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민족주의와 관련된 어떤 주제를 논하다보면 종종 그것은 국수주의가 아니냐고 비판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국수주의는 마치 나쁜 것처럼,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주장하는 자를 비판하는 자들은 이 국수주의라는 용어가 전가의 보도와 같은 위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이 많은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는 무엇이고, 국수주의는 무엇이며, 민족주의는 반드시 국수주의로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인가?
반대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를 부정하는 세계주의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보자
민족이 왜 중요한 것인가?
아(我)와 민족은 무엇일까?
아(我)를 이해하기 위해서 스피노자의 양태론을 설명하겠다. 서양철학에서, 지금 이글을 읽고 있을 가생이유저가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잘 설명한 사람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고,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서양철학사는 한마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서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핵심은 형상과 질료 이론이며, 이것이 죽죽 이어져서 스피노자의 양태론으로 이어지고, 라이프니찌의 단자론으로 이어진다.
스피노자는, 기독교적 피조세계인 이 세상 즉 현상계를 소산적 자연이라고 하였다. 이 소산적 자연은, 그저 자기원인으로 존재하는 신인 본체, 즉 능산적 자연과 구분되는데, 스피노자는 만물을 만들어내는 신을 실체라고 보고, 이 실체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을 양태라고 보았다. 그래서 양태론이라고 함
신=실체=능산적 자연 ↔ 양태=피조세계=소산적 자연
스피노자는 능산적 자연인 신을 무한평면으로, 피조세계의 소산적 자연인 양태를 무한평면위의 도형으로 설명한다.
(그림이 조잡해두 이해해주시길...^^)
스피노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1. 가장 최소단위인 양태 △는 스스로 자기도형의 선에 의해서만 직접적인 구속을 받는다(1차적구속) 따라서 △는 스스로의 모양대로 세모로 규정받지 네모로 규정되지는 않는 것이다.
2. 양태 △는 양태 ○에 의해 직접적인 구속을 받지 않는다.
3, 양태 △는 □에 의해 간접적인 구속(2차적 구속)만 받는다.마찬가지로 양태 □는 양태 ○에 의해서 간접적인 구속만 받는다.(내 몸의 세포는 내 몸의 일부이지만 내가 세포 하나하나에 명령을 내리지는 않는다)
4. 神(능산적자연)인 무한평면(굵은선)은 그 어느 양태에도 직접적인 간섭 내지 원인이 되지 않으며 간접적인 원인만 된다. (즉, 신은 나를 기상시켜 아침조회를 하고, 저녁 점호로 하루를 마감하게 하지 않으며 내가 먹을 점심메뉴를 골라주지 않는다)
* 정사각형 양태안에 세모의 단순양태가 있는 것과 같이 어느 양태의 내부에 또 다른 양태를 포함하고 있을 경우 이를 복합양태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원이라는 양태 안에 네모양태와 세모양태가 포함되어 있을 때 이 원은 복합양태인 것이다.(예컨대 ◎ ◘ 와 같은 양태)
4의 경우 신이 직접적으로 피조세계에 간여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세상이 잘 돌아가는 것은 이미 전능하신 신은 모든 양태들이 상호관계에서 무한변화를 완성할 수 있도록 잘 프로그래밍(예정조화설)을 해놓았기 때문인데, 이들 양태들은 각기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삼각형은 사각형과 원과의 상호관계에서 삼각형으로 규정되며, 모든 양태들은 다른 양태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존재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규정하는 항성(恒性)을 가지게 된다. 즉 내가 튼튼한 고무줄에 돌멩이를 메달아 돌려서 원이라는 양태를 만들 경우, 혹은 그러한 원을 만들고 있는 더원화이트라는 양태는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자기만의 고유한 속성인 내구력(구심력, 개성 = 편견)을 가지게 된다.(이것이 동양에서 말한 천명지위性이고, 니이체의 권력에의 의지이고, 성철이 말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이다.)
즉, 더원화이트는 위와 같은 나만이 가지는 유일한 개성, 즉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원화이트인 것이지 내가 신해철의 개성(편견)을 가지고 있다거나 나의 개성을 부정하는 경우 나는 더 이상 나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양태론이나 라이프니찌의 단자론에서 양태나 단자는 반드시 닫혀 있는 모형(폐곡선)인 것도 이러한 이유다
위와같이 각 개인, 혹은 양태가 가지는 그만의 유일한 편견이 곧 개성인데 이러한 개성이 바로 나를 나로, 너를 너로, 쪽바리를 쪽바리로, 양키를 양키로 구분시킨다
따라서 양태 세모가 양태 네모의 각진 얼굴이 좋아 얼굴을 네모로 고치고, 쪽바리 양태가 양키 양태를 지극히 동경하여 개성이라는 미명하에 머리도 금발로 물들이고, 꼭 먹어도 미제 햄버거만 먹는다면 이는 개성이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스스로의 개성을 부정하는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성형사실을 밝히면 당당하다고 칭찬할 일이 아니고 자신이 남과 다른 개성과 편견을, 예뻐보이는 남의 개성과 편견으로 뜯어 고친 것이라 소멸의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개인의 개성이 민족으로 확대되면 그것이 곧 민족주의가 된다.
따라서 민족주의라는 것은 어느 민족이 다른 민족과는 구분되는 고유한 편견 내지 개성인데 이러한 민족주의는 모든 문제를 자기 민족의 기준과 가치에 의해 평가하거나 배척하는 강한 개성 내지 편견이므로 그것은 국수주의가 될 수 밖에 없지만 민족주의라는 말 자체는 이미 세계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족을 부정한 세계주의는 민족이라는 복합양태안에 존재하는 개인이라는 단순양태의 존립기반까지 무너뜨리는 것일뿐만 아니라, 민족을 무시한 세계주의는 알맹이 없는 빈껍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주체성과 이러한 개인이 확대된 민족의 주체성이라는 것도 그 주체라는 의미가 말하듯이 이미 다른 민족, 혹은 다른 모든 민족을 포함하는 세계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정립된 말이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과 민족의 주체성을 존립기반으로 하지 않는 세계주의자는 결국 자기의 존립기반을 부정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즉 스티브 유가 군대가기 싫어 한국국적을 버리고 미국시민권 취득하고 미국으로 토껴놓고는 한국에 입국하게 해달라고 한국인권위원회에 소청하는 거와 동일한 것이다. 스티브 유가 분단조국에 태어난 한국인에게 요구되는 강한 개성(편견)중 하나인 신체건장한 성인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마쳐야 한다는 개성을 "한민족 너는 편견이 너무 심해"라거나 혹은 "한민족 너의 편견은 날 불편하게 해" 라면서 모병제인 미국의 편견을 택하여 스스로 한국인임을 포기해버린 유승준의 경우, 미국인 스티브유의 존재는 별론으로 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유승준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위와 같이 우선은 자신의 개성을 확보하지 아니하고, 다음으로는 민족의 개성(주체성)을 확보하지 아니하고서는 세계주의, 세계화라는 것은 공염불인 것이다.
앞의 1,2, 3, 4,를 종합해보면 개인 △양태는, 보다 확대된 민족이라는 복합양태의 구성원으로서 민족이라는 복합양태에 의해 구속을 받을 뿐이고, 무한평면이라는 세계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도 아니한다.
따라서 세계라는 무한평면은 4의 규정과 같이 어떠한 단순양태(개인)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아니하고 간접적 원인만 되기 때문에 복합양태인 민족 속에 있는 단순양태인 한 개인이 세계를 구성할 수는 없다.
결국 단순양태인 개인은 복합양태인 민족의 구성원이므로 민족이라는 복합양태는 세계라는 무한평면에 대해 비록 간접적 원인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무한평면인 세계에 2차적 구속은 일단 받기 때문에 결국 세계라는 무한평면에 접하여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것은 민족이라는 복합양태이지 그 안의 개인이라는 단순양태가 아닌 것이다.(예를 들자면 생물학에서 고등세포의 경우는 세포를 하나의 독립한 유기체로 보고있다, 즉, 더원화이트를 이루고 있는 세포 하나 하나는 독립한 유기체로서 고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더원화이트가 세포 하나하나에 죽으라, 살으라, 복제하라 명령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생이질 하다가 마음에 안드는 유저에게 내 입천장의 상피세포가 쪽지를 보내 쌍욕을 하지는 않는다.)
결국 세계정치나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국가나 민족이라는 복합양태이지 절대루 개인이라는 단순양태가 아니다
위와 같이 세계의 역사나 문화에 (비록 2차적 구속이라 할지라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민족의 역사와 문화일 뿐 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은 참으로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결국 확고한 민족주의자가 결국 가장 위대한 세계주의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스스로의 존재원리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양태의 개성의 확립이 중요한 것이지만 개성이 확립된 어떠한 개인이라도 (자신이 속한 민족이 아닌) 여타의 다른 민족 혹은 세계와의 상호 관계 속에서 위상정립을 함에 있어서는 개인의 개성보다는 그러한 개인을 포함하고 있는 복합양태인 민족을 우선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가 나쁜 것도 아니고,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를 부정하는 자는 세계주의자도 아니며,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맹목적 이타주의자는 결국 맹목적인 세계주의자가 되거나 무정부주의자 되는 것인데, 맹목적으로 세계는 하나고, 사해가 동포이며, 모든 인종간의 구분이나 차별은 철폐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존립의 철학적 기반이 전혀 없어서, 존재할 수 없고, 소멸해버리고 마는 운명일 뿐이다.
된장이 싫어서 피자만 찾고, 유태민족의 역사인 구약은 줄줄 꿰어도 한민족의 역사는 모르고, 식민사관에 빠지고, 중화사관에 중독되어 스스로의 역사를 훼손하는 자 또한 자기 존재의 존립의 기초가 없는 것이라서 반드시 소멸한다.
신이 심판을 한다면, 그것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기준으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정체성과 자기를 자기로 규정짓는 고유한 편견을 잃어버린 자를 소멸시킬 것이 명백하다.
우리가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 스스로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속성이고 편견인 민족성과 한민족 개개인의 주체성 부터 세우는 국수주의자가 되지 않는 한, 다문화 사회는 자기 존립기반 없이 폐곡선인 양태를 열어, 세모꼴도 아니고 네모꼴도 아니고 사다리꼴도 아닌 정의할 수 없는 개곡선이 되면 양태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