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양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양궁에서 잡음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단이 '원칙(rule)'을 만드는 이유는 바로 저 파벌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조직이 운용되는 것을 막고, 조직이 정해진 원칙에 따라 건강한 경쟁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건 비단 스포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조직의 기본입니다.
양궁의 경우는 미리 정해진 원칙에 단 하나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원칙은 '미리'공고된 그대로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원칙에 따른 경쟁에서 승리하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곳에 파벌은 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의 친목도모에 그치고 맙니다.
양궁의 경우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양궁은 다양한 조건, 가령 무더위, 추위, 비, 바람 등의 대처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각각의 조건에 맞는 선발전을 따로 합니다. 비에 대처하는 능력을 확인하는 선발전의 경우에는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시기를 미리 기상청에 문의하여 아예 장마철에 일정을 잡습니다.
그런데 직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1년 간 이어져 온 선발전에서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장마철에 실시한 선발전에서 활을 당기는 순간 천둥번개가 쳐서 놀란 나머지 한 발을 허공으로 날려 버리고 그 선수는 선발전에서 탈락을 합니다.
그 때에도 양궁관계자들 사이에 격론이 오갔습니다. 세계1위인 선수가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실수를 했다고 탈락을 시키는 것은 지나치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원칙대로 탈락시키는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고 어떤 잡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양궁 역시 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각 지도자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여서 공통된 지도방식과 양궁의 기술발전에 관해 토의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원칙을 정하고, 세계양궁협회에서 한국을 견제할 꼼수가 뭐가 있는지 갖은 상상을 해서 대처방법을 도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니 양궁에서는 적어도 선수선발에 관한 잡음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스포츠협회(더나아가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의 경우에는 정해진 원칙이 특정 파벌 혹은 조직에 의해 쉽게 바뀌고, 가끔은 국민여론의 눈치도 보고, 가끔은 회장님의 뜻이라는 이유 등등으로 '예외'를 만들기 때문에 잡음이 생기고, 결국은 경기력의 저하로 나타납니다.
저쪽 파벌이 협회를 장악하면 그 파벌의 선수를 선발하거나, 유리하게 일정을 조정하거나, 선발방법을 변경하거나 하는 일이 다른 협회의 경우에는 부지기수입니다. 비단 스포츠협회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사회에 만연한 '예외'인정의 자의성과 광범위성 그리고 독단성의 문제입니다. 그 결과는 결국 조직을 와해시키고 경기력을 저하시키고, 사회발전의 동력을 까먹게 되는 것입니다.
미리 정해진 원칙을 따름으로써 생기는 불가피한 손실이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생기는 손실보다 월등히 적을뿐만 아니라, 그 원칙을 신뢰한 많은 사람들에게 예측가능성을 심어주기 때문에 오히려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봅니다. 건강한 조직(사회)은 그 조직(사회)이 정한 원칙이 준수되고, 구성원들이 그 원칙을 신뢰할 경우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