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14살에 부모님을 차례로 잃고 홀로 친척집을 전전하다 16에 위안부로 끌려가셨다고, 40여 일을 걸어 돌아온 조국에선 시댁 반대로 옛 정혼자는 xx하고 애기도 5개월만에 잃으셨다고....그럼에도 받은 것 없는 세상에 선의와 정의를 돌려주고 가신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분. 먼길 편히 가시길...
전 세계에 일본군의 만행을 알렸던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91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생전 소원이라고 했는데, 끝내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영정 사진 속 김군자 할머니의 밝은 미소가 남은 이들에게 아픔을 더합니다.
향년 91세.
<녹취> 이용수(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 "저 하늘나라 가서 아픈 데 없이 훨훨 날아... 행복하고 어디서든지 행복해야돼."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중국 지린성 위안소로 끌려간 나이가 열 여섯살.
그 후 3년은 지옥과 다름없는 생활이었습니다.
7차례나 목숨을 끊으려고 했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되돌아온 일본군의 폭행 김 할머니는 왼쪽 청력을 잃은 채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겼던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일본군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렸고,
<녹취> 故 김군자 할머니(2007년 2월) : "죽으려고 했는데 죽질 못하고 주인한테 들켜서 더 죽을 뻔했어요."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강력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습니다.
<녹취> 故 김군자 할머니(2007년 2월) : "피해자는 우리인데, 정부가 그렇게 함부로 합의했습니까? 우린 인정 못해요."
유일한 소원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
배상금을 받게 되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할 생각이었습니다.
<인터뷰> 안신권(나눔의 집 소장) : "정도 많았고, 그렇지만 역사문제, 인권문제만큼은 확실하게 일본을 향해서 소리를 냈습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김 할머니의 별세로 살아계신 할머니는 37명으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이세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