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은 그당시 성경에서는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고,
두려운 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연구한 내용과 또한 발표하기 꺼려 했다.
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설명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종이 다른 종으로 변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가? (아직까지 그는 ‘진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과연 인간도 ‘변화’해 온 것인가? 하지만 그는 흔들렸다. 그는 자신의 노트에 이런 말들을 적어놓았다. “인간은, 경이로운 인간은 예외다.” “인간은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하기도 했다. “찰스여,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라. 신중하기를”
그러던 중 1838년 9월, 다윈은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6판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얻었다. 맬서스는 그 책에서 ‘과밀과 생존 수단에 대한 간섭’이 개체의 수를 제한한다고 했다. 다윈은 ‘종들의 싸움을 맬서스의 이론에서 추론하는 일’에 열중했다. 그는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20년이 넘게 흐른 1856년 5월 14일, 마침내 다윈은 종에 관한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원고 작업이 3분의 2쯤 진행되었던 1858년 앨프리드 월리스라는 자연학자가 말레이 군도에서 그에게 원고를 보냈다. 발표 전에 다윈의 조언을 얻기 위해서였다.
다윈은 경악했다. 월리스가 보낸 원고가 다윈 자신이 집필하고 있는 내용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20년 넘게 연구한 결과물이 다른 사람의 업적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과학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추잡한 우선권 논쟁이 또 벌어질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다윈 역시 신의와 이기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하지만 나름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월리스와 다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는 런던의 린네 학회에서 자신의 1844년 원고 일부와 월리스의 원고를 함께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날의 발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결국 다른 사람의 논문과 비슷한 결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종에서 인간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았을 뿐이지,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비판론자들의 억지로 꾸며낸 말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원숭이에서부터 시작된 인간의 진화론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당시 원숭이를 지칭하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고, 원숭이가 가장 인간과 가깝기 때문에 종에서 종으로 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다윈이 직접적으로 책으로 원숭이에서 인간이 되었다고 말을 안했을 뿐이지, 종에서 종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은 그의 이론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었던 것이며,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는 과거부터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원숭이에서 인간까지 진화된 인간의 진화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1860년 6월 옥스퍼드의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와 토머스 헉슬리 사이의 그 유명한 논전이 벌어진다. 옥스퍼드에서 열린 영국과학발전협회의 연례 회의장이었다. 윌버포스가 연설 도중에 헉슬리에게 그가 원숭이 자손이라면 할아버지 쪽인지 아니면 할머니 쪽인지를 물었다. 헉슬리는 중요한 과학 토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데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원숭이를 할아버지로 삼겠다고 답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헉슬리는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정작 다윈 자신은 이런 싸움의 선봉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건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학설을 보완해 좀 더 명확하게 할 연구를 계속해나갔다. 그는 <사육에 의한 동식물의 변이>, <인간의 유래 및 성에 관한 선택>,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등의 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는 한 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더 강해지거나 더 빨라지거나 하는 지는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종이 어떻게 생겨나는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종이 변화한다는 생각을 한 이는 그가 최초는 아니었다. 이미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가 설명한 바가 있었다. 그는 1809년 <동물철학>에서 종의 변화를 주장했다. 그리고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도 있었다. 하지만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진화가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