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글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지능이다.
부처의 지능은 약 120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당시 편파적인 바라문교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불교의 흥행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첫째, 바라문교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는 지능이 있었다.
둘째, 종교로서 신도들을 만들어서 추종세력을 늘렸다.
셋째, 연기론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천재가 말하는 불교의 가치는 무엇일까??
불교의 가치는 고통을 가지는 사람, 연민이 많고 번뇌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심리학적으로 정신적 회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즉, 인간은 정신적으로 괴롭게 되면, 마치 풍선효과처럼 괴로움을 멈출 수 없고 계속해서 커진다. 그리고 그것이 폭발하면, 정신적 충격 또는 행동으로 폭발해서 이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상태에서는 풍선효과가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꺼주는 작업 또는 그것을 풀어주는 방법으로 상담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는 정신적 회피하는데 있어서 안정을 유도하고, 마음을 비우는 작업의 풍선효과를 가라앉게 만드는 작업을 어느 정도 수행한다.
이러한 것은 부처의 지능이 심리학적으로 고심을 했다는 증거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은 회피만으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령, 영자에게 버림받은 꼰용이는 영자라는 말만 들어도 아픔이 일어나 괴로워진다. 또는 드라마를 보거나, 과거 연인에 대해 묻기만 해도 화를 내면서 흥분을 한다. 이러한 것은 정신적 상처다.
이처럼, 인간은 마음을 비우고 회피한다고 정상적으로 회복되는게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심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문제가 생기면, 마음을 비우는 작업을 한다.
둘째, 마음을 비우는 곳에 다시 희망을 품어서 채워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로 채운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 또는 희망)
셋째, 다시 문제에 대해서 도전을 해서 극복한다.
즉, 인간이 사는데 중요한 것은 비운 곳을 채워서 다시 도전하는 상태를 말한다. 영자에게 차인 꼰용이는 여자에 대해서 증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이란 희망을 품고 또한 여자에게 거절감을 느낀 정신 상태를 이겨서 다시 도전해서 얻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는, 무엇이 있어서도 번뇌 무엇이 없어도 번뇌다. 돈이 있으면 있기 때문에 번뇌를 얻고 없으면 없기 때문에 번뇌를 얻는다. 하지만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마음을 비워 안정을 얻는데 더 좋다고 하는 이론이다.
무지에서 시작하는 번뇌는 잘못된 행동을 잃으키고 행동의 잘못은 결국 윤회를 끊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열반에 오르지 못하고 인생을 살거나 윤회를 해서 돌고 돈다. 이것을 끊기 위해서는 무지에서 벗어나 참 지혜를 얻고, 그리고, 번뇌를 끊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진 것보다 모든 것을 끊고, 인생을 무로 시작하여 무로 가는 것이다.
부처의 이론이라면 불교인들은 모두 모든 것을 버리고 땡중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믿는 자들은 언제나 실패하는 사람이 많고, 불행한 사람이 많고, 가난한 사람이 많고, 도전하지 못하고 루저인 사람이 많다. 힘들면 산으로 바다로 피해 도피처만 찾는 것은 인간이 살아야 할 진정한 삶을 사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는 종교성으로 본다면, 인간에게 힘을 주지 못하는 종교이며,
철학으로 본다면, 불완전한 이론이며,
심리학으로 본다면, 의지를 꺾는 존재로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건강에 좋지 않는 것이 바로 불교철학이다.
다만,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괴롭고 번뇌가 많은 이들에게는 잠시 동안 회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시적 효과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