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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12 12:37
대한제국의 민중의 의식수준.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2,886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1898년 열강의 이권 침탈에 대항하여 자주독립의 수호와 자유 민권의 신장을 위해 조직, 개최되었던 민중 대회.


독립협회는 3월 10일 종로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국민의 힘으로 제정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배제하고 자주 독립을 공고히 하기로 하였다. 독립협회가 개최한 3월 10일의 만민공동회에는 서울 시민의 약 17분의 1인 1만여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운집하여 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규탄하였다.

그런데 3월 12일 개최된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서울 남촌(南村)에 거주하는 평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수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만민공동회에서 자발적으로 등단한 연사들은 러시아와 모든 외국의 간섭을 배제, 자주 독립의 기초를 견고히 하자고 연설하였으며, 군중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며 ‘가(可)’라고 환호하였다. 이것은 민중의 거대한 힘과 시민의 성장을 나타낸 것으로 정부 관료들 뿐만 아니라, 독립협회 회원들과 외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과 놀라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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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측은 두 차례의 만민공동회의 결의와 각국의 반응을 고려하여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주한 러시아 공사에게 회답 전문을 보내어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의 철수를 훈령하였다. 대한제국 정부는 1898년 3월 19일 러시아의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을 정식으로 해고하였고, 뒤이어 한러은행도 철폐되었다.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는 12월 1일 황국협회와의 쟁투 때 죽은 신기료 장수 김덕구(金德九)의 만민장을 성대하게 개최하고 시위행렬을 벌였다. 이것은 만민공동회의 세력을 강화하고 시민의 지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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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만민공동회에는 전국 각지로부터 의연금이 쇄도하고, 평양에서도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었으며, 독립협회의 지회들이 전국 각지에서 연이어 설립되었다.



의의와 평가

비록 만민공동회운동은 실패하였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영향을 남겼다. 첫째, 1898년의 가장 위험한 시기에 한반도까지 진출한 제정러시아를 랴오둥반도로 후퇴시키고 국제 세력 균형을 형성하여 유지시켰다. 이 때 획득된 세력 균형이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 때까지 만 6년간 지속된 것이었다.

둘째, 열강의 이권 침탈과 침략 간섭 정책을 물리침으로써 일시적이지만 한국의 자주독립을 굳건히 지키고 열강의 침략을 일단 저지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셋째, 수많은 애국적 인사들을 근대적으로 배양하였다. 이것은 두가지 면에서 특히 그러하였다.

하나는 만민공동회운동에 참가하였던 청소년들을 그 뒤의 민족 운동의 지도자로 길러낸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주자학과 위정 척사 사상에 젖어 있던 낡은 애국적 인사들을 근대적 자주 민권 자강 사상을 가진 애국적 인사로 전환시킨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은식(朴殷植)·장지연(張志淵)·신채호(申采浩) 등과 같은 애국계몽운동가의 경우이다.

넷째, 자유민권사상, 즉 민주주의사상을 시민들 사이에 보급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다섯째, 민중들 사이에서 민중에 의한 애국운동의 새로운 형태를 정립하였다. 여섯째, 그뒤의 민중에 의한 독립운동의 원동력을 양성 공급하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3·1운동인데, 우리는 한국근대사에서 그 최초의 원형을 만민공동회의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17594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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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8-11-12 12:41
   
명,왜엔 없는 조선 선비의 공론정치 

http://cafe.daum.net/hwangmanki/BMue/150?q=%C1%B6%BC%B1%20%B0%F8%B7%D0%C1%A4%C4%A1

조선과 같은 먼 극동의 나라에서 우리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의 자존심마저 겸연쩍게 만든다. 조선 사회에서 문맹자들은 심한 천대를 받기 때문에 글을 배우려는 애착이 강하다. 프랑스에서도 조선에서와 같이 문맹자들을 가혹하게 멸시한다면, 경멸을 받게 될 사람이 허다할 것이다. 

- 프랑스 해군 장교 주베,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 


조선시대 한글 활자 인쇄본들 

http://decentliar.tistory.com/601


오늘날 책대여점같은 조선시대 세책점(아녀자도 소설을 읽고 오늘날 넷에서 댓글 달듯 

책에 댓글 놀이도 한)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mcschool&logNo=220808791129

당시 이정도의 문명률(글을 아는 수준)이면 세계사에서도 탑클래스군요. 

(비록 근세 조선이 말기에 우리가 일본이라는 국호와 도시문명까지 건설해주며 

수천년 신속하고  살던 왜에 35년 잽강점기의 치욕의 오점을 남긴 왕조이지만 

괜히 문에서 선진강대국이자 방대한 인쇄문화에 코리아가 세계활자 종주국이 아니군요) 



1577년 조선의 <민간인쇄 조보>, 세계 최초 '활판 상업일간신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28988&CMPT_CD=P0001

이외 근세 조선이 비록 서구의 기계동력 기술과 무기의 교류가 늦어진 부분은 크지만 

사회 전반적 문화상은 이미 다방면에서 선진적이였군요. 


고려 '사개송도치부법' 서양보다 무려 2세기 앞선 근현대적 복식부기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418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1%B0%EC%84%A0+%EB%B3%B5%EC%8B%9D%EB%B6%80%EA%B8%B0&sop=and


조선시대 회계문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ord2345&logNo=220490650000



세계 최초 공중 보건의서 '동의보감' 국보 승격 예고 
  
  
  

'동의보감' 국보 승격 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東醫寶鑑)」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하였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9808&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B%8F%99%EC%9D%98%EB%B3%B4%EA%B0%90&sop=and


이런 공중 의서의 편찬과 상업의 발달에 따라 조선은 이미 18세기에 

의약 분업 즉 진찰은 의원에게 약을 약방에서 찾는 형태가 나오는데 유럽은 이런건 

19세기 이후로 가서야 나타나기 시작하는 사회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901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1%B0%EC%84%A0+%EC%83%81%EC%97%85%EC%9D%98+%EC%84%B1%EC%8B%9C&sop=and


19세기 서울/한양보다 처참했던 서양 도시 생활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4359&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3




유럽따위 씹어먹는 조선의 빈민구제소 수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3930&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2


조선시대 한양의 무상의료 정책, '한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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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민중? 서명운동, 조선시대 만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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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계 최초의 음식 배달 문화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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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맛집소개서 / 미슐랭 가이드 ‘효전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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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현금인출카드를 쓰던 조선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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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동양 최초+최고의 유량악보: 정간보 

현대적 음의 길이와 리듬을 표현할수있는 유량악보, 정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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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한류 열풍? 알고보면 조선 사대부 화장법!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4636&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3
굿잡스 18-11-12 12:51
   
비록 만민공동회가 러샤나 쨉등의 외세의 이간질과 열강의 침탈등으로 실패하기는 했지만

도리어 관치  군수 군부  위주의 위에서 찍어누르던 전근대적 사회 의식상을 벗어나지 못한 쨉보다 대한제국의 민중의 수준이 더 높았다고 보이군요.

대한제국이 쨉과 동등 혹은 조금의 시간만 더 주어져서 근대 전국적 징병제를 갖추기 직전에 강제병합되지 않았다면

지식과 탐구  학습력이 높았던 대한제국의 국민들은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군사등 전반적으로 쨉보다 더 빠르고 내실있게 성장했을 것으로 보이군요.
     
magnifique 18-11-12 13:56
   
옳으신 말씀 왜국은 당시에 오로지 군비에 몰빵하여 제국주의가 가능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양이론자들이야 일본에서도 있었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지리적 이점, 그것 하나 더 좋아서 근대화가 빨랐을뿐
햄돌 18-11-12 13:47
   
대한민국 최고애국주의자 굿잡스님 존경합니다..
콩쥐팥G 18-11-12 14:03
   
예전부터 글잡스님 글은 많이봤지만, 진정한 일뽕도살자인듯..
바람노래방 18-11-12 14:18
   
저는 이게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만민공동회 사건을 취재했던 미국 기자의 말이라고 인터넷에 올라왔던걸 본 적이 있는데

"광화문 인근의 한 골목에서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 몇명이 플랭카드에 어떤 문구를 적을까 가지고 자기들끼리 토의하고 있더라"

저는 이 장면을 묘사한 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