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이슈 게시판
 
작성일 : 15-07-22 16:15
대한민국 건국일은 1919년 4월 13일
 글쓴이 : 행복찾기
조회 : 1,686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자는 1919년 4월 13일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보는 것은
대한제국의 법통을 이어받아 탄생된 대한민국 상해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왜나라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무슨 이유로 우리의 기준이 아닌 왜나라의
기준에 의해 대한민국 건국일을 말해야하나요?

대한민국의 주권이 아직도 왜놈들한테 있다는 말인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 왜구 물품 불매는 영원히 -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LikeThis 15-07-22 16:22
   
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spirit7 15-07-22 16:48
   
지금의 광복절과 건국기념일 논란은 보기 싫습니다. 광복절겸 건국기념일이라 인식하면 될 것을 꼭 건국기념일을 폄훼하는 분들의 의중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일을 1948. 8.15로 한 것이 왜나라 시각을 반영했다는 주장은 억지입니다.
말이 나온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4.11로 하든지 통합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9.11하는 것에는 찬성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1910.8.29에서 임시정부 수립일까지의 기간은 나라가 없는 공백기간이 되고 국민투표에 의한 헌법 제정 및  정부, 국민대표(국회)의 선출이 없었다는 문제는 있어 보입니다.
     
내일을위해 15-07-22 19:46
   
건국과 광복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하는 말인지. 답답하네요.
          
가생이잉여 15-07-22 20:33
   
1945 1948 동일 날짜 중첩되니까 겸 이라고 하신거 같은데요.. 그 차이를 모를리가요
          
spirit7 15-07-22 21:40
   
이분은 1945.8.15에 광복과 건국이 동시에 됐다고 아는 분!
홀로장군 15-07-22 17:11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런저런 명분 때문에 임시정부 수립일로 지정하자는 분 많지만
제생각엔 온당치 않다 봅니다
이유는...민주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대다수 국민이 인식하지 못하엿다는 겁니다

그리고
선조가 백성을 버리도 도피한것도 욕하는 마당에
대부분 국민들은 식민지하에서 생활하는데 외국에 정부와 요인들이 있다는것도 문제가 전혀 없다 할수없구요

임시정부 수립은 독립의 의지표현이지 실질적인 독립이 아니었죠
그래서 건국일에 적당치 않다 봅니다  역사미화에 가깝다 봅니다
     
행복찾기 15-07-22 17:19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을 계승하고"라고 우리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우리 대한민국의 시작은 상해임시정부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홀로장군 15-07-22 17:34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그리고 헌법도 사람이 만든것이고...
국가의 구성요소가 국민 주권 영토이죠 
임시정부를 인정한다고 해도..  정부는 3요소에 들가지도 않죠
               
내일을위해 15-07-22 19:50
   
그 영토를 빼앗겨서 임시정부인겁니다. 그런 임시 정부는 많습니다. 그중 프랑스도 있고요. 그걸 인정치 못하면 이땅위에는 국가가 없었던것이 되고 있었다한들 우리와는 관계없는것이 되어 버립니다. 임정이란것이 그것을 연겔하는교두보가 되는겁니다.
     
돼지콜레라 15-07-22 18:24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천명했으며, 임정의 지도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삼균주의(三均主義)는 대한민국의 기초이념으로 신생 헌법에 반영됐다.

대한민국의 헌법 자체가 임시정부의 이념을 기초로 한거고 이승만도 1948년 8월 15일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28주년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제와서 국민이 인식하지 못했을 거라는 주장은 잘못된 상식이에요.
          
ttlss 15-07-22 18:28
   
국민이 인식하지 못했다는 시기는 1919년 의미하죠 28주년 연설 당시가 아니라요
               
돼지콜레라 15-07-22 18:32
   
1919년 3.1운동으로 촉발된 게 4월 13일의 임시정부 수립인데 이건 무슨 해괴한 소리에요.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의 전국민이 3.1운동으로 일치 단결하고 임시정부를 만든건데 이런 소리를 어떻게 합니까.
3.1운동은 했으나 국민들은 인식하지 못했다? 말이 되는 소릴....
                    
ttlss 15-07-22 18:56
   
전국민이 3.1운동으로 임시정부를 만들다뇨 무슨 해괴한 소리십니까.... 2.8독립선언서는 독립운동으로 건립될 국가는 민주주의에 입각한 신국가임을 명시하였지만 당시 일반 백성들은 폭압적인 식민지배에대한 저항이 주된 원인이지 임시정부를 수립하기위해 3.1운동에 나선건 아닙니다 임시정부수립 자체도 대부분 몰랐구요 그 틈을타 일본의 시선이 한반도에 몰려있을때 신한청년당이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세운거구요 일반백성이 임시정부를 만들었다는건 어불성설입니다
                         
LikeThis 15-07-22 19:07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안한 14개조의 전후처리 원칙 중에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라는 소위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희망의 분위기가 일어났다.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1918년말부터 치밀하게 사전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파리 강화회의에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소요사태를 일으켜야 한다는 김규식의 발언과 1919년초 갑작스럽게 사망한 고종 황제의 죽음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절묘하게 기회를 포착하였다. 당시 중국에 유학중이던 여운형과 신규식, 신한청년당 당원 등은 이 선언과 뒤이은 파리 강화회의가 조선 독립의 달성 여부를 떠나서 앞으로 조선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신한청년당이라는 단체를 문서상으로 조직해 파리 강화회의에 영어를 잘하는 김규식을 파견하고, 조선쪽에는 일본어에 유능한 장덕수를 파견한다. 이러한 소식은 조선 안팎의 독립운동가들을 상당히 고무하는 소식이었다. 1919년 출국 전 김규식은 상하이의 신한청년당 당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독립 시위를 벌일 것을 주문하였다. 김규식의 독립 시위 주문은 3·1 운동이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파리에 파견되더라도 서구인들이 내가 누군지 알리가 없다. 일제의 학정을 폭로하고 선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국내에서 독립을 선언해야 된다. 파견되는 사람은 희생당하겠지만 국내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해야 내가 맡은 사명이 잘 수행될 것이다."
만주 지린에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1918년 말 무오 독립선언을 통하여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였고, 조선 재일 유학생을 중심으로한 2·8 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은 삼일운동은 고종의 독살설로 인하여 일본의 부당한 조선 점령과 폭력에 의한 통치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갖게 되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3.1독립선언문
吾等(오등)은 慈(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 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 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 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 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후략-

3.1독립운동은 단순한 소요사태가 아니라 독립을 위한 사전에 준비된 일련의 과정들 중 하나였음...
그 흐름은 자연히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으로 이어짐...

대한민국 임시 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영어: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1919년 ~ 1948년)는 1919년 3월 1일 경성(京城)에서 선포된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1919년 4월 13일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설립된 망명 정부이다.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각지에 설립된 임시정부들을 흡수·통합하여 통합임시정부로 발전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19년 임시 헌법을 제정하여 대한제국의 영토를 계승하고 구 황실을 우대한다고 명시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광복 후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987년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였다.
                         
ttlss 15-07-22 19:23
   
신한청년당등 당시 지식인의 인식이 아니라 당시 일반백성의 인식을 얘기하는중입니다 여기 3.1운동이 미리 계획됬다는걸 모르는사람없습니다 일본의 시선을 돌리기위해 3.1운동을 계획한거구요 일제의 핍박에 지칠대로 지친 일반 백성들은 지식인의 선동에 의해서 같이 3.1운동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일반백성들은 상하이임시정부수립을 위해 동참한것은 아닙니다
                         
LikeThis 15-07-22 19:30
   
작전의 세세한 부분을 모르는 일반 병사는 전쟁에 참여했어도 승리에 공헌한게 아니라 그냥 장기판 위에 말일 뿐인거군요.
탑골공원에서 천여명의 학생들의 만세로 시작된 3.1운동은 서울시내를 행진했습니다.
행진 대열을 구경하던 시민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누어주며 취지를 알리고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무슨 무지몽매한 군중이 일제치하에 그져 살기 힘들다고 어리광부리며 뛰쳐나온게 3.1운동인줄 아시는 분이 있는줄은 미쳐몰랐군요.
                         
ttlss 15-07-22 19:34
   
너무 비약할것도 없고 더할것도 없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감정적으로 생각할 부분이 아닙니다 역사는
                         
LikeThis 15-07-22 19:37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조선...
조선을 계승한 대한제국...
대한제국을 계승한 임시정부...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이 연결고리를 어떻게든 끊어서...
대한민국을 역사 50년 안밖의 신생국으로 만들어야 속이 후련한 사람의 시각으로는 3.1운동이 그렇게도 허접한 소요사태일 뿐인것으로 생각되기도 하겠지요.
대한민국과 임시정부 사이의 관계를 끊어버려야 친일파들의 죄의식도 덜 수 있을테고 말입니다.
                         
ttlss 15-07-22 19:45
   
일반백성들의 3.1운동의 폭발원인은 일제의 당시 무단통치와 일제에 의한 고종암살설 원인이 가장큽니다 지식인들이 그걸 이용했구요 물론 여기서 그 이용이 잘못된 의미는 아닙니다  민족의 역사와 국가의 역사는 구분할줄 알아야합니다 민족과 국가는 다른얘깁니다 감정적으로 대한민국이 기원전부터 시작한 역사라고는 할수없습니다
                         
LikeThis 15-07-22 19:48
   
3.1운동을 기획했던 사람들의 의지는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참여한 백성들이 그 의의를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3.1운동에서 독립의 의지를 배제하고 생각해야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승만의 연설이나 헌법의 전문에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무슨 구분을 더 해야되는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한 나라의 정통성과 역사의 깊이는 국가 구성원들이 정하기 나름입니다.
나라 정통성과 역사 범위를 정해서 주변국이나 유엔에 검사 받아야되는 그런게 아닙니다.
찬란한 민족의 역사와 그것을 계승한 사실들이 있는데도 굳이 대한민국을 이전의 역사와 구분지어 생각하는 저의가 뭔가요?
그저 순간적으로 아는척을 하고 싶었던 겁니까? 아니면 한국인이 아닙니까?
                         
ttlss 15-07-22 20:14
   
3.1운동의 독립의 의지를 제가 어느 구절에서 배제했다는건지 모르겠네요
민족의 역사는 구분이 없지만 국가의 역사는 당연히 구분되어야지요 조선이 조선(고조선)을 계승한다는건  그 국가의 전통성을 이어받는다는거지 두 국가가 하나의 국가가 되는건 아닙니다 제발 냉정히 바라보세요
자꾸 친일얘기 듣거 거북해서 이만줄입니다
                         
LikeThis 15-07-23 08:08
   
Q: 3.1운동을 기획했던 사람들의 의지는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참여한 백성들이 그 의의를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3.1운동에서 독립의 의지를 배제하고 생각해야한다는 말씀이십니까?

A: 3.1운동의 독립의 의지를 제가 어느 구절에서 배제했다는건지 모르겠네요

Q: 아래 ttlss님의 댓글을 참고
"당시 일반 백성들은 폭압적인 식민지배에대한 저항이 주된 원인이지 임시정부를 수립하기위해 3.1운동에 나선건 아닙니다"
"일제의 핍박에 지칠대로 지친 일반 백성들은 지식인의 선동에 의해서 같이 3.1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일반백성들의 3.1운동의 폭발원인은 일제의 당시 무단통치와 일제에 의한 고종암살설 원인이 가장큽니다 지식인들이 그걸 이용했구요"
                         
ttlss 15-07-25 02:15
   
"당시 일반 백성들은 폭압적인 식민지배에대한 저항이 주된 원인이지 임시정부를 수립하기위해 3.1운동에 나선건 아닙니다" 
-폭압적인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이 곧 독립의 의지 의미한다는걸 모르십니까? 꼭 지식인들처럼 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독립의 의지를 보이는것은 아닙니다 일제에 저항하는것 자체만으로 독립의 의지라할수있죠
"일제의 핍박에 지칠대로 지친 일반 백성들은 지식인의 선동에 의해서 같이 3.1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제가 선동이란 표현을 썼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것 같은데요 독립의 의지가 없다면 선동한들 무슨소용있겠습니까.
"일반백성들의 3.1운동의 폭발원인은 일제의 당시 무단통치와 일제에 의한 고종암살설 원인이 가장큽니다 지식인들이 그걸 이용했구요"
-이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용이란 표현때문에 마치 백성들은 그냥 이용당했다고 제말뜻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신것 같으신데 분명 이용이 나쁜뜻이 아니라 명시했습니다 서로 상호작용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됩니다 한반도에서 3.1운동이 일어나면서 일본의 시선이 한반도에 몰렸을때 임시정부를 선포했으니까요 어떻게 저 구절이 제가 백성들의 독립의 의지를 배제했다는 소리인지요
세구절 모두 일제에 저항했다는 내용입니다 목술을 걸어야하는 상황이죠 그것만으로 독립의 의지가 설명되는것 아닌가요? 오히려 님이 일제에 저항한 백성들의 독립의 의지를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이듭니다
나이thㅡ 15-07-22 19:23
   
8.15는 광복절 아닌가요????
     
ttlss 15-07-22 19:26
   
45년 8.15일은 독립일이고 그후 3년간 군정후 48년 8.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 미군정이 끝나죠
          
내일을위해 15-07-22 19:54
   
당신은 지금 대한민국의 법통을 부정하는겁니다. 그럼 헌재에 제소해보세요. 광복절이 아니라 독립일이라고.
               
ttlss 15-07-22 19:59
   
무슨소리하십니까;; 후대에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광복절이라 칭한거지 저는 분명 1945년 8월15일 독립일 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이런 딴지는 사양합니다
돼지콜레라 15-07-22 19:36
   
"3ㆍ1운동은 운동의 과정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조직체가 없었기에 지역과 계층에 따라 투쟁의 형태와 강도를 다르게 한 채 분산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민족대표는 독립청원의 방식에 주력하여 타협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광범위하게 일어난 민중들의 항일투쟁을 이끌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지니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전체 독립운동을 통일적으로 이끌기 위해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국내에서는 1920년대 전반기에 민중의 투쟁력을 조직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1919년 3.1운동은 전문화된 지도체계가 없어서 항일투쟁으로서의 효과가 제한적이었고 그런 반성에 힘입어 임시 정부 수립을 촉발하는 계기가 됩니다.
1919년 국민들이 임시 정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ttlss님의 주장은 근거가 없어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상해 임시정부를 국민들이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는 건지 이런 분을 보면 괜히 화가 남.
이 나라엔 아직도 친일파들이 바글바글하고 식민사관에 잘못된 상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부류들도 있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명확한 근거 앞에서도 우리 국민과 상해 임시정부를 분리하려는 노력은 애처롭네요.
     
ttlss 15-07-23 00:44
   
본인 생각을 말하세요 할말은 많지만 본인논리없이 복사만 해대는 분과는 대화하기싫네요 이런분들이 쉽게 범하는 오류가 자기논리가 없어 너무 글을 그대로 받아드리게 문제죠
          
돼지콜레라 15-07-23 02:18
   
개인적으로 가생이에 차단기능이 있었다면 이런분은 차단해 버리고 싶네요.
제가 가져 온 글은 님이 1919년 우리나라 국민은 임시정부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시길래 관련된 글이라 일부러 찾아서 5줄 올린 겁니다.
고작 그 5줄 조차 그렇게 아니꼬운 일이고 터부시 하는 일인줄은 몰랐네요.
그리고 1919년 우리 국민들이 임시정부를 인식하지 못했고 3.1운동은 단지 일본 통치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니 당신 같은 사람을 다른 말로 XXX 또는 XX XXX라고 하는 겁니다.
상해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0일 고종의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신석우 선생께서 대한민국이라 이름을 정하는데 그게 오늘 날 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어느 정도 소통이 되는 상대라면 끝까지 존중해 드렸을텐데 님의 행동들은 이미 개인적 의견을 넘어 추태에 가깝네요.
당신이 주장한 것 처럼 상해 임시정부가 우리 국민이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미미한 존재였다면 왜 이 나라 헌법은 임정과 닮아 있고 이 나라의 국명이 왜 "대한민국"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래도 딴 소리 하면 그건 진짜 XXX.
               
ttlss 15-07-23 22:13
   
그렇게 감정에 치우쳐서 역사를 논하면 안됩니다 대화역시 마찬가지구요 대화를 할땐 상대를 배려할줄알아야합니다 본인생각과 다르다고 욕설 하는건 무지한 사람이 하는 행동입니다
DarkNess 15-07-23 09:38
   
친일파들 많네. 임시정부 인정 못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