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저는 아마존 상품 가격 비교를 통해서 호구론의 실체에 대해서 쓴 적이 있음.
그럴듯한 근거는 없이 일국과의 단순가격비교, 서민들의 삶에 관한 주관적인 감정이 많이 흡수되면서 호갱론이 등장했음.
일단은 정리된 바에 따를때에
1. 한국만 특별히 물건을 비싸게 파는 근거는 전무함.
2. 일부 품목들은 비싸게 파는 경우도 있음.
호구론은 제가 생각하기에 2가지 쟁점이 있음
1. 호구로 취급당한 자신의 자격지심. 일종의 피해의식의 과잉. 그리고 이 의식의 집단화
2. 호갱이 호갱이론으로 머무르지 않고 경제, 사회, 국가, 개인에 관한 거대한 이론으로 합리화되고 이 각자의 분열이 정당한가에 관한 도그마
1번. 예전에는 통합되어 있었던 국가(정부)-기업(생산자)-국민(소비자)의 관계를 억압, 탄압의 기제로 보고 이 들을 분리시켜야 소비자가 산다라고 하는 전제가 등장함. 여기에 생산자-소비자의 관계를 생산자가 사술과 기만으로서 소비자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고 소비자는 늘 희생당하는 주체성이라는 인식임.
간단하게 써보죠. 왜 자신이 과자, 전자제품등에서 나오는 제품을 구매한다고 했을때 피해받았다고 인식하는 걸까요? 밑에서 역사와 경제의 개인주의에 관해서 쓴 것도 이 때문인데 역사적 공간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간의 공익을 추구하는 연관성을 의식하면서도 이걸 피해로 인식하지 않지만, 경제내에서의 소비활동은 '연관성은 죄악이고 소비자우롱이다'라고 하는 사고로 발전함.
'피해'라고 말하는 개념이 나오는 것은 생산자와 나와 관련이 없으며 이 둘 사이에는 운명적인 제로썸과 비슷한 파이다툼이 있다라는 발상임.
자국상품을 구매하는게 그렇게 억울한 일입니까? 아니면 기업들이 소비자를 우롱한다고 해서 호갱이라고 하는 피해의식을 개념화 해야 할 필요가 있는건지?
그러나 더 거대한 문제는 1번이 아니라 2번에 있음.
2번. 호갱론이 등장하는건 단순히 내가 피해를 입었다라고 강조하는 것 이외에 이것들을 합리화하는 이론적 근거들을 도그마틱하게 가져다 쓰기 때문임. 그동안 호구론과 관련해서 띨띨한 사람들 붙잡고 이야기해본 결과 특징적인 장광설이 있음.
1) 경제내에서는 개인들이 자신의 합리적 소비를 할 권리가 있으며 이게 당연하다라는 것.
2) 경제는 세계적인 문제이고 국가가 개입할 공간은 없음.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건 국수주의자들일 뿐이라는 소리.
3) 정부, 생산자, 소비자간의 대결에서 최종적으로 옹호되어야 하고 역사적 최후승리를 하는 쪽은 소비자임.
몇가지 전제들을 까봅시다.
(1) 개인주의적 소비가 언제부터 '합리성'으로 위장했나?
이 주제에 관해서 어느 띨띨한 분과의 말싸움을 한 적이 많은데 원래 주류경제학에서는 전통적인 가정은 개인이 경제의 참다운 주체이고 이 개인의 선호공리에 따라서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합리성이다라고 정하는데 있었음. 사람들이 호구론을 전개하는 그 합리성에는 주류경제학의 인식(사무엘슨의 현시선호이론)이 깔려 있기 때문임.
"논리적, 경험적인 지식의 규칙에 따라 의식되고 있는 생각이나 행위를 의미하며, 이때 목표는 상호모순이 아닌 가장 적절한 수단에 의해 달성된다.합리성 내지는 이성이 인간의 두드러진 특성이라는 확신은 200년 이상 서양철학의 중심테마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으로부터 인간사회에서 이성의 위치와 힘이 과대평가되는 경우, 그것은 합리주의적 교리라고 비판되어 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합리성 [rationality] (사회학사전, 2000.10.30, 사회문화연구소)
"베버가 합리성의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 보통 그것에 포함된 요소로서, 예를 들어 논리의 사용, 목적에 대한 수단의 조정, 가치와 의식적 믿음을 지적하고 각각의 요소가 다른 요소와의 관계에 상관 없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합리성 [rationality] (사회학사전, 2000.10.30, 사회문화연구소)
원래 합리성이라는게 '개인'을 당연한 단위로 설정한 소리도 아니었었고, 무엇보다 합리성이 고려해야 하는 집합의 단위에 있어서 집단, 전체, 공공이라고 하는 것들이 합리성에 추방시킨게 미시경제학의 역할이었음. 합리적인 개인소비라는게 그래서 합리적인가? 글쎄요. 합리성에 관한 개념, 연원을 보면 개인적소비가 합리적이다라고 말하는건 자신은 사회와 동떨어진것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개인주의 도그마일뿐.
(2) 경제는 왜 국가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이 소리를 순진하게 떠들면 국수주의자라고 매도하는 위의 띨띨한 그 분들이 계심. 이것도 1번과 마찬가지로 공공에 대한 개인의 우위. 아니 공공의 영역이 그동안 허구였어고, 개인을 억압하는 무언가라는 자기들만의 고발이 이 문제의 핵심임. 그러니 한국기업의 행태라고 올라오는 그런 자료들에게서 경제 공공이 가져야 하는 연대성을 거부하라 라는 뒷맛이 느껴지는 것임. '자 너는 희생자이고 피해자야. 언제까지 공공, 국가를 위해서 희생할래?' 라는 암시를 가져다주죠.
(2)번 소리에 관해서는 뻔한 것이 경제는 세계라는 거대한 단위가 있고 개인들간의 화합과 반목에 의해서 결정되는 시스템이라고 인식하면서 시작함. 이것도 정부의 개입을 극도로 꺼렸던 자유주의자들의 사조와 연결이 되죠. 한가지 확실한 역사적 사실은 경제내에서는 구성원의 정체성, 자본의 속성, 정부의 개입은 너무나 당연한 주제였었고,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민영화열풍으로 금융산업에서 팽창이 일어나고 붕괴하자 그 신자유주의의 메카인 미국에서조차 국유화라는 당연한 조치를 꺼내듭니다. 만약 개인적 소비, 개인적 합리화가 당연한 것이고, 개인과 개인간의 경제생활만이 당연하다고 했다면 미국정부가 AIG를 살려둘 이유는 없었음.
(3) 맑시즘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역사발전론
이 사람들의 재미있는 점은 사회를 계급과 계급의 투쟁과 반복, 그리고 투쟁과 지양의 과정으로 봅니다. 항상 자신들이 처해있는 처지를 가져다 쓸때에 고전적인 마르크스의 자본1권의 냄새가 나도록 하죠. '자본가들은 합의된 임금이라고 기만속에서 노동자들의 잉여가치를 착취한다' 라는 소리와 똑같이 '우리나라 기업들은 애국심이라는 기만속에서 소비자들을 호구로 만든다'
기업과 소비자와의 분리, 그리고 이 둘 사이의 투쟁성격으로 진단하고 소비자가 기업들에 맞서서 역사적 승리를 할 것을 강조함. 앞서 1번에서 말한 피해의식과 닿아있죠.
결론. 저는 근본적으로 호구론이 전개되는 논리양식이 상당히 가소롭다고 보고 있고, 지속적으로 까왔음. 그리고 늘 충고하는 식으로 던지는 말이긴 하지만 만약 자신의 소비가 호구라는 인식으로 연결이 된다고 한다면 이 두가지를 생각해보라고 할겁니다.
1. 소비자가 기업들에 의해 우롱받고 싸우는 전투현장이라는 인식 그대로 기업들이 소비자(노동자)를 합리적으로 착취해도 뭐라고 할 바는 없다.
2. 경제에서만 합리주의, 개인주의를 강조하지 말고, 일본관련 역사적 쟁점, 중국관련 역사적 쟁점에서도 이 합리성, 개인주의를 관철시켜라. 위안부, 독도, 고구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임? 늘 개인적인 선택을 최대로 하면서, 모든 국가적 개입을 국수주의로 매도하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