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의 풍습이라며 연출된 사진을 찍어 그것을 해외로 널리 퍼트렸다.
위 사진처럼 일본은 성인여성으로 기모노와 꽃을 들게 해 아름답게 미화하고 여자 아이는 겨울 한복을 입고
봄을 기다리는 모양새의 사진을 연출해놓고 오로지 강한 일본이 이 어리고 가여운 조선이란 나라에 봄을
가져다줄수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그 당시 외국의 나라들이 조선을 굴절된 시각으로 보게 만들었다.
▶ 영국인 신문기자 프레드릭 매킨지
1910∼1919년 일본의 제국주의 통치는 무자비했다.
이 시기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한국인은 집어삼켜 씨를 말려야 할 민족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일본은 유럽과 미국에서 자신의 명분을 옹호해 줄 박수부대를 끌어 모았다.일제 통치에 항거하는 한국 의병은 폭도로 몰아갔다.
한국을 찾는 서양 언론들은 일본에 매수돼 본국으로 돌아가면 일본을 칭송하고 한국을 경멸하는 기사를 쓰기 일쑤였다
하야시 다케이치.조선 주재 일본 공사관.
그는 조선의 풍속(일본에선 성적인 의미)을 사진으로 찍는다며 스튜디오에 조선 여인을 데려다 연출된 사진을 찍었다.
얼굴은 같은데 다른 설정으로 주로 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사진이었다.
일제는 영국인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배 할때 사진으로 미개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만들어 서구열강에게 식민 지배에
대한 명분을 얻은것에 힌트를 얻어 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인들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 자료를 만들고 그 사진들을 엽서,
그림,책으로 대량 생산하여 서양권에 널리 퍼트렸다.
(당시 조선 하류층에 아들을 출산한 여자들이 가슴을 드러내던 풍습이 있었다고도 함)
그리고 식민지인 조선 여성들은 사진에서 보듯 미개하고 야만적이니 이 헐벗고 가난하고 항상 타국에 지배 당했던
미개한 조선을 일본이 지배해주는것이 고맙고 올바른것이다라며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는 인식을 만들어갔다.
그 결과 당시 유럽에서 가슴을 드러낸 조선여인의 모습을 그린 사진,엽서,책 등은 흔하게 볼수 있는것이 되었다.
일제는 신식 건물,철도,도로를 세운것과 그 이전의 풍경들을 놓고도 비교 사진을 찍어 그 사진들을 외국언론에 보내
<일본이 조선을 이렇게 근대화로 이끌었다>며 조선 침략을 정당화했고 유럽은 이런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본 학자들조차도 그 진위를 의심하고 있는 일본 나라시대 역사서 일본 서기(한국에는 임나일본부설로 유명)
일본의 많은 학자들이 의문스러워 한다는 일본의 8인의 천황.
조선.신라,백제,중국과 비교했을때 일본의 역사가 너무 짧고 초라해 그래서 가능한 일본역사를 길게 보이고자
일본 스스로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는 일본학자가 말하는 일본서기.
일본에선 비교적 객관적으로 저술한 역사서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이 책에 서술된 한국과의 관계가 너무
왜곡된 부분이 많아, 한국의 학자들중엔 이 일본사기를 사기로 쓴글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을미사변 -흥선대원군 왜곡
명성왕후 시해....을미사변때 일본 공사 미우라와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범죄를 발뺌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을
그 시각 강제로 궁에 데려다놓고 그에게 시해사건의 전말을 덮어씌워 왜곡했다.
일본의 왜곡은 그것을 감추기 의해 또 다른 왜곡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악순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