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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20 00:37
3법인-----깨우쳐야 정견이 선다.
 글쓴이 : 격운
조회 : 737  


삼법인----깨우쳐야 정견이 선다.

 

삼법인이란 초기경전에는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를 말하며 후대에 들어오면서

 일체개고 대신 열반적정을 3법인에 넣었다.또는 4법인으로 4가지를 설하기도 한다.3법인은

 존재의 특성을 나타낸 불변의 진리다.法印(법인)이란 법의 도장이란 뜻이다.진리가 틀림 없음

을 증명한다는 뜻이다.


3법인은 부처님의 교법으로 불교의 핵심사상이다.연기법의 실상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부처님이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계실 때의 일이다.어느 날 부처님은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다

가 이런 질문을 했다.


비구들이여, 내가 물을테니 아는대로 대답해보라.


육체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인가.시시각각 변해서 무상한 것인가.


무상한 것입니다.


무상한 것이라면 즐거운 것인가.괴로운 것인가.


괴로운 것입니다.


육체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나(아)이며 나의 것(아소)이며 나의 본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그른가.


옳지 않습니다.그것은 나가 아닙니다.(무아)



그러면 정신세계인 감수작용(수)과 표상작용(상),그리고 의지작용(행) 인식작용(식)은 어떠

한가.


그것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며 즐거운 것이 아니며 나의 것도 나의 본체도 아닙니다.


참으로 그러하다 그러하다.그렇게 관찰하는 것이 옳다.


부처님은 5온의 무상함, 괴로움, 실체적 자아가 없음을 강조하셨다.

관찰해야할 현상은 무상 무아 고이지만 성취해야할 이상은 열반적정이라고 본다.

중아함경에는 열반적정을 포함하여 4법인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 1. 제행무상:

제행은 시시각각으로 생멸 변화하는 일체의 현상을 말한다.잠시도 쉬지않고 변하므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항상 불변하는 존재로 착각하고 부질없이 온갖 것에 집착해 있는 중생들에게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모든 것은 무상하다.항상하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언젠가는 사그라질 그런 무상한 것이다.일체 삼라 만상이 찰나찰나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변화하는 현상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이 죽거나 다정했던 친구가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때 말기암 환자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을 볼 때나 교통사고로 불구의 몸이

된 사람을 볼 때 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인생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된다.엄청난

충격을 받는다.부질없고 허망하기 짝이 없다.

인간은 생로병사 과정을 거친다.나고 머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모든 존재는 영원 불변하지 않다.무상한 것이다.

무상관은 존재가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하는 무지를 깨우치기 위함이다.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는 그릇된 견해를 떠나게 함이다.

변화의 법칙은 因(인):원인, 緣(연):조건, 果(과):열매로 귀결된다.

변화 현상은 생물은 생 노 병 사이고 우주는 성 주 괴 공이며 정신세계는 生(생) 住(주) 異(이) 滅

(멸)이 나타난다.

그 변화의 형태는 찰나무상, 순간적으로 변화하거나 일정 기간을 통해 변화한다.그 속에서 常見

(상견)이나 斷見(단견)에 빠질 수 있다.

상견: 5온은 상주 불변한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

단견: 사람이 죽으면 모두 없어져서 그걸로 끝난다고 보는 그릇된 견해.

부처님께서 제행무상을 설하신 것은 가치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일생동안 우리가 부 권력 명예를 얻기 위헤 애쓰고 인생을  보내지만 언젠가는 사그라질 무상한

 것이다.단 한가지도 가져가는 것이 없이 떠난다.그러므로 무상관을 닦아서 무상의 실상을 깨닫

도록 하신 것이다.



★ 2. 제법무아

삼법인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실천하기 힘든 교설은 무아설이다.제법을 실체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분명 나라고 하는 것이 엄연히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왜 나가 없다고 하는가.지금의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이 몸을 ‘나’ 라고 보고 이 마음(수 상 행 식)을 ‘ 나 ’라고 보기 때문에 그런 생각

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부정하신 것은 외도들이 말하는 영원 불멸의 실체적인 ‘나’ 혹은 본체로서의 ‘나’이다.

‘나’(자아)라는 존재는 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애지중지하는 이 육신도 지 수 화 풍의 인연

화합에 의하여 연기된 존재일 뿐 인연이 다하면 없어지고 만다.뿔뿔이 흩어진다.‘나’가 실체적

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써 ‘나’가 없다.죽으면 본체가 사라져 버린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억겁의 긴 세월 가운데 한 찰나의 모습에 불과한 것이다.영원한 나(자아)가

없다.그런데 지금 이 몸을 나로 믿고 나의 실체라고 집착하면서 욕심을 부리니 아치 아견 아집

아애 4번뇌를 일으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나라고 믿는 이 몸은 영원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깊이 관찰해 보면 공한 것이다.인간은 단지 색(몸)과 수 상 행 식(마음) 등 5온으로

이루어졌을 뿐 영원한 자아가 없는 것이다.

반야심경에서 조견오온개공이라한 뜻이 바로 그것이다.나를 깊이 관찰해 나가면 본래부터 나

혹은 나의것이었던 것은 하나도 없다.애지중지하는 이 몸도 내가 아니며 느낌 생각 행위 의식도

또한 내가 아니다.즉 무아이다.나라고 할만한 실체를 찾아 볼 수 없다.

모든 존재는 독립된 실체가 없다.상의 상관 관계속에서 존재한다.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연기된 존재일 뿐 고정된 실체로써 내가 없다.

우주 법계에 존재하는 것은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저홀로 독자적인 존재는 없다.

모든 법은 인연 화합으로 생긴 것이어서 ‘나’라고 할 실체가 없다.假我(가아)를 나로 생각하고

상주 불변하는 것으로 알고 그릇된 견해를 일으키고 욕심을 부리고 집착을 하므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무아(내가 없음)를 설하게 된 것이다.

보통 나라고 할 때 그 나는 육근을 말한다.5온을 나라고 본다.6근이 6경을 만나면서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게 된다.그것을 나라고 생각한다.

불교의 무아관은 나의 절대적인 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나를 찾기 위한 방편이다.

나라든가 내것이라는 자아에 대한 고정적인 관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색 수 상 행 식 5온의 인연 화합이며 이 몸은 지 수 화 풍의 인연으로 이루어졌다.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 5온도 변하고 변하여 고정 독립된 실체로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유의 제법은 모두 인연이 모여 생긴 일시적인 가합에 불과하므로 나와 내것이라는데 집착

해서는 안된다.올 때도 빈 손으로 왔다가 갈 때도 빈 손으로 가잖는가.가져가는 게 하나도 없다.

이 도리를 바로 알아야 무아의 이치를 바로 깨닫는 것이다.인연을 모르고 연기의 법칙을 모르기

때문에 나와 내것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욕심도 내려 놓지 못하고 참된

 나를 찾아 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

욕망을 내려놓고 집착을 끊어야 참다운나(진아)를 증득해야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

무아설의 생명은 무아행 무아의 실천행이라 할 것이다.

나란 놈이 문제다.나의 끊없는 욕심과 집착이 생긴다.그러니 내가 없다는 진리를 증득해야 한다.

내가 없으면 시비 분별이 없고 욕심이나 집착이 생길리 없다.탐 진치가 일어나지 않는다.

무아를 깨쳐야 만사가 해결된다.어떻게 나를 놓을 것인가.나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다.



★ 3. 일체개고

일체 모든 것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이다.이 세상 태어나면서 괴로움의 시작이다.괴로움이

사무치도록 겪을 때 깨달음이 성큼 닥아온다.그런 계기가 중요하다.대전환이 온다.

인간은 생 노 병 사의 길을 가고 있다.그것이 고통이다.거기에 4가지가 덧붙여 8고가 일어난다.

애별이고: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통.

원증회고: 미워하는 이와 만나는 고통

구부득고: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

오음성고: 오온이 치성해서 생기는 고통.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는 4가지 거룩한 진리가 있으니 잘 살펴서 닦아 행하라.나는 이 4가지

진리를 얻었기 때문에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갔느니라.(잡아함경) 나는 이를 닦아 여실히

알아 무상正眞道(정진도)를 성취하였으며 아무런 의심도 남지 않았다.

부처님은 4성제를 제시하여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당부하셨다.

고성제: 괴로움이 무었인가.

집성제: 괴로움의 원인이 무었인가.

멸성제: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도성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8정도를 제시하였다.4성제는 이미 자세히 설명한바 있다.

괴로움의 3가지 유형을 보자.

苦苦(고고): 괴로움의 고통이다.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생긴다.질병 번민 등

行苦(행고): 행위가 일어나는 곳에 괴로움이 생긴다.나라고  집착, 내것이라고 취함 때믄에 생김.

壞苦(괴고): 행복도 즐거움도 재물도 부서지거나 없어지는데서 오는 고통.사업 실패 사기당함

                이혼 별거 도적맞음 홍수로 집이 떠내려감 등

우리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부처님이 제시해준 8정도를 닦아 해탈해야 한다.평소 꾸준히

명심하고 닦는다.실천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다. 8정도는 이미 자세히 살펴보았다.

수행자는 평소 무심 무념 무억으로 살아가는 법을 실천해 본다.매일 30분 씩이라도 선정에 들어

마음을 고요하게 해 본다.생각을 그치는 그침을 해 본다. 마음을 맑히고 밝혀 보는 것이다.보시행

을 실천하여 탐욕심을 다스리고 계율을 지켜 마음을 정화해 나가고 선행을 실천하여 공덕을 짓고

그렇게 노력해 나가면 괴로움이 서서히 사그라질 것이다.

괴로움이 닥치면 누구나 겪는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드린다.어린이가 놀다가

애지중지하던 고려청자를 깨트렸다고 하자.잠시 애석해 하더라도 원래 내것이 아니다.잠시 보관

했을 뿐.그 물건에 대한 집착의 마음을 놓는다.태풍과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 버렸다면 엄청난

재해에 죽지 않고 상아남았다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우정이 깨지고 이혼을 하더라도 죽어

서도 헤어지는데 인연이 다해서 깨진 관곈데 어쩔 것인가.바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지혜를 낸다.

그것을 붙잡지 않고 놓아버리면 괴로움의 속성이 무상하게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방하착하라.놓아버리는 것이다.경계에 끄달리면 괴롭다.경계에 따라가지 말고  곧 바로

멈춘다.인욕 수행을 해봐야 한다.



★ 4.열반적정

열반은 괴로움의 원인을 관조하여 고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 열반이다.번뇌를 소멸함으로서

도달할 수 있다.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탐진치로 인한 더럽힌 3독심이란 활활 타오르는

번뇌 불길이 꺼지고 편안한 상태이다.

적정은 일체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이다.그곳엔 안온과 평화와 완전한 고요가 피어난다.

무쟁 분별이 없는 완전한 고요이다.모든 탐욕이 사라지고 성냄이 사라지고 어리석음이 사라진

열반적정의 경지다.

부처님께서 제시한 열반적정은 올바른 지혜에 의하여 현세에서 실현되는 것이었다.중도의 길을

닦아서 진리의 깨달음을 성취하셨다.

부처님께서 입멸에 드시기 직전 게송을 읊으셨다.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이 뜻은 모든 현상은 고정됨이 없이 변한다.곧 생하고 멸하는 생멸법이니 이 생멸에 집착을

놓으면 곧 고요한 열반의 경지가 된다.

우리가 수행을 통해서 제행무상을 깨닫고 제법무아임을 확철하고 무아행을 실천함으로써 고통

과 괴로움을 모두 초월할 수 있다.

모든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써 해탈할 수 있다.

열반적정 성불하는 것이어야말로 불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자 최고의 이상이다.

최고의 행복 실현이다.

무상 무아 고를 봄으로써 이욕 해탈 열반적정을 실현하여 최고의 행복을 성취하도록 꾸준히

닦아 나갑시다.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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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용이 14-08-20 01:20
   
여기 일베 뭐 같은 멘토~~스님은 苦에 대해 제대로 모릅니다.

그냥 1차원적으로  초딩처럼 고통을 그냥  苦로 알더군요..암튼 ..단순하다는...ㅋㅋㅋ

자칭 창조주라는 신.즐거움.삶과 죽음.마음과 물질..시간..

뭐 하나 고정된 것없이 변하기에 무상하고 무상하기에 苦이며
그렇기에 이걸 올바르게  관찰하고 이해해야 궁극적 행복이 오고 그래서 수행하는 것이죠.

좋은 글 감사하게 읽었어요^^
지니지 14-08-20 10:45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