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이슈 게시판
 
작성일 : 17-03-26 04:39
베트남 파병제안 역사와 파독 노동자들 (2)
 글쓴이 : 촌팅이
조회 : 487  


[박정희와 케네디의 만남 그리고 서독으로 간 우리 노동자들]

 

 

5.16 쿠테타를 한 군사정권에게 정당성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진급 불만 때문에 쿠테타 했잖아, 예편되기 전에 한거잖아 등등 말이 많았죠 (모두 사실ㅋㅋ)

 

하지만 국민 절대다수가

기아에 시달렸던 당시에는

가난을 해결해준다는 자체만으로

모든 허물은 덮어질수 있었죠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게 박근혜를 감싸는 프레임 중 하나란게 놀랍죠

 

4.19 이후에 들어선 정권들은 이런 부분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마다 경제를 성장시키고자 많은 애를 썼습니다

 

장면은 앞으로 경제를 제일로 삼아 가난에서 벗어보겠습니다

이를 위한 정책으로

국토건설사업(뉴딜정책)을 통해

인프라를 조성하고 실업자수를 줄이겠습니다 라는 연설을 합니다

 

이런 장면내각정부의 의지는

미국의 케네디 정부에게 전달되어

1961 7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거액의 발전 재원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었죠

 

하지만 하지만

박정희가 나라를 뒤집어버렸죠

 

어쨋든

박정희와 그 꼬봉군바리들도 장면정부에서 처럼 경제성장의 의지는 굴뚝 같았습니다

 

박정희는 장면내각의 뉴딜정책과 자신이 내세우는 중공업정책을 합쳐

한국의 경제성장정책을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돈이죠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그리고 경제정책진행을 위한 돈을 빌리기 위해 박정희는

1961 11월 미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capture-20170324-185800.png



여기서 박정희는 미국이 장면내각에게 지원을 하려 했던


경제개발차관을 자신에게 지원해달라 부탁해보려 했습니다


 


박정희는 베트남으로 운을 띄웠으며


우리가 파병을 베트남에 해줄수 있다 케네디에게 말합니다


 


풀어쓰자면


 


"너 북베트남 땜에 스트레스 많이 받지? 우리가 가서 북베트남 쓸어버릴수도 있는데


 너희가 지켜준 나라가 이제는 너희와 힘을 합쳐 새로운 공산당을 막는다


 어때? 그림 좋~잖아 그치? 대신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돈...헤헤


 


하지만 케네디는 "아뇨 괜찮은데요 님은 관심 끄셈" 거절하죠


 


베트남 파병으로 차관문제를 수월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그냥 경제정책을 위한 차관(즉 장면내각에 지원하려 했던 겅제정책 차관)


요청하지만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차관 거절을 하게 됩니다


 


미국이 장면내각에게는 관련 경제정책에 대해 차관지급 예정이었는데


왜 박정희 에겐 거절을 했을까요?


여러가지 있겠지만 2개만 적자면


 


1. 박정희의 출신 즉  여순반란사건으로 인해 남로당 인물로 밝혀지면서 사형선고를 받은적이 있었죠


    (당시 한국군 소령 / 정보참모)


 


   자신의 친구들과 선후배등 300여명의 정보를 넘기고 


   남로당조직도를 불어 목숨은 건지게 됩니다 (만주군관학교 선배인 백선엽 힘이 컸죠)


 


   이런 출신성분과 CIA 한국지부의 정보를 통해 미국은


   박정희의 공산주의를 의심하게 되며


   한동안은 박정희를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로 감시합니다


   오죽하면5.16의 주체가 박정희 란걸 알고 김일성이가 좋아했을까요..


 


   이런 미국의 의심을 종식시키기 위해 박정희는


   극악의 반공정책을 펼치게 되며 이로 인해 수 많은 피해자분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2. 박정희의 경제정책에는 뉴딜과 더불어 중공업정책이 있습니다


 


    60년대 초반 한국 현실에 중공업이 왠말이냐 경공업부터 육성해라


    라는 미국 이였습니다


    장면내각에선 국책사업과 더불어 경공업산업을 위한 공장설립에 주목적을 두고 있어


    미국의 코드에 맞아 차관지원을 약속했던 것 이였습니다


    하지만 박정희와 경제정책코드가 안맞으니 차관은 없던걸로 되었던거죠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박정희의 최초 베트남파병 제의는 1961년 케네디와 정상회담 이였습니다


 


이걸 가지고 통킹만 사건이 언제인데 61년에 파병을 한단 소릴 하냐 하는 댓글 단 분이 그러시는데


 


베트남은 열강의 대상만 바뀔분이지


1946년 프랑스침공 부터 1979년 중공침략저지 까지 30년 넘게 계속 전쟁 중 이였습니다


 


 


어쨋든


미국에 차관을 거절당한 박정희정부? (에잇 그냥 박정희정부로 적을게요)


다음으로 서독을 찾아가게 됩니다


 


박정희의 존경하는 스승님이 있고 잘난 친구들이 있는 일본이 아니고 왜 서독일까요?


 


일본은 아직 국교가 수립되기 전 이라


공적인 개발자금을 빌리는게 부담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독을 다음 차관협상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1. 당시 동독이 북한에 경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하고 있었음


2. 같은 분단국가의 정서이용


3. 라인강의 기적으로 인한 경제부흥기 (당시 세계 3위의 경제대국)


capture-20170324-192546.png



박정희정부의 차관교섭 사절단은1961 11월 서독을 찾아가


4천만달러의 차관을 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국제신용도가 낮았던 우리에게 서독은 지급보증을 요청하게 되죠


 


특별하게 지급보증 방법을 만들수 없던 상황에


우리사절단의 일원인 백영훈 교수가 한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를 서독에 보내 일을 시키고 서독은 차관의 지급보증으로


 우리 노동자들의 급여를 담보로 하면 어떨까요"


 


서독정부는 지급보증 방법에 응하였으며


한국측에 광부와 간호사를 요청하게 됩니다


 


1962년 서독과 경제협력의정서가 체결되어 최종적으로 차관제공 합의가 되어지며


1964년 박정희내외의 독일 방문간 서독과 경제협력협정이 체결되어지게 됩니다


이 협정 체결 후 차관금액 중1차분인 약 1 6천만 마르크(당시 서독통화)를 받게 됩니다


 


즉 박정희 때 최초 차관협상은1961년 이지만


차관금액등의 세부조항 조율은1962년에


경제협력의정서로 정리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1963년 말 1차 노동자 파견이 있었으며


1964년 박정희 내외의 서독방문을 하여 체결한 경제협력협정으로


전체 차관금액 중 1차 지급분을 받게 됩니다


 


 


1963년 부터 정부는 서독으로 파견되는 광부와 간호사들을


대대적으로 모집합니다


그런데 경쟁률이 엄청났습니다


당시 일자리가 없어 허덕이던 당시


국내 임금의 7~8배를 준다는 말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던 겁니다


capture-20170324-193843.png



광부는 5천명 모집에 4만명 이상 몰려들었고


간호사는 2천명 모집에 2만명 이상 몰려들었습니다


 


대략 10 : 1 의 경쟁률 이었습니다


 


참고로 64년도 1인당 소득은


서독이 1,773달러 / 한국은 77달러 였습니다


capture-20170324-194302.png



1964 1인당 소득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현지 서독인에 비해 1/3 밖에 안되지만


우리에겐 반년치 임금보다 많았던게 현실이었습니다


 


정부는 모집 대상자를 2년 이상의 광부경력을 가진 사람으로 제한했지만


실제로는 육체노동이라고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대졸자들이 가짜 서류를 만들어와 대거 끼어들기도 했었습니다



capture-20170324-194724.png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 Voglio che tu sia Felice ♡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아날로그 17-03-26 07:27
   
술이 좀 깼는지 다시 읽어보니 오해가 있었네요......
희아루 17-03-26 15:11
   
여전히 어디서 카더라 하는걸 보고와서 사실인양 이야기하는듯 ㅎㅎ
밑에도 썼지만..
남베트남의 군사력은 병력이나 장비모두 북베트남보다 월등했음.
문제는 베트남 대통령인 고딘디엠인데..
이새퀴가 천주교도라고 소수의 천주교도들만 등용하고 대다수 불교도인 국민들은 핍박했음.
나아가 친인척을 국가요직에 두는등 극단적으로 부패하고.
즉, 군사력의 불균형 문제가 아니라 베트남 내부 정치문제가 심각했던거임.
이런상황에서 무슨 파병을 댓가로 차관이야기가 오감? ㅋㅋ
베트남 파병을 정부차원에서 논의한건 이승만때 고딘디엠이 방한하여 특수전부대 파병을 제안하고 이승만이 오케이한것이 전부이구만.
단 이것도 516터지면서 없던일이됨.

파독광부 월급담보설은 백영훈1인의 주장일뿐임.
실제로 차관은 61년 합의되었고..
파독광부는 63년 간호사는 66년 나감..
문서로 된것도 없고 설사 구두합의라고 해도 담보물이 나중에 제공되남? ㅋㅋ
파독광부가 나가게 된것은..
일본이 독일과의 동맹관계로 인해 40년대부터 독일에 광부들을 보냈는데..
6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가 부흥하자 64년경에 이르면 파독광부를 전원철수시키고 그 자리를 한국인이 대신한거임.
이걸 무슨 사지로 내몰듯 지껄이는데 헛소리인거임.
물론 그렇다고 이것이 좋은 일자리라곤 말하기 힘든게..
우리가 파병한 월남전 사망자보다 비율보다 파독광부 사망자비율이 높으니까..
그렇다고 남이 하기 싫은거 억지로 떠맡았다는식은 개솔임.
     
촌팅이 17-03-26 20:13
   
써줘도 뭔 헛소릴 아직 지껄이는지? 
관련 내가 준 언론보도링크는 보고 이러는건지?
하긴 언론보도를 개인의 창작글로 이해하는 사람이니 뭔들 이해하겠나
          
희아루 17-03-26 21:09
   
촌팅이 17-03-26 21:25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엽네

http://contents.archives.go.kr/next/archive/viewArchiveDetail.do?archive_event_id=0024912193
옛다 국가기록원에 나오는 박정희와 케네디 정상회담 내용이다
베트남 파병제안이 있는지 없는지 봐라

당시 서독차관협상단 중 일원인 백영훈 교수의 회고다 이것도 봐라 이눔앜ㅋㅋㅋ
http://cafe.daum.net/i-stay/Wsrn/2?q=%B9%DA%C1%A4%C8%F1%20%BC%AD%B5%B6%C2%F7%B0%FC

박정희 재건위원장과 케네디의 정삼회담은 1961년 11월
미국정상회담 후 1961년 11월 말 차관교섭사절단 서독에 파견
1962년 3월 차관금액과 일시등을 조정한 경제협력의정서 합의
1963년 12월 경제협력의정서 이행을 위한 1차 광부단 파견
1964년 12월 6일 박정희내외 서독방문 및 경제협력의정서를 바탕으로 한 경제협력협정 조인
1964년 12월 7일 전체 차관 중 1차 차관 지급

시대정리가 도통 안되냐? 머리가 나쁘면 종이에 써서 정리라도 해봐라 이눔아

이제 그만 상대하련다 시간 아깝다

그리고 좀 병x 인증 그만해라
     
희아루 17-03-27 16:32
   
한글 독해력이 떨어지는 짱개인가? 기사를 링크해도 헛소릴 하네. ㅎㅎ
위에 써놨자나 61년 7월 차관협상하고 12월 차관협상 조인된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105060032920101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1-05-06&officeId=00032&pageNo=1&printNo=4701&publishType=00020
그리고 이미 61년5월부터 한국광부는 서독에 나갔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1050600209101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1-05-06&officeId=00020&pageNo=1&printNo=12083&publishType=00010
같은달 이미 서독에게 광산채굴과 관련한 협정을 인식하고 있고..

이 같은 케이스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게 아니고..
이승만때 이미 서독이 우리나라에 제철소를 건설하는등 꾸준히 경제협력이 진행중이었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309280032920701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3-09-28&officeId=00032&pageNo=7&printNo=5517&publishType=00020
파견광부 360명으로 결정.
이들이 받을 총 급여가 3년간 200만불밖엔 안되는데.. 이걸로 어떻게 담보가 되냐 ㅋ

한국어 더 배우고 와서 댓글 싸질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