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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02 20:16
영국군의 민간인 학살...
 글쓴이 : 추구남
조회 : 1,988  

기사 출처 : http://www.vop.co.kr/A00001184963.html



영국군의 민간인 학살 ‘바탕칼리’에 가다


나는 ‘영국의 미라이-바탕칼리’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통해서 바탕칼리 사건을 알게 되었다. 미라이 사건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인 최악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마을 사람들은 바탕칼리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자 눈물겨운 노력을 해왔다. 정착촌으로 강제이주 당한 뒤로 그들은 해마다 청명절이면 한데 모여 학살당한 사람들의 묘지를 손질하고 제사상을 차렸다. 바탕칼리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벌써 할머니들에게 바탕칼리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학살 기억의 전달이 바탕칼리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의 의무였다. 마을에 외지인이라도 찾아오면 바탕칼리 사건을 기록한 홍보물을 배포하고 바탕칼리 이야기를 했다. 혹시 자녀들이 대도시에 이주하면 바탕칼리 이야기를 언론사에 전달했다. 정부기관은 바탕칼리 사람들의 절규에 귀를 막지만, 세상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중략>


한국의 노근리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바탕칼리


바탕칼리 사건을 영국 언론은 미라이 사건에 빗대었지만, 유족회는 나에게 노근리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유족회는 바탕칼리 사건을 영국법원에 소송하기 전에 한국과 미국의 노근리 사건 협의과정을 상세히 조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시기 미군에 의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알려진 노근리 사건은 미군이 피난을 시켜준다며 영동읍 주곡리와 임계리 주민들을 부산방면으로 끌고 가다가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에 걸쳐 노근리 철로변과 굴다리에서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7월 25일 해질 무렵, 영동읍 주곡리와 임계리에 미군들이 들이닥쳐 "대구, 부산 방면으로 피난을 시켜주겠다"면서 마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집합시켰다. 남아 있으려는 사람들까지 강제로 모이게 했다. 약 5백 명이 미군들의 인솔로 서울-부산간 국도를 걸어서 남쪽으로 향했다. 그들이 2킬로미터 정도를 걸었을 때 영동읍 하가리에 이르렀고 한밤이 됐다. 바로 이 때 5기병연대장의 '즉각포위' 명령을 받은 2대대는 피난민들을 모두 도로 우측 하천바닥으로 끌고 가서 그 곳에서 밤을 보내도록 명령했다. 26일 아침부터 다시 남쪽으로 향한 피난민들은 정오경 미군들의 명령을 받고 영동읍 노근리 도로 변의 경부선 철로 위에 올라간다. 미군은 그들의 몸과 짐을 검사한 다음 무장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도 미군 비행기를 무전으로 불러 기관총으로 주민들을 살해했다. 그것이 바로 1차 학살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경부선 철로 밑과 터널 밑으로 들어가자 2차, 3차 학살이 계속됐다.


3일간 계속된 만행으로 135명이 숨을 거두고 47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것은 신원이 확인된 ‘공식’ 희생자일 뿐이고, 실제 희생자는 4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1년 1월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노근리사건 관련 성명서에서 ‘깊은 유감’(deeply regret)이란 표현을 했다. 바탕칼리 유족회는 노근리사건에 사과 대신 단순한 ‘유감’ 표현은 망자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노근리 사건에 대해 전쟁 범죄로 인정하지 않고 사과와 배상 아닌 유감 표명만을 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희생당한 노근리와 같은 60여건의 다른 민간인 학살은 조사조차 없이 덮여버렸다. 충북 영춘 곡계골 · 경남 마산 곡안리 · 경남 사천 조장리 · 황해남도 신천리, 이리역 포격 같은, 미군에 의해서 학살된 유가족들에게는 진상 규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바탕칼리 유족회는 노근리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영국의 눈치보기를 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법원에 사건을 소송하지 않고 식민지 정부 당사자인 영국법원에 소송하고 언론전을 펼쳤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법원은 바탕칼리 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하자는 영국언론과 시민단체의 여론을 무시하고 사건을 기각한다. 또한 바탕칼리 마을 사람들은 영국여왕에게 바탕칼리 해결을 위한 성명서와 만여 통의 청원서를 보내지만 영국왕실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유족회는 영국여왕과 영국 정부로부터 영국군의 범죄에 대해서 공식적인 사과를 받고 피해보상을 받아낼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했다. 현재 소송 준비 중인 유럽인권위원회마저도 바탕칼리 사건을 기각하면 국제전범재판소에도 영국군 범죄를 소송할 계획이다.


바캉칼리 유족회의 퀙변호사는 한국의 노근리처럼 사건을 흐지부지하게 해결하지 않고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고 다시는 이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고무농장에서 아버지의 학살 장면을 목격했던 당시 11살이었던 림할머니는 “그들에게 사과를 받지 못하면 우리 아버지가 저승다리를 건너지 못해”하면서 연신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는 영국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야만 아버지를 저승으로 보낼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할머니 생전에 영국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면, 할머니 딸과 손자가 소송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 눈치보기 하는 국가기관 때문에 사과를 받지 못한 것이 너무나 원통해서 구천을 헤매고 있는 노근리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바탕칼리 사람들의 도전과 용기가 부러웠다.


바탕칼리 사건은 영국군이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제1차 말레야 비상사태 시기에 말레이시아 정글에서 저질렀던 민간인 학살, 1968년부터 1989년까지 제2차 말레야 비상사태 시기의 말레이시아군이 저질렀던 민간인 학살, 1969년 5월 13일, 인종폭동으로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들을 위한 진상규명의 열쇠가 될 것이다. 바탕칼리 사건이 여론화되는 것을 말레이시아 정부 당국은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 영국군과 말레이시아 정부군이 저질렀던 수많은 민간인 학살의 증거는 정글 구석구석에 꼭꼭 숨겨져 있을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글에 남겨졌던 수많은 영혼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저승길에 오를 수 있도록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밀의 화원의 열쇠를 열어 달라고 외치고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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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남 17-08-02 20:18
   
영국법원은 무시하고 사건을 기각한다.
또한 바탕칼리 마을 사람들은 영국여왕에게 바탕칼리 해결을 위한 성명서와 만여 통의 청원서를 보내지만
영국왕실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추구남 17-08-02 20:26
   
은폐의 나라답군...
유상미 17-08-02 21:06
   
역시 영국이나 말레이시아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였군요.
쪼남 17-08-02 21:33
   
가해자 입장만 들어보면 바탕칼리나 노근리나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나 다 거기서 거기

가해자한테 있어선 묻어버리고 싶은 과거이자
당시엔 어쩔수 없었다고 변명하는건 모든 나라가 다 똑같음
피해자만 영구히 진실을 부르짖을뿐.
헬로비녓스 17-08-03 10:14
   
노근리 사건은 좌익 가능성 있는 민간인의 피난을 미리 저지하는 성격? 이런식으로 들은  것 같은데
3일 동안 비무장으로 집합시킨 후 그냥 학살을 즐긴 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