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는 이화오적(당시에 그렇게 불렀던걸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가물가물...)이 토론회를 주최하고 이 토론회에 진중권이 폐지쪽 패널로 나와서 특유의 조롱섞인 표정과 비아냥으로 승리로 이끌었죠.
대충 1998년인가 99년쯤으로 기억하는데, 물론 토론회에 군가산점 폐지 반대쪽 패널은 제대로 섭외한게 아니라 작정하고 폐지를 위한 판을 짰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토론회를 방점으로 대대적으로 군가산점 폐지를 주장하고 나온건데,
그 토론회에서부터 장애인(남자)을 방패막이로 삼아서 군가산점 폐지에 제대로 힘을 실었던 게 맞습니다.
써먹고 바로 팽당하긴 했지만.
당시 실제 여론은 군가산점 폐지 반대가 훨씬 높았고, 그래서 억지로 '당위성'을 만들고자 이루어진 토론이죠.
개인적으로도 폐지는 찬성이고 차라리 공동징병(혹은 대안복무제)를 실시하자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이게 가능해지려면, 뭣보다 군가산점을 대신한 '대안'이 선행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걸 싹 무시한 체 '우선적 폐지' 이걸 앞세웠고, 일단 폐지하면 뭐 다른 대안에 동의할거란 제스쳐로
어영부영 넘긴거죠. 물론 폐지만 하면 그 이후로 대안따위 관심을 가질 족속이 아니란건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
그래서 대안없는 가산점 폐지는 대부분이 반대를 했음에도 결과는 아시는 바와 같죠.
아마 장애인을 끌고 오지 않았다면, 폐지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최소한 대안은 가져왔어야 하고.
그게 결정적인데, 지금봐도 논리는 말이 안되는 거긴 해요. 그래도 그 논리조차 없이 우기던 때보단 나은거라.
그리고 저게 먹히고 나서 페미들이 더 설치기 시작합니다.
가장 상징적이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나머지는 쉬운 편이죠.
그래서 호주제 폐지같은 건 정말 쉽게 진행됐죠. 눈물짜는 스토리 하나면 가볍게 여자들 힘을 얻을 소재라.
그리고 군가산점 폐지 이후로 깨어있는 소수의 남자들에 의해 주장이 되기 시작한 것이 공동징병.
저 흐름도 결정적으로 여군장교, 부사관 확대에(이면서 사병은 반대하는 모순) 따른 반발이 영향을 줬는데,
장교나 부사관은 더 확대해달라고 압력을 넣으면서 공동징병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이 논리는,
군대를 단순히 직장수준으로 생각하는 천박한 직업논리에 따른 발상으로 욕을 먹는 일이었죠.
공동징병에 대한 의견이 강하게 나올 때마다 반대측 논리는 위에 다른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일정합니다.
1. 양심적 병역거부 (이 부분은 논파에 앞서서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
2. 모병제 전환
이 두가지 입니다.
1번은 두 말할 가치도 없이, 징역살이로 해결 됩니다. 하지만 소신때문에 빨간줄 가긴 싫다...
이런 논리이고, 거기에 따른 대안복무 의견을 얼마든지 낼 수 있지만 스스로 내지 않죠.
대안으로는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철책 지뢰제거반, 영유아 탁아소 운영 등. 좋은 방법 참 많아요.
2번은 예상가능하다시피, 운영 자체가 불가능할 거란 걸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고 그냥 우기는 겁니다.
휴전중인 국가에 모병제, 전후 한시간 이내에 수도 점령이 가능한 나라에서 모병제 주장은 참 황당하죠.
군대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어차피 지들은 갈일 없으니까...
이런 의식이 기저에 깔려있기에 가능한 유아적 발상.
언제 전쟁날지 모르는 나라에서 군대 지원할 사람 몇이나 되겠습니까. 발발과 동시에 총알받이인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저 말같지 않은 주장들을 어거지로 하면서(이게 선동이죠) 여자들을 세뇌시킵니다.
물론 세뇌되고 있는 남자들도 꽤 있긴 합니다. 반박된 영터리 통계가 끊임없이 도는 이유가 있는 거죠.
일단 세뇌되고 나면 피해의식을 깔고 떠들기에 이성적 대화는 불가능해집니다.
박정희 세대들이 바뀌지 않는 이유와 아주 똑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뇌에 유독 여자들이 약하죠.
페미들에게 세뇌된 여자들과, 박정희를 추종하는 노인세대는 큰 차이점이 없습니다.
단지 박정희냐, 페미니즘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