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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12 19:54
황해도 신천 사건 (1950 년)
 글쓴이 : gaevew
조회 : 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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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보실분은 29 분경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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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잇글힘 17-10-12 20:02
 


제목이 Massacre en Corée 인 피카소가 그린 위 그림이 바로 신천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죠.
veloci 17-10-12 21:06
 
이게 전쟁의 본 모습이죠.  자기 이익을 위한 양 극단의 적폐와 외세에 의한무책임하고 무자비한 참상


황해도 신천 학살 사건 

남북 합작의 '인간지옥'


남한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던 학살극은 북한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남한 쪽 시찰 보고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평향에서 철수하면서 1천800 명에 달하는 우파를 학살하였다. 내무부장관 조병옥은 원산 지역 집단학살의 흔적을 목격한 뒤 북한 지역은 '인간지옥'이라고 주장하였다.

북한도 미군과 국군에 의한 '인간지옥'을 주장했다. 북한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미군과 국군의 북한 점령 40여 일 동안 평양에서 1만5천 명, 황해도에서 12만 명 등 모두 17만여 명의 주민이 학살당했다는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학살은 신천 학살사건이다. 미군이 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52일 동안 황해도 신천군에 머물면서 군 인구의 약 4분의 1인 3만5천여 명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전후에 세워진 신천박물관의 한 전시실은 "미제는 신천강점 52일간에 3만5천383명 학살/군 인구의 4분의 1/남자 1만9천149명 녀자 1만6천234명"이라고 크게 써붙여 놓고 있다.

신천 학살사건은 피카소가 51년에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이 유채화는 군인들이 벌거벗은 임산부들과 아이들에게 총칼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피카소가 신천 학살을 소재로 이 그림을 그렸다는 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세상엔 그렇게 알려졌다.

북한은 신천 학살이 해리슨을 중대장으로 하는 미군 1개 중대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제 살인귀들은 어머니들이 어린이를 찾다가 애가 타서 죽고 어린이들은 엄마를 찾다가 간이 말라 죽게 하라고 지껄였다. ······ 원쑤들은 배고파 우는 어린이들에게 물과 젖을 준다고 하면서 휘발유를 퍼부었다."


황석영의 『손님』

그러나 국내 좌우대립에 의한 학살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황석영이 2001년 6월 장편소설 『손님』을 발표하면서 '좌우 이념 대립의 결과'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손님』은 신천 학살의 당사자로 맑스주의와 기독교라는 두 '외래 손님'에 물든 사람들을 꼽았다. 이들이 점령군이 바뀔 때마다 '서로 피를 보는' 악순환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신천을 어떤 곳이었나? 신천이 고향인 한 월남인의 증언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교인들이 많은 동네"이며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제일 먼저 들어온 지역"이었다.

황석영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에 그려진 사실들은 '우리 내부에서 저질러진 일'이었으므로 북이나 남의 어떤 부류들이 매우 싫어할 내용일지도 모른다.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오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라고 할 수 있다. 전통시대의 계급적 유산이 남도에 비해 희박했던 북서 지방은 이 두 가지 관념을 '개화'로 열렬하게 받아들였던 셈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뿌리를 가진 두 개의 가지였다. 천연두를 서병(西病)으로 파악하고 이를 막아내고자 했던 중세의 조선 민중들이 '마마' 또는 '손님' 이라 부르면서 '손님굿' 이라는 무속의 한 형식을 만들어낸 것에 착안해서 나는 이들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손님'으로 규정했다."

유현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끼리는 상처도 아물게 됩네다. 모두 외세의 탓이라고 해둡세다.' 『손님』에서 주인공을 안내하는 북한 지도원은 이렇게 말한다. '외세의 탓'이라고 해두면, 우리끼리의 상처는 저절로 아물게 될까. 신천 학살의 진실을 찾아가는 작업은 이 작은 의문에서 시작한다. 진정한 화해는 문제를 덮어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2년 4월에 방영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망각의 전쟁편」을 제작한 PD 조문묵은 "당시 미군은 평양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붙어 신천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신천 지역에 반공청년단이 꾸려지고, 이승만 정부가 북진하면서 이들이 추인했다"며 학살은 이들 반공청년단에 의해 주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1950년 10월 13일 신천군 내 반공청년들이 봉기를 일으켰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북5도민회 산하 신천군민회에는 '10·13 동지회'가 꾸려져 있다. 이들은 "당시 북한 진영이 후퇴하면서 지주 등을 예비 검속으로 검거한 뒤 처형했다"며 "반공청년단 등이 이에 맞서 10월 13일 봉기를 일으켰다"고 말한다. "미군이 오면 빨갱이을 살려둘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가족을 잃은 사람들 중심으로 보복에 나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성공회대 연구교수 김귀옥은 "학살에 반공청년회 등이 참여했다 해도 이들은 하수인에 불과하다"며 "상부에 있는 사람들은 미국 정보원 노릇을 하면서 미국과 연계해 그 이해에 부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전 한반도는 끔찍한 잿더미

따지고 보면 미군도 '기독교'라는 '손님'이었다. 맥아더는 기회만 있으면 주기도문을 외우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는 서울수복시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환도식에서도 모든 참석자들에게 기립할 것을 요구하면서 주기도문을 바쳤고, 국회의사당에서도 연설을 한 후 주기도문을 외웠다.

맥아더는 폭격을 할 때에도 기도를 올렸고 자신이 고집했던 원자폭탄 투하도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뜻으로 여겼을 것이다. 맥어더는 당시 많은 남한 사람들에게 구세주로 여겼지만, 1981년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在美) 목사 홍동근은 그곳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맥아더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윤이는 작은형님의 둘째이다. 신의주 대폭격에 작은형님이 가족과 함께 돌아가셨을 때 홀로 살아 남은 고아이다. 윤이 얘기를 듣는다. 1950년 가을, 미군 폭격기 B-29 80대 이상이 연사흘 신의주를 폭격하고 특별히 소이탄으로 폭격하여 전 도시를, 집과 사람을 불로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신의주 20만 인구의 3분의 2의 사람이 타 죽고 도시의 80%가 잿더미가 되었다 한다. 문자 그대로 무차별 야만적 폭격을 하여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불태워 버렸다. 거기 내 작은형님과 형수님과 철이가 불에 타 죽었다. 또 수없는 동족의 부녀자들이 불타고 내 배움의 고향이 재가 되어 없어졌다. 나는 신의주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다. 큰형님 말씀이 그 불기둥으로 신위주의 밤이 붉었고 낮에도 타는 연기로 하늘이 먹구름이 되었었다 했다. 이를 위해 맥아더가 한국 백성들에게 '맑은 천기'를 위해 기도하라 했었던가 생각하니 노여움에 치가 떨렸다. 한 사람의 죽음에도 상여를 메고 온동네가 통곡하며 따르거늘 수만의, 수십만의 아니 수백만의 형제와 동족의 죽음을 우리는 무엇으로 울고 또 무엇으로 보상을 할 것인가? 나의 한이 민족의 한이 되어 분노의 불덩어리가 되었다. 평양과 함흥과 신천이 이처럼 불타 없어졌다."

그 '분노의 불덩어리'는 대부분 북한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국군이 개입하기 이전에 이미 북한의 5개 주요 도시(평양, 성진, 나진, 원산, 진남포)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이 철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 6개월간 미 극동군 공군사령관을 지낸 에멋 오도넬은 51년 1월 중순 미 상원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한국에는 더 이상의 폭격 목표가 없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전 한반도는 단지 끔찍한 잿더미일 뿐이다."


출처: http://belle7.tistory.com/275 [Belle - Public Choice]
요로콤 17-10-12 21:34
 
지금이라도 전쟁하면 그리됩니다.
외세는 무슨 외세인가요??
중공군이 참전한다한들 북한군을 더 혐오할겁니다
북한군을 죽이고 남한군이 보복당하고 중미는 막쏘고
그와상관없이 인민재판하고...
가족끼리 칼부림이 더 무서운법이죠
그래서 전범자 김일성이 개새낀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