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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27 22:54
역사서의 뻥이 역대급으로 심한 국가들
 글쓴이 : 데스투도
조회 : 989  

1.이집트: 일단 선대가 이룩한 업적이 있음 그냥 다 자기 업적으로 갈아 넣는다. 또한 일단 안 좋은 이야기는
              최대한 축소하거나 삭제한다.
 
 
2.중국: 동양쪽의 허위과장 광고의 원조. 역사의 시초부터 역시 안 좋은 이야기는 최대한 축소 은패한다.
           (ex 황제와 치우의 전쟁)하지만 정확한 사료들도 많다. 단 현대로 넘어갈수록 판타지 소설들이
          더욱 많아진다.
 
 
3.일본: 역사서 자체가 환타지 소설이다. 자국 사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한국관련 이야기를 빼면 역사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4: 아시리아: 이집트라는 좋은 모범을 따른다.
 
 
 
1,4가 얼마나 왜곡이 심하냐 하면 구약 성서에 나와있는 역사적 기록들이 오히려 더 이들의 기록보다
 정확하다는 고고학자들의 말이 있을 정도임.
 
문제는 2,3도(특히3) 1,4보다 심하면 심하지 그에 못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 ...lllO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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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납쇼 14-03-27 23:00
   
그래도 중국,이집트는 4대문명국 이고 어느정도 세계에서도 영향력 줬다고 생각함,,
중국은 세계 4대발명품 만든것도 대단하고,,이 두개 나라는 그래도 뻥튀기 심해도 어느정도 역사가 깊은 나라라고 보는데
진짜 제일 이해안가고 생각없고 개그지같은 왜구놈들,.,쪽빠리놈들은 애초에 저 역사서에 낄 자리가 아님,
     
데스투도 14-03-27 23:04
   
왜곡이 심한 국가들을 꼽아 놓은 건데요, 저 사례에 충분히 들어가죠. 단 다른 국가들은 그래도 실제 있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왜곡이 이루어졌지만 일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갓 클라스라는 것이 문제죠.
자그네브 14-03-27 23:03
   
전혀 아님요..이집트를 알면 구약성서는 개뻥....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집트의 거지같은 폭군은 바로 람세스2세...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라오중의 한명이죠.
현재 남아있는 이집트 유적중의 상당수가 람세스2세의 유적들...
힛타이트와 자웅을 다툰 대제국이죠. 카데슈전투에서 무승부했죠.
구약을 읽으면 오히려 이집트에 대해서 편견 생깁니다. 비추합니다.
문명의 흐름을 전혀 모르는 자기중심 유대인의 너무나 좁은 세계관이 드러납니다.
     
데스투도 14-03-27 23:08
   
구약이 종교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본 것은 어느 정도 있지만 역사적 사실 자체를
왜곡하지는 않았어요. 이건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이 인정하는 거에요.

그리고 한가지 착각하시는게 람세스2세와 모세를 엮은 것은 고고학자들이나 종교인이 아니라 역사 소설 쓴 소설가입니다.  시기상으로 출애굽과 람세스2세는 상관 없어요. 이 걸 엮은 것도 그런 이집트 사서의 왜곡을 아이디어로 해서 출발한 것이구요
          
자그네브 14-03-27 23:23
   
그런데 네이버 지식백과, 위기백과 그외 온갖 논문 리포트들은 뭔가요?
구약성서와 람세스2세와 모세와...한번 검색해보세요.이게 다 소설이라고요?
검색해보면 쭉쭉 펼쳐져 나오는데 그동안 그럼 기독교인들은 뭐한거에요...
위키백과도 못바꿔요?  1000만 기독인이?
책임없고 어이없는 답변이네요. 걍 소설이다라.....
확실한건 이집트, 앗시리아의 역사보다 유대의 역사가 훨씬 더 구라이고 소설입니다.
               
데스투도 14-03-27 23:32
   
글세요? 기독교인들이 뭔 쇼를 하건 그건 전 관심도 없고 모르겠네요. 어쨋던 고고학자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전 예전에 내셔널 지오그라피에서 본 기억이 난 것 뿐이니까요.

그리고 아무나 고칠 수 있는 위키백과를 어떤 문제의 증거로 믿는다는 말씀에는 좀 어이가 없습니다. 인터넷 자료는 출처가 명확하게 언급된 것이 아닌 건 좀 믿기 힘들던데 말이죠.
                    
자그네브 14-03-27 23:38
   
그니까 제가 위에 적었듯이 소설같은 잘못된 정보를 고치시라고요...
검색해보시면 다 저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게 소설이라구요?
"구약성서 람세스2세 모세" 검색어 써드렸으니 검색해 보세요.
다 거짓인지....
                         
데스투도 14-03-27 23:48
   
학계의 공식적으로는 모세이야기의 연대는 알 수 없다에요, 지금은 람세스2세때의 이야기가 아닌가 추정할 뿐이죠.
                         
싱끌레어 14-03-27 23:58
   
학계에서도 출애굽의 시기는 정확히 단정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아멘호텝 2세 시절이나 람세스 2세 시절이라고 추정하고 있긴 한데, 고고학적으론 전자가 좀 더 가능성이 있지만,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 이후로 대중들에게는 람세스 2세 시절이란 인식이 더 친숙하죠.

그래도 어느 시기인지 확실히 모르고, 모세가 워낙 유명하다보니까 람세스 2세 이야기에서도 모세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아멘호텝 2세 이야기에서도 모세 이야기는 단골소재입니다.

그리고 람세스 2세의 업적은 과장된 게 많아요. 카디슈 전투에서도 기존까진 이집트가 완승한 경기라고 나오지만, 히타이트 점토판과 협정체결문이 발굴되면서 히타이트의 우세승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모계 씨족을 중시하는 이집트로서는 치욕적으로 히타이트의 공주를 람세스의 아내, 즉 이집트의 왕비로 맞는 일까지 생깁니다. 파라오가 신으로 추증되는 건 맞지만, 그게 부계세습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알겠지만 람세스 2세도 왕족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신으로 추증될 수 있었던 게 모계 중심이어서, 공주와 결혼해서 파라오 자리에 앉으면 만사 오케이였거든요. 그런데 그 왕비의 자리에 히타이트 공주가 앉게 됩니다.

이집트의 기록만 보면 람세스 2세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지만, 조목조목 뜯어보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됩니다.
                         
자그네브 14-03-28 00:06
   
싱클레어님 말씀은 저도 알고 있어요. 들은바 있구요.
소설 람세스에서는 오히려 모세는 그냥 스쳐지나갑니다.
전혀 중요 등장인물 아니었어요.
하누하리 14-03-27 23:14
   
서양의 역사가 그리스,로마를 기원으로 삼는데
상당부분이 이집트 문명에서 차용해서
그리스 섬에서 발원,로마에서 꽃피웠다는게 정설입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인물이나 성경에서 나오는 사건들의
대부분은 이집트 신화에 나온 대부분을 재구성한것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데스투도 14-03-27 23:18
   
그렇죠. 어쨋던 문명이 전파된 순서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고 그리스,로마(에트루리아) 순으로 유럽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하니까요.
자그네브 14-03-27 23:34
   
그리고 이집트역사는 그렿게 뭐 과장되어 있지 않아요.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한후
현대에 문제가 되고있는 이집트 군사정권들....자유장교단이 정권을 잡을때까지
이집트는 2400년간 타민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집트의 군사정권이 악행을 저지르지만 계속 집권이 가능한 이유는
수천년만의 이집트인 정권이기 때문입니다. 민중의 지지가 있어요...
이집트역사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에게 정복된 이후 현재까지
2400년간 타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별볼일 없었어요.
하다못해 알바니아의 지배까지 받았습니다. 어중이 떠중이가 다 지배했던 나라.
과장된거 하나 없습니다.
     
데스투도 14-03-27 23:39
   
자그네브님 솔직히 고고학이나 역사쪽에 관심 없으시죠?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고왕조시대부터 신왕조 시대에 이르는 파피루스나 진흙석판에 기록한 것과 같은 기록들 혹은 비문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역대 파라오들이 선대 파라오가 잘한 업적을 자신들이 한 것으로 고치는 것이 흔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구요. 그래서 어떤 사건들에 대한 시대가 혼동되는 일도 흔했다는 이야기구요

이런 것은 조금만 조사해봐도 알 수 있는 사실들인데 말이죠,
          
자그네브 14-03-27 23:48
   
크게 관심은 없어요. 하지만 람세스 2세는 좀 흥미있어했던 인물이어서 관심있습니다.
근데 님은 위에서 소설가가 만든 왜곡이라고 하셨어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를 보셨다면서..고고학자들의 주장이라고....
어떤 고고학자의 주장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다큐채널 보면서 느낀건 그 인터뷰하는 패널들을 자세히 보세요...
이름밑에 작가라고 써있어요. 학자 아니고 작가가 많더이다.
그리고 제가 말한건 소설이 아니라 서양사회의 통념입니다.
지금껏 서양인들이 그렇게 믿고 서술해 왔어요.
궂이 나랑 싸울게 아니라 나대신 싸워줄 사람 수천명 연결시켜 드릴수 있습니다.
               
데스투도 14-03-27 23:53
   
에효...

신빙성 이집트 탈출 이야기에 반대하는 한 가지 견해는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에 관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근대의 왕들도 자기들의 승리에 관해서만 기록할 뿐 패배의 기록은 남기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미지나 국가주의적 이미지 혹은 자기들이 백성에게 심어 주려고 하는 이념에 반하는 역사는 무엇이든 흔히 지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 와서도 통치자들은 전임자의 업적과 명성을 지우려고 하였다. 난처하게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이집트 비문에서 생략되었거나 가능한 한 속히 지워졌다. 예를 들어, 이집트 데이르알바리에서 발굴된 석조 기념비의 기록에서 하트솁수트 여왕의 이름과 모습이 후계자 투트모세 3세에 의해 지워졌다.—「고고학과 성서 역사」(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J. P. 프리, 1964년, 98면과 94면

유대인을 미워했던 것으로 보이는 이집트 제사장 마네토는 기원전 280년경에 그리스어로 글을 썼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마네토의 말이라고 하면서, 유대인 조상이 “수만의 무리를 이끌고 이집트에 들어가 주민들을 정복했다”는 글을 인용한다. 이어지는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면, 마네토는 “그들이 후에 그 나라에서 쫓겨나 지금의 유대를 차지하고 예루살렘을 설립한 다음 성전을 지었음을 인정한다.”—「아피온 반박문」(Against Apion), I, 228 (26).

마네토의 기록은 일반적으로 역사상의 사실과 매우 다르지만, 유대인이 이집트에 있다가 나갔다는 그의 언급은 유의할 만하다. 또한 요세푸스에 따르면 마네토는 또 다른 기록들에서 모세를 이집트 제사장 오사르시프와 동일시한다. 이집트 기념비에는 관련된 사실에 관한 기록이 없다 해도, 마네토의 기록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있었다는 점과 모세가 그들의 지도자였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요세푸스는 또 다른 이집트 역사가 카에레몬을 언급하는데, 카에레몬은 요셉과 모세가 동시에 이집트에서 쫓겨났다고 말한다. 또한 요세푸스는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전하는 리시마코스의 말도 언급한다.—「아피온 반박문」, I, 228, 238 (26); 288, 290 (32); 299 (33); 304-311 (34).


됐습니까?  더이상 이야기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네요 토론을 싸우자고 하는 분하고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ㅡ ㅡ;;;
                    
자그네브 14-03-28 00:00
   
출처가 뭐인 무슨 글인지 모르겠지만
걍 성경과 공통점은 유대인이 이집트에 왔다가 갔다..이것뿐이군요.
핍박을 받았다거나 폭정에 시달렸다거나 장자(큰아들)을 다 죽이고
이런거 아니고 유대인이 이집트 정복했다는 이야기 인데요...
이게 왜요? 이집트가 역사를 왜곡했다구요?
그럼 이스라엘은요...이집트를 정복해놓구서 왜 노예로 비참하게 살다가 탈출했다고 하나요?
                         
데스투도 14-03-28 00:02
   
끝에 출처 안보이세요? 그리고 윗쪽에 싱끌레어님하고 제가 단 댓글도 좀 읽어보세요.

자그네브님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단순한 논쟁이 될것 같아요.
     
싱끌레어 14-03-28 00:04
   
이집트의 역사는 세계 4대 문명 중에서도 오래된 축에 속합니다. 고왕조 시대, 1왕조 시대부터 하면 기원전 5000년부터 시작되요. 가장 높다는 쿠푸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것도 기원전 4500년 경입니다.
그러다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되는 게 기원전 200년 경입니다. 데스투도님께서 말씀하시는 역사서의 이야기는 알렉산더에게 점령당하기 전의 이 5000년 정도의 역사 입니다.
          
자그네브 14-03-28 00:09
   
그런데 그때 역사를 제대로 기술한 나라가 과연 어디있나요...
어느나라건 다 신화죠....
남아있는 기록만해도 대단한거죠....쓸데없는 까임이라는 거죠.
알렉산더 이후에 이집트 역사는 없다고 봐도 되는데요...
               
싱끌레어 14-03-28 00:17
   
일견 맞는 말입니다. 선사와 역사를 나누는 기준이 청동기, 문자, 국가의 성립인데, 사실 우리나라도 기원전 2333년 전에 고조선이 세워졌다고는 하지만, 역사로 치진 않죠. 심지어 중국도 기원전 3000년 경에 겨우 역사가 시작되었고, 기록은 은허의 갑골문이 가장 오래된 기록인 걸 감안하면 역사기록을 남겼단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하지만 그 역사들이 절반은 판타지라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집트 최초의 명재상으로 불린 임호텝도 어느 순간부터 신으로 추증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집트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이야기 한 것은 알렉산더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성립과 더불어 피통치계급으로 전락하긴 했지만, 그 전의 역사만 해도 그것의 2~3배는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긴 세월의 역사가 절반은 판타지였다는 거죠.
                    
데스투도 14-03-28 00:20
   
그래서 신화의 저변에 깔린 진실을 찾는 것이 고고학자들이 하는 일이다 라는 말도 있더라구요.
싱끌레어 14-03-28 00:12
   
아멘호텝 2세 시절에 출애굽이 있었다는 것은 투트모세 4세의 일화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 일화를 보면 투트모세 4세는 원래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었는데, 꿈속에서 스핑크스가 나타나 자기를 도와주면 왕으로 세워주겠다. 라고 약속을 합니다.

잠에서 깬 투트모세 4세는 모래 속에 빠진 스핑크스를 발굴해내어 원래 자리로 옮겨주고, 약속대로 왕이 됩니다. 그럼 여기서 장남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가들은 출애굽의 10번째 저주 때문에 장남이 죽은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정확히는 저주 라기보다는 이와 관련된 어떤 역사적 사건이라고 보고 있죠. 하지만 아멘호텝 2세 시절의 기록에도 투트모세 4세 시절의 기록에도 이 장남에 대한 기록은 한 글자도 없습니다. 황태자가 죽은 건데 아무 기록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이집트는 물론이고 로마 시절까지 '기록말살형' 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중죄인에 대해서는 그가 생전에 한 업정은 물론이고 생존했다는 사실까지 역사서에서 지워버리고, 기록판에서 이름을 파내버리는 건데요. 이 기록말살형 때문에 저 동네의 고대사는 오류가 많습니다. 이름이 지워진 사람의 업적이 다른 왕의 업적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아예 공백으로 처리되기도 합니다. 업적 부풀리기도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위에 말한 아멘호텝 2세의 장남도 출애굽 문제와 더불어 이 기록말살형의 결과는 아닐까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자그네브 14-03-28 00:16
   
재밌는 내용이네요 ㅋㅋㅋ
     
데스투도 14-03-28 00:18
   
비교적 유물이나 기록이 많은 로마시대도 도미티아누스시절 같이 쓸데없는 정적들의 기록말살형 때문에 당시(를 비롯해서 현재까지)역사학자들만 곤란해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sunnylee 14-03-28 01:44
   
중근동( 이집트,앗시리아,)문명의 근원으로
수메르 문명을 꼽죠.. 레전드급, 환타지, sf,모든것의(그리스 신화의 원형) 축약본...
 수메르 역사의수수께기는 학자들의 로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