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赤誠[적성]으로써 祖國[조국]의 獨立[독립]과 自由[자유]를 回復[회복]하기 爲[위]하여
韓人愛國團[한인애국단]의 一員[일원]이 되야 敵國[적국]의 首魁[수괴]를 屠戮[도륙]하기로 盟誓[맹서]하나이다." 대한민국 13년,12월 20일 (임시정부 수립 기점이라 추론됨)
선서인 이 봉 창 / 한인애국단 앞
1932년 1월 8일 일본의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는 히로히토 천황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 관병식이 열렸다. 현장에 모여든 군중들은 최근 만주를 석권하며 욱일승천의 기세를 자랑하던 일본군의 위용에 열띤 환호성을 질렀다. 관병식이 끝나자 히로히토는 수행원들과 함께 마차에 올라 식장을 빠져나갔다.
오전 11시 44분, 히로히토 일행의 마차 행렬이 사쿠라다몬(櫻田門) 근처에 접어들었을 때 군중 틈에서 갑자기 수류탄 한 발이 날아들었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며 천황을 뒤따르던 궁내대신의 마차가 뒤집어졌고, 수행원들과 말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히로히토는 허겁지겁 현장을 빠져나갔다.
깜짝 놀란 일경은 급히 현장을 봉쇄하고 대대적인 범인 검거작전에 돌입했다. 그들이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구타하면서 체포하자 말쑥한 차림의 신사 한 사람이 폭행을 제지하면서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수했다.
그가 바로 상하이 임시정부 한인애국단의 소속의 독립투사 이봉창이었다.
이봉창은 1년 전 자발적으로 임시정부에 찾아가 지도자 김구에게 천황 저격을 자임한 뒤 도쿄에 잠입하여 전 세계를 경동시킨 거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인 천황을 향한 그의 일격은 비록 실패했지만 잠들어있던 민족의 독립의지를 일깨웠고, 이에 감동한 중국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냄으로써 막혀있던 임시정부의 혈맥을 틔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