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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27 09:53
로마서3장
 글쓴이 : moim
조회 : 1,662  

흔히 교인분들 여기 구절로 의인에대해
배우는걸로알고있는데요
예수안믿고 행위로만 율법을 지켜봤자 필요없다
예수를 믿는게 진짜의인이다
뭐 대략 이런 내용으로알고 있어요
보통 한국기독교는 요구절가지고
율법보다 예수를 믿으면 다해결된다 이런식의
설교 많이들으시겠지만
로마서 3장31절 마지막 구절보면
율법을 폐기하는게아니고 더욱 굳건히 해야된다
라고 말하고 있지요(하나님과 예수를 믿는사람으로서
더 율법을 잘지키라고...)
야고보는 행위없는 믿음은 영혼없는 육체와 같다라고
말하고요...
(윤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사람 조차 보질못해서요)
결국 그많은 성경구절중 자신이듣고싶은것만듯고
하고싶은것만하는게 지금의 한국기독교죠
구약이나 신약이나
율법에대해 많이 나오지만 전부개무시하고
예수믿는거랑 교회가는거랑 십일조는 왜케 강조하는지...

가르칠려면 재대로 가르치던가
그냥 아는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물론저도 많이부족하지만
회계합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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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at69 16-04-27 10:01
   
성령같은건 절대로 없어요..
행동이 수반되지 않으면 진심이란것도 없고요..
죄사함을 기반으로 죄를 가벼히 여기는 사람은 종교인도 아니고 그건 종교도 아니죠
     
가을자락 16-04-27 10:41
   
당연히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없죠.
그들은 절대 느끼지 못하니까요.
          
Habat69 16-04-27 10:56
   
맨날 악령에게 처발리는 놈은 없느니만 못합니다만..
성령이라는 존재도 서구 법정에서 야훼경에 손 언저서 맹서하는것 같이 있으나 없으나한 존재임.
마치 십자가 목걸이와 같은건데 십자가 목걸이라는건 그사람의 성스럼을 나타내는것도 아니고 크리스찬이라는 증거도 아님.
전 이성적인 통계와 증거만 믿습니다.
통계학적으로도 성령의 존재는 없습니다만..
그냥 우매한 집단에게 "자신은 신내림을 받아서 신의 대리인이다" 라는 증거 불분명한 주장을 하기 위한 거짓말일 뿐임
          
초콜릿건빵 16-04-27 12:24
   
무당을 믿나요?
무당도 성령을 받은 거네요.

님 말대로라면 님이 무당을 무시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가을자락 16-04-27 10:48
   
현대 기독교는 많이 변질된 부분이 많습니다.
믿음만을 강조하고, 행함은 강조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교인들이 듣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회개를 말하는 교회도 적죠.
그저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하는 말만 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단순히 입으로 시인하는 것인가요?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성경은 행함을 강조합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거죠.

또한, 한번 회개한 것은 반복해서 잘못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잘못을 회개해놓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사람을 가리켜 토한것을 다시 먹는 개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은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겠으나,
그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천국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 천국에 가지 못할 것입니다.
asdfnw2 16-04-27 12:28
   
회계 ㅋㅋㅋ 회개겟죠
우디 16-04-27 13:51
   
돈을 전혀 걷지않고
전도해오라고 신도들 닥달하지 않고
이름없는 산의 약수터처럼
아무 부담없이 사람들이 오고 갈수 있는
그런 교회는 어디 없을까........

한국 교회는 신도 = ATM 으로 생각하니.....
지청수 16-04-27 14:07
   
글쓴이 같은 교인들이 늘어나길 바랍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 붙잡고 전도하지 않는다면 더 좋겠습니다.
하보나 16-04-27 17:01
   
제가 생각하는 율법의 완성이란..
율법은 주로 뭐뭐하지말라입니다..
즉 최소한을 지키라는거죠..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에게 피해주지 말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계정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이것의 차이는
남에게 피해주지 말라는 율법보다 더 강력한..
사랑하라입니다..

지나가는 거지가 있있다고 칩시다..
율법안에서는 거지를 그냥 지나가도되지만..
예수의 계정에서는 거지를 도와주라는거죠.. 굶어죽지 않게..
이 차이입니다..
이웃을 향해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도와주라는거죠..
한마디로 말하면 착하게 살라는겁니다..

믿으면 천국 안믿으면 지옥??
예수님은 자신을 믿으라고 한적없고
자신을 믿으면 천국간다고 한적없어요..
회개하라고 한적은 있죠...

예수를 믿는다고하면 이웃을 사랑해야합니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는믿음은 죽은믿음인거고 영혼없는 육체나 마찬가지란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킨다고 해도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신다고 했고
주위에 병든자 갖힌자 가난한자를 돕는자는 (가장작은자에게 한것) 내게한것이니
그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는거죠..

한마디로 예수를 믿기만하면 천국에 갈줄아고 아무런 선행을 하지 않는자는
헛믿는것인거죠..
제로니모 16-04-27 17:28
   
구약의 율법과 신약에서의 선행 즉 사랑의 실천 행위를 동일선상으로 보면 모든게 꼬이게됩니다. 
인용한 롬3장 외에 다른 여러 장에서도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 성경과 같은 기자 사도바울의 기록으로 간주되는 다른 서간 갈라디아 디모데 등 여러 곳에서도 구약의 율법주의의 한계와 모순을 설명하고 할례와 같은 육체적 행위주의를 비판하고 권계 권면하며 복음주의로 돌아서길 외칩니다.
특히 롬6 7 8 13장과 갈라디아 4 5장 또 히브리서 8-12장을 연결해서 읽어보시면 감이 오리라 생각되네요.
율법주의(육적 행위주의 또는 죄의 법)가 무엇이며 무엇이 잘못된것인가와 반대로 복음주의(영적 성령주의 또는 마음의 법, 하늘의 법)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모세에의해 전한 최초의 율법 즉 10계명은 롬2장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선하고 깨끗한 것이지만 타락하여 불완전한 인간들에겐 온전한 것이 아니며 복음서에서 율법학자들을 꾸짖던 수많은 사례에서와 같이 계명을 적용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세부 율법 즉 율례들을 자신들에 입맛에 맞게끔 인위적으로 만들고 그걸 지키게 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편법과 아전인수식의 해석으로 인하여 마치 샐리의 법칙인 마냥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율법의 본래 취지를 호도하고 훼손시키기에 이른 상태가 되었구요. 더욱 중요한건 인간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론 온전히 율법을 지키고 부합될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설령 물리적으로 율법을 모두 지킨다하더라도 인간은 음행하고 증오하는 등의 마음의 죄와 같은 것에서 조차도 자유로울수 없기 때문이죠.
그외 또한 중요한 문제는 마음으로 하지않는 선행과 실천 즉 마음속 믿음과 사랑이 담보되지않고 머리로 이성으로만의 선행은 역시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즉 믿음과 행위는 함께 가야한다는 것이죠.

물론 복음서 말씀중 이것(율법)도 지키고 저것(복음주의적 사랑)도 행하라. 또 바리새인들이 지키는 바른 율법의 최초 정신은 본받되 그들이 편법이나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행한 부정한 행동 또는 바른 율법을 실천하지않는 행동 등은 본받지 말란 말씀도 있구 또 세상 끝날 까지 율법의 일점일획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지는 율법을 폐하러 온게 아니라 완성하러왔다는 등 율법을 강조한 여러 사례가 있다고 하여 과거 구약의 율법에 목매려는 사람들이 있죠.
초기 교회 시기의 고린도 갈라디아 빌립보 에베소 교회 등 뿐 아니라 현대 교회 교인들 조차 오해하는 경우가 허다한듯 합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지키지 말란 뜻인가라고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아뇨 지키지 말란게 아니라 노력은 하되 그 율법조항에 지나치게 얽매여 본말이 전도되는 걸 주의하란 걸 말하고 싶네요. 
롬13장 7-10절이나 갈5-23?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계명의 핵심 골자인 사랑의 계명 즉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안에 구약의 최초 선한 율법이 다들어 있으며 이 얘긴 결국 율법의 완성이 사랑의 실천이란 것입니다. 
왜냐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사랑하는 그 자를 살해하고 그 배우자를 탐내고 그 물건을 훔치는 등의 구약 계명을 어기는 일이 있을 순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들은 구약의 율법을 실천하는게 1순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계명 새율법인 사랑을 실천하는게 우선이란 것입니다.
그렇게된다면 구약적 율법은 자연적으로 그 사랑의 실천 안에서 여전히 살아서 유효하게되는 것이며 나아가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앞서 언급한 예수가 율법을 폐하러 온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게 마음속에 그제서야 앞뒤가 맞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것 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의 권능을 가진 율법에 의해 정죄받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가벼운 존재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자백하는(갈2-10, 요1서 마지막절) 데서 모든 믿음이 시작된다란 것과 율법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와 복음을 알고 깨닫기전 까지 초등교사 즉 몽학선생의 역할(갈3장 후반)로 그리스도라는 고등교사의 진정한 복음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란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한자라면 더이상 초등교사인 구약의 율법에 얽매여 쓸모 없는 이전투굴 하지 말것이며 분명히 둘은 우선순위의 차이가 있는 것이죠.

이는 결국 믿음대로 행하여만 함은 분명한 것이지만 그러나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 할 척도인 행위가 구약적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 계명에서 난 것이란 점을 밝히고자합니다.
강쉐이 16-04-28 01:43
   
제로니모님이야 누가봐도 기독교인이신건 알겠는데
가을자락님이나 하보나님도 자세한 서술은 없어도 총체적으로 사랑의 실천이라는것에 초점을 맞추시는거보면 기독교인이시거나 아니면 안티시더라도 최소한 비판의 방향은 제대로 가지고 계시는분이시네요
비기독교인이시라면 제가 여지껏 본 비신앙인분중에 제일 기독교가 안고있는 내재적 근원적 핵심문제에 근접해서 말씀하시는 분 같네요
잘 못 뵈던 분이신데 이슈게에서 종교이야기가 금지된 마당에 나오시니 참 아이러니 하다고 할까요
온뤼 칭의냐 성화의단계가 동반되고 마지막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전인격적인 회개냐 참 어려운 문제죠
루터주의냐 알미니안주의냐 그 중간 형태를 취할것이냐 끝나지 않은 그러나 끝날것 같지도 않은 문제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