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암사 온돌 유적. 무학대사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있는 회암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온돌 유적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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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3호분의 부엌. 한 여인이 부뚜막에 시루를 올려놓고 음식을 만들고 있고, 다른 여인은 부뚜막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아궁이에서 지핀 불길이 긴 고래 구들을 따라 굴뚝으로 빠지고 있다. |
온돌하면 보통 우리 고구려에서 나온 문화라고 아는데
정확히는 고조선 말기 열국시대(이 당시는 이미 청동에서 철기시대로 넘어
가면서 위만조선뿐 아니라 북만주읙 강자 부여부터 옥저, 동예, 삼한등으로
서토로 치면 춘추전국시대마냥 각지역의 왕들을 자처하는 세력들로 독점적
청동문화의 지위가 깨지는 양상이 도래) 중 하나인 옥저문화입니다.
옥저의 위치에 따라 북옥저 남옥저 어쩌고도 이야기하는데
최근 한러 고고학 탐사를 통해서 연해주 남부일대의 러샤어로 끄로우노프까
문화인 북옥저 지역에서 최대 기원전 4세기경에 이미 온돌의 형태가 발견되
었음.(짱개들과는 전혀 상관없던 진짜 극동에 치우진 지역임)
옥저의 영역이 이 연해주일대와 북한 동북부의 동해안의 해안가를 따라 이
어진 우리 고조선계세력으로 북쪽 추운 해안가 일대에서 정착 생활을 하다
보니 취사를 하면서도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우리 선조의 지혜의 발명품으
로 나온 것이죠.
이 형태는 고구려에 복속되면서 점차 방전체를 달구는 모양이 아니라 일자
나 기역자로 일부만 취사에서 나온 열을 방에서 돌려 데우는 초기 형태였
음.
이후 조선시대에 가면 온돌이 더욱 확산 보편화되면서 집의 가옥도 단층화
되는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오는 요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