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KFA)가 진행하는 대부분의 사업은 스포츠 마케팅 대행사 FCN(대표이사 황정우)의 손을 거친다. 스폰서십 유치와 이벤트 기획 등을 주 업무로 하는 FCN은 스포츠 마케팅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협회(KFA)의 문지기'다.
회사 설립 이후 KFA 마케팅 대행사 자리를 차지한 FCN는 지난 16년 동안 KFA 스폰서십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와 kt, 하나은행 등 현재 KFA 메인 스폰서 대부분이 FCN을 통해 계약을 맺은 업체들이다. 그야말로 '철벽'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어느 업체라도 FCN을 뚫고 들어갈 수 없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FCN은 그 모태부터 현대그룹과 함께 한 회사다. 2000년 설립된 FCN은 현 대표이사인 황 사장을 비롯해 금강기획 스포츠사업부 소속 직원들이 IMF 위기 속에서 따로 설립한 스포츠 마케팅 회사다. 이 금강기획이 바로 현대그룹 광고대행사로 현재 현대자동차그룹 광고대행을 맡고 있는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전신이다.
신생 업체인 FCN이 2000년 설립과 동시에 KFA라는 거대한 클라이언트를 독점하다시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현대가에서 시작해 이어진 이들의 파트너십은 KFA와 FCN의 관계에 대한 수많은 의혹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단하다.
2005년 국정감사 때는 안민석 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이광철 전 국회의원이 KFA의 비리를 폭로하며 FCN과 유착 관계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안 의원과 이 의원은 FCN 설 립 당시 협회의 노흥섭 전무와 김정만 사업국장이 이 회사 이사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증거로 들었다. 실제로 노 전무는 2000년 11월 FCN 창립 때부터 2003년 3월 28일까지 약 2년4개월간, 김 국장은 2002년 9월 16일까지 1년6개월간 각각 감사와 이사로 재직했다. 더구나 노 전무는 감사로 재직하는 동안 FCN 주식 1000주를 보유해 직권남용 및 업무상배임 혐의까지 받았다.
하지만 KFA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3년에는 조중연 전 회장이 잔여 임기를 보름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A매치 중계권 계약을 강행하며 FCN을 대행사로 밀어주려다 실패한 사례가 있다. 2016년 KFA는 통합 마케팅 대행사 공개 입찰을 실시했다. 그리고 국내외 유수의 쟁쟁한 경쟁사들을 제치고 FCN의 손을 들어줬다. FCN은 이노션과 컨소시엄 형태로 입찰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스포츠판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월드스포츠그룹(WSG), FIFA, IOC, AFC 등 굵직굵직한 글로벌 스포츠 협회의 마케팅 대행을 맡고 있는 덴츠도 한국에서는 FCN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국정감사에서 FCN 이사로 법인등기부에 등재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던 노 전무의 경우도 해당 사건에 책임을 지기는커녕 승승장구 중이다. 노 전무는 FCN과 얽힌 비리 혐의에도 불구하고 2009년 2월 KFA 부회장 자리에 올랐고, 2010년에는 남아공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단 단장까지 맡았다. 지금도 한국유소년축구연맹 회장 대행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노골적으로 FCN을 밀어줬던 조 전 회장 역시 2015년 조용히 협회에 재입성했다. 이처럼 KFA와 FCN의 밀월 관계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돈 되는 협회 일은 FCN 몫" …KFA와 암묵적 카르텔
"축구를 너무나 사랑해 축구 사업 관련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꿈과 열정을 가지고 대한축구협회(KFA)의 문을 두드렸던 스포츠 마케팅의 한 사업자가 털어놓은 뼈아픈 독백이다. A씨는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를 느꼈다고 했다. 12일 일간스포츠는 KFA와 FCN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한 제보자 A씨를 만났다. 그는 최근 3년 내 KFA와 여러 차례 협상을 펼쳐 봤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A씨는 "축구협회는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고 있다. 너무도 단단하다. 그 어떤 업체가 와도 그 카르텔은 무너뜨릴 수 없다"고 말을 시작했다.
"일단 협회는 새로운 업체를 잘 만나 주지 않는다. 적대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이다.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너무 심했고 너무 놀랐다." KFA와 사업을 하기 위한 협상 테이블에도 앉아 봤다는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아예 협상이 되지 않는 방법을 쓴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누가 봐도 5만원 정도의 사업 규모인데도 그들은 15만원, 20만원을 요구한다"며 "애초에 조율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금액을 부르니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아니 처음부터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로 이런 행태가 자신들과 입맛이 맞는 업체에 몰아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
"다른 업체가 손을 떼게 만들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업체에 일을 준다. 우리에게 불렀던 금액보다 훨씬 싸게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대표적인 업체가 FCN이다." A씨는 울분을 토했다. FCN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했다. 그는 "축구협회의 대부분 돈 되는 일은 다 FCN이 한다. 그들의 관계는 2001년부터 시작됐다. 일감 몰아주기다. 독과점이라 할 수 있다"며 "협회 자회사도 아닌데 자회사처럼 일하고 있다. 그들로 인해 어떤 세계 유수의 업체도 협회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공개입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그는 "공개입찰? 의미 없다. 결국 내정된 업체가 한다. 나머지 업체는 병풍에 불과하다. 희생양이다. 공개입찰은 오히려 더 화가 나는 일"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어 "공개입찰이라 해도 아무도 특정 업체를 이기지 못한다. 심사위원 중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이어 온 이들이 있다. 간혹 돈 안 되는 사업은 다른 업체에 넘겨주더라"고 덧붙였다. 탈락시키는 방식도 문제가 있다. A씨는 "공개입찰에서 떨어졌으면 배점은 몇 점이고, 몇 등을 했는지 등 탈락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탈락 통보만 받았다"며 "떨어진 것에 납득하지 못했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말해 줘야 더 준비라도 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장사꾼이기는 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정말 한국 축구가 발전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가면 후퇴할 수밖에 없다"며 "공정한 경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들은 스폰서가 다 떨어져 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개입찰에 참여를 해 봤던 또 다른 업체 관계자 B씨 역시 "탈락한 이유를 듣지 못했다. 탈락 통보만 받았다.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C씨는 "FCN과 축구협회의 관계는 업계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당연히 의심을 부르는 행동을 이어 가고 있다. 신생 업체가 어떻게 10년 넘게 협회의 핵심적인 일을 도맡아 할 수 있겠는가. 유착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라고 비웃었다. 대한축구협회의 '보이지 않는 손'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익명을 요구한 스포츠 마케팅 사업자 A씨가 울분을 토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A씨는 축구를 향한 애정과 축구 발전을 위한 마음으로 대한축구협회(KFA)와 사업을 추진하려다 '특정 카르텔(담합)'에 막혀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중요한 사업권은 협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체에만 몰아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권만이 아니다. KFA의 각종 이권사업 대부분을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이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가운데 KFA는 오는 21일 제53대 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정몽규(54) 전 KFA 회장이 단독 출마했다. 12일 후보자 등록을 마감했는데 정 전 회장만 입후보했다. 출마가 아니라 추대라는 표현이 맞다. 정 회장의 연임이 확정적이다. 이에 따라 2013년 제52대 축구협회장에 당선된 뒤 지금까지 정 회장이 추진해 온 KFA 행정의 '공'과 '과'를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4년 전 정 회장의 선거 공약이 제대로 실천됐는지 명확히 따져야 한다. 먼저 '공'이라면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유치와 울리 슈틸리케(62) 대표팀 감독 선임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2014 브라질월드컵 참패 및 K리그 중계 활성화 실패 등은 '과'의 큰 실정에 해당한다. 특히 K리그 중계 활성화는 '핵심 실천 공약'이었다. KFA는 A매치에만 편향된 중계를 K리그와 연계하는 '통합마케팅'을 의욕적으로 역설했다. 그러나 이 공약은 현재 공염불에 가깝다. 이 내막에도 '암묵적 카르텔'이 존재하고 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시대가 달라졌어도 도돌이표다. KFA 신임 회장 내정자인 정 회장은 이 공약을 확실히 실천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K리그 중계는 어디로…여전히 뜸한 '지상파 K리그 중계'
대한축구협회(KFA)가 '축피아'로 인해 K리그 활성화는 뒷전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구의역 김모군의 안타까운 죽음에는 '메피아(메트로+마피아)의 잘못된 관행이 깊숙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히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축구 판에도 '축피아(축구+마피아)'가 존재한다. KFA 내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탄탄하게 지키려는 이들을 지칭한다.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 때문에 KFA는 언제나 의혹의 연속이었다.
부정부패와 제 식구 챙기기로 수많은 논란을 만들어 왔다. 이런 의혹과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몽규 전 회장의 핵심 공약이자 올해 신년사에서도 야심 차게 밝힌 'A매치와 K리그 중계를 연계하는 통합마케팅'이 도마에 올라 있다. KFA는 K리그는 외면하고 국가대표의 A매치만 중계하려는 방송사들의 기존 관행을 깨기 위해 'K리그를 중계하는 방송사에 A매치를 배분'하는 통합마케팅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구현되지 않고 있다. KFA가 불신의 눈초리를 피하지 못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정 회장이 취임한 2013년부터 지금까지 K리그의 지상파 중계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2013년 KBS 3경기·SBS 3경기를 시작으로 2014년 KBS 2경기·SBS 1경기, 2015년 KBS 16경기·SBS 1경기 중계에 그쳤다.
물론 이때까지 K리그 중계가 활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현 집행부도 할 말이 있다. 조중연(70) 전 회장이 임기 말 중계권(A매치) 계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조 전 회장이 몰아준 업체는 FC네트워크(FCN·대표이사 황정우)였다. 사실 FCN은 축구협회와 오랜 유착 관계로 꾸준히 의혹을 받아 온 업체다. 2005년 이 문제로 국정감사까지 받았다. 당시 퇴임을 앞둔 조 전 회장은 여론에 밀려 계약서에 사인하지 못한 채 물러났다. 이때 가장 크게 불거진 단어가 'FCN과의 검은 커넥션'이다. 일각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라고도 했다. 그때 KFA의 신임 집행부가 중계권 계약의 전후 관계를 면밀히 검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결국 전임 회장 체제에서 우선 협상자였던 FCN과 계약을 맺었다.
다시 말해 '조 전 회장 때 이미 만들어진 계약서에 신임 회장 집행부는 사인만 했다'고 항변한다면 액면가 그대로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2016년이다. KFA은 2016년까지 유효한 FCN과 종전 4년 중계권 대행업체 계약을 억지로 1년 단축시켰다. 그 이유는 K리그를 살리기 위해서는 '통합마케팅'이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동안 정 회장의 핵심 공약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결국 KFA는 A매치와 K리그를 연계할 수 있는 '통합마케팅 대행사'를 올해 1월 공개 입찰로 선정했다. 그런데 이번에 선택된 업체도 바로 FCN이었다.
국내외 유수의 업체가 공개 입찰에 참가했지만 KFA의 손길은 그동안 의리(?)를 지켰던 FCN으로 향했다. K리그를 살리기 위한 변화를 시도했지만 기존 업체와 다시 손을 잡은 셈이다. '어떤 이유로 FCN을 선정했냐'는 질문에 KFA의 한 관계자는 "왜 그것을 알려 줘야 하는가. 우리 영업 비밀이다. 알려 줄 수 없다. 공정하게 입찰해서 공정하게 선정했다"고 짧게 설명했다. 당연히 변한 건 없었다. 올해 지상파 중계는 KBS 7경기가 전부다. 13일 현재까지 진행된 114경기 가운데 6.14%에 그치는 수준이다. 지상파에서 K리그 중계는 고사 직전이다. A매치 중계만 활기를 띠고 있다.
통합마케팅 공약이 산으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축피아'로 불려 온 KFA 기존 세력의 권력 독점과 구태가 통합마케팅의 발목을 잡은 꼴이다. 핵심 플랜을 멀리한 채 중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KFA는 책임감을 통감해야 한다.이번에도 중계 대행사로 FCN이 선정되자 KFA와 유착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한 번 증폭된 상황이다. FCN은 중계권뿐 아니라 협회 마케팅, 후원사 유치 등 굵직한 사업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다.
이제 KFA의 또 하나의 핵심 정책은 추락한 도덕성과 투명성을 되찾는 것이다. 그동안 KFA 내에서 각종 비리가 벌어졌다. 공금을 횡령한 직원에게 위로금을 준, 있을 수 없는 사건도 있었다. 10년이 넘도록 의혹의 중심에 있는 FCN을 다시 신뢰한 KFA는 정말 당당할 수 있는가. 앞으로 KFA 4년을 새롭게 이끌 차기 회장의 책무가 막중하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김희선기자 일간스포츠에서 발췌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0304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