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말하겠습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냥 생물의 일부이죠.
생물이 영속하는 것은 개체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유전자의 존속과 유지로 보는 것이죠.
한마디로 '나'는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 형질로써 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개인이라는 존재가 서양철학이나 동양철학에서 동물이나 다른 생물과 다른 점을 찾는 과정에서 '이성'을 만들어 내면서 나온 것이라 본다면,
원래 '이성'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며, 고로 '개인'이라는 것도 창조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다워진다는 명목하에 계속적으로 묻는 사후세계에 대한 질문은 애초에 그릇된 것입니다.
사후 세계라는 것은 없으며, 인간의 뇌 조차도 전기 자극의 구성체며 인간의 감각 수용체의 정보를 조합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확대되면서 '상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추상적인 개념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근원적인 불안을 이기고자 사후 세계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인간을 '나', 또는 '당신'이라는 개체로 본다면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은 참 납득하기 힘든 뭔가의 명령같습니다. 하지만 그 개별성에 벗어나 '유전 형질', 혹은 '종'의 개념으로 본다면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은 종의 형질을 다양화 하거나 유지 전승하기 위한 인간 종의 선택임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왜 태어나고 죽느냐, 죽음의 세계가 있느냐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차원의 주관적 착각이며 사후 세계라는 개념도 애초에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인간이 생명을 잃는다 할지라도 인간의 육신은 남고 이는 다른 생물의 자양분이되며 이 자양분은 다른 생명의 종 유지에 기여하며 이 물질들이 돌고 돌아 다시 당신의 유전자를 얻은 어느 개체 인간에게 다시 흡수되어 유지되고 이어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사상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인간은 왜 죽어야 하는 가는 결국 인간의 종을 발전시키기 위한 당연한 선택인 것이며, 죽지 않음의 추구는 스스로가 '암'이 되겠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말을 하는 본인도 죽고 싶지는 않지만, 죽기 위해 산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아주 객관적 측면에서 이 사실이 지당히 맞다고 봅니다.
부언이지만 죽기 싫음이 인간 뇌용량의 증가에 의한 당연한 결론이라면 그 뇌를 믿어서 죽지 않는 방법을 끊임 없이 찾을 것이고, '생명'이라는 개념을 벗어나면 또 다른 측면의 '영생'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는데, 결국 인간의 뇌 발달이 욕망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라면 인간이 생명을 버림으로써 영생할 때 오는 욕망의 상실이 과연 영생을 원할지 의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 수면욕, 식욕은 모두 생명의 유지와 전승에 관련된 것인데 영생을 선택할 때 오는 이런 불필요한 요소들의 배제가 인간에게 살고자 하는 욕구를 줄 지는 의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평소에 영생을 열망하는 그 어떤 인간도 한 때는 죽고 싶어진다는 점에서 죽음을 거스려고만 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명'의 굴레를 벗고 우주로 나아가 중력에 의한 시공간의 굴절을 통해 개인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면 욕구에서도 탈피하고 그야말로 영원한 시공간에서 우주적 존재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과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두뇌적 영생의 방법을 찾으리라 봅니다. 다만, 철학이 이를 따라갈 지 여부이며, 인간이 사회를 버리고 오로지 신 수준의 독자적 자아로 우주시대로 나아갈 철학적 가치를 찾아낼 지도 의문입니다.
(어제 본인이 잡게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