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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24 13:08
이집트 빠돌이를 위한 우리 문화의 정수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2,688  

 
평양 대동강면 석암리 9호분에서 발굴된 열국시대 금제교구(황금허리띠 버클)
 
 
 
 
경주 보문동 부부총에서 촐토된 금제태환이식(황금 귀걸이)
 
아래는 좀더 확대된 사진
 
 
 
 
감은사 사리함의 사천왕상 가슴확대부분
 
 
 
 아래 보니 무슨 이집트 왕조 빠돌이같은 소릴 하는 사람이 있던데 그러면서
 
뭔 마냥 울나라보다 엄청 앞서니 이런 무식한 비슷한 소릴 이전글에서도 아
 
렇지 않게 하고 있는(국적불문으로 한글만 안다뿐이니 뭔 울나라 문화에
 
대해 제대로된 관심이나 배운게 있지도 않으니 ㅋ)
 
이집트 왕조야 당시 세계적으로 앞선 문명지중 하나였고 사람들 눈에 거대
 
거석문화의 결정체인 피라미드땜에 임팩트가 엄청 강해보일지 모르지만 애
 
들 실상 거석문화쪽에는 탁월한
 
건축술도 인정되고(고대 우리 고조선의 앞선 옥기,금속문화에선 더 낮
 
수준임) 기타 황금마스크나 관등이 당시 수준에서 나름 정교한건 인정되
 
그렇다고 뭔 당시 세공기술이고 삼국시대 울보다 훨씬 앞서니
 
이런 무식한 헛소리는 어디서 하지 말아야.(이런 거대 거석문화 자체도 당시
 
엄청난 노예사회의 폭군적 지배 체재의 생생한 증거임. 열도에서 백제 세
 
력의 군림으로 추측되는 세계최대급의 인덕왕릉도 그렇고 상고시대 고조선
 
선대 문명지인 발해만 일대의 거대 피라미드 양식부터 고구려도 이런 거석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것도 같은 맥락임)
 
 
 
 금알갱이나 금실선을 이용한 정교하고 화려한 세공기술을 누금세공법이라
 
하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절정으로 꽃을 피운 나라가 다름 아닌 삼국시대
 
울 나라였음.(이런 세공기술은 기본 mm 단위이기에 육안으로도 잘 확
 
인되지 않는 극미세공법입니다. 감은사 사리함의 경우 0.3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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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14-02-24 13:13
   
이집트는 시기상으로 더욱 오래되지 않았나요?
 그리고 " 노예적 사회의 폭군적 지배 체재의 생생한 증거임"이라고 하셧는데, .
지금보면 "국왕만세" "집에 돌아가 배불리 먹자" 등의 긍정적인 생각이 담긴 낙서가 발견 됬다고 압니다
     
굿잡스 14-02-24 13:17
   
투탄카멘의 황금마스크나 관등이 당시 3300년전임.(당연 삼국시대보다 앞서죠 ㅋ)

아래 뭔 이전부터 어글로글 올리는 양반이 마냥 삼국시대 울보다 더 앞서니

헛소리를 하길래 ㅋㅋ.  뭐 그런 낙서가 있다고 그 시대가 마냥 즐거웠을지는.

전체적으로보면 지금도 어려운 그런 난공사를 무리한 인력을 동원해서 특정 위정자의

권세를 뽑내려 한다는 자체가 한마디로 노동착취의 산증거죠. 이런건 거의 정복적

지배군림 사회에서 등장하는.
          
극작가 14-02-24 13:22
   
피라미드 건설은 농사일을 잠시 쉬는 장마철 4개월 동안을 중심으로 실시했다고 아는데요.
뭐 노동력착취라면 착취겠지요.  근데 복지하나는 잘 되었지요. 작업기간 동안에는 의복과 식사가 보장되기도 했고, 피라미드 건설은 공공사업적인 실업대책중 하나였다고 압니다.
               
굿잡스 14-02-24 13:58
   
이런게 당시 마냥 노예사회 어쩌고에 대한 반론적 다각도의 시각때문이긴 한데

그렇다고 그 현실이 마냥 편했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도 곤란합니다.


아래 글에서도 수원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지만 거중기도 등장하고

그정도 규모의 수원화성을 짓는데도 정조가 일반 백성에게 임금도 주고

춥다고 털모자에 장갑에 그리 지급해도

결국 힘든건 마찬가지였다는 ㅋ. 이땜에 몇년되자 힘들고 지치니 불평불만이 나올수

밖에 없었든 거죠.


피라미드의 경우 진짜 무슨 외계인이 짓으니 어쩌고 할 정도로 먼곳에서 석재를

가공해서 가져와야 하는 문제부터 그런 엄청난 크기를 쌓아올리는 것 하며..

이당시 현장을 책임지는 관리자나 일정 부분에서는 백성들이 부역으로 동원되고

임금도 받았을지 모르지만 (노예들은 밑바닥 진짜 힘든 일을 했겠죠)

그런 엄청난 대공사를 위해 쉬는 기간에 쉬지도 못하고

위험한 난공사에 동원되었다는 자체가 그때나 지금이나 켁켁일건

훤해 보이네요 ㅋ
     
삼촌왔따 14-02-24 13:18
   
근데...그당시에 글을아는사람은 감독관 이상되는 사람들아닌가요??
돌끌던 노예가 글을알리도없고...
          
굿잡스 14-02-24 13:22
   
그렇긴 하군요 ㅋ(요즘 개나 소나 낙서하지 과거 문자를 쓸줄 아는 자체가

나름 교육을 받은 엘리트 계층)
               
치면튄다 14-02-24 13:24
   
피라미드 내부에 남아있는 낙서들은
거기서 일하던 건설노예들이 남긴것들입니다
치면튄다 14-02-24 13:17
   
이집트는 노예제도가 있었어도
그노예가 누리는 혜택은 엄청 났다는걸 아셔야 합니다
역사 어딜 찾아봐도 이집트만한 노예복지가 잘된 나라는 없어요
인권부터 시작해서 보상까지 철저했던게 이집트임
최근 피라미드 건설당시 노예제도에서도 밝혀졌죠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는걸
     
굿잡스 14-02-24 13:21
   
그노예가 누리는 혜택은 엄청 났다는걸 아셔야 합니다 >??

와우~ 노예가 마냥 좋은 거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겠군요?(조선시대 울 나라 관노등도

복지제도 엄청 좋았는데 ㅋ)
          
치면튄다 14-02-24 13:27
   
적어도 피라미드건설에 동원된 노예들이
일반시민들 보다 대우가 좋고 보상이 컸다는건 사실이니까요
               
굿잡스 14-02-24 13:34
   
노예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군요??

그리 복지가 좋고 살기 편했다면 유태인노예들이 이집트를 왜 탈출하죠??
                    
치면튄다 14-02-24 13:36
   
그러게 말입니다
당시에도 유태인은 차별 받았겠죠
빙그레 14-02-24 13:22
   
이집트 문명이야 그 남긴 유적유물들이 전세계 여기저기 퍼져있고 과거 이를 강탈하기 위한 열강들의 경쟁이 피터지듯 벌어진바 있는 대단한 것들이라는건 익히알려진 사실 아닌가요? 이게 뭔 빠돌이하고 상관있다는 건지. 솔직히 열폭도 정도껏 하라능. 쇼비니즘도 적당히 해야 한마디씩 거들어주는거지 무슨..
     
굿잡스 14-02-24 13:24
   
아래 나X좀 이라는 양반한테나 하시죠 ㅋ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6&wr_id=73685&page=2
Ventifacts 14-02-24 13:24
   
얼마전에 이집트 피라미드가 노예가 아니라 인부였고 대우가 좋았다는 게시물들이 한창 있었는데
그거랑은 다른 얘긴가여?
     
굿잡스 14-02-24 13:39
   
뭐 그런 저런 설들이 있긴하더군요.(마치 울나라 수원화성을 짓을때 정조가 일반 백성들

에게 돈도 지급하고 춥다고 겨울옷도 하사하는 등.  거중기도 등장해서

축조시긴도 대폭 단축되었서도 백성들은 힘들고 몇년가니 불평불만이 터져나왔던).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에 당시 백성들만 동원되었다고는 생각되지는 않아 보이네요.

이들은 나름 정당한 댓가를 받았을 수도 있지만 노예들도 존재했을 것이고.

그리고 대체로 거대 건축물들은 어느 정도의 댓가 어쩌고 해도 백성에게는

한마디로 가혹한 부역이였기에 어떤 미화를 해도 결국 노동착취의 전형적 연장이죠.
나와나 14-02-24 13:47
   
신라가 한때 황금의 나라로 불렸었죠.
단순 정착민이 아니라 실크로드로 동서양을 드나들며 여기저기 본 게 많은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붙여진 이름인 만큼 우리의 금 세공기술이 세계 정상급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