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는 당시 북한외교관중 서열1위였습니다.
―한국 외교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과거 한국 외교는 실체가 뚜렷하지 않았다. 북한 외교관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외교로 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사드 배치와 대북 제재에 있어 한국은 한·미동맹에 기초해 중국과 러시아를 포섭해 자신의 주장을 납득시키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참석은 북한 외교관들에게 충격이었다. 미국과 일본도 불참했는데,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한국이 갔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 바로 옆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박 대통령이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최룡해 당 비서는 맨 끝자리였다. 최 비서는 빨치산 1세 아들이고, 시 주석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인 최현과 시중쉰(習仲勛)은 가까운 사이였을 것이다. 당시 북한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항일 전쟁 승리 행사인데 함께 싸웠던 아버지들의 아들은 떨어져 있다니’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또 북한은 인권문제로 수세에 몰렸다. 유엔의 인권문제 표대결에서 북한은 완전히 손을 들었다. 남북 외교전에서 거둔 남측의 대승리다.”
―벼랑끝 전술일 수도 있지만 북한 외교는 전통적으로 강하지 않았나.
“최근 북한의 외교는 상당히 위축됐다. 특히 북한은 장성택 처형을 공개하면서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장성택은 김일성 사위이며 김정은의 고모부인데, 로열 패밀리 안에서 권력갈등을 드러낸 창피스러운 일이었다. 처형 방법도 지극히 야만적이었다. 핵실험을 통해 핵개발 진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계속되는 대북제재로 무역이 줄고 국제 공동체로부터 고립되고 있다. 외교관들의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
―리용호 외무상에 대해 평가하면.
“그는 북한 외교의 두뇌다. 정통 외교 관리형이 외무상에 오른 사례가 북한에서는 처음이다. 밑에서부터 시작해 문건들을 쓰고 한 발씩 외무상에 오른 보기 드문 실력자다. 김정은이 했던 인사 중에서 그나마 잘한 것 같다. 유능한 사람을 앉혀 위축된 북한 외교를 위기에서 건져 보려는 인사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있을 때 내가 참사였고 리용호가 대사였다. 보기 드문 실력파 외교관이다.”
―앞으로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와 북·미 간 직접 접촉,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외교 전술을 구사할까.
“통미봉남은 적중한 표현이 아니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이라는 두 실체를 가지고 자기 필요에 의해 움직인다. 김대중과 노무현정부 때는 한국의 대북정책에 기대 미국을 견제했고, 1994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미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의 실체를 이용해 한국으로부터 경수로 지원을 받는 전술을 썼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미국을 이용해 한국을 압박하고, 한국을 이용해 미국을 압박하는 것이 북한 외교다.”
―북한은 차기 한국 정부가 과거의 햇볕정책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인가.
“일반적인 견해로 보면 한국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변한다. 현재 남북관계가 막혀 있으니 보수든 진보든 관계없이 새 행정부는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다. 북한에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것이라는 얘기다.북한은 핵과 미사일 문제가 여기까지 왔으니 되돌릴 수는 없고, 대신 핵동결을 할 테니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할 것이다. 남북한이 서로 주고받을 게 있으면 타협이 가능하다. 북한은 수출주도 경제인 한국이 안정을 위해서는 도발적 상황을 장기간 방치할 수 없다고 본다. 결국 안정적 관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 번 직업을 잡고 일하면 그 분야에 줄곧 몸 담는다. 단점이기도 하고 장점이기도 하다. 외무성 유럽국에 1988년에 입직했는데 줄곧 유럽국에서 일했다. 유럽은 손바닥처럼 다 안다. 마찬가지로 북한 외교관들은 남한 외교관들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북한 내부에서는 대권주자인 문재인, 반기문, 안철수가 어떤 행보로 움직일 것인지도 예측한다. 반면에 한국은 북한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마치 화성 이야기하듯 한다. 주관적인 생각으로 문제를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