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측의 말에 따르면
한자를 함께 써 주지 않으면 뜻을 알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건 완전히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자는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물이나 생각을
학습과 경험에 따라 약속된 기호로 바꾸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같은 관점에서 한자어는 한자를 결합시켜 만들었지만
뜻은 우리가 그 말에 대하여 쌓아온 생각으로
"이것의 뜻은 이렇게 한다"라고 정해진 약속에 따라
사용하고 있는 말인 것입니다.
달리보면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한자어는 외래어와 같은 방식으로 쓰이고 있는데
가령 Working mom 이라는 영단어를 들여와
한글로 [워킹맘]이라고 쓰지만
뜻은 [일하는 엄마]로 따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한자어 混用이라는 말을 가져와
한글로 [혼용]이라고 쓰고
뜻은 [섞어 씀]이라고 따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혼용 = 섞어 씀]이라는 약속 하에
이 말을 한자와는 관계없이 사용하고 있으며
그냥 '섞어 씀'이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혼용'이라고 써서, 한번의 단계를 더 거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한자어의 뜻을 쉽게 파악하기 힘든 것입니다.
이어서 한자어를 이해하는데
한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따라가 보면,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예) 한자어 → 한자 → 뜻풀이 → 적용
혼용 → 混用 → 섞을, 쓸 → 섞어 씀.
1) 외우고 있던 한자들 중, 해당 한자어에 대응하는 한자를 기억해 낸다.
→ 혼용을
보고 混자와 用자를 정확히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2) 한자가 가지고 있는 여러 뜻을 떠올린다.
→ 混자 : 15개 뜻, 用자 : 17개 뜻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3) 한자어에 필요한 뜻을 추출해, 종합하여 뜻을 만들어
낸다.
→ 混자의 ①번 뜻, 用자의 ①번을 추출해,
섞을+쓸 → 섞어 씀.
문제점)
1), 2) 과정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각각의 한자를 알아도 해당 한자어에 대응하는
정확한 한자와 뜻의 선별이 극히 어렵다.
3)번 과정을 수행하려면, 한자어 혼용[混用]의 전체 뜻을
미리 알고
있어야 각 한자의 뜻 추출이 가능하므로, 선후가 바뀌었다.
만일 혼용이 ②번 뜻, [잘못 혼동하여 씀]을 의미하려고 한 것이라면
3)의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긴다.
3)의 과정에서 종합한 뜻과, 실제 사전적 정의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즉 한자어 혼용[混用]이란 단어 전체의 뜻을 모르면,
그 말의 뜻을 한자로부터 추출할 수 없고,
종합해도 사전정의와 뜻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한자를 배우는 것은 한자어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한자어를 이해할 때
[혼용]이라는 말을 보고
그동안 배우고 익혀서 알고 있는
1) 약속된 뜻 [섞어 씀]을 떠올리거나,
2) 혼혈, 혼잡, 혼란, 이용, 사용, 활용과 같은
유사한 한자어에서 뜻을 유추하는 것이지
한자를 대입하는 과정은 거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자어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병기를 해야 한다면
번잡한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혼용 → 混用 → 섞을, 쓸 → 섞어 씀.]
바로 그 단어가 가진 의미를 적어 준다면
[혼용 → 섞어 씀.]
한자에 시간낭비를 하지 않아도 됨은 물론
뜻의 전달 과정에서 틀릴 염려가 없으며
읽는 사람의 빠른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혼용 [混用]
혼용 [섞어 씀]
어느 것이 낫습니까? 이건 논할 가치도 없어요.
왜 멍청하게 일을 복잡하고 힘들게 만듭니까?
한자는 과거 동아시아에서 널리 쓰이던 문자로
그것을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평소 읽고, 쓸 일이 필요한 지배계층의 특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한자는 행정언어, 고급언어로
사용되고 우대받아 우리말에 강한 영향을 미쳤고
지금에 와서 한자어가 난립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헌데 언어라는 것은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변천하기 마련입니다.
한자의 총 개수가 10만자에 달한다고 하는데
현재 그 중 몇 자나 쓰이고 있습니까?
한국은 1800자, 중국은 3500자, 일본은 2000자 정도에 불과합니다.
또한 전체 우리말의 60%에 달한다는 한자어도
중공에서 쓰이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을 들여온 것
국내에서 새로 만들어진 것
더이상 쓰이지 않는 말, 실생활과 동떨어진 말들이 뒤섞인
그야말로 난잡한 잡탕어에 불과합니다.
눈으로 [혼용]을 읽지만
머릿속으로는 [섞어 쓴다]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한 단계를 더 거치고 나서야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한자어,
한자어가 글의 빠르고 명확한 이해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드십니까?
워킹맘, 왜 일하는 엄마라고 쓰면 안됩니까?
한자어는 과거 한자가 동아시아
공통의 문자로 쓰이던 시기
우리말을 한자로 적거나 대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빌려오거나, 만들어진 단어들로
필요에 의해 쓰이던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우리의 생각을 바로 적을 수 있는
한글이라는 획기적인 문자체계가 있으며
그것을 통해 뜻을 글로 표현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도리어 무분별하게 한자를 빌려 만들어진 한자어
현대에 와서 남발되는 외국어, 외래어를
실제 사용자인
우리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과
해당 단어가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쉽게 읽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순우리말로 풀이하고, 틀을 잡아놓는 것이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