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람들은 이기적이게도 자신의 기준을 통해 세상을 저울질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20세기 들어 자신들의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자신과 조금 다른 양상이 있으면 갖은 이유와 핑계를 들어 깔려고 하는 버릇은 못 버렸죠.
우리 나라의 개고기에 대해 처음 언급이 있었던 것은 88년 서울 올림픽을 하면서 우리 나라가 세계에 주목을 받게 되던 그 시점부터입니다.
당시 우리 나라는 경제개발의 성과를 통해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고 있던 때로 삶이 안정화되며 경제적으로 개도국을 넘어가는 시점이었죠.
하지만 서구 주류 사회는 5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 나라를 미개한 나라로 규정하기 위해 일종의 흥미거리를 찾았고, 그것이 그들 문화와 반하는 개고기 문화였습니다.
서구의 잣대로 개를 섭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정서적인 측면만 강조하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개를 먹기 때문에 미개하며 미개한 결과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들 수준의 나라가 되지 못할 것임을 비웃듯 걸고 넘어졌습니다.
개고기, 동물을 식용으로 이용하는 것이 미개한 것일까요?
서방 세계는 벼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환경이라 밀농사가 발달했는데 밀농사는 그 농경 시기에 한계가 있어 부수적으로 목축이 발달했습니다. 목축이 가능했던 것도 서양의 기후가 농사에는 부적합해도 겨울 날씨가 습기가 많고 서늘해 초목은 무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목축에서 적은 인간이 많은 동물을 방목하려면 한계가 있었고, 이를 보조하는 동물이 바로 개였습니다. 그러니까 개는 사람보다는 낮고 소나 양보다는 높은 지위였던 것이죠.
이러한 개의 지위는 서방 세계의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부여한 지위일 뿐 개가 태생적으로 그러한 지위를 얻은 것은 아닙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목축이 아닌 벼농사를 바탕으로 하는 농경이 삶의 수단이었고, 이 때는 반대로 소가 인간을 보조하는 노동력이었습니다. 그결과 동아시아에서는 인간 다음으로 소를 높이쳤습니다. 대신에 농산물로만 식생활을 할 경우 단백질 등의 영양분 부족현상이 있을 수 있어 육고기 섭취를 위해 기타 가축을 기르게 되는데 개, 돼지, 닭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개는 농번기이면서 매우 더워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인 혹서기를 대비한 보양 식량으로 여겼습니다. 때문에 과거 농경 문화시기 서민들에게 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식재료였다는 뜻이죠.
이러한 개고기의 섭취와 관련된 내용은 농경 문화이냐 목축 문화이냐에 따라 나타단 문화적 요소일 뿐 그 어떤 잣대로도 유열을 가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 서울 올림픽을 치를 때, 우리는 그전까지 늘 열등 의식에 빠져 있었고, 나라를 빼앗긴 민족, 동족상잔으로 가족을 잃은 민족, 폐허 속에서 빌어 먹던 민족이라는 인식이 강해 대외적으로 매우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서울을 마치 완성된 도시라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장애인들까지 격리 수용하며 외국인들을 맞았었죠.
그랬기에 서구 언론이 지적한 '개고기' 파문은 너무나도 큰 상처였습니다. 때문에 마치 개고기를 먹는 것이 매우 수치스러운 일처럼 치부됐고, 오히려 그 사건을 기점으로 애완 동물 문화가 왕성히 붐을 일으키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2002년에 있었던 월드컵에 와서는 우리는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여 개도국이나 중진국이 아닌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선진 시민의 마음으로 세계와 소통했고, 다시 재기된 개고기 지적에 대해 문화라는 잣대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늙어 추한 모습을 한 '브리짓 바르도' 여사를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었죠. 문화 상대주의도 모르는 백치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개고기 논란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개고기 문제가 화두에 오르고 있는 것은 개고기를 먹는 그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의 식육 유통은 매우 철저하게 관리 됩니다. 가끔씩 돼지 콜레라, 조류 독감 등의 육류 파동이 일어나면 식용 육류를 기르는 생산지부터 역학 조사 및 질병 관리가 들어가죠.
그러한 모습은 세계적으로도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국가의 통제망에 개고기는 없습니다. 물론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많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개고기를 먹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개고기를 먹지는 않으니까요.
그렇다고해서 분명히 소비되고 있는 개고기 육류에 대해 법적으로 일조의 '모르새'로 일관하며 국가의 통제망 밖에 두고 있는 것은 또다른 논란거리가 됩니다.
즉, 불법적인 식용 개고기의 사육과 도축을 통해 비위생적인 유통과 관리가 이뤄질 수 있고, 법제적으로 규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지적하거나 개선할 수도 없다는 지점입니다.
서양의 언론들은 이미 개고기를 섭취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자기 눈에 고깝게 보여도 지적해봤자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위생적으로 사육되는 식용 개들에게 대해, 비 윤리적으로 법망을 벗어난 지점에서 무자비하게 길러지는 그 개들에 대해 정서적으로 접근해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느냐며 그 장면 자체를 미개하거나 선진화되지 못 했다고 지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지속되는 개고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식용 개고기의 사육과 도축, 유통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정부의 통제 내에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합니다.
만약 서방에서 야생 악어나 캥거루를 잡아서 먹는다면 미개하다고 하겠지만 식용으로 농장에서 사육된 악어와 캥거루를 국가의 축산법에 의해 도축해서 음식으로 만든다면 누구도 반문하지 않고 특이한 문화로 인식하며 오히려 흥미를 가질 것입니다.
우리 나라를 찾은 많은 외국인들 중에 실제로 개고기를 섭취해 보는 외국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음식문화일 뿐이라며 이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는 아직도 개고기를 금기해야 할 부분으로 여기고 실제적인 법제를 만드는데 미온적입니다. 이가 더 큰 문제를 지속적으로 유발시킴을 인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개고기의 소비는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없어질지는 모를 일이며, 그 시기도 언제인지 예측하기 힘듭니다.
상황이 이런데 무조건 쉬쉬하는 것은 매우 선진적이지 못한 발상입니다.
혹시 누가 압니까, 앞으로 시간이 지난 뒤에 개고기가 우리의 문화재라도 국가가 나서서 보호하려 할지 말이죠. 물론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현명하지 못한 행위에 대해 비꼬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