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으로 스위스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강국의 사이에 끼어 있어 중국·러시아·일본의 틈바구니에 위치한 한국과 비슷한 처지다. 스위스가 가상화폐를 제도권에 편입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2일부터 스위스 시중은행 팰컨 프라이빗 뱅크(Falcon Private Bank)는 자산관리 계좌에서 가상화폐를 정식 투자 대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작은 거인 에스토니아는 정부 차원에서 가상화폐 ‘에스트코인(Estcoin)’을 발행한다. 싱가포르 금융관리국(MAS)은 가상화폐를 공개할 때 금융 당국에 서류를 제출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작고 기민한 이들의 움직임은 모두 디지털 금융 시대를 선점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다.

한국이 가상화폐 거래의 중심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잠재력은 적지 않다. 우선 IT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상화폐 거래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의 하루 거래 금액은 2조 6000억원 수준으로 코스닥 하루 거래 금액보다 많다. 전 세계 거래량의 30~50%를 차지한다. 가상화폐 자문 전문 법무법인 세움의 정호석 대표는 “유명 가상화폐 창업자들이 한국 가상화폐 거래소 대표를 만나려고 비행기 타고 날아올 정도로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은 지정학적 특성으로 ‘패권(霸權) 국가’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금융에서도 원화를 기축 통화로 만들 수도 없고 만들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반면, 중국 정부는 가상화폐를 잠재적인 국가 위협 수단으로 보고 ‘투기 규제'를 명분 삼아 중국 3대 가상 화폐 거래소의 운영을 하루아침에 중단시켰다.

애초 베이징에서 열리기로 한 비트코인 국제 콘퍼런스는 한 차례 연기 후 10일 홍콩에서 열렸다. 중국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국이 가상화폐 거래의 중심이 되는 또 다른 기회가 열리고 있다.

물론 가상화폐의 거품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비트코인은 사기”라며 “‘튤립 파동(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 과열 투기 현상)’을 보는 것 같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지지자들은 이런 시각에 대해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이 꺼진 걸 두고, 인터넷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15년 이상 IT를 취재한 경험으로는 IT의 빅 트렌드는 ‘퍼스널컴퓨터’에서 ‘클라우드컴퓨팅’까지 늘 현실화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에 북한도 초청,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일회성 이벤트도 중요하지만, 거대한 물결(wave)에 올라타 지속가능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외교 방편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 금융 당국, 기술 당국 외에 외교 당국에서도 가상화폐의 창의적 활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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