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국내에선 이들의 파견을
탄광지식을 배우기 위한 파견이라 홍보 했습니다
아무래도 외화벌러 간다 하는게 자랑스런 분위기는 아니였었나 봐요
간호사들은 3년후인 1966년 부터 파독 되었습니다
이들이 했던 일은 비교적 고된 일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낯선 환경속에서도
성실하게 업무를 잘 수행했기 때문에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이후의 인력파견은
광부들보다는 간호사들이 주가 되어
1977년까지 서독으로 8천여명의 광부를 파견한데 비해
간호사들은
1만1천여명을
파견하게 됩니다
1964년 12월
박정희 내외는
열흘간 서독을 방문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
유럽을 방문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였습니다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는
히틀러가 1933년
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총연장 4천km 의 아우토반에 유독 깊은 관심을 보여
아우토반을 달리는 도중 두 차례나 차를 세워
이것저것 살펴 보았다 합니다
이 아우토반이 후에 경부고속도로의 구상이 되지만
경부고속도로 설계의 기반은 이탈리아의 아우토스트라다 였습니다
박정희내외는
한국광부들이 일하고 있는 루르 지방의 탄광을 방문
만찬을 베풀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 에피소드들이 몇개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서독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은
우리 특유의 성실함으로 대부분 평가가 좋아 계약이 연장되었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서독으로부터7,500만 달러를 추가로 빌려올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파독노동자들의 송금액이 절정에 이를때는
국내GNP의 2%를 차지하기도 했었습니다
한국 경제성장의 밑거름은 바로 이러한 국민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댓가이지
박정희 때문이 아니란걸 말하고 싶습니다
말이 나와 잠깐 이야기를 해보자면
고도 성장기 한국의 경제성장은 과연 누구의 덕 일까요?
간단하게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이렇습니다
경제성장률=기술증가률+자본증가률
기술증가률은 교육수준의 향상 에서
자본증가률은 자금의 증가 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입니다
그냥 표현 해보자면
돈을 벌기위해 장사를 하고자 한다면
교육수준(능력)이 좋고 목돈(자금)이
많을수록 유리한건 당연.
국가경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당시 경제성장의 중요한 원인은
교육과 저축 그리고 외화를 높인 요인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누가 높여줬을까요?
이승만? 박정희? 모두 땡 입니다
이건 어떤 누군가가 높인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고취된 평등의식으로 교육열이 높아졌다 가 가장 근접한 정답입니다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교육열을 높였다 말씀하시는 분들 간혹 봤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높인건 맞다 보지만 그 교육내용에 문제가 있다
봅니다
교육내용들을 보자면
교육 또는 세뇌를 통해 온 국민의 삶을 획일적 국가목표에 종속시키려
했던
전체주의 방식이라 보여지기 때문 입니다
많은 예가 있겠지만
국가가 국민을 훈육해야 한다는 발상의 산물인 국민교육헌장 앞줄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남이사 뭔 사명을 띠고 태어나든 국가가 왠 간섭?
아니 국가가 뭔데 내가 세상에 나온 목적을 민족중흥 이라 하는거임?ㅋㅋㅋㅋㅋ
국가의 목표가 민족중흥 이니 각 개인의 목표도 민족중흥 이다
라는 이 멋진 문장
국가가 최우선이고 국가를 위해 애국이란 명목으로 개인은 희생되어도
된다
왠지 낯설지 않은 문장 아닌가요? 태극기 집회에서 인용되어지는 많은 주장의 근거입니다
박정희 당시 교육내용을 아시는 분들은
태극기집회에서의 주장들을 이해할수 있답니다
지금은 국민이 국가이고 대통령은 국민이 임명도 하고 맘에 안들면
자를수도 있는 임시공무원 이지만
박정희 당시 교육 받은 적지 않은 수의 분들은 완벽하게 반대로
생각을 하고 계시죠
교육내용에 따라 세대간/계층간의
격차가 이렇게 벌어질수 있구나 생각듭니다
교육은 참 중요합니다
그러니 결코 박근혜가 아버지에게 헌정 할 국정교과서를 받아들일수
없겠죠
본론으로 돌아와서
저축률은 누가 높여줬을까요?
이것 역시
높아진 계기는 누구 땜이 아니라
고도성장 시절 우리나라는
저축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수 없을 만큼
복지시스템이 부족했기 때문에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 저축을 해야 했던 것 입니다
(저축률 상승에 따른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만
분명 누구땜에 상승한건 아닙니다)
외화의 경우도
파독 노동자와 월남참전 군인과 노동자들
그리고 1차석유
파동 후 중동특수에 파견된 노동자들의
피땀 흘린 댓가로 얻어진 것이지
교육,저축과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인의 공이 될수 없는겁니다
자고로 경제가 누구 때문에 발전했다
누구때문에 이만큼 산다는 논리는
전세계에 오직 한국일부계층과 북한에만 있으며
이번 박근혜게이트를 통해 다시금 적나라하게 들어났죠... 난 인터넷으로 보면서 북한인줄 알았다능ㅋㅋㅋ
다시 파독노동자들 이야기로 돌아와
당시 파독광부와 간호사 일을 주관했던
이기홍 경제기획원장의 회고 중 일부 입니다
한가지 흥미 있는 사실이 있다15년 후에야 할게 된건데
탄광갱도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가짜 광부들이
서독에서 오히려 성공적으로 적응을 했고
정작 진짜 광부들은 서독 탄광에서 요구하는
현대식 생산방식을 습득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많았고
상당수의 광부들이 신경성 장애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 대학출신의 가짜광부들은
광산현장에만 적응한 것 이 아니라
계약을 끝낸 다음에도 독일 각지에 흩어져
상점경영 이나 기술자 등으로 성공하였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캐나다에 진출하였다
교육의 레벨이나 겉치례가 아닌 중요성을 보는 내용인것 같습니다
전 어릴 때 교육의 중요성을 똥으로 봐서 그런지
지금 유럽에서 12년째 살면서 아직도 문화나 경제시스템에 어설퍼
고생많이 하고 있습니다 ㅠ
그런데 이들 관련 아주 조금은 서글픈
역사도 존재는 합니다
서독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은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는 점 입니다
비록 현지에서
인종차별을 받고 살지언정
(지금도 유럽은 예상외로 존재합니다 제가 사는곳에선 이들을 라찌스타 라 합니다)
가난한 고국으로는
돌아가기 싫었던 겁니다
돌아가지 않는 이들은
간호사의 경우가 유독 심해서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교포가 되기를 자청했으며
광부들은 60% 정도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중 1/3은
이후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선진문물에 동화되어 삶의 터전을 바꾼 분들은 본인의 자의적 선택이니
후회 없겠지만
고국의 현실에 어쩔수없이 낯선 이국 땅에 남은 삶을 보내기로
한 분들은
그 심정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