동아시아의 역사의 주역은 누가 머라고해도 북방민족이다.

수많은 역사의 중국 왕조들 지배계층은 대부분 북방민족이였다.

수당만해도 선비족이며 청나라는 여진이다. 등등   다른 대부분의 왕조들도 북방민족이였다.

현제 중국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은 한족이라 칭하는 지나족이면 

그들은 역사의 대부분을 피지배계층으로 살아왔다. 


내가 하고픈말은 동아시아의 문화 전통 놀이 의상 유물 문화적인 부분들 역사는

북방민족이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다.

그 북방민족에는 동이족인 우리도 포함된다.  


한족은 곁가지에 불과하고 일본은 우리에게 문화를 전파받은 변방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금시점에 이르러  선비족 거란 여진 흉노 등등 수많은 북방민족은 다 사라지고

몽골과 우리만 남았다.  몽골은 기나긴 동아시아 역사에서 원제국 시대를 제외하면 변방에

불과했고  동아시아의 중심에 있던 북방 민족중 이제 남은건 우리민족뿐이다.


이말의 의미는 동아시아 역사의 원류는 이제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는것이다.

동아시아의 모든역사의 뿌리가 우리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한단고기니 자국뽕이니 이상한말로 치부하고 비하하고 스스로를 자학할 필요가 없다는이야기이다


왜??  선비족은 더이상 없다  여진족은 더이상 없다  거란도 없다. 등등 이제 없다. 

우리만 남아있기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문화를 이룩햇던 그들의 문화를 이어줄 그들의 후손은

이미 없어지고 중국에는 한족만이 남아있다. 


동아시아의 전통성을 잊는 민족은 이제 우리밖에 남아있지 않다. 

반도의 구석으로 밀려 났을지라도 그 모든문화의 원류에 전통성을 주장할 북방민족은 이제 우리뿐이다.


그러니 자꾸 자학하지마라  너무 겸손해져서 우리꺼 아니라고 하지마라

사실에 기반하고 전통성에 따른다면  동아시아의 역사는 우리가 중심이고 

문화의 뿌리는 우리것이다.  가장 우리가 그 문화와 역사에 전통성이 큰 민족이다. 


자꾸 저건 중국거지 저건 중국역사지 등등  이런 사대주의적이고 자학적인 역사인식이 

많아서 한번 끌쩍여 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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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4-03-12 08:11
   
당나라 당연히 동이족임.

당나라 황제 성씨인 李이씨는 황제 스스로 자신들은 도덕경의 저자 노자(본명 李 耳 이 이)의 후손이라고 제사를 지냈는데 이 오얏나무 李이라는 오얏 자체가 한국산 나무임. 중국에서는 이것을 자도라고 하는데 자주빛복숭아 라는 개념 자체가 오얏과 다르고 오얏이 먼저 있었던 품종임. 노자는 오얏나무 아래에서 태어나 성씨를 오얏으로 했는데 도덕경 14장에서의 이,희,미 즉 "동이족을 바라보며 숨겨놓는다"는 뜻과 같이 자신이 동이족이며 그래서 한국의 오얏나무 이씨를 성씨로 삼은 것임.
     
구름위하늘 24-03-12 12:31
   
증거가 부족한 설명들이 많습니다.

오얏에 대해서는 중국 원산지라는 설명이 훨씬 많습니다.
노자가 동이족이라는 것도 증거가 부족합니다.  공자이든 노자이든 선조가 동이족이었다 수준의 의견이 있지만, 본인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맞지 않는 설명입니다.

중요하는 것은 노자가 노씨냐 이씨냐의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성과 씨는 부모나 부족의 지역에 따라서 태어나기 전 부터 결정되어 지는 것이지, 스스로 성씨를 만들거나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 입니다.
주로 귀화와 같이 문화가 다른 국가로 소속을 바꿀 경우에나 가능한 것 입니다.
노자가 스스로 이씨를 성씨로 삼았다는 것은 귀화와 같은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유전 24-03-12 13:33
   
노자는 어머니가 아버지 없이 홀로 성령으로 잉태되어 70년간의 수태기간을 거쳐 태어났고 오얏나무 밑에서 태어나 그것을 자신의 성씨로 삼았다고 나옴. 이 내용은 중국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임.

그런 경우가 삼국유사의 사복 설화에도 나오는데 원효대사의 체험담으로 위 내용과 거의 같음. 아래 링크 참조.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6&wr_id=1406216&sca=&sfl=wr_subject&stx=%EC%82%BC%EA%B5%AD%EC%9C%A0%EC%82%AC&sop=and
(삼국유사) 원효대사가 체험한 차원을 열고 사라진 사람들
               
구름위하늘 24-03-12 14:23
   
노자 "신화"를 이야기 하시면 어쩔티비?
셩령과 70년간 수태기간이라... 참 허무합니다.

고대 기록의 신화적 표현을 사실로 받아들여서 설명하시니 할 말이 없습니다.
유전 24-03-12 08:26
   
     
구름위하늘 24-03-12 12:32
   
중국 양쯔강 유역이 원산지인 재래종

출처 : https://www.100ssd.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249
          
유전 24-03-12 13:26
   
"북송시대 서긍이 고려에 방문해서 집필한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밤을 복숭아처럼 크고 달다고 극찬한 것과는 별개로 고려의 오얏(자두)는 떫고 시기만 하다고 깠다.(...) 아마도 고려시대에는 개량이 덜 된, 야생성이 많이 살아있는 수종을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자두나무는 그냥 복숭아 계열이지 한국의 오얏이 아님. 아래 링크 글 읽어보면 자두 라는 말도 거의 쓰지 않았음. 아래 내용에서 오얏의 원산지가 한국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고 되어 있는데 내가 볼 때 울릉도와 경상북도 쪽에서 조사해 보면 나올 것임.

https://tnknam.tistory.com/2217
1768 자두나무 = 오얏 추리 고야 애추 자도(紫挑) 이(李)
               
구름위하늘 24-03-12 14:26
   
춘추전국시대의 노자가 태어난 곳이 오얏나무 아래에서 라고 이야기 하고 나서
그 후로 한참 뒤인 북송시대와 고려를 이야기하면서 자생종 운운하면 ...

노자가 태어났다고 하는 그 오얏나무는 그 전에 한국 땅에서 중국으로 옮겨심어진 것이라는 주장인가요?
                    
유전 24-03-12 14:56
   
李이 라는 글자가 무슨 뜻입니까? 나무 목 木 + 子 아들 자 이니까 나무 아래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뜻인데 그 나무 이름이 오얏나무 라구요.

자기 성씨로 삼을만큼 특별했으니 오얏나무 열매의 씨를 중국에 갈 때 가지고 갔겠죠. 그런데 한국에는 원래 과일이 잘 나는 생태계가 아닙니다. 과일 대신에 과일 보다 딱딱한 견과류 종류가 많은데 이것도 과일이라면 과일이라고 할 수 있죠.

따뜻한 남쪽의 귤이 한반도 내륙에서는 유자, 탱자 등의 형태만 보이는 것과 같죠. 그러니 중국의 자두와 한국의 오얏은 다르다는 겁니다.

그리고 노자는 그렇게 한동안 중국에서 살다가 역시나 중국 서쪽 국경선을 넘어갈 때 그곳의 관리가 신신당부하여 도덕경을 남기고 갔는데 원래 중국 토박이가 아닌 이유죠.
토막 24-03-12 08:27
   
남만 북적 동이 서융.. 모두 중국 중심으로 중국만이 국가며 사람이고 나머지는 전부 미개인 들이라는 생각으로 만든말.

그중 북방민족은 북적에 해당함.

그리고 하나더 남음 터키.

흉노족 계열의 키르키스스탄 카자흐스탄도 남아있고.
     
구름위하늘 24-03-12 12:36
   
북적이 북방민족인 것도 맞지만,
서융이나 동이에도 북방민족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꿈결 24-03-12 09:22
   
어줍잖게 정상인 인척 하지 말고 하던 문재인 빨갱이 소리나 계속 하쇼.
진실게임 24-03-12 11:23
   
버터도 우리 꺼임

유목 문화에서 온 거잖아.
이쉬타 24-03-12 13:12
   
그건 아닌데...북방 민족하면 보통 흉노 선비 거란 몽골 돌궐 등 유목민족을 말하고,,
우리조상은 한번도 유목생활을 해본적이 없으며
다음 북방이니 남방이니 란게 중국을 기준인데,,우리 기준으로는 그들은 서측방이라고,,,
중국도 우리네 기준으로는 서토이고
그 유목민족들이 세계적 대제국을 세우고 한사례가 몇번이기는 해도
 문화적으로는 보잘것이 없엇구,,
다음 이 동아시아 최강국은 분명히 중국이고 세계국력순위가 2등,, 군사력 순위가  3위이여
현대문화가 낙후한 나라이긴해도  전통문화 영역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 엿다고
 우리조상이 특히나 그 중국문화를 열렬히 빨아댄 모범 수제자 를 자처한 지경 였으며
그 전통문화 영역에서 중국을 제외 하고 이 동아시아에서  내세울만한 나라가 별로 없었고
대략 2등 레벨이 이 한민족,,이랫던 거지
     
구름위하늘 24-03-12 14:33
   
유목민족 중에서 순수하게 유목만 하는 민족도 있지만,
반농반목하는 종족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거란족이 반농반목 입니다.
여진(만주족)도 반농반목이라고 여겨지고요.

우리 민족의 조상 중에서는 반농반목을 했다고 여겨지는 시대도 있습니다.
고구려도 정확하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목민족은 아니지만 주변 유목민족에 대한 영향력이 강력했고 유목민족에 부족하지 않은 기마병력을 유지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우리나라 병력 구조는 기병:보병이 1:1 수준으로 유지했습니다.
전체 병력 20만에 동원가능 병력(공격부대)가 10만 정도 였고요. 이정도면 반농반목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발해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고구려를 계승했으니, 반농반목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쉬타 24-03-12 15:04
   
거란은 순수한 유목민족이 맞아요,,,유목민족은 대개가  한족을 잡아와서
 농사는 보통 한족들에게 시키고 원래 유목민족은 농사를 안짓습니다
그러는 이유는 이들은 유랑하면서 가축을 키우는것을 자랑스워하고
농사를 짓는것을 혐오하고  농민을 멸시하는등의 유목민 특유의 전통을 가저서이죠,,
여진족은 보통 농사와 수렵을 병행해온 사회이고 여진이 강대해지면서
보통 농사는 납치해온 한족들에만 시키고 햇찌요
농사와 목축, 수렵은 부여/ 고구려의 경제 기반 였습니다,,,
고구려가 초원지대를 장악하지도 못햇으니 유목은 할 이유가 없었죠,,
그리고 고구려 영내에 말갈이나 거란족 선비족들이 다수 거주 하였고 ,,
그중 거란 선비족들이 목축에 주로  종사 햇을 검니다,,
고구려군의 기병전력을 담당한것도 이들엿던게죠
               
구름위하늘 24-03-12 16:17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지만, 보는 입장이 다르네요.
노예로 부리던 자국민이 하든 반농반목이면 반농반목 국가 입니다.
자국민이든 종속부족이든 유목민이 절반 정도이면 반농반목 국가 입니다.
님의 논리는 종속부족의 국가적 소속감이 없는 업무적인 계약 관계일 경우에 적용될  것 같습니다.

거란의 이원적 생산방식과 농업경제발전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654002
"거란은 원시 씨족사회 때부터 줄곧 유목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산방식은 자급자족하는 경제를 만들 수 없으므로 유목민이나 다른 경제체제가 다른 정주사회와 인접해 있지 않으면 그들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결국 거란은 생존 수단으로 농업경제를 추진하거나 외부 사회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거란은 유목 외에 약탈과 교역, 농경 등 다양한 경제수단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나 약탈과 거래는 일시적이고 인접국과의 역학관계에 따라 가변성이 있어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이런 유목경제의 구조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회 내에서 지속적으로 물자를 획득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거란은 부족연맹 시절부터 농경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자연환경은 물론 유목민 정서에 맞지 않아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고 최소한의 생계 수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적 후진성을 군사적 우위로 전환하고 이 새로운 형태를 정복하며 안정적인 착취를 추구했다. 그들은 정복과 이주민 정책을 통해 피정복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거란지구에는 농경민이 농업생산에 종사하고 있으며, 장성 이남의 경작지까지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종족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남북지역에 따라 생산방식과 생활풍속, 인종을 달리하는 ‘인속이치’의 정책을 채택하였다.
거란은 이런 배경에서 반농반목 경제체제를 갖추기 시작했고, 결국 이원적 경제구조인 목농연합 체제를 실현했다. 중원문명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유목과 농경의 적극적인 공존을 추구한다. 그래서 농경은 거란의 보조적 생산수단으로서 일정한 지역에서만 제한하였다. 그 결과 그들의 고유한 정서와 관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농업경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는 이민족에 의한 중국 지배의 새로운 생산양식을 마련한 역사상 탁월한 선례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거란족이 원래 유목민족으로 시작했다고 명시했고 님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타 종족을 데려와서 농업에 종사하도록 했지만 이것을 반농반목 경제체제로 설명합니다.
이쉬타 24-03-12 15:17
   
우리가 이들 유목 북방민족들이랑 인종상으로 즉 유전자적으로는  근친인거는 맞으나
문화에서는 우리는 농업이 기반이라 이들하고는  매우 다름니다,,
서양의 인류학 계보에서는 보통 알타이 인종으로 부르고하는데 ,
인종으로만 유사 할뿐이고 과거 역사에서도 교류 흔적은 매우 적지요,,
같은 육지로 연결이 되어도 실제로 왕래 자체는 별로 없구 햇지요,,,
고구려 고조선 부여 등 모두가 교류는 주로  중국 일변도 였습니다,,
이는 유목민족 자체가 본래가 문화를 자체적 생산하는고 한 사회가 아니여서 이죠
과거 아시아대륙을  호령을 한 유목민족은 3로 나누워져서
주로  서부 중앙아세아에 거주하고 일부는 중국에 들어가 정착하고
나머지는 초원에 남아 몽골 피플이 되서 살아가는 입장이죠
국가적으로 과거 유목민족 직계 후손은 현재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벡스탄, 키르키즈스탄 ,,,이런 나라들이고
더 넓게 앝타이 인종의 국가로 분류시에는 여기에 남북한 , 일본 정도가 들어가겟죠,,
     
구름위하늘 24-03-12 16:31
   
님은 유목민족이 문화적으로 후진문명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돌궐제국이나 몽골제국의 문화가 자체적인 생산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것인가요?

3으로 나누어졌다는 유목민족에는 거란/여진은 속하지 않는 것인가요?
혹시 중국에 들어가서 정착한 유목민족이라고 하신 것입니까?
참고로 거란/여진/숙신/선비/말갈/예맥 부족의 위치는 그렇게 동떨어진 위치가 아닙니다.
어허 24-03-12 18:40
   
더 깊이 파고들면 종족도 많아지고 내용이 복잡해지니깐 근냥 퉁처서 저리 설명한것이고 북방민족의 대부분을 통합 통치혹은 연합 민족이 고구려이고 고구려산아에 여진이 있었고 거란도 상당기간 고구려에 복속해있었음
그전에 고조전으로가면 대부분 고조선의 산하이고 부여시대에도 북방 유목민족의 맹주는 부여였음 그리고 그 후손으로 전통성을 주장할수 있는게 우리라는거지
동이라는 말이 좋아서 쓰는게아님 근냥 알아먹기 편하라는 이야기지

막말로 얼마나 많은 종족들이 생기고 사라지고 통합되고 했겠음 이 동아시아의 패자로 활동하던 종족은 이제 우리뿐이라는이야기임

지금 한족이 세를 불렸지만 그 기간이라바야 이제 백년이나 될까  기나긴 역사에서 잠시 스처지나가는 정도

문제는 숫자가 너무많아서 그게 무서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