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왼손잡이의 날’ 맞아 살펴본 왼손의 정치학
길가다 부딪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는 인색해도, 주도(酒道)는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왼손잡이에겐 요주의 인물이다. 왼손으로 술잔을 받거나 술을 따랐다가는 ‘예의 없다’는 야단을 맞아야 하는 탓이다. 왼손을 쓰는 것이 왜 무례한 일인지, 호통을 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알지 못한다. 왼손잡이는 ‘그냥’ 안 되는 것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전문가들은 그 기원에 대해 “선사고고학의 범위를 뛰어넘을 정도로 오래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서양과 동양을 가릴 것 없이, 예로부터 왼손잡이는 불길하면서도 비범한, 경외(敬畏)의 대상으로 인식돼 왔다.
지난 13일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었다.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을 불식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하지만 편견의 뿌리가 깊은 만큼 그것을 해소하는 일 역시 하루아침에 될 것은 아니다.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왼손잡이들은 주변의 시선과 생활의 불편을 감내하며 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다.
불길한 이름, 왼손잡이
현재 왼손잡이의 규모는 전 세계 인구의 10%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지난해 9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1900년 3%에 불과했던 왼손잡이 비율은 11%까지 늘어나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조사를 수행한 런던대학의 크리스 맥머너스 박사는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꾸려는 시도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분석했다.
그러나 왼손잡이는 여전히 절대 소수다. 세상은 오른손잡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왼손 쓰는 사람은 ‘왼손잡이’라고 칭하지만 오른손 쓰는 사람을 굳이 ‘오른손잡이’라고 구별지어 부르지 않는다. 오른손잡이가 ‘정상’이고 왼손잡이는 예외적인 경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 대부분은 오른손잡이를 위해 설계돼 있다. 컴퓨터 마우스와 자동차 시동 장치, 카메라의 셔터가 그렇다. 냉장고 문을 열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고, 병뚜껑을 돌리는 일도 왼손잡이한테는 간단하지 않다. 커피 자판기에서 왼손으로 커피를 꺼낼 때, 유선 전화기의 숫자 버튼을 왼손으로 누를 때도 어색한 자세가 연출된다. 왼손잡이에겐 일상생활 그 자체가 도전인 셈이다.
왼손잡이로 태어난 소설가 이순원씨(50)도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자랐다. 이 작가는 한국은행에 취직하려고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오른손으로 주판을 놓을 수 없어 꿈을 포기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대관령에 올라간 후엔 왼낫(왼손잡이용 낫)이 없어 고생했다. 그는 “날 때부터 겪는 일이다보니 무엇이 불편한지도 모르는 왼손잡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도 이런 고충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다. 더 부담스러운 것은 주변의 시선과 편견이다. 왼손잡이들은 단지 왼손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한다. 학교 선생님에게, 직장 상사에게, 심지어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서까지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 개설된 카페 ‘진짜 왼손잡이방’엔 왼손잡이라서 겪어야 했던 비참한 사연들이 올라와 있다.
“밥을 먹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 한 분이 ‘자네 왼손잡이인가’ 묻기에 ‘왼손잡이입니다’라고 대답했어요. 이 할아버지가 왼손은 더러운 손이라서 어른들 앞에서는 왼손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데, 화를 낼 수도 없고….” (글쓴이 왼손컴플렉스)
“국어 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이 갑자기 왼손잡이는 나오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선생님이 회초리로 때리면서 왼손잡이가 있어서 이렇게 수업 분위기가 안 좋은 거래요.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울음이 나오려고 해요.”(글쓴이 책벌레)
요즘도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 완고히 존재하는데 과거엔 어떠했겠는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왼손은 옳지 않은 것, 불길한 것이라는 관념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 작가의 부모님 역시 그에게 억지로 오른손 쓰기를 가르쳤다. 그는 “어릴 때 하도 매를 맞아서 식사하고 글씨 쓰는 것은 오른손으로 한다”며 “아버지부터 모두 달필인데 우리 집에서 나만 악필이 됐다”고 말했다.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 왼손잡이 차별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왼손잡이를 불길하게 여긴 것일까. 이 문제에 천착해왔던 민속학자 주강현 박사는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그런 인식이) 이미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좌(左)에 대한 차별이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두루 나타나고 있다는 게 그 방증이다. 이런 종류의 문화가 문명 간에, 혹은 국가 간에 전파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구의 왼손 기피 문화는 우리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지난해 8월13일 영국 BBC방송은 한 왼손잡이 남자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 영국인 키스 밀섬은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자로 왼손을 맞으며 자랐다고 말했다. 밀섬의 학교 선생님은 그의 왼팔을 뒤로 돌려 의자에 묶어두기도 했다. 서구인들도 어린이가 왼손잡이면 오른손잡이로 바꿔주려고 애썼던 것이다.
왼손잡이를 차별하는 인식틀이 언어에 깊숙이 내재돼 있다는 점도 서로 비슷하다. 우리말에서 오른쪽은 ‘바르다’, 왼쪽은 ‘그르다’는 뜻을 의미한다. 승진하지 못하고 한직으로 밀려나는 일을 ‘좌천(左遷)’이라고 일컫는 것을 봐도 왼쪽을 좋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좌·우파 간의 이념대립은 ‘좌’라는 언어에 불온하고 위험한 이미지를 덧씌웠다. ‘좌파’라는 말이 정적을 모독하는 욕설로 쓰일 정도다.
영어의 경우 오른쪽을 말하는 단어 ‘right’는 ‘옳은, 정확한, 건강한’, ‘정의, 권리’ 등 좋은 뜻은 다 지녔다. 프랑스어 ‘droit(오른쪽의)’도 마찬가지로 ‘권리, 정의, 법’, ‘바른, 공정한’ 등을 뜻하고 있다.
반면 왼손잡이를 뜻하는 영어 ‘left-handed’는 ‘서투른, 의심스러운, 음험한, 신분에 맞지 않는’ 등의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왼쪽을 말하는 단어 ‘sinister’ 역시 ‘불길한, 사악한, 못된’ 등의 뜻을 지닌다. 프랑스어 ‘gauche(왼쪽의)’에는 ‘비뚤어진, 어색한, 부자연스러운’ 등의 뜻이 있고 독일어 ‘link(왼쪽)’는 ‘의심스러운, 열등한’ 등의 뜻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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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는 항상 옳고 정상이다........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죠
다름이 틀린거 아니라는걸 이해를 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