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1&nNewsNumb=20161222516&nidx=22517
1987년 대선 과정에서 여론조사의 중요성에 눈을 뜬 YS는 김현철씨에게 여론조사기관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다. 김현철씨는 중앙조사연구소를 만들었다. 3당 합당 후 민자당 공식조직을 믿지 않았던 YS는 아들에게 사조직을 만들도록 했다. 김현철씨는 중앙조사연구소를 민주사회연구소로 확대 개편했다. 그는 제14대 대선을 앞둔 1992년 6월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를 만들었다. YS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대통령의 아들에게 힘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한자리하려는 사람들은 돈이나 이력서를 싸들고 김현철씨를 찾았다. 사람들은 그를 ‘소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거산(巨山·YS의 아호)에 빗대 그를 ‘소산(小山)’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박관용 비서실장, 박상범 경호실장 등이 우려의 뜻을 표했지만, 오히려 자리에서 밀려났다. 안기부 기획조정실장, 사정비서관, 민정비서관 등 요소에 그의 사람들이 들어앉았다. 대통령에게 올라가기에 앞서 소산의 앞에 정보가 올라왔다. 안기부장이 그에게 보고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들은 공식적인 정보라인에 앞서 아버지인 대통령에게 정보를 올릴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똑똑하고 기특하다고 여겼다. 1997년 김현철씨의 비뇨기과 상담의인 박경식씨가, 김현철씨가 YTN 사장선임과 관련해 청와대 인사와 통화하는 장면과 내용이 담긴 비디오를 공개하면서 소산의 국정농단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후 한보사건 등이 터지면서 소산은 급전직하, 김현철씨는 기업인 6명으로부터 66억여 원을 받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징역 3년에 벌금 14억4000만원, 추징금 5억242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현철씨는 2005년에는 17대 총선을 앞두고 불법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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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생각보다는 학습능력이 나쁜 종(種)인지도 모른다. 김현철씨의 국정농단을 보고서도 다음 정권에서 아무 교훈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현철씨 사건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았던 1997년 대선을 치르면서 ‘대통령 친·인척 부당행위 금지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집권 후에는 친가는 8촌까지, 외가는 4촌까지 관리했다. 하지만 그는 재임 중 아들 세 명을 모두 감옥에 보내는 비운을 겪었다.
큰아들 김홍일(金弘一)씨는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2005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억5000만원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차남 김홍업(金弘業)씨에게도 각종 이권청탁이 몰렸는데, ‘100% 해결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이용호·진승호 게이트 등과 관련, 각종 이권 청탁과 함께 47억원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벌금 4억원, 추징금 2억6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막내인 김홍걸씨는 고려대 불문과를 나와 미국 UCLA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 시절 최규선씨로부터 돈 3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둘다 남자 최순실이네요.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