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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20 02:37
퇴진행동 '박진 "광장 메운 시민의 힘 어디서 나오는지 묻고 있어요"
 글쓴이 : 흔적
조회 :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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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사회·퇴진행동 대변인 박진 활동가

박진(45·사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지난해 12월 ‘2015 인권콘서트’를 앞두고 <주간경향>이 마련한 좌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너무 힘들 수밖에 없어요. 이 광활한 벌판에 나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1년 뒤 그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수많은 시민들 앞에 우뚝 섰다. 그가 이끄는 대로 군중은 눈을 감고 소등을 하고 구호를 외쳤다.

20년차 인권운동가이자 촛불사회자 박씨를 지난 16일 서울 통의동 참여연대 1층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서 공동상황실장과 공동대변인도 맡고 있다.

대규모 집회 사회가 처음은 아니다. 10만 명이 모인 세월호 서울광장 집회 사회를 본 경험도 있다. 이번 촛불에서는 4차와 7차 광화문 본대회 사회를 봤다. 주최쪽 추산 각각 60만명과 80만명이 모였다. “10만을 넘어가면 군중을 다 볼 수 없어요. 10분의 1이나 봤을까요. (연단에서) 세종대왕 동상까지만 육안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자의 눈으로 본 이번 촛불의 특성은 뭘까? “에너지가 압도적이었다”고 답했다. “굉장한 규모의 군중인데 사회자의 제안에 일순간에 소등과 침묵이 이뤄집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에너지의 압도성’이죠. 연설 경험이 많은 단체 인사들조차 연단 위에서 떠는 걸 보았죠.” 그는 어땠을까? “떨렸다기보다는,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아울러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오는 긴장감이 컸지요.”


사회자는 구호를 선창해야 한다. “구호는 회의에서 결정됩니다. 그날 사람들이 가장 외치고 싶은 구호를 정합니다. 본무대 구호는 절제되어 있죠.” 그는 연단에서 재벌총수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대신 ‘재벌총수 구속하라’고 외쳤다. 절제란 이런 뜻이다. 7차 때 구호 ‘한상균(민주노총 위원장) 석방하고 박근혜 구속하라’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회가 끝난 뒤 일부 언론이 묻더군요. 한상균 석방이 그렇게 중요했냐고요.”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했다. “1년 전 한상균 위원장이 체포됐어요. 당시 공권력이 과도하게 집회를 막지 않았다면 평화롭게 광장은 지켜졌을 겁니다. 이번 광장은 집회의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도 있죠.”

그는 7차 때 소등 퍼포먼스를 하면서 시민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청한 뒤 세월호 미수습자를 포함해 현 정부 들어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호명을) 퇴진행동 지도부와 상의하진 않았어요. 사회자의 재량이었죠. (지도부가)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죠.”

불과 1년 전만 해도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을 홀로 안아내고 있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그의 마음 속엔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 사람들(촛불 시민들)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이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게 뭘까? 왜 나는 몰랐을까?’ 그는 답을 찾고 싶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괴물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광장에 사람이 있어도, 없어도 공포죠. 연단에 서면 늘 두려움이 있어요. 이 사람들의 욕망, 분노, 호소가 어디로 갈지 잘 모르겠어요.”


그는 1997년부터 수원 지역에 기반한 인권단체인 다산인권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92년 법무법인 다산의 두 변호사가 만든 다산인권상담소는 8년 뒤 지금의 다산인권센터로 독립했다. 상담소 시절엔 변호사 사무소 일까지 했으나 독립 뒤엔 인권 활동에만 집중하는 대신 활동비는 줄었다. “400여 명 이상의 후원금으로 4명의 상임 활동가에게 활동비를 줍니다. 97년에 견주면 3분의1 정도 수준이죠.”

애초 인권운동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경기대를 졸업한 뒤 지역에 기반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청년운동을 하다 사람을 만나는 통로가 필요하겠다 싶어 상담소에 들어갔죠.” 센터는 국가보안법 사건 피해자부터 살인 사건의 억울한 용의자까지 지역의 숱한 인권침해 사례에 대응하며 성과를 내왔다. 삼성 백혈병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도 앞장 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6년 평택 대추리 싸움’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 문정현 신부와 함께 대추분교 정문 철망을 잡고 정부의 행정대집행을 막았다. 이때 모습은 <한겨레> 1면에 실리기도 했다. “대추리에서 인권이라는, 제가 지켜야할 가치의 얼굴을 보았어요. 고향을 지키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농민들 말이에요. 그때 힘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아요.” 그는 세월호 범국민대책위 공동위원장도 맡고 있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별을 10개나 달았죠. 대부분 벌금형입니다. 지금도 집행유예 기간입니다. 현장에 있으면 감이 와요. 그대로 있으면 체포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면 대체로 그대로 있어요.”

퇴진행동의 상황실장 5명은 각기 담당 영역이 있다. 그는 언론과 선전, 시민행동을 맡고 있다. 지난 9일 발족한 시민참여특별위원회도 그의 몫이다. “12월 말까지 대한민국이 토론공화국이 됐으면 좋겠어요. 광장이 밥상머리나 직장 등으로 이어져 박근혜의 나쁜 정책을 얘기했으면 해요.” 그는 개인적으로 “갑과 을이 계급이 되어버린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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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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