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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25 09:24
[종합]팀 셔록 "5·18 집단발포 명령, 미국 알고도 묵인"
 글쓴이 : 바람의노래
조회 : 765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5·18 당시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광주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를 자행한 1980년 5월21일, 미국이 발포 명령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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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미국 정부의 5·18민주화운동 기밀문서를 공개한 미국 저널리스트 팀 셔록(66)이 24일 오후 광주시청 5층 브리핑룸에서 '1979~1980년 미국 정부 기밀문서 연구 결과 설명회'를 열고 1980년 5·18 당시 전두환 등 신군부가 미국 쪽에 터무니없는 거짓 정보를 흘려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려 했던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2017.05.24. guggy@newsis.com

미국 정부의 5·18민주화운동 기밀문서를 공개한 미국 저널리스트 팀 셔록(66)은 24일 오후 광주시청 5층 브리핑룸에서 '1979~1980년 미국 정부 기밀문서 연구 결과 설명회'를 열었다.

팀 셔록은 지난 4월10일부터 광주에 머물면서 그가 기증한 3500쪽 분량의 미 정부의 기밀문서 분석 작업을 해왔다.

그는 5·18 당시 미 국무부와 주한 미 대사관이 주고받은 비밀전보를 1996년 공개해 5·18의 숨겨졌던 진실을 규명하고 미국 정부의 역할을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팀 셔록은 1980년 5월21일 미국 국방정보국이 작성한 '광주상황'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공개했다.

문서에는 '공수여단은 만약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나 그들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여겨지는 상황이면 발포할 수 있는 권한을 승인받았다'고 적혀 있다.

팀셔록은 "미국이 1980년 5월21일 도청 앞 집단발포 당일, 발포 명령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도 이를 묵인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당시 확보했던 기밀 문서의 내용 대부분이 가려져 있다"며 "이 자료만으로는 발포 명령자를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미국이 반미감정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등 5·18 진행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묵인·방조한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 '광주상황' 보고서에는 '5월21일 18시30분 광주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음', '5월21일 16시, 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시각 광주지역 전화가 두절됨. 아마도 군 당국에 의한 것으로 추측됨', '5월21일 19시30분 이번 사태로 반미 분위기가 고조'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대해 팀 셔록은 "1979년부터 1985년까지 미국은 한국의 정보원을 통해 모든 정보를 받고 있었으며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며 "1980년 5월21일부터 22일 사이 광주 상황을 매 시간 별로 보고받고 있었다. 그 보고에는 무기탈취와 시민들의 반격, 시민군의 무기반납 시각까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모든 정보에도 미국은 1980년 5월22일 백악관 회의에서 항쟁을 끝내기 위해 군부대(20사단 60연대)를 사용하도록 결정했다"며 "이는 미국의 책임이다. 개인적으로 이 결정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최악의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 정부는 광주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전두환과 쿠데타 지도자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라며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미국이 훨씬 더 나쁜 짓을 했다"고 덧붙였다.

전두환 등 신군부가 미국에 거짓 정보를 흘려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려 했던 사실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1980년 5월27일 작성된 '미국 국방부 정보보고서'에는 '군중들이 쇠파이프, 몽둥이를 들고 각 집을 돌며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면 집에 불 질러 버리겠다고 위협하고, 폭도들이 초등학생들까지 동원하기 위해 강제로 차에 태워 길거리로 끌고나왔다'고 적혀 있다. 이 보고서는 신군부가 한미연합사의 미국 쪽 군사정보통에게 제공한 정보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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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미국 정부의 5·18민주화운동 기밀문서를 공개한 미국 저널리스트 팀 셔록(66)이 24일 오후 광주시청 5층 브리핑룸에서 '1979~1980년 미국 정부 기밀문서 연구 결과 설명회'를 열고 1980년 5·18 당시 전두환 등 신군부가 미국 쪽에 터무니없는 거짓 정보를 흘려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려 했던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2017.05.24. guggy@newsis.com

'광주상황' 보고서에는 '폭도'라는 단어가 수 차례 나오며 '폭도들은 인질을 붙잡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몇 명의 도청 공무원들도 포함돼 있다'고 적혀 있다.

신군부는 또 보고서를 통해 '폭도들이 전투경찰에게 무차별 사격,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시민들에게조차 쏘아댐', '군중을 향해 쏠 기관총을 설치함', '군중들 교도소 공격', '300명의 좌익수 수감돼 있음', '폭도들이 지하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일었음' 등 5·18 광주를 마치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인 것처럼 몰아갔다.

팀 셔록은 "신군부가 5·18 당시 시민들의 자발적 시위 참여를 공산주의자들의 방식으로 강제 동원이 이뤄졌다고 왜곡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른 문서에는 북한 요원이 서울 시민으로 둔갑해 서울역에서 잡힌 것으로 (허위)보고됐다"며 "이러한 신군부의 보고는 북한군 개입을 통해 미국 정부를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5·18연구자는 "5월27일 도청이 진압된 뒤 폭도들 수백 명이 무등산 기슭으로 도망가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도청 앞 광장에서 폭도들이 인민재판을 열어 사람들을 처형하고 있다는 등 신군부가 만들어퍼트린 소문이 마치 광주 시위가 공산주의자 또는 북한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어 "이를 통해 미국이 '즉각 소탕해야 한다'는 신군부의 논리를 강화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팀 셔록은 30년이 지나 이미 기밀이 해제된 미국측 문서를 정보공개법에 의해 요청, 이를 분석해 5·18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팀 셔록은 "1996년 비밀 해제된 문서를 받았을 때 공백이 많았다. 당시 CIA의 판단이 들어있거나 정보원에 대한 정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중요한 문서가 이미 폐기됐거나 왜곡된 상태다. 이를 보완할 중요한 문서가 미국에 남아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30년이 지났기 때문에 광주시나 문재인 정부가 요청한다면 이 자료가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인으로서 죄송하다. 미국의 결정에 대해 죄송하다"며 "당시 미국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광주에서 지내는 동안 다양한 사람, 광주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광주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며 "한미관계는 긴밀한 우호관계로서 이러한 문서에 대한 인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524_0014916678&cID=10201&pID=10200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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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1004 17-05-25 09:33
   
애초에 미국이 알아조 저 상황에서 껴들어 봤자 멀 하것음 어차피  남의 나라일임 미국이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Flytothe문 17-05-25 09:56
   
당시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위상은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절망적이었슴.
특히 70년대 말까지는 북한의 국제적 위상이 대한민국의 국제적위상보다 비슷하거나 높은 상황이었슴. 그때는 대한민국이나 북한이나 모두 UN에 가입되지도 못했던 때였으며, UN에서의 입장전달을 미국에 가장크게 의지했었고, 외교역시 미국에 가장 크게 의지하고 있었음.
고로, 1980년에 미국이 개입해서 들어왔다면 전두환은 광주에 무력행사를 멈추었을것으로 보임.
그전에 미국이 한국의 내정을 간섭한 적이 없었다면 몰라도 미국은 한국내정을 수시로 간섭했었음.
          
하이1004 17-05-25 10:10
   
결국에는 미국도 자국의 이득으로 움직이는데 저 상황에서 껴들어 봤자 남는게 그다지 없었을거라는..
     
끝판왕 17-05-25 10:11
   
당시의 우리나라 식자들은 미국을 정의의 사도로 생각 했었음.
특히나 젊은 식자,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은 그 정도가 아주 심했음.
'우리가 독재자에 대항해서 민주주의 운동을 하면 반드시 미국이 도와줄거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
ㅣㅏㅏ 17-05-25 09:35
   
적어도 개늠들의 518폄하(폭동이라는)가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는 됨.
끝판왕 17-05-25 10:09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대부분의 운동가들은 미국이 도와 줄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광주민주화운동이 지나고 난 뒤,
실상을 파보니 미국은 한국의 민주화나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국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죠.
전대갈을 밀어준 심증이 곳곳에서 나타난 겁니다.
그래서 당시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들중 일부가 미국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면서 뜬금없이 터진게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방화 사건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오히려 미국이 자국의 이익에 위배된다며 반대한다는 시각이 생겨버린거죠.
그 후에 민주화운동 세력중 일부는 반미가 되고 '우리식 민주주의' 를 내세우는 다까끼마사오와 전대갈의
오마쥬 내지는 조롱으로 주사파가 됩니다.

NL/주사파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미국이 자국의 이익때문에 반대하니 먼저 외세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구요,
PD/민중파는 재벌과 같은 기득권 자본가가 민중을 억압하고 자신의 기득권에 천착해서 민주화를
반대하니, 그 문제부터 처리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100%는 아니지만 대충 그렇습니다.
줄리엣 17-05-25 10:33
   
햐~~~~ 미국시키들도 믿을거 못되네요. 평생을 전략적 인내 (그냥 가만히 있는것?? ) 우리나라에는 석유가 안나오니까 저러지 않았을까 .. 싶네요. 아무것도 없길 다행이지 뭐라도 돈될것 있었다면 강대국들 사이에서 한국이고 북한이고 지금 흔적도 없을듯 ㅎㄷㄷ
     
달의뒷면 17-05-25 11:00
   
미국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고.국제관계에선 특히 꽁짜란 없지요
NightEast 17-05-25 12:15
   
미국이 저러는거 한두번이 아니죠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수장이라면서 정작 지들 동맹국들은 지네가 다루기 쉬운 독재정권들로 지원하고
재대로 민주주의절차 밟아서 재대로 민주주의하며 룰대로 하려는 정권은 죄다 두들겨패버림
중남미쪽이 괜히 반미성향이 생긴게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