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로힝야 인종청소 문제는 수치 정부에 대해 구 군부세력들이 내놓은 신의 한수급 카드입니다. 영국의 책임내 뭐내 사실 이번 사태의 본질과는 좀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물론 영국식민지배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본질은 미얀마 국내정치용으로 군부가 벌이고 있는 국내 이벤트입니다.
우리의 상황을 미얀마에 연결시켜 본다면 실권을 내준 군부가 친일파 척결을 명분으로 수치정부를 궁지로 몰고 있는거에요. 수치 입장에서는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친일파들 취급받고 있는 그들을 옹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수치에 관련해서 국제여론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그동안 연결되었던 끈들이 전부 떨어져 나갈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그렇다고 수치의 미얀내 정치기반이 튼튼하냐 그것도 아닙니다. 군부는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고 있습니다. 완전히 그들을 통제하에 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거죠.
국제여론을 의식하면 국내지지기반이 무너집니다. 국민여론이 완전히 돌아설 가능성이 크죠. 그렇다고 국내여론대로 따라가면 국제적인 지지가 무너집니다. 수치가 정권을 잡을수 있었던것도 국제적인 지지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수치가 어떤쪽을 택하든 미얀마 군부입장에서는 그에 따른 대응전략을 내놓을 수가 있는 상황입니다. 수치가 국제여론을 택하면 친일파를 옹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권유지가 힘들어지죠. 군부가 그 빈틈을 정치적으로 파고들기가 용이해집니다. 만약 국내여론을 택하게 되면 군부입장에서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후일을 도모하기가 쉬워집니다. 수치가 군부와의 정치적 싸움에서 곤경에 처했을때 국제사회가 앞으로 도와주지 않을테니까요. 군부입장에선 로힝야족을 이용해서 양수겸장을 둔거죠.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로힝야족이 아라칸 지역에 언제부터 거주했는지는 기록이 없지만 가장오래된 정치집단이 등장한게 4세기입니다. 버마족이 처음으로 이 지역에 진출한건 9세기입니다. 그때부터 서로 치고받고하다가 버마가 최종적으로 아라칸을 점령한게 18세기이고 이때 대대적인 학살을 피해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 치타공쪽으로 도망가게됩니다. 그후 영국이 이지역을 차지하게되자 거의 무인지경에 가까웠던 아라칸으로 로힝야족의 후손을 귀환시킨겁니다.
미얀마 헌법에는 (영국과 전쟁을 벌인) 1823년 이전부터 지금의 영토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입증한 소수민족에게만 국적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있죠.
로힝야족은 당연히 자신들은 오래전부터 거주하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뿐이 없습니다.
이에따라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 족에게 그럼 그때부터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로힝야 족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죠.
그들은 영국이 미얀마를 점령한 후에 데려온 일꾼들이었으니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오래전부터 그들이 존재했다면 이미 멸족을 당했어야 맞습니다.
미얀마는 국가 전체가 불교를 숭배하는 나라인데 그 안에 소수 민족이 이슬람교를 믿으며 21세기까지 평화 공존을 해왔다?
말이 안 되는 소리죠.
결국 헌법에 따라 추방 조치를 합니다.
미얀마 정부로서는 정당한 절차를 밟은 행동입니다.
그런데 로힝야 족은 정부의 의사에 반해 무슬림다운 모습으로 무차별 테러로 무력 저항을 합니다.
당연히 미얀마 정부도 무력 진압을 합니다.
무차별 테러로 무력 저항을 하는 세력을 두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비방한다?
말은 쉽죠.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을 향해 평화적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할 수는 있어도 미얀마 정부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