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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03 21:13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이었나?
 글쓴이 : 띠로리
조회 : 1,050  

[내일신문]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
 
근대에 서방 열강들이 조선에 눈길을 돌리면서 청나라와 조공관계를 서방의 종주국과 식민지관계로 인식했다. 서방 열강들과 조선-청나라 관계는 늘 이 '속국문제' 테두리에서 국제관계가 이루어졌다.
 
병인양요 전 프랑스는 청나라 정부가 프랑스 선교권을 인정한 '중불 천진조약'을 조선에 적용할 것을 청에 요청했다. 청은 이를 거절한다. 이유는 조선이 청의 '속국'인 것은 맞지만 자주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프랑스는 병인양요를 일으킨다.
 
미국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에도 청은 조선이 정치 법령 종교 등을 자주적으로 행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셔먼호 사건으로 앤슨 버링검(Anson Burringahm) 미국 공사가 공친왕을 찾았을 때 공친왕은 조-청간의 조공관계는 의례적인 것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자주국이면 속국이 아니라는 것이 구미나라들의 인식이었다. 결국 미국은 신미양요를 일으킨다.
 
청은 프랑스와 미국의 원정을 조선에 알려주어 조선이 대비책을 강구하게 했다. 그것 뿐이었다. 청은 조선과 서방열강의 충돌에 불간섭 정책을 펼쳤다. 왜 그랬을까? 아마 프랑스 미국의 조선 원정이 천주교 탄압이나 셔먼호 사건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조선에서 청의 전통적 지위를 흔들지 못한다는 판단이 한몫 했을 것이다.
 
임오군란 때는 달랐다. 청은 일본의 조선파병소식을 접하고 급히 조선에 대한 파병을 단행했다. 프랑스나 미국의 조선원정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사는 청이 '종주국'으로서 '속방'을 보호하기 위해 출병했다고 기록했다.
그렇지만 임오군란이 일어난 후 일주일 동안 청은 조선에서 군란이 일어난 줄도 몰랐다. 군란 소식은 일주일 후 청의 주일공사가 본국에 보고를 해서 알게 된다.
 
청나라 조선에 군사개입 모든 것 잃어 '종주국'이 '속국'에서 일어난 경천동지할 사건을 몰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임오군란으로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큰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근대사 이전에 한반도가 중국 정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역사를 바꾼 '위화도회군'이나 '인조반정'이 일어났다면 '임오군란' 이후의 한반도 정국은 중국의 정국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청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중국 중심의 질서가 흔들린다고 판단, 이 질서를 지키기 위해 조선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단행했다.
 
그 후의 갑신정변도 그랬고 갑오농민전쟁도 그랬다. 청의 개입은 공세적이었다. 그렇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은 처음으로 조선에서 전통적 지위를 잃게 된다. 그 후의 역사는 조선과 운명을 같이 하는 이른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역사였다.
 
청과 조선의 관계는 역사에 어떤 교훈을 남겨놓은 것일까? 전통적인 정책을 버리고 한반도에 군사적 개입을 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으로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안무하여 안정시킨다'는 뜻의 수정( )을 앞에 내세웠다. 화린(和隣), 선린(善隣)을 강조했다. 이화위귀(以和爲貴) 처세철학이 깃들어 있다. 그것이 잘 지켜지면 국태민안(國泰民安)이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공세적인 개입으로 바뀌면 위기가 몰려오곤 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의 군사개입 그리고 위안스카이(袁世凱·원세개)가 보여준 식민통치에 가까운 행보는 여기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청은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 나섰지만 한반도도 잃고 자기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도 잃었다.
 
 
중국 근대사의 교훈, 한반도 정책에 반영
 
사실 그 이전의 임진왜란도 그렇고 그 후의 한국전쟁도 그렇고 한반도 군사개입은 늘 중국에 막대한 피해와 손실을 안겨주었다.
조선에 두번 출병한 명은 막대한 국력소모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 청에 망한다. 60년 전의 한국전쟁 때 역시 중국은 파병으로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
 
이유야 어떻든 역사는 중국이 한반도에 직접 개입해 얻은 교훈을 전차지감(前車之鑒 - 앞에 지나간 수레를 거울로 삼는다)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역사의 기억은 오늘도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이 유독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는 것은 근대사 이후의 아픈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은 결코 그 역사를 재현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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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조공국은 속국이 아니다. 끗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꿈에서 깨어난 어지러운 마음, 아무도 없는 그 길에 홀로 서서 바라봐, 마음 속 깊은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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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원화이트 14-11-03 21:16
   
난 환빠 소리 듣는 사람이지만

속국이 아니고 조공국이라고 하면 좀 위로가 되나요?
     
투기꾼 14-11-03 21:20
   
속국은 서구식 이해로 분속을 의미하는 사이이고 조공국은 별도의 나라인데 현실상의 힘의 격차나 국제무역이라는 형식이라는 이름하에서의 외교형태를 말함. 그 동안의 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해서 일제가 던져놓은 식민사관의 틀에서 서구학자들이 움직이는 게 있었는데 조선은 조공국이었지 속국은 아니라는 말. 일단 사실은 분명하게 해놓고, 조공국이라고 하는게 위로를 떠나서 향후 한국사이해에 중요한 전제가 됨. 예를 들어서 속국이라고 깔아놓으면 한국사는 대륙과의 불가분의 문명, 문화가 되지만 조공국이라고 한다면 별도의 독자성을 주장할 수 있는거. 그리고 조선에서의 조공관계는 명에게 조공하고 여진, 일본으로부터 받는 식.
끠떡갈비 14-11-03 21:28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띠로리 14-11-03 21:44
   
피차일반입니다.

조선초의 조공논쟁만 봐도 조선이 만만한 조공국은 아니었다는 건 알 수 있죠.

상국이 3년에 한번만 입조하면 된다는데, 부득불 우겨서 1년에 3번 가겠다고 합니다. 이걸로 모자라서 4번 가면 안되겠냐고 하니까 명나라 황제가 손사레를 치죠.

이 관계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변질됩니다. 재조지은 운운하며 명을 부모의 나라로 섬기게 되며 조공국의 관계를 넘어서 명나라 똥꾸멍 핥는 나라가 됩니다. 그나마 광해군 시기까지는 나름 합리적으로 국제관계를 조율했으나, 인조가 집권하면서 이 재조지은 타령은 더 심해지지요.
명나라 장수인 모문룡이 조선 영토 안에 터 잡고 있어도 제대로 항변 하나 못하고, 되려 모문룡에게 조세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다 바칩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이 때부터 명나라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금은보화를 퍼줍니다.
관우를 전쟁의 신으로 섬기는 중국의 풍습을 따라 관제묘를 8도 곳곳에 세우고, 명나라가 요청하는 대로 다 해주다가 후금에게 개털리고 삼전도의 굴욕까지 당하게 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재조지은 타령은 임란 이후 몇 십년도 안되어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하면서 조금씩 사그러듭니다. 대신 어버이 나라인 명나라가 망하면서 문화의 중심이 조선으로 왔다는 소중화 사상이 싹트면서 나름 자주적인(?) 국정운영을 하게 됩니다. 청나라도 조선에게 크게 개입을 안하고요.
gagengi 14-11-03 23:00
   
조공은 무역입니다.  명나라는 조선에 조공받은 두배의 물품을 댓가로 줘야했죠.  조선에 바친 조곰품 때문에 명나라 백성들은 거지가 되어갔습니다. 신이 난 조선이 조곰 더 자주 많이 하자고 할 정도였고 명나라는 그만좀 하자고 손사레를 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