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재밌는 주제가 나왔네요
몇분께서 19세기 이전엔 동양과학, 혹은 한국의 과학이 동등하거나 우월했다라고 주장하시는데
기술의 수준과 "과학"이란 학문을 동일시하는 점에서 이미 본질적인 차이가 나옵니다.
사실 서양 "과학"이란게 17세기 중반부터 봉건제가 무너지기시작하면서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시작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서양사에서 과학의 또 다른 이름은 "natural philosophy"
즉 자연철학인데 이는 베이컨으로부터 시작된 경험적 증거를 통한 가설의 입증과정이 철학과연계되면서 인간이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유무형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이 이 “과학”이라는 학문인겁니다. 이는 뉴튼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프린키피아) 같은 책에서도 나타나고 사회과학분야에서도 맬서스의 인구론같은
대작이 나타나게 되는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수준이 당시에 동양과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인문학부터 과학,
기술분야까지 모두 관통하는 기본적인 “과학적”방법론이 이미 자리를 잡았고 이는 새로운 발견이나발명이
단순히 흥미롭고 새로운 기술에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그 기술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 의견의 교류, 그리고 궁극적인
지식의 축적과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겁니다.
이에 반해 동양, 특히 한국 에서는 백가쟁명에서 유가가 우위를 점한 이후부터
모든 이들의 의식에 뿌리박힌 사농공상에 입각해 유림의 주자학은 유토피아적인 철인통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정신적인 고찰에 의존할뿐 “기술”의 바탕이 되는 자연법칙에 대한 고찰은 소홀히 대합니다.
그럼으로 인해 인간의 정신적인 유산에 대한 학문은 굉장한 수준이지만
자연법칙에 대한 고찰은 이에 극히 못미치는 굉장히 언발란스한 학문의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정치철학 자체를 주자학으로 시작한 조선은 양명학같은 조금 다른 유가의 발전이 미미했기에이런 효과가 더더욱
두드러지게 되는것이고 이런 현상은 나중에 “실학”이라고 하는 유학의 비주류에서 조차 쉽게 발견할 수있습니다.
이로인해 “기술”은 주로 천한 장인계급 사이에서 도제로 이어지고 오히려 후퇴하다 가끔씩 나오는 “천재”로 인해
몇가지 굉장한 발견, 혹은 발명이 나타날뿐, 그 발견/발명이 새로운 방법론,혹은 본질에 대한 학문으로
이어지질 않고 “기술”의 발전이 “과학”의 발전으론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기술발전을 통한 잉여 유무형 자산의 축적과 이로 인한 상공업의 발전을 극히 꺼리고 “이”를 추구하는걸 억제하는데 주력한
주자학의 주류와 상통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철학적 사고방식의 차이에 따라 서양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과학이라는 학문의발전으로 이어진거고
한국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과학의 발전은 커녕 오히려 천대받고 오히려 기술 수준이 점점 후퇴하기도한게
몇백년 이어지면서 그 차이가 자연스럽게 벌어진겁니다.
해외에서 오래 산 이유로 어휘가 때때로 어색할때가 있는데 이해해주세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