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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24 19:16
히틀러는 독실한 기독교인 이었음.
 글쓴이 : 아이고매
조회 : 2,267  

그것도 루터교.

종교개혁 및 개신교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그 루터.

루터는 유대인들을 극렬히 증오하는 종자였고, 독실한 루터교 신자인 히틀러는 유대인 대학살을 벌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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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뗴 15-03-24 19:26
   
하나님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으니 천국 갔을라나요.. 원수 사랑하라고 해놓고 지옥 보내면 쪼잔한데..
     
아이고매 15-03-24 19:28
   
야훼가 이방인을 죽이라고 한적은 있어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한 적 없습니다.

애초에 원수를 사랑하는데, 지옥불에서 영원히 스테이크에 처한다는 게 말이 안되죠.
백전백패 15-03-24 19:43
   
히틀러의 종교 생활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히틀러는 세간의 주목을 받던 나치 총통시절 공개적으로 교회를 찾아 예배를 한 흔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황으로 보아 히틀러는 카톨릭신자였다고 보입니다.

히틀러가 태어나고 자란 오스트리아와 청년기에 주로 활동한 독일의 뮌헨지역은 카톨릭이 지배적인 지역으로 히틀러나 그 부모가 종교를 거부하였다는 특별한 증거가 없다면 당연히 카톨릭신자였다고 보면 됩니다. 히틀러가 영세를 안받았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히틀러는 당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영세를 받고 무의식중에 카톨릭교회를 다니며 살았을 것입니다.

서구인들은 우리와 달라 종교를 자신이 선택하는 경우가 드물며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제사를 지내듯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틀러의 공적 생활에서 교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면 절대로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제사를 지내지만 유학자가 아닌 것처럼 히틀러도 카톨릭신자이나 교회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히틀러는 비인시절에 오스트리아에 있던 반카톨릭단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히틀러가 카톨릭을 완전히 거부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카톨릭교회를 부정하거나 종교를 버리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먼저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들 수 있습니다. 하켄 크로이츠를 나치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히틀러인데 하켄크로이츠는 변형된 십자가로 히틀러가 교회를 저버렸다면 이런 상징을 채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히틀러는 집권후에 나치성경을 만들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10계명에 '너의 지도자를 따르라', '네 혈통과 명예를 순수하게 지켜라' 등을 추가했다고 하여 유명해졌습니다. 나치성경의 특징은 원래 성경에 나오는 유태적 요소들을 없앤 것이라고 합니다. 나치 성경까지 만든 것으로 보아 카톨릭신앙을 유지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치의 이념은 기독교의 평등과 사랑 정신에 아긋나기 때문에 교회와 불협화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히틀러는 카톨릭 신자였지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대했습니다. 따라서 히틀러가 천국에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joonie 15-03-24 19:51
   
히틀러의 종교에 대해서는 그 출발은 가톨릭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나치 정권은 가톨릭 교회와 대립각을 세웁니다. 3제국 초창기에 독일 내 가톨릭
주교들 상당수는 나치를 지지하였지만, 피우스 12세의 교황청은 나치의 활동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지요. 따라서 나치는 독일 내 개신교를 하나로 연합해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가톨릭 교회에 맞서는 세력으로 성장시킬 것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독일 내 개신교는 일부의 '고백교회 운동 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나치에 협력하였지만,
가톨릭의 경우에는 일부 주교를 제외하면 나치에 대하여 비판적이었습니다.
     
아이고매 15-03-24 20:41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가 뭔지만 알아도 이런 말은 못하는데요
          
coooolgu 15-03-26 08:20
   
카톨릭은 유태인 싫어하고 유태인도 카톨릭 증오합니다. 유태인과 카톨릭은 아무런 관련없어요 오히려 서로 싫어하지
미우 15-03-24 20:07
   
히틀러의 종교 생활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나요?
알려져야 할 종교 생활이 매일 성당 나가서 기도를 하나 뭐 그런 걸 얘기하는 거라면 모르겠으나
그의 저서와 몇몇의 증언으로 정치 여정에서도 자주 종교를 언급 했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다 알려져 있는데요?
용비어천가 15-03-24 20:59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전 신교 목사들과 신학자들로 구성된 독일 기독교인들은 나치 사상을 지지하고 나섰으며 기독교 교리에서 유대교적 요소를 제거하고 복음을 보다 단정적이고 민족적인 측면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가 아돌프 히틀러를 통해 우리에게 왔다. 그의 권력과 정직함, 신앙과 이상을 통해 구세주가 우리를 발견했다"고 선전하기도 했다.

  책을 관통하는 질문은 서구에서 '이제는 종교의 시대가 끝났다'고들 말하지만 '과연 그런가'이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08/26/0200000000AKR20090826123400005.HTML?did=1179m
용비어천가 15-03-24 21:08
   
가톨릭은 공공연히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며 히틀러의 학살을 부추겼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한창일 때 폴란드의 유대인 랍비 ‘바이스만드’는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무고한 유대인, 특히 어린아이들만이라도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치 치하에서 학살된 600만 유대인 가운데 150만 명이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의 간구는 절규에 가까운 호소였다. 그러나 그가 교황청으로부터 받은 답장은 매몰차다 못해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무고한 유대인 어린아이 피라는 것은 없다. 모든 유대인의 피는 죄악 되다. 당신들은 죽어야 한다. 죄 때문에 당신들이 이러한 형벌을 받는 것이다.”(교황 비오 12세). 가톨릭교회는 유대인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죽인 자라며 적대시 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해 유대인을 벌한다는 명목아래 수많은 학살을 저질러 왔다.

이러한 가톨릭의 입장은 가톨릭의 열렬한 신자인 ‘히틀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럼으로 히틀러는 “~ 공산주의와 유대주의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유럽에서 유대인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극도로 혐오한 까닭은 가톨릭이 1600여 년간 참된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무자비하게 다룬 역사적 경험 때문이었다. 또한 유대인 학살에 앞서 가톨릭교회의 추기경들은 독일 나치당의 친위대원들을 위한 축복 미사를 집전했고 히틀러의 유대인 박멸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히틀러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스테파닉 주교), “히틀러의 전쟁은 유럽문명 옹호를 위한 고귀한 과업이다!”(보드리라 추기경), “우리 가슴에는 스와스티카, 우리 심장에는 십자가를!” 외치며, 가톨릭 제단에는 스와스티카 십자가를 걸어 놓기도 했다. “그리스도는 ‘아돌프 히틀러를’를 통하여 오셨다!”(로이토이제르 목사), “독일(나치) 전쟁은 기독교를 위한 전투이다!”(쿠그린 사제), 그리고 가톨릭 사제와 신학생들은 히틀러 식 경례로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가톨릭(천주교)은 수세기에 걸쳐 종교의 이름으로 유대인뿐만 아니라 약 5000만 명에 달하는 그리스도인 등을 학살하였으며, 교황들은 그 원흉이었다.
     
아이고매 15-03-24 21:31
   
"국가사회주의자들이 反기독교적이며 기독교인을 박해했다는 얘기는 유태인들이 퍼뜨리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비록 총통를 비롯한 많은 黨지도자들이 매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인으로 성장했다... SS대원의 대다수가 루터교 등의 신교도나 카톨릭이었으며 이들의 40퍼센트가 정기적으로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친위대원들만의 교회와 군목들까지 있었다." - Persiste et signe: interviews, 1985

내용을 기묘하게 가톨릭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네요?

좀 찾아보니 전형적인 책임전가인듯.
beyondd 17-07-10 13:15
   
내가 유일하게 존중해주는 종교는 이슬람이며, 내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선지자는 무함마드이다.
- 아돌프 히틀러
beyondd 17-07-10 13:27
   
나치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Nuremberg) 국제재판은 무려 6백만의 유태인을 살해한 Holocaust 사건을 나치의 인종학살 계획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고발하였다. 미국의 고소인 단을 이끌었던 윌리엄 도노반 장군 (General William Donovan)은 나치가 유태인 학살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체계적 파괴도 계획하였다는 내용을 담은 방대한 분량의 문서들을 제출하였다.

도노반의 문서들―무려 150 권에 달하는 장정본(裝幀本)―은 1959년 도노반이 죽은 후에 코넬(Cornel) 대학교에 보관되었다. 지금은 Rutgers Journal of Law and Religion에서 internet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이 범죄적 음모에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선전부장 요셉 게벨스(Joseph Goebbels), 히틀러 소년단의 지도자 그리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피고인 발두어 시라크(Baldure Schirach)를 포함한 나치당의 정상급 핵심 요원들이 연루되어 있었다.

이 문서에 의하면, 나치는 기독교회가 애초부터 나치의 인종차별과 정복전쟁 계획에 반대 입장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제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나치는 교회의 내부에 침입하려 하였다. 즉, 중상모략, 체포, 습격 등을 획책하고  목회자를 살해하고, 신도의 사상을 개조하며, 교회 학교와 청소년 조직에 침입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교회는 타협적인 교회에 반대하면서 대(對) 나치 항거의 전면에 나섰다. 성경의 무오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견지 하지 못했던 자유주의 교회들은 집권자의 친-진화론적 이념에 기독교 교리를 끼어 맞추려는 기도의 일환으로 기독교 교리를 서슴없이 ‘재해석’하려 하였다. 그것은 오늘날 다윈의 ‘과학’적 이론에 추종하려는 현상과 유사했다.

일찍이 1937년에 벌써,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나치 정책에 반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자 나치는 이를 보복하기 위하여 700명의 목회자를 체포 구금하였다.

인본주의자와 자칭 ‘민간 자유주의 단체’ 는 ‘창조설을 교회 내에 국한’ 시키자, 그리고 모든 기독교의 영향을 대중의 생활과 학교로부터 말살하자, 하고 외쳤다. 이 불길한 외침에 보조를 맞추어  ‘여러 교파의 교회들도 … 종교 활동을 가능한 한 좁은 범위 안으로 한정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자진하여 축소한 활동범위 위에 더 많은 제약을 막무가내로 가하려 하던 나치의 방해 공작에 교회는 속수무책이었다.

기독교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러한 현상은 나치의 ‘점진적 잠식을 위한 용의주도한 기독교 말살 계획’을 진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고, 교회의 조직체계를 나치의 정치목적에 이용당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