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북괴남침설’ 악용
5. 10. 당시 중앙정보부 2차장 김영선은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짙다는 ‘북괴남침설’ 첩보를 일본 내각조사실로부터 입수하여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
에게 보고했다. 이날 입수된 첩보는 다음과 같다.
“북한은 한국 정부가 80. 4.
중순경에 김재규를 처형할 것으로 예상을 하고, 김재규 처형시에는 항의데모
사태가 발생을 해서 남침을 위한 결정적 시기가 조성될 것으로 판단하여 남침
시기를 4월 중순경으로 예상을 하였으나, 김재규의 처형이 지연됨에 따라서 이
를 연기하여 오던 중에 80. 5. 들어 학생과 근로자의 소요사태가 격화되자 한국
내 소요사태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80. 5. 15.부터 5. 20. 사이에 남
침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5. 10.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에서는 ‘북한남침설’ 정보는 북한의 일반
적 남침 가능성을 제기한 것에 불과하고, 이 같은 첩보가 가치 없다고 결론 내
렸다. 다음은 육군본부 정보참모부가 5. 10. 작성한 북괴남침설 분석이다.
위의 문건에서 보듯이 육본은 대북특이동향에 대해 충분히 검토를 한 뒤 그
러한 첩보들이 근거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판단이 육군본부 수
뇌부에 여러 차례 보고됐기 때문에 5. 12. 계엄사 일반참모부회의에서 황영시
육군참모차창 겸 계엄사 부사령관은 “북괴가 남침준비를 위해 병력전개를 완료하였다는 일본의 첩보는 벌써 6회나 거짓말을 하고도 체면이 선다는 것인가? 혹시 그들의 고등술책일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우리 위원회는 당시 북한이 실제로 남침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문제는 육군본부에서는 북한의 남침 준비 완료라는 첩보의 신빙성이 없
다고 판단했음에도 신군부 세력은 ‘북괴남침설’, 그리고 이와 연계된 소요를 근
거로 ‘국가위기’ 상황을 조장하며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확대시켰다는 사실
이다. 북한 동향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육군본부 정보참보부에서 신빙성 없
는 것으로 판단한 대북 첩보를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 획득을 위해 활용한 것
이다.
5. 12. 임시국무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정부장 서리
와 중정 담당국장이 북괴남침설 분석 결과 를 보고했으며, 군과 경찰에는 “최
근 국내 소요사태 발생에 편승하여 북괴의 대남도발 침투가 예상된다”며 비상
경계체제 돌입령이 시달됐다.
(생략)
‘12․12’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자신들을 견제하려 했던 정
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하극상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군 지휘권을 장
악한 신군부는 자신들에 반대했던 인사들을 구속하거나 강제 전역시켰으며,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세력은 인사법 등을 무시하고 진급을 했으며, 이
사건이 전시나 국가비상사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12․12’에 공이 있는
인사들에게는 상훈법을 무시하고 법에 근거하지 않는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군 지휘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 5. 초순경부터 사회불안을 이유로 내세우
며 군의 정치개입을 계획했다. 특히 중앙정보부는 4단계 학원대책방향을 마련
하여 5. 7. 이전 학원시위가 불순분자들에 의한 반정부 시위로 전환되고 있다
며 5. 17.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고자 했으며, 신군부세력도 이와 유사한 대책을
마련하여 5. 17. 군의 투입을 시사했다.
신군부세력은 이러한 계획을 바탕으로
5월 초순부터 11공수여단 등 군대를 이동시켰다. 신군부와 중정은 남북 대치상
황을 이용하여, 북한군의 특별한 움직임이나 남침 징후에 관한 신빙성에 의문
이 제기되는 첩보를 바탕으로, 북한의 남침이 예상된다면 심야 국무회의까지
개최했다. 육군본부 정보참모부는 이 첩보들이 신빙성이 없으며 남침설은 근
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신군부는 이 첩보를 비상계엄 확대조치 단행
에 이용했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는 계엄확대 조치를 예상하며 군대 이동을
단행했다. 보안사도 ‘시국수습안’을 작성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예비검속자 명단을 작성했다. 5. 17.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는 ‘국가위기’라는 명분 아래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통한 군의 정치개입이 결정됐다.
출처 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