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원칙상 표현의 자유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광화문에서 무슨 이유로 시위를 하든 그들을 향해서 직접 욕하지는 않지만 제 앞에서 제가 알바니 뭐니 욕하는 벌레들은 민주주의를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광화문시위를 통해서 드러나는 국민, 민주주의, 현대정치의 위기에 관해서 쓴 것이니 순실, 근혜이야기는 다른데 가서 하시길 빕니다.
1. 왜 폭동이라고 보는가?
=> 개개인으로는 정의롭지 못하면서도 국민이라고 하는 거대화된 주체에 개입하여 스스로를 정의로운 행위로서 착각하는 작태때문임. 즉 개개인은 비루하면서 볼품없지만 신의 이름이나 정의의 이름이라는 허위가 가능하다면 이 사람도 얼마든지 신의 사자, 정의의 사자인냥 행동하고 스스로도 속이기 때문. 국민이라고 꺼내드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런 집단에 끼어들어서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 결론부터 미리 적자면 시위를 할 시간에 자기 주변이나 얼마나 논리적이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면서 단 하나의 오류도 안 저지를려고 살았는지 살피는게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라고 지적해주고 싶다. 그게 안되면서 광장에만 튀어나오면 없던 정의감이 나오는것부터가 애초에 그런 좋은 사회가 될 자질이 부족하다는 증거겠지만.
2.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해결책이란 말인가?
=>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그러한 영역을 돌아보고 그 영역안에서 혼자 힘으로 해야 하는 정의를 구축하는 것이 자기가 떠든 민주주의의 원칙과 부합한다. 길거리쓰레기줍기(시위때만 줍는걸 말하지 않는다), 줄 잘서기라는 공공질서의 존중은 평소에도 단 한번도 어기지 않고 하였는가? 아니면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공정과 논리로서 사람을 판단하고 그렇게 발언하면서 살았는가?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1.에서 지적한 바와 똑같다. 단지 내면에 있는 하찮은 정의감을 위해서 국민이라고 하는 탈을 쓰고 싶었고 그 위에 올라타서 뽐내고 싶었을 뿐이다.
3. 국민이 민주주의 아닌가?
=> 단어의 뜻만 보면 그렇다. 원래 민주주의는 백성이 주인이다라는 사상인데 오늘날에는 이러한 전제가 당연하게 인지되어서 이것이 왜 당연한것인지 감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을 이렇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신 -> 왕 -> 정부 -> 국민
중세이후의 정치에서 특징적인 것은 정치라는 영역에 '주인'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것에 있다. 원래는 이해관계에 의해서 분리된 사회영역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왕'의 절대적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서 제공되었는데 왕이 만인의 통치자이자 절대적인 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는 신이 이 모든 것이 주인이지만 신은 그걸 왕에게 주었다라는 사상에 있다. 대중혁명과 대중정치가 부상하면서 고전적인 절대왕권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그런 왕 자리에 '대중, 국민'이라는 자를 끼워넣었다.
국민- > 정부 -> 국민
국민이야 말로 주인이고 국민이 정부를 지배한다라는 발상은 원래 개념적으로 주권론, 왕권신수설과 똑같을 뿐이지만 신과 왕 자리에 국민을 끼워넣었을 뿐이다. 오늘날에 인본주의가 자라면서 더 이상 신의 이름이 정당화의 근거로 바람직하지 않기에 다수에 의한 일반 민중의 감수성을 강화하고 거기에 '네가 주인이야' 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있기 때문.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가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당연히 정치에서 '주인'이라고 하는 개념이 왜 필요한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정치를 사유할 때, 민주주의를 들고 나올 때 당연하게 누가 누구 위에 있고 아래에 있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절대적 지배자라는 개념들을 너무나 쉽게 꺼내든다. 과거의 신이 했던 것은 지금의 국민으로서 당연하게 치환해놓고 마치 국민이 신인 마냥 신격화를 너무 맞아서 그게 맞는 것인줄 안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딴에는 그렇게 세뇌당하면서 배워왔으니 국민, 국민 거리는 것이 꽤나 배운줄 알고 생각하는 줄 아는 대가리라고 착각하겠지만 그런 동물적 호르몬에 의한 뇌기능이 아니라 정말로 생각이라고 한다면야 이러한 주권론,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4. 왜 허구라고 생각하는가?
어렵게 생각할 건 없다. 너는 한번이라도 '국민'이라고 하는 존재를 본적이 있는가? 물론 모든 사람들이 국민이에요라는 식의 그런 사람 집합체를 국민이라고 꺼내드는 바보들은 많겠지만 헌법에서나 정치이념에서나 말하는 그런 국민은 단순한 광화문에 모여있는 190만명 가량의 집합체를 국민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단지 이 광장패거리들은 자신이 국민이라고 하는 단위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위에서도 주권론을 말했듯이 현대정치는 근대정치의 틀에서 크게 변화한 바가 없고 그 개념적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적었다. 헌법에서 말하는 국민은 권력, 정부기능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적 전제에서 '국민의 절대성'을 강조했어야 했고 그것이 진짜로 생존하는 단백질덩어리인 사람 개개인이 아니라 그러한 사람들이 전부 모인 하나의 집단이념, 절대정신과 같은 그러한 것들에 '신' 과 같은 지위를 준 것이다. 헌법을 잘못 읽으면 막연히 나도 국민이고 너도 국민이니까 국민이 주인이다라고 하는 못배운 소리가 가능하겠지만 헌법에서 말하는 국민이 현현하는 떄는 선거에서나 국민투표에서나 하는 그러한 의사를 묻는 때에 정당화의 근거로서 '다수결 이상이면 국민의 뜻이다'라고 정의하는 그러한 도식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신보다 더욱 미지의 존재다.
더욱이 국민이라고 하는 단위가 문제인 이유가 현대정치의 몰락과 더불어서 더 이상 이런 거대, 집단범주를 사용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5. 현대정치의 몰락이란 무엇인가?
미래사회로 나갈 수록 근현대에 쓰였던 정치와 사회의 존재가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오늘날에 나름 배웠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꺼내드는 올바름이라는 것을 정의한다면
'개인의 무한한 자유를 제한하고 한정된 자유를 누구에게나 부여하면서 집단이라고 하는 단위를 신봉하지 않는 인본주의적 사상'
우리는 이미 무한한 자유가 독과점과 독재라는 이유에서 반대하고 있고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통제되고 사회가 평등한 무언가로서 제한되어야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이걸 다른 용어로 자유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고. 그렇다고 자유를 무작정 제한하는 사회주의식의 배급제에도 반대하지만 나름 세계국가들이 어느 정도 합의를 본 것이 자유주의라는 틀 속에서 사회민주적인 길을 통해 수정을 거치고 그 안에서 '복지사회'라는 틀에서 구축한 하나의 '한정된 개인'을 구축할려는 것에 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무한의 폭리를 취하지도 않고서라도 소득, 직장, 노후를 보장해줄 '복지제도'위에 적당한 자기 주변의 영역에서 소소하게 누리는 한정된 자유가 미래사회의 올바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찌되었든 한국사회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지금 정치나 정치에 관심있어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사회의 조감도가 이러한 양상에서 조금도 벗어난 것이 없으니까.
더욱이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건 그 개인의 한정된 자유는 절대적 영역이고 올바름의 영역이라고 착각하는 것에 있다. 자기 영역 이외에는 간섭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주어졌기에 자기 영역은 그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절대성이 있다는 의미이고 오늘날 이런 개인의 한정된 자유의 침해를 국가주의, 민족주의, 전체주의의 폐해로서 지목하면서 비판하는 무리들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국산품애용이 그 시대에는 당연한 철학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어떠한 이유에서 사람들이 반대하는가를 보면, 소비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면서 (여기서는 신자유주의자들보다 더 자유주의스러운 경쟁에 의한 소비자가격의 하락과 같은 소리가 첨가된다) 스스로 무엇을 소비하든 그것이 국적과 상관없는 영역이라고 믿는 경향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방향성을 알아내었다면 이 방향성을 그대로 추종해보는 일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에 관해서 더욱 자각하게 될 것이고 내면의 자기영역을 존중하겠지만 불과 20년전까지만해도 존재했던 다른 사람과의 관련성은 서서히 부정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 비해서 지금 이런 경향이 증가했으니까. 국가가 통제해야 하는 복지제도는 더욱 강화하면서 일면 디스토피아와 같은 구조속에서 날날히 주어지는 배급제식의 서비스속에서 스스로의 한정된 자유에 집착하게 될 것이고 거대화된 것들을 서서히 낡은 것으로 볼 것이다.
오늘날에도 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없다고 믿었듯이 200년뒤의 사람들은 국민이라고 하는 단위도 그렇게 볼 것이라는 말이다. 자기 스스로, 개인이라고 하는 단위만이 유효하고 그런 생활을 지지하는 사회제도가 구축이 된다면야, 물론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이 중세의 신의 이름으로 어쩌고 하는 사람들을 보는 느낌 그대로 미래인들은 지금 광장에서 시위하는 국민이라는 패거리들을 굉장히 낡은 사상을 고수하는 유치한 무리들로 볼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광화문시위를 폭동으로 보는 이유다. 정치의 영역은 날로 축소되고 있고 우리는 정치 이외의 곳에서 더욱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데 딱 광장에만 튀어나오면 하찮은 정의감이 솟구친다. 불과 몇m만 나가도 보이는 가래침, 담배꽁초, 무질서는 쉽게 목격이 되는데 국정교과서도 국가가 역사의 올바름을 정의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하고 국산이라는 이유로 소비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 때에 드러나는 개인의 한정된 절대성속에서 결국 국민이니 뭐니 이런건 필요없고 허구의 존재이기에 개인 스스로의 주변 반경만 잘 하면 된다는 윤리학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