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어떤 커뮤니티에서 내가 쓴 글의 호칭을 놓고 “왜 김정숙 여사가 아니라 김정숙씨인가”라는 논쟁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내가 다니는 오마이뉴스는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그의 부인은 ‘김윤옥씨’로 썼다.
8,9년 전에 편집국의 내부 논의를 거쳐 격론 끝에 정해진 회사의 정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누리당 사람들로부터 “왜 영부인이나 여사로 쓰지 않냐?”는 항의를 받은 기억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사’ 호칭이 붙을 만한 가족이 없으니 별 문제 없었는데, 배우자 있는 대통령,
특히 임기 초반 인기있는 대통령 부인이 나오면 이 문제를 따질 분이 나올 것으로 예상은 했다.
사실 나도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할까?’를 놓고 기사를 쓰기 전에 주말당직 근무하는 편집기자와 상의를 했다.
(토요일에 쉬는 간부들 흔들어깨워서 온라인 회의를 소집할 수도 없는 노릇).
결론은 “일단은 그대로 가자”는 것이었다.
대통령 부인을 영부인으로 부르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에는 포괄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니 패스.
‘여사’에 대해서는 “여사도 전근대적 용어다”와 “그래도 대통령 부인에게 ‘씨’는 너무 가볍다”로 나뉘는 느낌.
지금부터는 개인적으로 정리한 의견.
영어권 국가에는 ‘대통령 부인’을 지칭하는 표현 자체가 없는 것으로 안다.
대통령 부인에 대한 적절한 호칭을 찾아주려는 시도 자체가 서열이나 의전을 중시하는 동양적인 사고방식의 발현은 아닌가 우려된다.
아무런 공직이나 사회적 직책이 없는 사람을 ‘~씨’라고 부르거나, 혹은 내가 그렇게 불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누군가 나를 부를 때도 ‘반장님’, ‘팀장님’, ‘부장님’ 별의별 호칭이 다 나오지만, 그냥 ‘기자님’ 또는 ‘손 기자’라고 불러줄 때가 가장 흡족하다.
회사 내에서는 나를 ‘손병관씨’라고 부르는 상급자가 있지만, 그들이 날 하대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작은 적폐 중 하나가 ‘호칭 인플레’라고 생각한다.
동네 구멍가게를 해도 사장님으로 불러줘야 직성이 풀리고,
신입사원이 영업을 나가도 ‘대리’나 ‘과장’ 명함이 붙어야 거래처로부터 무시를 안 당하는 풍토.
전직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권양숙님(기사가 아니니 이렇게 부르겠다)은 재단 이사장이라도 하니 ‘이사장’이라는 직책을 붙인다.
그렇다고 김정숙님이 전두환 부인 이순자씨처럼 재임 중에 ‘새세대심장재단’ 같은 걸 만들어 이사장으로 취임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제목의 ‘문재인 부부’도 그렇다.
아직 취임 초라서 대통령 된 분의 이름을 더 각인시키는 게 낫다는 판단에 ‘대통령 부부’ 대신 ‘문재인 부부’라고 썼다.
대통령의 권위나 그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은 이런 자잘한 호칭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업데이트) 몇몇 분이 '김윤옥 여사'로 표기된 기사를 링크해줌. 맞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후보 시절에 그랬고, 집권 초에도 그랬다.
그러나 병기할 수 없고, 통일할 필요가 있어서 그리 했다.
오마이뉴스가 제휴한 연합뉴스는 사진설명을 '여사'로 뽑는데, 편집자의 실수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겠다.
그렇다고해서 회사 방침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는 과도한 비판이다.
100건을 잘하려해도 1,2건 실수가 나오는 것이 인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기대를 하지만 정부나 정치인 일이 완벽할 수 없다. 언론사 사정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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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주관이 뚜렸해서 저얼대로 신념을 굽히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