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지니엘님이 설정한 기독교의 의인과 구원관 설정은 현재 한국 개신교계의 정식 입장이 맞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지적을 한다면 지니엘님이 아니라 개신교에게 해야 합니다.
간단히 정리를 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구약에서는 '의롭게' 살면 의인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런데 야훼가 보니까 사람이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합니다. 죄를 지어도 죄의식이 없거나 희박합니다.
2) 아브라함에게 직접계시(특별계시)를 내려주고 직접 지시를 합니다.
그런데 이건 개인의 차원을 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조상이 살던 고향을 떠나왔던 조카 롯도 결국 패망의 길(소돔과 고모라행+의도치 않은 딸들과의 근친상간)에 빠집니다.
3)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내려줍니다.
십계명과 내가 정한 규범만 잘 지키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받은 인간들도 지 멋대로 삽니다.
신이 징계를 내리면 인간이 번제물을 바쳐서 회개를 하고, 신이 용서를 하길 반복합니다.
4) 예수를 내려보내고, 예수를 믿으면 죄를 사해주겠다고 합니다.
5) 기원후 2~3세기에 예수의 구원사역을 설명하기 위해 원죄라는 교리가 생깁니다.
여기부터 설정오류에 빠집니다.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이 원죄를 도입하면 구약의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 됩니다.
6) 본가인 유대교의 동의 없이 구약에서 쓰인 '의인'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지 멋대로 바꿉니다.
의인은 지니엘씨가 말한 것처럼 이쉬 차디크가 맞습니다.
이쉬는 사람, 남자라는 뜻이고, 차디크는 의롭다는 뜻입니다. 차디크의 어원인 차닥은 올바르게 행하다, 올곧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걸 비틉니다. 의인은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의를 행하려고 정진하는 사람이라고 바꿉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에는 이걸 표현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하시드라고 읽히고 경건하다라는 뜻입니다.
만약 고대 히브리인들이 의인을 의를 행하려고 정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쓸려고 했으면 차디크가 아니라 하시드를 이용해서 단어를 만들었을 겁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히브리인은 야훼를 거룩하다고 하는데 이 거룩이 히브리어로 카도쉬입니다. 이것은 구분되다라는 뜻인데, '죄'와 구분된다고 신학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죄인은 신의 곁에 갈 수 없다고 하는데, 죄는 있지만 죄를 짓지 않으려고 연단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곁에 갈 수 있을까요? 여기서도 설정오류가 납니다.
이렇게 설정오류가 나는 이유는 유대교와 기독교는 구약을 같이 쓰지만 내세관과 교리 자체가 몽땅 다 다릅니다. 구약과 신약, 유대교와 기독교는 서로 별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릅니다. 그런데 이 상이한 구약과 신약을 하나의 교리로 뭉치려다보니 이런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오직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성경의 모순들을 지적하면 나는 특별체험을 하였다며 정신승리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일반계시, 개인적 체험을 특별계시라고 하고, 일반계시를 우위에 두는데, 일반계시의 모순은 외면하고 특별계시에만 메달리는 걸 보면 이 사람들이 진짜 자기네 종교를 제대로 알고 저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시간에 쫓겨서 글내용을 생각나는대로 써내려가다보니 문맥이 이상하거나, 오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그런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