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잘 모르시는분이 많은듯해서 미리 말씀드리면..
천황,일왕 논란의 핵심은 우리나라에서 텐노에 대한 공식명칭이 "일왕"이기때문입니다.
90년전까지만해도 우리 역시 다른나라들처럼 천황을 공식명칭으로 사용했습니다만 90년대 중반즘 일왕으로 공식적인 칭호를 격하시키기로 발표하고 그뒤론 일왕이라는 단어만 쓰게됐습니다..
즉, 천황논쟁의 핵심은 "전세계에서 우리만 공식적으로 천황을 일왕으로 부르는게 옳은가"에 있겠네요
천황 논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시는 분들의 대표적인 주장은
황제, emperor라는 단어는 제후국의 수장만 쓸수있다. 일본이 제후국도 아닌데 왜 일왕에게 황제 칭호를 써야하냐는겁니다.
근데 밑에 댓글에서도 설명했지만 이는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발언이며 이러한 발언이야말로 오히려 중화사상,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발언일 뿐입니다.
사실 이와 비슷한 논란이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있었습니다.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조선이 청에 독립하고 광무개혁을 추진하는 도중 고종의 칭호를 왕으로 해야하는지 황제로 해야되는지에 대해 고민을합니다.
아직 정신적으론 사대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던 국내에선 왕이 옳을지 황제가 옳을지 수많은 논쟁을하죠.
당시 칭황칭제 논란에 대해 대표적인 조선왕조실록 기사를 인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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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五帝) 때에는 ‘황(皇)’보다 더 높은 칭호가 없었고 하, 은, 주 삼대(三代) 때에는 ‘왕(王)’보다 더 높은 칭호가 없었습니다. 황제는 역시 왕이고 왕은 곧 황제입니다"고종 36권, 34년(1897 정유 / 대한 광무(光武) 1년) 9월 26일(양력) 4번째기사
신 등이 《공법(公法)》을 가져다 상고하여 보니, 거기에 쓰여 있기를, ‘나라의 임금이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가져야만 칭제(稱帝)하는 나라들과 평등하게 외교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는데 신들은 이 말이 황제를 칭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갑오 경장(甲午更張) 이후로 독립하였다는 명분은 있으나 자주(自主)의 실체는 없으며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으니 백성들의 의혹이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을 위한 계책으로는 마땅히 위의를 바로세우고 존호를 높임으로써 백성들 마음이 추향(趨向)하는 방향이 있게 하는 데 있습니다.
또 그 공법의 주석(註釋)에 ‘러시아의 임금이 칭호를 고쳐 황제로 하였는데 각 나라들에서 좋아하지 않다가 20년을 지나서야 인정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이에서 보건대 우리가 우리나라의 일을 행하고 우리가 우리나라의 예(禮)를 쓰는 것은 우리 스스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인을 빨리 받는가 늦게 받는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미리 예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논의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왕」이나 「군(君)」이라고 하는 것은 한 나라 임금의 칭호이며 「황제」라는 것은 여러 나라를 통틀어 관할하는 임금의 칭호이므로 넓은 영토와 많은 백성들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통합하지 못하였다면 황제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고종 36권 34년 9월 29일 (양력) 2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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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종의 황제 칭호에 찬성하는 자들의 논점은, 독립국으로써 왕이나 황제나 모두 같은것이고 우리가 왕을 황제라고 부르는데 뭐가 문제가 있냐.. 일본이나 러시아도 제국이 아님에도 자기들 스스로 황제라고 표현했고 다른나라가 그렇게 불러줬었다는 것이었으며..
황제칭호에 반대하는 자들은 거느린 제후국도 없고 땅도 좁은 우리나라가 황제, 제국으로 부르는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였죠. 만약 고작 일본 정도의 나라의 왕을 황제라고 부르는게 옳지않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광무개혁 당시 고종이 칭황칭제하는것이 쪽팔린다고 주장하셨을분들일겁니다.
하지만 결국 고종은 그런 주장들을 뿌리치고 당당히 대한제국으로 독자연호를 쓰며 황제로 즉위하였었죠.
당연히 그 뒤로 모든 국가에서는 대한제국의 황제를 황제로 불렀습니다.
다음은 대한제국의 황제가 일본 및 러시아의 황제와 주고받은 친서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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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 폐하가 친히 보낸 전보가 왔다. 그 내용에 이르기를,
“짐은 귀 황제 폐하가 이처럼 추운 때에 백성들의 사정을 시찰하기 위하여 한국의 남쪽 지방에 행행(行幸)하신다는 것을 짐이 통감(統監)의 보고를 통하여 알았습니다. 짐은 이 훌륭한 일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우리 함대에 명하여 부산(釜山)에 회항하게 하였으니, 혹 바다가 평온해서 파도가 일 우려가 없을 경우 항구 내의 기함(旗艦)에 행차해 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에 짐은 멀리에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하니, 즉시 일본 천황 폐하에게 답전(答電)을 보냈다. 그 내용에 이르기를,
“이번에 짐이 지방을 순찰할 때에 뜻밖에 폐하의 심심한 전보를 받고 또 귀 함대를 파견하도록 명령까지 하였으니 매우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폐하의 친절하신 뜻을 받들어 내일 날씨에 관계없이 기함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이번 순행에 귀국의 통감이 극심한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짐을 위해서 지성으로 보호하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폐하의 건강을 멀리에서 축원합니다.”-
순종 3권, 2년(1909 기유 / 대한 융희(隆熙) 3년) 1월 8일(양력) 7번째기사
러시아〔俄國〕의 명명일(命名日)에 직접 축전을 보내기를,
“폐하의 경사로운 명절에 즈음하여 짐은 이 축하로써 두터운 정성을 표시합니다. 아울러 폐하(陛下)가 나라를 다스리는 데서 영원한 번영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니, 러시아 황제가 답전을 보내기를,
“짐의 깊은 감사와 지극한 축원을 귀 폐하(陛下)에게 보냅니다.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친선은 갈수록 두터워질 것입니다.”
하였다. 고종 36권, 34년(1897 정유 / 대한 광무(光武) 1년) 12월 18일(양력) 2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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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대한제국의 황제가 일본 황제 및 러시아 황제에게 황제폐하라고 표현한것은 물론이고 그들 역시도 대한제국 황제에게 황제폐하라고 예우하였습니다. 이미 100년전에도 상대가 작은 나라고 제후국이 없다고 해서 상대방을 조선왕, 또는 일왕, 러시아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겁니다.
상대방의 황제에게 황제폐하라고 불러주는것에 전혀 꺼리낌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우리가 격하되는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왕을 더 높여주는것도 아니란겁니다. 칭황칭제 논란은 이미 백여년 이전에 결론난 문제라는겁니다.
그냥 국가간에 있어 최소한의 예우일뿐이며 대통령, 총리와 같이 그나라에서 불리는 명칭을 그대로 불러준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국가간의 예우는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통용되고있는것일뿐이구요.
물론 우리의 경우에는 반일감정에 의해 천황을 황제라고 부르는게 꺼려질수도 있습니다. 사실 90년대부터 일왕으로 공식적으로 격하시키게된 계기도 90년대 들어 독도문제, 위안부문제로 반일감정이 더욱 거세졌기때문이겠죠.
만약 일본왕을 황제로 부르기 싫다면 그냥 공식명칭을 덴노라고 정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지는겁니다. 덴노라는 명칭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되는 명칭이며 황제의 느낌도 없으니 국민들의 감정 역시 상할일이 없죠
황제든 왕이든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그나라에서 부르는 그나라의 형식적인 왕을 지칭하는 말일 뿐입니다. 머가 그게 대단하다고 100년이 지난 지금에 굳이 공식명칭도 아닌 일왕으로 폄하해서 논쟁거리를 만드는지 의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