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이슈 게시판
 
작성일 : 14-04-13 16:59
쿠바 공산화와 포클랜드 전쟁에서 미국의 대처자세.
 글쓴이 : 싱끌레어
조회 : 840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쿠바혁명을 일으키고, 1959년 1월에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하고 혁명을 완수합니다. 그 당시엔 아직 공산주의의 기치를 올리지 않았고, 1960년 하반기에서야 공산주의'적' 정책을 펴기 시작합니다. 산업과 기업의 공유화를 하게 되고, 자국기업 뿐만 아니라 쿠바 내의 미국 기업들에게까지 손을 댑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용적으로 국외이주도 허용해줍니다.
 
자기 바로 턱 밑에 공산주의 국가가 생길 것을 우려한 미국은 CIA의 주도 하에 쿠바에서 이주해온 난민들 중 신청자들을 모아 군대로 조직하여 쿠바 침투작전을 비밀리에 계획하게 됩니다.
 
해가 바뀌어 1961년 1월 미국은 쿠바와의 외교단절을 선언하고 경제 제재를 하게 되고, 같은 해 4월 16일 쿠바는 정식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임을 선언하고, 바로 이튿날인 4월 17일, 미국은 그 동안 훈련시켰던 특공대를 쿠바 내에 투입시킵니다...만 정보 누설로 개박살납니다.
 
모 님께서는 미국이 자국 군대를 투입하지 않고 '배신 때리고' 상륙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애초에 미국은 자국 출신 군인들을 파병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쿠바 난민들로만 이루어진 군대는 아예 독립적인 여단으로 피그스만 작전만을 위하여 훈련받고 투입된 겁니다. 마치 2차 세계 대전 말기의 광복군처럼.
 
여기서 미국이 자국 군대를 투입했다면 미국과 쿠바가 국가적인 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또한 미국으로서는 전쟁의 명분이 없었습니다. 쿠바의 공산화는 쿠바 자국 문제였고 피델 카스트로는 공식적으로 쿠바를 대표하는 정권의 수장이었기 때문에 트집 잡을 일이 없었죠. 그래서 미국은 자국 출신 군인들이 배제된 상태에서 피그스만 작전을 입안, 계획하게 된 겁니다.
 
만약 여기서 미국이 자국 출신 군인들을 투입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국가전으로 확전되게 됩니다. 미국이 먼저 쿠바를 공격했기 때문에 쿠바 역시 미국을 공격할 명분이 생긴 거고, 여기에 더해 소련이 지원을 하게 하면 미국의 핵심지역인 동부해안이 쑥대밭 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미쳤다고 자국 군인들을 투입할까요?
 
그리고 '세계 비난 여론이 무서워서 미국이 전쟁에 참여 안했다고요??' 라고 질문하셨는데, 전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피그스만 작전이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았다고 했지, 미국이 세계 여론이 무서워서 전쟁을 피했다고 안했습니다. 되려 미국이 피한 이유를 추측한다면 미국 영토가 불바다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렸다는 게 더 합리적입니다.
 
'그당시 유럽 서부 언론들이 쿠바에 공산주의 국가가 들어 섰는데 미국이 상륙 작전 하려고 하자 비난 했다고요?' 라는 말도 한 적이 없습니다. 세계 여론이 서부 언론으로 축소되는 순간이네요. 침공작전은 군사기밀이었기 때문에 다른 서방국가들은 정확히 알지도 못했고요.
 
이 피그스만 침공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미국과 쿠바는 완전 척을 지게 됩니다. 그리고 쿠바는 소련과 더 가까워지죠. 더 나아가 1년 후인 62년에는 소련제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소련에 항의하고, 동시에 터키인가 아프카니스탄에 미사일 기지를 강화하며 맞대응합니다.
 
이 기 싸움에서 흐루시초프가 손을 들고, 양측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는 조건과, 미국이 쿠바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불가침조약을 조건으로 사건은 일단락됩니다. 이게 동서냉전에서도 손꼽히는 유명한 쿠바 미사일 기지 사건입니다. 덤으로 이 사건의 여파로 흐루시초프는 총서기 자리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굴욕적으로 물러섰다고 소련 국내에서 엄청 비난을 받았지요.
 
쿠바가 집권한지 1년 만에 공산주의를 내세웠다는 것이 미국의 정책적 실수..라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우선 공산주의로 갈 낌새가 보이자마자 미국은 경제 제재를 실시했고, 군사행동을 준비했습니다. 실제로 쿠바가 사회주의를 표방한 것은 미국이 국교 단절하고 나서 3개월 후이고, 사회주의를 표방한 바로 다음 날 피그스만 작전이 실행되었습니다. 또한 카스트로가 무너뜨린 바티스타 정권 역시 미국이 띠껍게 생각한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실제로 이 바티스타 정권에서도 미국은 금수조치를 취했지요. 게다가 아까도 말했지만 카스트로 정권은 초반에 민족주의,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독재정권인 바티스타보다는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기를 심정적으로 바랬습니다. 설마 카스트로가 공산주의 노선으로 갈아탈 거란 건 예상도 못했고요.
 
이상은 예전에 읽은 체게바라 평전과 기존 지식을 기초로 하여, 정확한 정보를 위해 인터넷에서 객관적 정보를 취합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모 님이 말했던 것처럼 인터넷 뒤적이며 끼워맞추는 그런 치졸한 짓은 하고 싶지도 않으니 억지로 지식 있는 것처럼 꾸며 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지 마시고요. 어느 정도 이름 있는 대학만 가도 1학년 입학과 동시에 '체게바라 평전'은 필독서로 추천하니,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베트남 전에서 북베트남의 승전 이유가 민심이 10% 밖에 안됐다는 것에서는 뭐라 답해야 할 지 가늠조차 안되는군요. 아무리 군사력이 열세여도 민심만 휘어잡으면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게릴라전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전쟁입니다. 최근의 예로는 아프카니스탄 전쟁이 그렇지요. 반대로 북베트남이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민심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남베트남이 패배한 이유의 10%만이 민심이라고 할 수 있는지...
 
포클랜드에서도 미국은 피그스만 작전과 비슷한 형태를 취합니다. 자국군은 움직이지 않죠. 다만 USS이오지마, 사인드와인더, 정찰위성 등을 통해 영국을 지원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인드와인더는 당시 최신예 기술로 만든 미사일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최초의 열추적 미사일일 겁니다.
지금으로 치면 독도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이지스함 한 척과 F-22 렙터 편대, 글로벌호크 풀옵션을 우리나라에 임대해줬다고 하면 감이 오려나요?
여튼 미국은 아르헨티나와도 동맹국이어서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군사적 문제를 야기하지 않기 위해 자국군은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지 군사를 파견하지 않았다고 미국이 중립이었다고요? 고작 무기 몇 개를 지원해줬다고요?
러시아와 이라크의 문제는 무기를 '수출'한 겁니다. 미국이 영국에게 한 것처럼 '지원'한 게 아니고요. 비슷한 예로 베트남 전쟁 당시에 미국이 한국의 군사적 공백을 우려해서 당시엔 신무기였던 F-4 팬텀을 배치시켜준 것이 있습니다. 게다가 2차 이라크 전 때 평화헌법 때문에 파병은 못하고 군사장비도 아닌 군수물자를 지원한 일본도 자기들도 동맹국이라고 동맹국 대우를 해달라고 했죠.
 
그리고 피그스만 사건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맞물린 사건이기 때문에 아는 사람 꽤 됩니다. 통킹만 사건이나 메인호 사건처럼요. 포클랜드 전쟁은 1982년에 터진 사건이기 때문에 워낙 유명합니다. 게다가 이 전쟁으로 탄핵 위기까지 갔던 대처 수상이 정권연장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정치적으로도 유명한 사건이고요. 우리나라에서도 아는 사람 꽤 됩니다. 특히 아까 말한 '체게바라 평전'이란 책 덕분에 쿠바 혁명부터 당시의 내용을 자세히 아는 사람들도 꽤 됩니다.
 
마지막으로 모 님은 스스로가 언급한 쿠바 혁명, 베트남 전쟁, 포클랜드 전쟁이 스스로의 주장의 본질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지엽적인 사실에만 오류가 있다고 했지요? 스스로의 주장이 미국은 언제든 자기 입맛에 따라 동맹국을 버릴 수 있다..는 거였는데, 셋 다 타당하고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게 세 차례에 걸친 제 글의 주장입니다. 물론 미국이 필요에 의해 동맹을 저버릴 수는 있습니다. 다만 위 세가지 예가 그것을 증명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주장의 본질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이죠.
 
스스로가 모르는 것을 새로 알고 받아들이는 것도 용기입니다. 인터넷 뒤져가며 주장하면 제 글에도 태클 걸 게 많다고 하셨는데, 기대합니다. 만약 제가 아직까지 몰랐던 것을 알려주시면 관련 서적 및 자료와 대조해보고 참조하겠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꿈에서 깨어난 어지러운 마음, 아무도 없는 그 길에 홀로 서서 바라봐, 마음 속 깊은 곳을...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뽀리링 14-04-13 18:32
   
밑에서 말 많이 했으니 말 많이 안하겠습니다
광복군훈련 시켜서 일본으로 보내면 일본 이기나요?
미군은 참전도 안하구요? 가서 죽으라는건데 그게 배신 때린거지요
쿠바 인구가 1000만이고 쿠바가 이미 2년동안 전쟁 준비해서 1500명 가지고 쿠바 공산 정권을 전복 시킨다 이게 말이 되나요?
저도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청문회나 그 당시 쿠바 전쟁 투입된 병사들의 증인을 읽었습니다.
그 병사가 케데디 대통령을 원망하면서 하는 말이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3월쯤인가 취임했고
자기들은 미군 병사들과 함께 1960년부터 쿠바 투입을 위해 훈련 받았다구요
하지만 케네디가 집권 하자마자 이걸 뒤 엎었다구요 즉 미군은 참전이 없으니 상륙을 포기하라라고 말했답니다.
그 당시 이걸로 청문회까지 갔는데 미국은 CIA나 정부가 피그스만 상륙 작전과는 아무런 상관 없다고 까지 말햇습니다. 쉽게 말하면 공식적으론 부인 했습니다 . 취소 했는데 쿠바 민주주의 자들이 즈그들 멋대로 쿠바로 갔다고요
그 뒤에 CIA가 개입했다 안했다 여러말이 있는데 이 증인을 한 자들이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해서 신용 할수 없어요

전 서방 언론이라고 한적 없고 서방언론과 자유진영의 언론이라 했습니다.
그 외 다른 나라 러시아나 동부권 중국 여론을 미국을 신경 쓸 필요가 머 있습니까
말을 계속 바꾸시는데 아까는 세계 여론이 미국을 비난해서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요?

베트남을 봅시다
민심을 걱정하기 전 즉 휴전 하기전 미국이 베트남 조금만 더  공격했으면 미국 승리 했습니다.
왜냐고요 ? 이미 북베트남군은 괴멸 직전 상태였으니깐요
하지만 미국은 아직까지도 북베트남군은 많다고 생각했고 휴전을 합니다.
북베트남군은 괴멸 직전이었기에 좋다구나 하고 휴전 했고 휴전 기간 동안 전력을 다시 갖추죠
이건 베트남 당시 참전했던 장군들이 한 말입니다.
그러니 민심이 일부 작용 하긴 했지만 미국의 전략적 오판이 더더욱 크죠
아까 님이 어떤분을 옹호하기 위해서 계속 민심 이야기 하시는데 그분은 미국의 전략적 오판은 없고
오지 민심 떄문에 미국이 졌다고 했어요
그리고 총과 칼과 싸우는 형국이라니요 베트남이 그냥 구식 무기로 싸운줄 아십니까
중국한테 미그기와 총을 지원 받고 싸웠는데요

마지막으로 중국과 베트남에 관계에 대해서 묻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동맹 관계인가요?

거의 무상으로 무기를 지원 해줬는데요

광복군 한테 야 너 무기 공짜로 줬으니깐 일본 제국군 섬멸 하고 독립 찾아라 이게 동맹군인가요?

광복군 1만명으로 일본군 200만 이김? 죽으란 소리지

그냥 광복군과 미군은 협력 관계이죠

같이 군인이 갔다면 동맹 관계이지만요

포클랜드 전쟁에서 미국이 영국을 지원 해줬다는 이유만으로 동맹군으로서 의무를 다했다면

북한이 한국에 쳐들어와도 북한 경제 제제하고 한국에게 무기 지원 하는것만으로

미국이 동맹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다고 하십니까?  이게 솔까말 동맹국입까?

그냥 협력해주는거지요

했던말 또 하고 하게 하지 마세요... 이제 화나네요
     
싱끌레어 14-04-13 20:13
   
설마.. 광복군 모르세요?
김구 선생님께서 우리 손으로 독립을 이루어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라고 탄식한 거 모르세요?
8월 15일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 하지 않았으면 추가적으로 광복군이 한반도에 잠입해 후방교란하려고 했던 거 모르세요?
광복군 훈련 시켜서 일본 이기다뇨? 그게 무슨 얼척 없는 말입니까?

그리고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린 피델 카스트로가 몇 명의 병사를 동원했는 지 아세요? 도중에 가감은 있었지만 주력이 500명을 넘은 적은 없는 걸로 기억합니다.
체게바라 평전을 보면 거의 십 자리 숫자에서 인원수가 놀아요. 대충 80명에서 200명 사이 왔다갔다 하다가 조금씩 세를 불려나갔지요.

더욱이 원래 피그스만 침투작전은 게릴라전이었습니다. 게릴라전에 반공 저항조직의 후원을 기대했었는데, CIA에서 자만했던지 전면전으로 나섭니다. 이게 작전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고요. 게다가 케네디가 작전을 변경했다고 했는데, 케네디는 사후 처리 당시까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건 관계자들이 모로쇠로 일관해서 빡치고 회의장에 도청장치까지 설치하기도 했습니다.-_- 케네디가 여기에 관여한 게 있다면 2차 증파하기로 한 걸 취소한 건데, 이건 이미 1차 침투요원들이 개박살 난 뒤여서 논의할 가치가 없고요. 작전 전에 미군이 참여하기로 했다가 계획변경했다는 내용은 처음 듣는 바, 어떤 자료를 보면 나오는 지 알려주시면 찾아보겠습니다.

제가 말 바꾼 게 뭐가 있는지 한번 지적해보세요. 세계여론이라고 줄곧 주장했는데요? 혹시 '다른 서방국가들은 정확히 알지도 못했구요.'란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이건 작전 개시 전의 일을 말한 겁니다. 바로 전에 '미국이 상륙 작전 하려고 하자 비난 했다고요?'라고 쓰신 것에 대한 반박이었습니다.

북베트남이 궤멸 직전이었다는 건 뗏 공세를 칭하는 것 같은데, 베트남 전쟁은 점령전이 아니라 전선이 혼재된 전쟁이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전쟁 내내 혼란 속에서 전투에 임했어야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전투는 이겼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해서 스스로 카드를 던져버린 거죠. 전쟁에서 정보는 중요한 겁니다. 이 전투로 반전여론이 거세진 것도 사실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정보력의 부재였다는 건데요. 그것을 제외하고라도 뗏 공세 이후에도 미군측은 어디를 공격해야 할 지를 몰랐습니다. 적군의 피해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요격지점도 파악하지 못한 것이지요. 전투는 패했지만, 전쟁은 이겼다... 란 것과 비슷한 내용인데, 미군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는데도 그걸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되려 위축되었죠. 반대로 북베트남은 뗏 공세 이후에 효과적인 뻥카작전을 씁니다. 그리고 뗏 공세 직후 미국이 지레 겁먹고 전쟁을 포기했다면 뽀리링님의 말이 맞지만, 전쟁은 그 후 5년간 계속됩니다.-_- 아 참, 미국이 참전한 이후로(64년~73년) 베트남전에도 휴전 기간이 있었나요? 이건 처음 들어보네요.
그리고 베트남전은 미국이 못한 게 아니라 북베트남이 잘한 겁니다. 이건 둘 다 인정하는 내용이니 길게 쓸 필욘 없을 듯 하네요. 게릴라작전을 제대로 써먹었거든요. 문제는 군사적 역량 말고 민심의 공헌도(?)인데... 북베트남이 그렇게 잘 싸울 수 있었던 바탕엔 민족주의에 기댄 베트남인들의 민심이 있었다는 게 요지입니다. 참고로 총과 칼이 싸우는 형국이란 건 제가 한 말이 니라 에르빈롬멜님께서 하신 말입니다. 또한 중국은 비공식적으로 의용군 형식으로 파견했습니다. 그것도 만 단위로... 피그스만 침투 작전에서 처럼 국가 대 국가로 엮이기 싫어서 공식적으로 참전 안한 걸로 되어있지만, 중국군은 참전했습니다. 군인들도 보냈는데, 무기는 당연히 보냈겠죠. 비공식적으로 동맹국 맞습니다.

그리고 다시 광복군으로 돌아가는데요.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일본에 쳐들어가서 200만을 상대로 싸우는 게 아니고, 한반도에서 후방교란이었습니다. 되려 일본의 주력은 일본 본토와 동남아 격전지에 가있었고요. 역사를 보더라도 광복군 투입 이전에 소련군이 미국의 요청을 받고 남하를 하는데, 거칠 것 없이 내려왔습니다. 왜? 막는 일본군이 거의 없었거든요. 이 또한 포클랜드 전쟁과 또 약간 다른 게 미군이 참전 안한 게 아니라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 때려잡고 있었고, 광복군은 추가 투입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얘들은 보다 확실한 동맹군 맞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잖아요 2차 이라크 전쟁에서 일본이 군수물품을 지원한 것만으로도 자기들도 동맹국 대우받아야 한다고 했던 거. 포클랜드 전쟁에서 미국을 동맹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더더군다나 동맹국이라고 하면 안되죠. 또한 현재 한국과 미국은 방위조약으로 묶여있습니다. 방위조약 때문에 전쟁 일어나면 강제로 전투에 참여해야 하지만, 굳이 그렇지 않아도 동맹국이 될 수 있습니다. 동맹, 동맹국이란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동맹의 기본 조건은 상호원조입니다. 군사적 원조가 아니라 그냥 포괄적인 개념에서의 원조에요. 심지어는 물자지원 없이도 자국 영토 내 군사의 주둔 및 군대의 통과를 허용하는 것만으로도 동맹국으로 인정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